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마군단장 랭코르의 개인 기록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GP32
그림/삽화
시베리아인
작품등록일 :
2017.09.03 17:09
최근연재일 :
2019.03.17 18:00
연재수 :
89 회
조회수 :
71,908
추천수 :
378
글자수 :
482,918

작성
18.11.30 20:54
조회
93
추천
1
글자
7쪽

Evolving Souls (1)

DUMMY

Evolving Souls – 마군단장 랭코르의 개인 기록 시즌 2



1



“이 내용이 전부 사실이냐?”


나는 아까까지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던 양피지를 성마른 손놀림으로 둘둘 말아 책상 위에 거세게 내려놓으며 휴화산과 활화산의 중간쯤에 위치한 온도로 목소리를 달궈댔다. 책상 앞에 서서 안절부절못하던 죽음의 기사는 급격하게 변한 공기를 느끼기라도 했는지 곧장 무릎을 땅에 대고 머리를 깊게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사실이냐고 물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해라.”


목에 힘을 주고 재촉했음에도 녀석은 별 뜻 없는 입속말을 낮게 중얼거릴 뿐 내가 원하는 대답을 내놓지는 못했다. 이미 한참 전에 썩어 없어졌을 두뇌를 풀가동하기라도 하는 건가. 그 미덥지 못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슬 화딱지가 치밀어 오른 터라 저절로 오른손이 허공으로 올라갔고,


“뭘 뭉그적대고 있나! 짱구 굴리지 말고 혓바닥이나 굴려!”


허공을 가르고 상승하던 오른손이 단두대의 칼날처럼 뚝 떨어져내려 책상 위로 쏜살같이 꽂혔다. 방 안으로 녹아들듯 퍼져나가는 둔탁한 쿵 소리, 반사적으로 흠칫 떨리는 녀석의 어깨, 그리고 내가 지난 세월동안 해온 노력을 한껏 비웃어대고 있는 저 빌어먹을 보고서. 마음에 드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인가, ‘혓바닥도 없을 텐데.’ 같은 실없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서 살짝 고개를 들이밀었다가 곧 숨어들어갔다.


“사, 사실입니다.”

“정보국은 그동안 뭘 한 거지. 이 사달이 날 때까지 까맣게 모르다니.”


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아까 내던지다시피 내려놓은 보고서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자 죽음의 기사가 한층 더 납작 엎드리며 몸을 가늘게 떨었다. 흡사 바닥에 눌어붙은 검은 얼룩과도 같은, 아주 볼품없는 모양새였다.


“면목 없습니다.”


몇 초 정도 지난 후에야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를 풀어놓았다. 그제야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저 녀석은 단순히 보고서를 들고 왔을 뿐, 이 사태에 책임이 있는 건 결코 아니란 사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대고 화를 냈던 것이다, 나란 녀석은.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어쩔 수 없지. 그래, 북서쪽이라고 했나?”

“예. 17번 망루 근처였다고 합니다.”

“바알 놈이로군.”


나는 증오스런 그 이름을 입 속에 담으면서 그르렁거렸다. 되짚어 생각해보면 항상 그 망할 개놈의 자식이었다. 젠장, 빌어먹을 놈. 언젠가는 지도에서 확 지워버리던가 해야 할 텐데.


“신탁 같은 거야 원래부터 귓등으로도 안 듣던 놈들이지만... 내가 그렇게나 휘젓고 다니면서 전부 뒤엎어 놓았는데도 아직도 그걸 갖고 놀 생각을 하다니. 이거 간이 크다 못해 퉁퉁 부었다고 해야 하려나.”


나는 여전히 보고서를 찌릿하게 내려다보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러자 바닥에 바짝 꿇어 엎드려 있던 죽음의 기사가 몸을 조금 일으키면서 내게 물었다.


“주군께서는 그것이 그렇게까지 위험하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마족의 손에 있는 한, 그건 그저 도구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녀석이 고개를 들어 나를 까마득하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정면을 향해 돌려 녀석과 눈을 마주했고,


“살아있는 도구지. 네 말이 옳다. 마족의 손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그건 단순히 도구일 뿐이다. 하지만,”


녀석에게 일어서라고 가볍게 손짓한 다음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마계를 벗어나 중간계를 크게 어지럽혔던 적이 단 한 번 있었다. 내가 아는 한은 말이다.”


나는 서랍 속에서 빳빳한 새 양피지를 한 장 꺼내 책상 위에 척 펼쳐놓았다. 그리고 잉크병 속에 꽂혀 있던 깃펜을 집어든 다음 양피지 위에서 사각사각 춤판을 벌였다. 깃펜이 꾸불꾸불 지나가는 자리마다 검은 잉크가 꼬리표처럼 남아 글자를, 그리고 문장을 이루었다.


“핏자국이 나날이 새로 흐른 피로 뒤덮이는... 그런 참상이 일어났다. 남부의 제국이 극히 쇠약해져 포르티아가 독립할 토대가 마련되었을 정도로. 드래곤이 개입한 후에야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녀석은 정자세로 선 채 내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고, 나는 나대로 깃펜을 휘두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 대화가 끊어진 동안, 내 오른손이 양피지의 오른쪽 아랫부분으로 흘러갔다.


“드래곤이 산맥 북쪽에 틀어박혀 더는 인세에 개입하지 않는 지금, 놈이 그런 위험한 장난감을 갖고 놀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 아니, 드래곤이 멀쩡히 버티고 있었다 한들 내버려두지는 않았겠지만.”


양피지 위에서 흥겹게 춤추던 깃펜이 마지막 단말마로 꾸부정한 서명을 남겼다. 소임을 다한 깃펜이 잉크병 속에 도로 처박히는 동안에도 녀석은 아무 말이 없었다. 딱히 대답이나 맞장구를 기대한 건 아니었으니 별 상관은 없었지만.


“이걸...”


나는 두 손으로 양피지를 둘둘 말고, 등잔불에 밀랍을 녹여 한 방울 떨어트린 다음 밀랍이 굳기 전에 철사로 내 서명을 새겼다. 그렇게 봉인된 편지를 자세를 조금도 무너뜨리지 않고 있는 저 고지식한 녀석에게 건넸다.


“엘드리치 경에게 전해라.”

“예.”


편지를 받아 두 손에 소중히 받쳐 쥔 죽음의 기사가 고개를 깊게 조아린 다음 빠른 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나는 녀석이 문을 닫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신음성이 섞인 한숨을 훅 뱉어내며 의자에 몸을 쭉 기댔다.


“완전히 박멸한 줄 알았는데...”


아주 오래 전 일이었다. 드래곤이 아직 산맥 북쪽에 은거하기 전, 그래서 그나마 타 지역으로는 번지지 않고 끝낼 수 있었던, 하지만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던 대참극의 나날. 그 오래된 악몽이 죽지도 않고 되살아나 내 망토 자락을 붙잡았다.


“안이한 생각이었던 모양이로군.”


오른손을 아래쪽으로 내려서 서랍 두 번째 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연한 녹색으로 착색되어 약간 불투명한 유리병이 그 안에 있었다. 사람 손바닥 두 개 정도 되는 꽤 커다란 크기의 그 병은 금속 뚜껑과 밀랍으로 이중 봉인되어 있었다.


“안이했어.”


둘둘 말아뒀던 보고서는 어느새 저절로 펼쳐져 있었고,


“젠장.”


나는 병을 꺼내서 책상 위에 올려놓은 다음 보고서 쪽을 힐끔거렸다.


[... 적군 중 갑충을 변형하여 방패로 사용한 자가 있어 사살했으며, 갑충은 포획하여 안전용기에 봉인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반대편에 세워놓은 유리병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려서 바라다본,


“갑충이라.”


수십 개의 다리가 달린, 지네와 흡사한 모양의 검붉은 벌레가 병 속에서 마구 허우적대는 모습은,


“위험한 장난을 치는군그래, 바알.”


그리 즐겁게 지켜볼만한 장면은 못 되었다.




"Archfiend Legion Commander Rancor's Personal Record" by GP32,
All Rights Reserved.


작가의말

재활과 통원과 업무복귀 등으로 상당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많이 바빠진 터라 주 1회 연재도 아슬아슬할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마군단장 랭코르의 개인 기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시즌 1 소장판 펀딩 안내 18.09.17 120 0 -
공지 수술로 인한 휴재 및 자유연재 전환 안내 18.02.10 195 0 -
공지 연재 주기 안내 17.09.10 279 0 -
89 Evolving Souls (5) 19.03.17 52 0 18쪽
88 Evolving Souls (4) 19.03.11 55 0 12쪽
87 Evolving Souls (3) 19.03.06 94 2 15쪽
86 Evolving Souls (2) 18.12.09 92 1 12쪽
» Evolving Souls (1) 18.11.30 94 1 7쪽
84 EE: Emulated Emeth (시즌 1 完) +2 18.09.08 524 3 14쪽
83 make believe (Epilogue) 18.09.05 461 4 8쪽
82 make believe (7) 18.09.04 432 4 14쪽
81 make believe (6) 18.09.03 435 2 13쪽
80 make believe (5) 18.08.31 442 3 14쪽
79 make believe (4) 18.08.30 452 2 14쪽
78 make believe (3) 18.08.29 449 3 16쪽
77 make believe (2) 18.08.28 457 3 14쪽
76 make believe (1) 18.08.27 465 3 8쪽
75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Epilogue) 18.08.25 457 3 10쪽
74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5) 18.08.24 483 3 14쪽
73 피의 신에게 바치는 공물 (4) 18.08.23 473 3 14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P32'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