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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군단장 랭코르의 개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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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32
그림/삽화
시베리아인
작품등록일 :
2017.09.03 17:09
최근연재일 :
2019.03.17 18:00
연재수 :
89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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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880
추천수 :
378
글자수 :
482,918

작성
18.08.25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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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
추천
3
글자
10쪽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Epilogue)

DUMMY

Epilogue



“군단장님께서 제때 지원군을 보내주신 덕분에 저희 군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하해와 같은 은혜에 어찌 말로서 다 감사를 표하겠습니까. 모든 것이 군단장님의 높으신 은덕입니다.”

“흠, 은혜라. 그래,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예, 그렇습니다. 방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소인이 돌아가서 즉시 전하겠나이다.”


옥좌에 앉아 사절을, 그것도 엄청 마음에 안 드는 놈이 보낸 녀석을 접견하는 건 참 따분하고 좀이 쑤시는 일이었다. 그래도 의무감 하나로 어떻게든 앉아는 있었지만.


“그쪽이 뚫리면 나의 왕께서 위험에 처하시니 구했을 뿐이다. 네 주인에겐 그렇게 전해라. 감사를 표하고 싶다면 말이다.”


나는 바닥에 바짝 엎드린 사절에게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은 그의 주인에게 전하는 경고였다. 그를 진심으로 위해서 도운 것이 아니라 단지 왕을 위해서 도왔다는, 그러니 내 진노와 마주하고 싶지 않거든 왕에게 거역하지 말라는 은근한 경고. 그래봤자 내가 잠시만 눈을 떼면 다시 숙덕대며 반역 모의를 꾸밀 멍청한 녀석들이겠지만, 그래도 이번만큼은 통하기를 바라면서 힘을 주어 말한 것이었다.


“...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사절과 짧게나마 한담을 나누고 돌려보낸 나는 옥좌 위에서 일어서 천천히 홀을 가로질렀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깨끗하게 세탁해서 마치 새것처럼 빛나는 망토가 깃발처럼 휘날려 마치 무지개 위로 날아오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늘 잔뜩 찌푸리고 있는 찌뿌둥한 마계의 하늘에 무지개 따위가 뜰 일은 없다는 건 잠시 잊어버리자고.


“오늘은 이것으로 끝인가?”


나는 옥좌 옆을 말없이 쭉 지키던 죽음의 기사에게 고개를 살짝 돌리며 물었다. 하이델은 오늘 비번이었던지라 분대장 중 하나가 대신 근무 중이었다. 비번일 때 뭘 하고 지낼지는 불 보듯 뻔했지만 별 수 있겠는가. 어쩌겠어, 부하 녀석의 사소한 사생활 정도는 존중해줘야지. 그런 것까지 일일이 통제하는 상관은 정말 갈 데까지 간 최악이니까.


“예, 끝났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내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 수고 많았다.”


내가 옥좌에서 일어서서 발걸음을 옮기자 죽음의 기사가 즉시 내 뒤쪽으로 다가와 붙었다. 조금 부담스럽지만, 그렇다고 떼어놓을 수도 없으니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 그래, 그럼 슬슬 가볼까나.


“일단 집무실로 돌아가자.”

“모시겠습니다.”


텅 빈 홀을 가로질러 걸어가는 두 명분의 발걸음이 드높은 천장 위까지 단단하게 울려 퍼져갔다.




“소환 의식의 감시 범위를 지구까지 넓히는 것이 어떨까 싶은데...”


집무실에 도착한 나는 엘드리치 영감을 호출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며칠 전부터 줄곧 생각하고 있던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영감은 고개를 살랑살랑 옆으로 저으며 대답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봅니다.”


나긋나긋한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늙은이 특유의 거친 기색을 숨길 수 없는 목소리가 이쪽으로 천천히 흘러들었다.


“이번 소환은 굉장히 예외적인 케이스였지 않습니까. 애초에 지구에는 마족을 소환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마법진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피와 내 이름을 써서 마법진을 그리는 방법이 있음이 이번 일로 명백히 드러나지 않았나.”

“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건 말씀드렸다시피 정말로, 정말로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일반적이지 않지요.”


영감은 뭐라 말하려고 하는 내 앞에 하얀 손뼈를 척 가져다 올린 후 말을 이어나갔다. 예,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짜져 있을 테니 어디 설명이나 해 보시죠.


“대륙 전체에 감시망을 구성하는 데 상당히 많은 그림자 마물을 투입했습니다. 지구는 여기보다 몇 배는 더 넓고 인구는 수백, 수천 배 더 많은 세계이니 감시망 구축에 더 많은 자원과 노력이 들어갈 것은 자명한 일이지요. 헌데 그걸 대단히 예외적인 상황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항시 감당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충분히 일리가 있는 논리였다. 그 탓에 내가 가만히 앉은 채로 고개를 주억거리자 영감님은 승리에 취하기라도 했는지 살짝 우쭐대는 목소리로 그 다음 얘기를 꺼냈다.


“그리고... 중간계가 다른 마족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기를 바라시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그러면 지구는 더더욱, 굳이 감시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피와 이름이 있어야 소환이 성립하는데, 거기서 이름이 팔린 마족은... 한 명밖에 없잖습니까. 잘 쳐봐야 하이델 경까지 포함해서 두 명?”


영감이 하고자 하는 말은 분명했다. 그것도 못 알아먹으면 내가 이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나만 죽어라 불러댈 테니까... 그때마다 내가 가서 박살을 내든 뭘 하든 하면 된다는 건가.”

“예. 이름을 새긴 소환 의식은 다른 마족이 낚아챌 여지가 없으니 말입니다.”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영감은 웃음이라도 지으려는 모양인지 뭔지는 몰라도 턱뼈를 아래로 살짝 늘어트렸다가 되돌려놓는 것을 반복했다. 승리의 웃음인가. 네, 네, 저 같은 놈 이겨먹어서 정말로 기쁘시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웃고’ 있었던 영감님이 의자를 바짝 당겨 앉으며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도 덩달아 진지해지면서 그의 해골 얼굴 쪽으로 고개를 기울였고.

“기네즈 백작이 헌납한 그 저택, 기억하십니까?”

“기억나고말고. 그녀가 원하는 대로 개조해 놓으라고 했었는데... 설마.”

“예, 다 끝났습니다. 입주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영감이 그 괴상한 웃음을 지었다. 이번에는 딱 한 번 왕복으로 끝났지만.


“랭스 저택이 그렇게 비좁은 건 아니지만... 계속 정체를 알 수 없는 손님이, 그것도 묘령의 여인이 머무른다면 별로 좋은 얘기는 안 나올 겁니다. 슬슬 이사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좋은 얘기 같은 건 하나도 안 나오고 있었으니까 별 상관은 없는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지만 그녀 입장에서도 계속 거기 머무르는 건 좀 불편하겠지. 무엇보다도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는 소피아가 있으니까. 두 사람이 서로 양호하게 잘 지낸다는 보고는 받았지만, 그래도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편이 더 나으리라.


“일단 의향을 물어보고 나서 진행해라.”


그래서 나는 책상 위에 두 손을 올려놓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마 거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보고받은 바에 따르면 개축 과정에 정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고 하더군요. 가구의 색상이나 세세한 위치까지 모두 지시했다던데... 흠.”


영감의 왼손이 오른쪽 소매 안으로 들어갔다가 둘둘 말린 종이 한 장을 쥔 채 다시 빠져나왔다.


“자, 보십시오. 공사 완료 직후에 마법으로 그림을 그려 두었습니다.”


나는 그 두루마리를 건네받아 책상 위에 쫙 펼쳤다. 속기 마법을 응용하여 저택을 거의 사진이나 다름없는 수준으로 묘사한 그림이었다. 이 마법도 결국은 술자의 그림 실력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으므로 우리의 고명하신 엘드리치 ‘화백’께서 직접 시전하셨을 리는 없겠지만... 이건 좀 다른 얘기니까 넘어가자.


“제법 괜찮군. 흠... 헌데 이건...”


현관문 앞에 세워져 있는 이젤이야 그녀가 원래 그림을 좋아했으니 그렇다 치고, 그 외에는 한쪽 담장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마치 끼워 맞추듯 새로 지은 하얀색 별채가 특히 눈에 띄었다. 다른 곳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지만, 별채에 해당하는 부분에만 담장이 세워져 있지 않아 누구라도 그 안에는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차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티 하우스를 운영할 생각이라더군요. 유동 인구가 별로 없는 주거 지구라서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내가 그 부분만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 영감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내며 끼어들었다. 뭐 별로 걱정할 만한 사안은 아니었지만.


“어차피 소일거리 삼아서 하는 일일 테니까... 오히려 한가하면 한가할수록 더 좋겠지.”

“하하, 그렇습니까.”


나는 그림을 다시 둘둘 말아서 서랍장 속에 집어넣었다. 나중에, 나중에 좀 더 진득하게 봐도 되겠지. 직접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테고. 지금은 혼자 있는 게 아니니까 좀 더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


“이런, 아무래도 이 늙은이가 방해를 한 것 같군요.”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천천히 보고 계십시오.”

"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


하지만 그런 얕은 생각을 간파하기라도 했는지, 영감님은 장난스럽게 농을 붙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절규에 가까운 고함 소리를 내뱉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저 매정한 모습이라니.


“하아...”


엘드리치 영감이 집무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는 깊은 한숨을 입에 담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 뒤에 서 있던 죽음의 기사를 떠올리고는 창피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몸을 쭈뼛쭈뼛 그쪽으로 향했다.


“...”


그러자 녀석은 아무것도 못 봤다는 듯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 아이고, 낭패로구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어. 망할. 대체 이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이란 말인가.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선... 함구하도록 해라.”

“예!”


기합이 바짝 들어간 대답을 들었지만 전혀 안심이 되지 않는 건 왜일까.


“명령이다. 절대로 말해선 안 된다. 그 누구에게도.”

“예.”


그래서 한 번 더 확인을 받고, 한 번 더 부끄러워하고.



- fin.




"Archfiend Legion Commander Rancor's Personal Record" by GP32,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말

13장이 끝났습니다. 이전에 예고했던 대로 15장으로 시즌 1을 완료할 생각인데, 15장이 지금까지의 전통대로 11장의 후일담이 될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14장이 시즌 1의 마지막 챕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정말 조금만 남았네요.

12장을 미친 듯이 달리느라 조금 지쳤던 터라 이번 13장은 살짝 쉬어 가는 느낌의 챕터로 기획했습니다. 7장 Clockwork Growls와 비슷한 느낌이려나요. 그래서 약간 짧은 편이고, 꽤나 즐겁고 유쾌한 분위기에서 집필한 것 같습니다. 늘 이런 식이라면 참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겠죠.


이번에는 별로 할 얘기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잡담은 이쯤에서 그만두도록 하고... 저는 14장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최근 조금 몸이 좋지 않아서 며칠 정도 걸릴 것 같네요. 부디 노여워하지 마시고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커피 중독 GP32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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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Evolving Souls (2) 18.12.09 65 1 12쪽
85 Evolving Souls (1) 18.11.30 80 1 7쪽
84 EE: Emulated Emeth (시즌 1 完) +2 18.09.08 474 3 14쪽
83 make believe (Epilogue) 18.09.05 432 4 8쪽
82 make believe (7) 18.09.04 415 4 14쪽
81 make believe (6) 18.09.03 418 2 13쪽
80 make believe (5) 18.08.31 425 3 14쪽
79 make believe (4) 18.08.30 428 2 14쪽
78 make believe (3) 18.08.29 429 3 16쪽
77 make believe (2) 18.08.28 429 3 14쪽
76 make believe (1) 18.08.27 442 3 8쪽
»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Epilogue) 18.08.25 440 3 10쪽
74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5) 18.08.24 442 3 14쪽
73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4) 18.08.23 45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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