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언제나 내 곁에 있죠. 담담하게 담백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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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세
작품등록일 :
2017.09.09 00:28
최근연재일 :
2018.01.2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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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0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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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프롤로그

DUMMY

그 달동네는 허름하고 지저분한 외관만큼이나 인심도 고약해서, 한밤중에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데도 누구 하나 관심 갖지도 신경 쓰지도 않는 곳이었다.

남의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조용히 하라는 신경질 섞인 항의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주민들이 하나 둘 떠나가면서 점점 죽어가는 이 동네의 삭막함은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분노 어린 욕설 및 그 악의에도 누구 하나 반응하지 않고 무심히 넘기고만 있었다.


손바닥만한 집들끼리 다닥다닥 붙어있어 다 거기가 거기 같은 그 복잡한 골목길 언덕의 어느 한 구석에 소리의 진원지가 존재했다.

칠 벗겨진 양철 대문과 금 가고 허물어져 과연 제 구실이나 할지 의문인 담벼락이 주위를 좁게 둘러싼 작은 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비록 좁으나마 마당이라 불러줄 만한 공간이 있고, 그 뒤로는 방이 하나밖에 없는 집이 있는데, 바로 그 하나짜리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몸집이 건장한 사내 하나가 아들인 듯 보이는 한 아이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손바닥으로 마구 뺨을 때리고 있었다.

술로 불콰해진 얼굴에는 증오의 기색이 가득 떠올라 있다. 그는 이를 갈면서, 도저히 어린 아이에게 행할 수 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중이다. 당연하다는 듯 곁들여지는 욕설에는 아이의 존재와 그 태생을 부정하는 소리도 섞여 들어가 있다.


매를 맞고 있는 아들은 이제 기껏해야 7, 8살 가량의 어린 아이였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왜 맞고 있는지도 모른 채 아이는 울면서 두 손을 싹싹 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남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제 손바닥이 아니라 주먹으로 아이의 얼굴을 마구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래 울어, 빌어, 계속 그렇게 빌어. 니 에미 대신해서 너라도 그렇게 빌라구, 이 새끼야!”


이미 피멍 투성이인 아이의 얼굴은 남자의 주먹에 의해 더욱 만신창이로 변해갔다. 입술이 터지고, 이가 부러지고, 눈두덩이 찢어져 피가 흘러내렸다. 아이의 자지러지는 비명과 울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계속해 욕설을 퍼부었다.


“이 새끼야, 난 너 때문에 지금 사는 게 사는 것 같지가 않아. 그거 알어? 응?! 아냐고!”


아이는 잘못했다고 빌었다. 두 손을 싹싹 모아 빌면서 그저 아빠 잘못했어요, 만 필사적으로 되풀이한다.

하지만 남자는 되려 아이의 목까지 졸라가며 이를 갈고 있었다.


“떼버리자는 거 부득부득 우겨가며 싸질러놓더니 그년이 그냥 도망을 가버렸지. 그래도 내 새끼라 생각해서 참고 키우려 했더니 크면 클수록 그 개 같은 년이랑 똑 닮아가네. 넌 도대체 내 새끼냐, 아니면 그년이랑 눈 맞은 다른 놈 새끼냐.”


남자의 고함이 방 안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미 밖에도 새어나가 깊은 밤을 소란스럽게 하고 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 여기서 벌어지는 일에 동네 사람들은 누구 하나 관심이 없었다. 말리러 오는 이도 없고 그렇다고 경찰에 신고를 하는 이도 없었다.

그래도 남자의 횡포를 가로막는 이가 한 명은 있었다. 양철 대문이 열리고 황급한 걸음으로 방 안에 뛰어 들어온 노파 하나가 온몸을 던져 남자의 팔을 붙잡아 말린 것이다.


“이놈아, 이 죽일 놈아! 창현이가 무슨 죄여? 그것이 집 나간 게 어디 이 어린 것 때문이여? 다 니놈이 술 처먹고 이리 횡포나 부려대니까 그런 것 아녀!”


남자는 들은 척도 안 하고 거센 힘으로 노모를 뿌리친다. 할머니가 방바닥에 쓰러진 그 잠깐의 틈을 타, 어린 창현은 시퍼런 멍과 부어오르고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눈물로 가득 적신 채 남자를 향해 애처롭게 빌었다. 아빠 잘못했어요, 아빠 잘못했어요.......


남자는 그럼에도 스스로의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어린 창현을 몇 번이나 더 때린 다음 거칠게 나가버렸다.

쓰러져있던 할머니가 엉금엉금 기어와 창현을 꼭 안아주며 서럽게 울었다. 하지만 창현은 이를 꼭 물고 할머니의 품 안에서 숨을 죽였다. 자기까지 울음소리를 내면 아버지가 또 들어와 때릴 것 같아서였다.

대문 밖, 담벼락 너머에서 거칠게 가래침을 뱉는 소리가 들려온다. 아버지는 겨우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그러니 참자고,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창현은 울지 않기 위해 수도 없이 그 말을 속으로 되뇌었다.

억울하고 서러운 것을 억눌러 참은 채로, 창현은 할머니를 향해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아버지가 밖에서 듣고 있을까봐 목소리를 잔뜩 낮춘 채였다.


할머니, 아빠는 왜 날 미워해?


“울지 마야, 창현아. 울지 마. 니 애비는 니를 미워하는 게 아니여.”


맨날 날 때리잖아.


“니 애비는 지 옆에 소중한 것이 있는디 그걸 알아볼 줄 모르는 것뿐이여. 창현아, 니는 고로코롬 살믄 안 뒤야.”


그럼 난 어떻게 살아야 돼?


“할매는 니 사랑하는 거 알제? 할매가 니한테 그러는 것마냥 니도 남한테 그리 혀봐야.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아껴줄 줄 알고, 소중히 대해야 혀.”


왜 남한테 그렇게 해야 돼?


“니가 남한테 그러믄, 남도 니를 그리 대해줄 것인게로. 그러다 보믄 니한테 소중한 사람도 생기구, 거서 사랑도 생기구 그런 것이여.”


정말 그래?


“참말로. 나중에라도 그런 사람이 꼭 생길 것이여. 긍께 시방은 참자. 니랑 나랑 쪼께 더 뻐팅겨불자. 애비처럼 되지 말고 니는 사랑을 줄 줄 알고, 사랑도 받을 줄 아는 사람이 돼부러야 헌다. 할매 말 알아듣겄제?”


.......


......사랑을 주는 것도 알고, 받을 줄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했었다.

언젠가 소중한 사람이 생기면 꼭 그렇게 하라는 당부를 들었다.


그로부터 10여년이 지난 지금에 이르기까지, 창현은 그 말을 잊지 않고 우선은 기억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의 뜻과 의미를 크게 체감하지는 못했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는 거의 혼자였다.

다른 누군가와 어울리거나, 또는 다가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자연히 사랑이 뭔지, 소중한 사람은 무엇인지 알 기회도 없었다. 그런 건 자신과 별 관련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저 남의 얘기인 것처럼 막연하기만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창현의 이런 생각은 빠르게 변화되어갔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기 직전에 여자친구 한 사람을 사귀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미현이라는 이름의 여학생이었다. 학교는 다르지만 같은 나이, 같은 학년에 예사 아닌 인연으로 만나게 된 아이였다.

좋아한다고 먼저 고백했고, 그 마음을 미현이 받아주면서 진정으로 나아가게 된 관계.


지금부터 보게 될 것은 그 고백 이후에 두 사람이 함께 겪었던 이야기들이다.

우여곡절도 많고 이런저런 사정들이 뒤엉켜 엎치락뒤치락 했던, 김창현과 정미현의 고등학교 시절 2년 치 분량이 담긴 사연이다.


그 시작은 두 사람이 2학년으로 올라가고 몇 달 뒤인, 그 해 5월 초의 어느 날부터였다.


“할머니, 나 다녀올게.”

“그려. 몸조심허고, 가서 잘허고 와.”


아침 일찍부터 스포츠백을 챙겨들고 나가는 창현을 할머니가 배웅해주었다. 기운 찬 미소로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면서, 창현은 곧장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발걸음이 무척 경쾌했다. 흥분과 기대를 주체 못해 마치 날아갈 듯 가벼운 몸놀림이었다.

작년부터 복싱을 시작하고 정확히 10개월째, 창현은 난생 처음으로 스포츠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오늘은 그 예선이 시작되는 날이다.

터질 듯이 두근거려오는 마음을 가라앉혀보기 위해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버스 정류장에서는 자기 말고 아무도 없다는 걸 알자 섀도복싱이라도 좀 해볼까했으나, 때마침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려와 조금은 침착을 되찾을 수 있었다.

급히 주머니에서 구식 폴더폰을 꺼내보니 예상대로 미현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자신에게 전화를 걸만한 사람이라면 역시 그녀 말고는 없으니까.


“여보세요.”


전화를 받자 아침 공기만큼이나 상쾌한 느낌의 목소리가 바로 귓가에 울려왔다.


[ 오늘도 일찍 나가네. 지금 어디야? ]

“집 앞 버스 정류장.”


창현도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언제 들어도 사랑스러운 미현의 목소리지만,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그 목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활력이 솟아나는 기분이다.


[ 거기서 바로 경기장으로 가는 거야? ]

“응, 시합이 오전부터 있으니까.”

[ 그렇구나. 오후에 있으면 내가 응원하러 갈 수 있겠는데.... ]

“괜찮아, 너도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니까 시험 마무리 잘해야지.”

[ 그것도 그래. 지금 잠깐 앉아서 노트 좀 보는 중이야. ]


살짝 들려오는 한숨. 그 후 곧바로 기운 찬 한마디가 들려왔다.


[ 오늘 꼭 이겨야 돼. ]

“그래, 너도 시험 잘 보고.”

[ 시험 끝나면 연락할게. ]

“나도 시합 끝나면 바로 연락할게. 대신 오전 동안에는 문자도 못 받을 것 같으니까 그건 좀 봐주고.”

[ 알았어. 힘내. ]


짧은 통화가 끝나고 난 직후, 미현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긴 내용 없이 시합 파이팅! 한마디가 적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창현의 긴장은 많이 덜어졌다. 답신으로 자신도 힘내라는 짧은 한마디를 보내고 났더니 곧 기다리던 버스가 정류장 앞에 멈춰 섰다.


좋아, 이제 시작이다.

대회에 대한 기대도 컸고, 여자친구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있었다. 첫 시합을 이기고 다음 시합도 이겨서 만약 대회 입상이라도 하게 되면, 그리고 시 대표 선수로 뽑히기라도 하면 조금은 폼 나게 보이지 않으려나.

창현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버스에 올랐다.

미현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이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자신감을 가득 안고 내디딘 걸음이었다.


작가의말

2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새해가 밝고 첫 번째 연재로군요.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 한 해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ㅎㅎ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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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새 학기 고민 해결은 결투와 함께 18.01.07 55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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