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진승과 오광의 난
007
진승(陳勝)과 오광(吳廣)의 난
구백 부역자 무리는 어양으로 향하던 중 기현(蘄縣) 대택향(大澤鄕)에서 큰비를 만났다. 회하(淮河)의 지류인 회하(澮河)가 범람해 길이 끊어지면서 십 수 일이 지체되었다.
오광이 장위(將尉)인 유치(劉峙)에게 물었다. 장위는 각 현에서 파견된 관군으로, 육 개 현 삼십 장위가 부역자 무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유치는 양하현에서 파견된 장위의 우두머리였다.
“아시다시피 큰비로 길이 끊어지는 바람에 기한 내 어양에 도착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찌되는 것입니까.”
유치가 대답했다.
“기한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으니 어양에 도착하면 진의 법에 의해 모두 참수될 것이다.”
오광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죽기 위해 제 발로 어양으로 향하고 있는 것입니까.”
유치는 대답하지 못했다.
오광이 굳은 표정으로 한 번 더 물었다.
“길이 끊어진 것도, 큰비를 만난 것도, 부역에 동원되어 끌려가는 것도 우리의 의지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도 죽어야 합니까.”
유치가 대답을 피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마저 들어야 할 것이다.”
진승이 돌아서는 유치의 팔을 낚아채며 낮고 무거운 음성으로 이야기했다. 그의 갑작스런 하대에 가까이 있던 장위와 둔장이 모두 크게 놀랐다.
진승은 아랑곳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개돼지가 아닐진대, 우리가 제 발로 도살장에 들어갈 것이라 여기는 것인가.”
진승에게 팔을 붙잡힌 유치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진승이 유치의 팔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의 삼십 장위를 향해 이야기했다.
“장위는 삼십이고 부역자는 구백이다. 장위의 무장은 의전의 창검만도 못하며 부역자의 결박은 지금 당장이라도 쉽게 풀어버릴 수 있다.”
삼십 장위는 서로 눈치만 살필 뿐 누구도 입을 열거나 나서지 못했다. 그중 진승과 눈이 마주친 장위 두엇은 사색이 되었다.
오광이 둔장 넷에게 고갯짓을 하자 모두가 신속하게 각자가 이끄는 부역자 무리에게 돌아갔다.
각 둔장의 지시로 부역자는 하나 둘 결박을 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백 부역자 모두가 결박을 풀고 진승과 오광, 삼십 장위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진승이 삼십 장위를 향해 이야기했다.
“가거라. 어양으로 가든 떠나온 각자의 현으로 돌아가든 막지 않겠다.”
유치가 대답했다.
“구백 부역자를 데려가지 못한다면 어양에서든 현에서든 그 어느 장위도 명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같은 처지가 되었다. 우리를 거두어라.”
유치가 칼을 내려놓았고, 뒤이어 삼십 장위 모두가 무장을 해제했다.
진승이 다시 구백 부역자를 향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어양으로 가도 죽고 고향으로 돌아가도 죽을 것이다. 이곳에 머물러도 죽고 도망치다 잡혀도 죽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죽기를 각오하고 진에 맞서는 것뿐이다.”
무리에서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진승은 유치가 내려놓은 칼을 집어 들고 큰 소리로 외쳤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겠는가! 진에 맞서 천하를 도모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왕과 제후, 장수, 재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무리 이곳저곳에서 함성이 터졌다.
“이제 진승이 우리의 왕이다!”
오광이 ‘진승왕(陳勝王)’이라 외치자 크게 고무된 구백 부역자와 삼십 장위는 환호하며 ‘진승왕’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진승이 칼을 높이 치켜들고 더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가 잃을 것은 결박뿐이나, 얻을 것은 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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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고 구백 부역자와 삼십 장위가 모두 잠들었다. 진승과 오광, 유치만이 밤이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오광이 진승에게 이야기했다.
“구백삼십 부역자와 장위 모두 거사에 호응했으나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아직 거병이라 할 수 없을 것이네.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의와 명분이 필요하지 않겠나.”
진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광의 이야기를 이었다.
“죽지 않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것은 대의가 아닐 것이네.”
오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승이 이야기를 이었다.
“스스로를 높여 귀해지는 것 역시 명분이 될 수 없겠지. 언젠가 자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참새나 제비가 알지 못하는 기러기의 뜻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네.”
오광이 진승의 이야기를 이었다.
“자네 의견에 일리가 있네. 후일을 감안한다면, 살아남는 것이나 왕후장상이 되는 것 외에 거병을 위한 또 다른 구실이 있어야 할 것이네.”
듣고 있던 유치가 이야기했다.
“진의 군현 관리 사이에서 은밀하게 떠도는 이야기가 있다네.”
“어서 들려주게.”
오광이 재촉했고 유치가 이야기를 이었다.
“시황제 승하 후 장자인 부소(扶蘇)가 이세 황제의 자리에 올라야 했으나 환관인 조고와 승상인 이사(李斯)의 모략에 의해 중자의 하나인 호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이지.”
시황제인 영정은 순행 중 지병이 악화되어 온량거(溫凉車) 안에서 죽었다.
조고는 영정이 죽은 것을 감춘 채 이사와 모의해 호해를 이세 황제로 세우고자 했다. 조고는 평소 호해와 가까이 지내며 그의 신임을 얻었다.
이사는 영정에게 분서(焚書)와 갱유(坑儒)를 건의했고 부소는 그것의 시행에 반대하다 영정의 눈 밖에 나 몽염(蒙恬)이 주둔하고 있던 변방의 상군(上郡)으로 보내진 상황이었다.
유치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호해와 조고, 이사는 부소와 몽염에게 거짓 조서를 보내 자진(自盡)하게 했고, 부소에게 황위를 잇게 하라는 시황제의 유서를 조작해 호해를 이세 황제로 세웠다는 것이네.”
오광이 무릎을 치며 유치의 이야기를 받았다.
“그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호해와 조고, 이사는 선제(先帝)의 뜻을 거스른 역적이 되는 것 아닌가. 이세 황제가 되었어야 할 부소를 위해 역적에 맞서는 것이라면 명분으로서 부족한 것이 없을 것이네.”
유치가 오광의 이야기를 이었다.
“호해의 이세 황제 등극 후 조고가 조정을 농단하면서 그 폐해가 극에 달하고 있지 않은가. 드러나지 않았을 뿐, 조정의 문무백관을 비롯해 각지의 군현 관리 중 이세 황제에게 불만을 품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네.”
유치가 진승과 오광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러한 정황이니, 죽은 부소를 내세우는 것이 다소 억지스러울 수는 있으나 호해를 황위에서 끌어내린다는 명분으로는 충분할 것이네.”
진승은 말없이 수염만 쓸고 있을 뿐 유치와 오광의 이야기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광이 진승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자네는 왜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인가. 부소를 내세워 선제의 뜻을 거스른 역적에 맞선다는 명분이 탐탁지 않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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