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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군단장 랭코르의 개인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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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32
그림/삽화
시베리아인
작품등록일 :
2017.09.03 17:09
최근연재일 :
2019.03.17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71,909
추천수 :
378
글자수 :
482,918

작성
18.09.05 00:52
조회
461
추천
4
글자
8쪽

make believe (Epilogue)

DUMMY

Epilogue



“믿는 이들을 구원하는 거룩한 분이시여, 당신의 종이 올리는 기도를 귀담아 들으소서. 당신의 위대함을 위하여 오롯이 모든 것을 바친 이에게 당신은 한없이 자비하십니다.”


아주 성대한 장례식이었다. 아직 제대로 자리조차 잡지 못한 사이프러스 교구 입장에서는 굉장한 출혈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유력 인사들이 수없이 참석하여 모두들 슬픈 척 고개를 숙이고, 제대 앞에 선 젊은 신관 하나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추모의 기도를 읽어나가는 그 모습에서 나는 추악한 위선의 냄새를 맡았다. 제대 위에 놓인 밀랍 초가 타들어가는 냄새가 곧 위선과 죄악의 냄새였다.


“가장 고결한 당신의 종, 체칠리아가 당신 앞에 섰나이다. 바라옵건대 그녀의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다만 그녀의 헌신과 희생을 헤아리시어 천상 낙원의 빛을 내리소서.”


신관의 목소리가 넓은 공간 안으로 메아리치며 퍼져나갔고, 제대 뒤쪽에 잠자코 서 있던 나는 코웃음을 치며 속으로 생각했다.


‘낙원은 없어. 영원한 지옥만 있지. 지상이라는 지옥.’


내가 그렇게 딴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신관이 천천히 뒤로 돌아선 다음 눈짓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쉰 다음 제단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를 호위하면서 겪었던 기적의 체험을 이 앞에서 간증해야 할 시간이었다. 아무 기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기적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이 기적이라면 기적이겠지.


“존경하는 귀빈 여러분. 저는 체칠리아 수녀님의 고귀한 희생과 장엄한 기적을 기억하며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 또한 기억하여 주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겪지도 않았던 기적의 체험을 평탄하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계속 늘어놓는 나, 그리고 경청하는 척 하지만 아마 대부분 속으로 딴청을 피우고 있을 참석자들. 누가 더 위선자일까. 누가 더 영벌 받아 마땅한 자일까. 아마 나겠지. 하지만 나는 이미 벌을 받고 있었다. 영원히, 모든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벌을. 그러니 조금 더 내 얼굴에 먹칠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래서,


“저는 포르토스에서부터 수녀님을 호위해 여기, 사이프러스까지 왔습니다.”


장막 뒤쪽에서 수녀의 기적행을 모두 기록하는 수련 신관을 빼면 아무도 귀담아듣지 않을 이야기를,


“수녀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민물고기 두 마리로 굶주린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으며, 그러고 남은 것을 한데 모으니 광주리 열두 개가 가득히-”


계속 이어나갔다.




딸랑-


“나 왔어.”


나는 하얗게 칠한 문을 살짝 밀고 들어가면서 소리를 높여 외쳤다. 문에 매달린 종이 몇 번인가 작게 울리면서 아름답고 정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늘은 손님 좀 있었어?”


자연스럽게 창가 쪽 자리에 가서 앉는 나에게,


“아니. 그냥 그림이나 계속 그렸어.”


그녀가 걸어와서 테이블 위에 향초를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성냥불을 능숙하게 켜서 향초에 불을 붙인 그녀는 살짝 눈웃음을 지으면서 카운터 쪽에 놓여 있는 이젤을 가리켰다.


“당신... 이야.”


시꺼먼 투구가 정중앙에 제법 정교하게 그려져 있는 캔버스가 거기에 놓여 있었다. 아직 목 아래쪽은 그리지 못했고, 배경 또한 전혀 그려져 있지 않은 미완성 초상화. 결국 나를 지금 모습 그대로 받아들였구나 하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기뻤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웠다.


“잘 그렸네.”

“배운 게 이것밖에 없잖아.”


완성되면 랭스 저택으로 보내겠노라고 말한 그녀는 카운터 쪽으로 걸어간 다음 거기 엎어져 졸고 있는 사람을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 풍성한 갈색 머리칼이 산발이 될 정도로 정신없이 졸고 있던 그 여자는,


“... 아, 안녕하세요.”


체칠리아 수녀였다. 검은 수도복 대신 하얀색 계통의 평상복을 단정하게 입은 그 모습에서 더 이상 성결한 빛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한 명의 평범한 여인이 있었을 뿐.


“장례식은 잘 끝났다. 교단에선 네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을 거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여 애플민트 향을 내뿜는 초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관짝에 들어가 신전 바닥에 묻힌 도플갱어를 빼오느라 살짝 애를 먹었다는 사실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아마 시일이 지나면 이 또한 ‘성녀의 유해가 하늘로 불려간 기적’으로 회자되겠지.


“감사... 합니다.”

“약속을 지킨 것일 뿐이니까 감사는 필요 없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그녀가 쭈뼛쭈뼛 걸어와 내 앞에 앉았다. 나는 카운터 쪽을 한 번 흘끔거려 눈치를 살핀 다음 몸을 앞쪽으로 살짝 굽혔다.


“가족들은 아직 무사하다. 장원을 처분하고 허름한 여관에 투숙하며 어렵게 살고 있긴 하지만...”


내가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한 말을 듣자마자 그녀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오래 지나지 않아 그녀는 얼굴을 테이블 위에 묻고 나직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엄마... 미안해요... 내가... 나는...”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울고 있는 체칠리아를 내려다볼 뿐. 카운터 앞에 서 있던 그녀, 지나도 어느새 이쪽으로 걸어와 체칠리아를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어디 살고 계신가요?”

“직할령. 거리가 꽤 먼 편이니 원한다면 공간 이동 정도는 해줄 수 있다.”


저 아름다운 얼굴에서 나왔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허스키하고 가래 끓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아마 그만큼 절박하고 또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리라. 울고 있었던 탓이기도 할 테고.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답하며 별로 대단하지는 않은 친절을 베풀기로 했다. 엘드리치 영감에게 아쉬운 소리 한 번 정도만 하면 되겠지, 뭐.


“저기.”


그런데 갑자기 지나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족들을 여기로 데려오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게 무슨...”

“돌아가 봤자 무일푼인 건 마찬가지잖아. 돈을 쥐어준다 해도 언제 어떤 일이 있을 지는 아무도 모르고.”


지나는 다른 테이블 쪽에서 의자를 하나 끌어온 다음 거기에 척 앉으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까 가족 전체를... 내가 고용해서 이 집에 입주시키는 거야. 월급도 주고, 당장 살 곳도 마련해주고. 마침 집이 너무 넓어서 혼자 지내기 좀 그랬거든.”


이 집보다 훨씬 넓은 데서도 잘 사셨던 분이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물론 월급은 당신이 대줄 거지?”


하지만 한쪽 눈을 찡긋하며 애교 섞인 목소리까지 내는 지나에게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 손님도 없는데 무슨 일을 시키려고.”

“굳이 여기서 일할 것까지는 없고... 일이 없으면 그냥 집 청소나 그런 거라도 시키면 되지. 뭐 그런 걸 걱정해. 일단 저지른 다음에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래, 내가 졌다, 졌어.”


항복 선언이 떨어지자 그녀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체칠리아를 바라보았다. 아마 그 미소가 체칠리아에겐 자애로운 여신의 미소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기사 가문에서 일개 하인으로 떨어지는 건데... 정말 괜찮겠나.”


우리 둘이야 합의를 끝냈지만, 당연히 당사자의 의사가 우선이었기에 그쪽을 바라보며 한 마디.


“괘, 괜찮아요! 오히려 너무 감사한걸요. 랭스 가문은 남작가문이니까... 여기서 저희가 하인으로 일한다 해도 이상할 건 없어요.”


귀족 가문에선 조금 더 낮은 귀족 가문의 사람을 하인으로 들이는 전통이 있다고 했던가. 언제인가 하이델 녀석이 알려줬던 것이 얼핏 기억났다. 그러면 딱히 상관이 없겠어. 일단 ‘랭스 남작’의 먼 친척으로 호적에 올라갔으니 방계이긴 해도 귀족은 귀족 아닌가.


“그럼 빠른 시일 내에 가족들을 데리고 오겠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저쪽에 해라. 나는 그럴 생각, 추호도 없었으니까.”


나는 꾸벅 고개를 숙이는 체칠리아를 뒤로 한 채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벌써 가려고? 어디 가?”

“마시장.”


골치 아픈 일을 하나 더 떠안고 말았다고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 fin.




"Archfiend Legion Commander Rancor's Personal Record" by GP32,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말

다음 편이 시즌 1의 마지막 편입니다. 후기는 그때 몰아서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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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Evolving Souls (3) 19.03.06 94 2 15쪽
86 Evolving Souls (2) 18.12.09 92 1 12쪽
85 Evolving Souls (1) 18.11.30 94 1 7쪽
84 EE: Emulated Emeth (시즌 1 完) +2 18.09.08 524 3 14쪽
» make believe (Epilogue) 18.09.05 462 4 8쪽
82 make believe (7) 18.09.04 432 4 14쪽
81 make believe (6) 18.09.03 435 2 13쪽
80 make believe (5) 18.08.31 442 3 14쪽
79 make believe (4) 18.08.30 452 2 14쪽
78 make believe (3) 18.08.29 449 3 16쪽
77 make believe (2) 18.08.28 457 3 14쪽
76 make believe (1) 18.08.27 465 3 8쪽
75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Epilogue) 18.08.25 457 3 10쪽
74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5) 18.08.24 483 3 14쪽
73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4) 18.08.23 473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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