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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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차.
작품등록일 :
2017.09.26 20:27
최근연재일 :
2018.02.12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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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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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7
추천수 :
77
글자수 :
168,777

작성
18.01.04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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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2부 16화.

DUMMY

압도적으로 불리했다. 그렇다고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는 건 아니었다. 분명 그 많은 화염병은 적들을 불태웠고 옮겨붙어 판잣집들도 삽시간에 불타올랐다. 얀이 다시 뒤를 돌아봤을 때는 작정하고 그를 포함한 해럴드를 잡으려고 뒤를 바짝 쫓아왔다. 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답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 틈에 섞여 뛰는 타라를 보며 그는 깊게 숨을 삼키고는 뛰는 속도를 천천히 늦췄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그 낌새를 눈치챈 이반이 그의 옆에서 한 손으로 등을 밀어 그러지 못하게 했다.


의아함을 느낀 그가 이반을 돌아봤을 무렵 이반은 그의 등을 있는 힘껏 떠밀었다. 그리고는 동시에 그가 속도를 늦추며 아직 남아 있는 화염병을 꺼내 들었다. 이반은 웃고 있었다. 빛을 잃은 채로.


“안 돼...”


무의식적으로 그가 내뱉었지만, 그건 그 자신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아서 주변의 소리에 파묻혔다. 이반은 적을 등진 채로 얀과 해럴드가 멀어지길 기다렸다가 자신과 그 사이에 화염병을 내던졌다. 하나둘··· 가로로 길게 퇴로를 막기로 작정한 듯 남은 그것들을 내던졌다.


땅에 닿음과 동시에 불길이 치솟았고 적들은 물론 이반조차도 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는 곧장 그는 품 안에 고정해놨던 기름병을 꺼냈다. 이쯤이 맞겠지. 해럴드가 전했던, 기름을 뿌려 놓기로 했던 곳이 아마 이쯤일 거라고 그는 확신 아닌 확신을 하며 손에 쥔 것들을 일정한 간격으로 던져버렸다.


이제 적들은 눈 한 번 깜빡이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그는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남은 화염병 하나를 꺼냈다.


“이반!”


등 뒤에서 해럴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다시 한번 피식 웃었다. 누군가는 해야 했을 일이었다. 그리고 그게 많은 사람을 살리고, 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일이고 그게 자신이라는 것이 썩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휙, 손을 떠난 화염병이 그가 던졌던 것들 중간 부분에 날아가 떨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말을 탄 병사의 검이 그의 눈앞에 떨어졌고 그는 그때까지도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게 그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반...”


뒤를 돌며 뛰는 해럴드의 눈이 점점 흐려지더니 볼을 적셨다. 산 하나를 삼킬 정도로 큰불이 길고 넓게 퍼졌다. 지시했던 것이 잘 전달되었는지 뚫린 양옆에도 기름을 타고 불이 옮겨가 적들은 이제 불 속에 갇힌 꼴이 되었다. 그가 있는 곳은 이제 거리가 좀 벌어졌음에도 그 온도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 잡힌다면 그건 정말로 이반의 희생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었다.


옆을 돌아보니 반란군들을 학살하다시피 하던 반란군들도 지원이 오지 않아 점점 하나둘 쓰러져갔다. 그렇지만 이미 너무 큰 죽음을 몰고 온 다음이었다. 땅바닥에는 적은 수의 정부군이 있었고 그의 곱절은 되는 수의 반란군이 숨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아롤도는 죽었을까? 해럴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미 싸움이 시작된 순간 놓쳐버려 생사를 확신할 수 없었지만, 죽었을 것 같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더 이상 따라오는 적은 없었지만, 얀과 해럴드 그리고 타라를 포함한 남은 반란군들은 잠깐씩 뒤를 돌아보기만 할 뿐 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 뛰고 또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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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신음소리는 새벽이 한참 깊어지고서야 잦아들었다. 루나는 그때까지 멀쩡한 정신을 가진 채 침대에 누워 눈을 뜬 채로 기다렸다. 천천히 이불을 걷고 미끄러지듯 빠져나오자 그녀는 이미 겉옷을 하나 입은 상태였다.


바닥을 딛고 일어선 그녀는 옷 안쪽에 넣어 둔 편지가 잘 있는지 더듬이며 확인을 하고는 살금살금 걸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까보다는 훨씬 사람들의 움직임이 적었지만, 상처를 입은 병사들이 한 둘이 아니라서 늦은 시각까지 간호사가 드문드문 보였다.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인적이 없는 곳을 골라 건물 뒤 수풀이 있는 곳으로 돌아 나온 그녀는 잘 보이지 않을 법한 곳에 쭈그리고 앉아 품에 있던 편지를 꺼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는 미리 준비해 놨던 성냥을 쥐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그녀는 성냥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것을 편지에 가져다 대려는 순간.


“아가씨, 여기서 뭐 하십니까?”


목소리에 어깨를 들썩이며 화들짝 놀란 그녀가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집사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아주 태연해 보였다.


“네, 저 그냥···.”


슬금슬금 편지를 몸 안쪽으로 숨기려는 어색한 모습에 루치아노는 루나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게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딱 잡아뗀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그녀는 루치아노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는 의미 모를 미소를 아주 살짝 짓고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루나의 손에 들려있는 편지를 강제로 뺏었다. 있을 수 없는 행동을 한 그녀는 너무 당황해 뺏기고 나서야 반응을 했다.


“지금 무슨 짓이죠? 루치아노.”


그는 무표정으로 사과했다.


“용서하세요, 아가씨. 주인님의 지시입니다.”


“뭐라고요? 아빠가 뭐라고 시켰는데요!”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할 수 없어요. 돌려줘요, 지금 당장.”


명령조로 말했지만, 루치아노는 그저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녀는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는 그에게 달려들려 강제로 뺏으려 했고 그러자 루치아노는 생판 남인 양 거리낌 없이 그녀를 밀었다.


“루치아노!”


엉덩방아를 찍으며 짧게 비명을 지른 그녀는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그를 불렀지만, 루치아노는 이제 대답조차 하지 않고 한 손으로 편지를 펼쳐 달빛에 의지한 채 내용을 읽기 시작했다. 한없이 커다란 무력감이 몰려왔고 그녀는 일어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분노로 인한 눈물을 참아냈다. 시린 겨울바람이 풀밭을 훑고 날씨에 비해 얇은 그녀의 옷을 훑고 지나갔다. 바스락거리는 풀 소리를 제외하고는 아무 소리 없는 잠시간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이제 입을 열지 않았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계셨겠지요?”


“......”


“시국이 시국인 만큼 가장 나쁜 죄에 해당하는 일을 저지르셨군요. 일어나세요.”


그녀는 순순히 일어났다. 루치아노의 목소리는 한없이 무미건조했다. 조금의 감정도 없이.


“아무리 주인님이라 해도 감옥 신세를 면치는 못할 겁니다. 다 감안 하셨겠지만요. 따라오시죠.”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닫은 채 말하지 않았다. 그냥 이 상황이, 눈앞에 있는 루치아노가, 자신의 아버지가. 모든 것이 미웠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도 불안정한 나라의 상황도 모두다. 그녀는 꿋꿋이 눈물을 억지로 집어넣으며 고개를 떨군 채로 루치아노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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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부 29화. 18.02.08 82 1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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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부 20화. 18.01.20 108 1 8쪽
35 2부 19화. 18.01.17 114 1 6쪽
34 2부 18화. 18.01.14 115 1 6쪽
33 2부 17화. 18.01.09 134 1 8쪽
» 2부 16화. 18.01.04 133 1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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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부 14화. 17.12.30 140 1 6쪽
29 2부 13화. 17.12.29 145 1 7쪽
28 2부 12화. 17.11.21 162 1 8쪽
27 2부 11화. 17.11.21 195 2 6쪽
26 2부 10화. 17.11.03 220 1 6쪽
25 2부 9화. 17.10.28 202 1 10쪽
24 2부 8화. 17.10.25 162 2 9쪽
23 2부 7화. 17.10.22 167 1 9쪽
22 2부 6화. 17.10.21 157 1 9쪽
21 2부 5화. 17.10.16 209 1 8쪽
20 2부 4화. 17.10.16 161 1 8쪽
19 2부 3화. 17.10.15 179 1 10쪽
18 2부 2화. 17.10.14 214 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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