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7 상산사호
017
상산사호(商山四皓)
“자줏빛 버섯을 먹고 오백 세를 살아왔으나 이제 세월이 다해 은거하지 않고도 피세를 하게 되었구나.”
남화노선인 동원공이 상산(商山, 商顔山)에 오른 지 두 시진이 지났을 때, 계곡 너머에서 구성진 노랫가락이 들려왔다.
‘각리선생의 음성이 분명하다.’
남화노선인 동원공은 노랫가락이 들려오는 곳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계곡을 건너자 우길인 각리선생, 좌자인 기리계, 화타인 하황공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길인 각리선생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좌자인 기리계와 화타인 하황공은 그 뒤에서 바둑을 두고 있었다.
남화노선인 동원공과 우길인 각리선생의 눈이 마주쳤다.
“어서 오게나.”
우길인 각리선생이 부르던 자지가(紫芝歌)를 멈추고 남화노선인 동원공에게 달려가 그의 두 손을 잡았다. 좌자인 기리계와 화타인 하황공도 자리에서 일어나 남화노선인 동원공을 반갑게 맞았다.
한고조 유방의 적자인 유영(劉盈)의 태자 책봉 이후 넷이 함께 모인 것은 사백 년 만에 처음이었다.
한날한시 같은 곳에 모였으나 약속된 것은 아니었다.
#
남화노선인 동원공, 우길인 각리선생, 좌자인 기리계, 화타인 하황공은 사백 년 전 진시황의 폭정을 피해 이곳 상산에 은거했던 노고사로, 수염과 눈썹이 흰(皓) 탓에 상산사호(商山四皓)라 불렸다.
전국 시대 말기에 동원공, 각리선생, 기리계, 하황공은 대학자인 순자(荀子)의 문하에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그의 문하에 머문 기간은 길지 않았다.
동원공은 순자의 천론(天論)에 동의할 수 없었다.
순자는 천명이 아닌 인간의 의지가 세상을 좌우한다고 가르쳤다. 인간은 천명을 대비하고 이용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동원공은 인간의 의지로 천명을 거스를 수 없다고 믿었다.
‘인간의 생은 정해져있다. 전생이 되돌아가 뒤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듯 그 업보인 현신의 현생과 현세 역시 바꿀 수 없다.’
동원공은 또한 천명을 대비하고 이용하는 것이 온전할 수 없다고 믿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해도 그 결과는 예견할 수 없다. 기운과 형세를 헤아려 후일의 결과를 예견할 수 있다 해도 그 일이 진행되는 그 개개의 변인은 짐작할 수 없다.’
각리선생과 기리계는 순자의 성악(性惡)과 성왕(聖王)에 동의할 수 없었다.
순자는 인위(人爲)로 타고난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인간의 능력과 자질을 제대로 이끈다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또한 순자는 인륜의 극치, 이상적 인격의 최고 형태를 성왕이라 일컬으며 힘써 배우고 실천해 역사를 관통하는 원칙을 깨달으면 누구나 성왕이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각리선생은 소인배가 인(仁), 의(義), 예(禮), 법(法)을 익힌다 해도 성인이 될 수 없으며 천하의 성패는 오직 영웅의 손에 달린 것이라고 믿었다.
‘범부는 호걸이 될 수 없고 호걸은 영웅이 될 수 없다.’
각리선생의 군주론은 순자보다 맹자에 가까웠다.
‘군주가 덕과 능력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덕과 능력을 갖춘 영웅이 군주가 되어야 한다.’
기리계는 더 나아가 영웅호걸의 능력과 자질에는 경계와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을 갖춘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라 천하 각지의 영웅을 찾아내 그들로 말미암아 비로소 모든 것을 갖추는 것이다.’
또한 기리계는 천하의 성패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생사 역시 타고난 것이라 믿었다.
‘지지 않는 전쟁, 죽지 않는 전투는 없다. 지지 않을 전쟁, 죽지 않을 전투가 있을 뿐이다.’
하황공은 순자의 예치(禮治)와 악론(樂論)에 동의할 수 없었다.
순자는 사회 규범인 예를 통해 천하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또한 예술과 유희를 통해 내적 덕성을 길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황공은 예(禮)와 악(樂)은 천하의 본질이 될 수 없다고 믿었다. 난세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불사를 통한 불패, 불패를 통한 불사뿐이라고 믿었다.
‘이기고 지는 것을 예에서 구할 수 없다. 살고 죽는 것을 악으로 판단할 수 없다.’
결국 이들 넷은 순자를 떠나게 되었다.
이때 스승을 떠난 제자가 두 명 더 있었다. 훗날 상앙(商鞅)의 학문을 계승해 법가(法家)를 정립한 한비(韓非)와 진 제국의 기초를 구축한 이사(李斯)였다.
한비는 순자의 성악을 절반만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절반의 성악은 순자의 그것과 정 반대의 것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악하고 이기적이다. 이러한 본성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법(法), 세(勢), 술(術)뿐이다.’
순자는 인간의 의지를 믿었고 모든 인간을 천명 앞에 두었으나 동원공, 각리선생, 기리계, 하황공은 영웅과 천명에 천하를 의지했다. 반면 한비는 인간도, 영웅이나 천명도 아닌 법과 제도에 천하를 의지했다. 그리고 이러한 법은 절대 권력(勢)과 통치술(術)에 의해 구현되는 것이라고 믿었다.
이사 역시 한비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한비의 사상이 대의와 명분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이사의 그것은 철저하게 처세와 처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순자의 문하로 들어가기 전, 초의 하급 관리로 있을 때부터 이사는 처세에 남다른 재능을 보이고 있었다. 기회를 포착하면 절대 놓치지 않았으며 입신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았다.
순자를 떠난 동원공, 각리선생, 기리계, 하황공은 묵가(墨家)이자 명가(名家)인 혜시(惠施)와 공손룡(公孫龍)의 후학 및 묵가 조직인 묵협(墨俠)의 후예와 어울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과 결별한 후 도가(道家)를 접하기 위해 노산(崂山)으로 떠났다.
순자를 떠난 한비와 이사는 스승에게 배우고 스스로 익힌 제왕학과 통치술을 가지고 진왕 영정에게 의탁하고자 했다. 이사가 먼저 등용되었고 한비가 그 뒤를 이었다. 영정은 이사가 그린 통일 제국의 큰 그림과 한비가 정립한 법, 세, 술에 몹시 고무되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