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독점 나만 투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스포츠, 현대판타지

구지공
작품등록일 :
2017.10.11 05:32
최근연재일 :
2018.01.18 19:20
연재수 :
41 회
조회수 :
58,819
추천수 :
676
글자수 :
220,564

작성
17.11.22 21:00
조회
1,554
추천
13
글자
13쪽

천적 (3)

DUMMY

가늘게 뜬 눈으로 시계를 봤다.

오전 11시. 조금 이르긴 했지만 일어날 때가 된 듯하여,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텔방은 다 좋은데 베개가 마음에 안 든다. 안 가져 온 내 탓이긴 하지만.

대충 일어나서 찌뿌드드한 몸을 가볍게 풀고서 요가를 시작했다.

후-욱

몸을 이리저리 뒤튼 자세에서 몸속의 안 좋은 것들을 모두 내보낸다는 느낌으로 크게 한 숨 뱉어낸다.

그렇게 한창 요가에 집중하고 있을 때, 같이 방을 쓰게 된 로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한, 뭐해?"

"아, 요가 좀... 밥 먹고 온 거야?"

"어. 오늘 좀 일찍 일어나서. 근데 너 요가도 했었어?"

로이 앤더슨. 현재 우리 팀의 2선발인, 우리 나이 27세의 미국산 용병이다. 마이너 어디에 있다가 왔다는데, 자세히는 잘 기억이 안 났다. 메이저 콜업이 좌절되고 한국으로 왔다고 한다.

빠른 공과 수준급의 변화구를 던지는 좌완. 구위도 꽤 좋은 편이었다.

"너 메이저 생각 아직 있지?"

"없지는 않지. 아직 젊으니까."

"그럼 너도 요가나 좀 해봐. 밸런스 잡아서 기복만 줄이면 될 것 같은데?"

"오... 네 비밀이 요가였군? 나 좀 가르쳐 줘."

"나한테 말고 제대로 배워. 널 가르칠 수준이 안 된다."

"그러지 말고 그냥 가르쳐 줘."

"나한테 배우면 다친다니까. 어... 잠깐 전화 왔다."

최은희의 전화였다.

"웬 일이세요?"

[오늘 좀 뵈었으면 해서요.]

"여자야? 누구야 누구야?"

로이가 호들갑을 떨어댔다.

그런 로이를 향해 손을 휘휘 내저으며 조용한 바깥으로 나왔다.

"아... 죄송해요. 동료가 있어서. 그런데 부산에 계신 것 아니었어요?"

[네. 지금 서울에 계시죠?]

"네."

[저도 일이 있어서 서울로 잠깐 왔어요. 진단하는 겸 해서 봤으면 하는데...]

"어... 네. 어렵진 않은데. 경기 끝나면 늦을 텐데요?"

[그건 괜찮아요. 주소 보내놓을 테니까, 마치고 연락 주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뵐게요."

통화를 마친 나는 악력기를 쥐고 식당으로 향했다.


*


더부룩한 배를 쥐고 식당을 나왔다.

‘나도 프로긴 프로구나’ 싶은 유일한 때는 바로 식사시간이었다.

만들어주시는 분들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만든 음식이겠지만, 솔직히 맛있진 않았다. 맛있다고 먹는 애들도 왕왕 있긴 했지만, 내 입맛엔 영 아니었다.

그렇다고 안 먹을 수도 없는 것이, 안 먹으면 살이 쭉쭉 빠졌다. 그런 관계로 이 맛없는 걸 배부를 때까지 먹어야만 했다. 말하자면 먹는 게 일종의 일이다.

나의 일과에서 가장 프로정신이 필요한 곳은 트레이닝도 아니요, 연투도 아닌, 바로 식사시간이었다.


식후에 커피나 한 잔 할까 하고 메모해둔 노트를 꺼내들었다. 수많은 카페 중에서 어디를 갈까 고민하는 것도 나의 소소한 낙이다.

노트에 써져있는 근처 카페들의 기억을 떠올려보던 중, 인터뷰가 잡혀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조용한 분위기에서 홀로 마시는 걸 선호하지만 오늘은 힘들 것 같았다.

때마침 전화가 울렸다. 미리 받아놓은 기자의 전화번호였다.


*


"안녕하세요, 신진한씨. 스포츠산간의 최상진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신진한입니다. 어, 위원님이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하하, 오늘은 기자로 왔으니 기자라고 불러주시면 됩니다. 인터뷰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어려운 것도 아닌 데요 뭘. 커피 괜찮으시죠?"

괜찮다는 최상진의 말에 내가 아는 카페로 그를 이끌었다.

최상진이라는 사람은 우리 감독님의 대학 동기였다. 생긴 게 워낙 멀끔해서 감독님과 동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감독님이 꽤 젊은 편이긴 했지만, 안타깝게도 생긴 건 그렇질 못했다.

종종 오던 카페에 도착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출근 도장 찍던 곳이다.

주인장이 웃는 낯으로 나를 반겼다.

그간 생각 없이 오기만 해서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오래도 일 하셨다. 내가 은퇴하던 해에도 계속 운영하셨는데 말이다.


고민 없이 두 잔을 주문하고,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갑자기 인터뷰를 수락하셔서 놀랐습니다. 많이 꺼리시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건 아니신가 봐요?"

"하하... 그냥 필요성을 못 느껴서요.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이거, 신진한씨에 대해 알려진 게 너무 없다보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좀 막막하네요. 하하! 갑자기 인터뷰를 수락하신 이유라도 있을까요?"

"음... 굳이 하나만 꼽자면 제 몸 상태겠네요. 요즘 제 몸 상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고 들었어요."

"요즘이랄 것도 없고... 그런 말들이 많이 나온 지는 꽤 됐죠."

"그래요? 제가 뉴스 같은 걸 잘 안보다보니..."

정말 몰랐던 사실이다. 이 시점의 내 건강에 대해 그리도 많은 말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마저도 꽤 되었다? 당사자도 걱정 안 하던 걸 생각해줘서 고맙다고 봐야할지...

"그러시군요. 몸 상태는 좀 어떠세요? 작년의 기록 탓도 있겠지만, 올해 있는 아시안게임 때문에 신진한 선수의 건강에 많은 팬들이 민감한 것 같은데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카페 주인장이 우리 커피를 들고 왔다. 그 덕에 인터뷰가 잠시 멈췄다.

우선 코로 한껏 향을 음미한 뒤, 한 모금을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커피의 느낌과 함께, 목 뒤에서 올라오는 풍부한 향에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와... 엄청 좋네요. 후미진 곳에, 사람도 없어서 별 기대 안했는데..."

여기가 후미진 곳에 위치하긴 했지만, 그래도 전에 보던 거에 비하면 거의 새 건물이다. 근 20년간 이어진 영업으로 노후화된 매장에 비하면 뭐...

유독 내가 가는 곳들은 사람이 별로 없는 편이었다. 일부러 그런 곳을 찾아가는 경향이 있긴 했지만, 꼭 그런 곳만 찾아다니는 것도 아니다. 개중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도 있었고, 또 점점 알려져서 손님들이 많아진 곳도 있었다.

물론 나는 한적한 걸 선호하는 관계로 그런 곳을 자주 찾진 않는다.

"굳이 여기까지 오는 데엔 다 이유가 있죠."

"미식가이신가 봐요? 이 바닥에 미식 좋아하는 사람들 많은 건 알았지만, 신진한씨가 그렇다는 건 처음 알았네요."

"뭐 그리 거창한 건 아니고요. 하하... 혼자 조용하게 다니다보니."

마침 최상진 기자가 커피향을 음미하느라 조용해졌다. 나 역시도 잠시나마 오롯이 커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어 만족스러웠다.

"아까 하던 얘기로 돌아가 볼게요. 몸 상태가 좋다고 하셨는데, 작년 정규시즌에만 220이닝 이상을 소화하셨고 포스트시즌에서는 연투까지 하셨거든요? 팬들이 걱정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습니다."

"글쎄요. 부담스러운 이닝은 아닌 것 같아요. 무리는 없었거든요. 연투도 심각한 수준이 아니었고요."

"이닝 수 2위랑 격차만도 30이닝이 넘는데요? 다른 선수들이 들으면 기절하겠네요."

"그런가요? 아무튼 과다 투구의 피로 같은 건 없어요. 그리 많이 던졌다는 생각도 안 들고요."

"많은 분들이 건강 이상의 신호가 구속 저하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거는 또 어떻게 말해야하나 생각하다가, 그냥 이 사람이 알아서 하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말했다.

"메커니즘을 바꾸는 과정에 있는 관계로, 구속이 좀 내려간 상태입니다. 그 전 경기였나요? 기존 방식대로 던졌던 경기도 있었죠. 딱히 건강상의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좀 더 나은 공을 던지기 위해서 투구에 변화를 주고 있는데, 아직 부족함이 많습니다."

"변화요? 더 잘 던지려고요?"

최상진이 놀란 표정이 되어 물었다.

"아니 뭐... 다들 하잖아요?"

"그렇긴 합니다만... 보통 선수도 아니고 신진한 선수가 그러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아서요."

"음... 그냥 기존의 공도 나쁘진 않은데,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유지하는 선에서 조금씩 바꾸자니 한계가 보여서요. 결론적으로는 더 나은 공을 던지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내밀한 이야기를 외부인들이 알기가 어렵긴 하죠. 하지만 보통 그런 급격한 변화는 어떤 치명적인 문제가 있을 때 하지 않나요? 그것도 성적이 잘 안 나오는 선수들이야 그럴 수 있겠지만, 그런 케이스도 아니고요. 노화나 부상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기존 투구폼이 불완전하냐고 하면 아무리 봐도 그렇진 않거든요?"

맞는 말이었다.

"그렇죠. 잘 완성된 옷이긴 한데, 몸에 안 맞는 옷이라서요."

지금 추구하고 있는 메커니즘은, 사실 부상당했던 내가 살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다만 새로운 메커니즘과 오랜 시간 함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야구를 깨달았고, 또 그게 궁극적으로 옳은 길이라 생각했다.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이 시점의 나는 부상을 당한 적이 없으니, 있는 그대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다소 많은 내용이 생략된 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혹시 내가 내 공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요."

"통제... 제구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하지만 제구는 지표로 잘 드러나잖아요?"

"아, 제구의 문제를 말하는 건 아니었습니다. 보통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넣는 데에 문제가 없었거든요."

"그럼?"

"이게 참... 누군가한테 말해본 적이 없는 내용이라, 표현하기가 힘드네요. 말하자면 음..."

머릿속이 복잡했다.

"리그를 막론하고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투수들이 종종 있잖아요?"

"그렇죠."

"좀 극단적인 예긴 한데, 어떤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투수가 던지는 공이 있다고 해보죠. 직구, 슬라이더, 커브의 쓰리피치 투수라고 말할게요. 예전의 저처럼. 그리고 그 투수가 던지는 각 구질이 어마어마하다고 가정한다면. 아니, 뭐 그 공이 하나여도 상관없겠네요."

"네."

"그 공이 너무나 위력적이어서 타자들이 제대로 건들지조차 못하는 거죠."

"위대한 투수의 탄생이네요."

"그렇죠. 그걸 부정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다만 그 공이 내 공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음..."

음...

말하는 나도 비슷하지만, 상대방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다.


"아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요. 방금 건 그냥 잡생각이니 무시하셔도 됩니다. 꼭 그런 이유라기보다도, 장기적인 선수생활을 고려한 측면도 있어요. 아시겠지만, 제가 신체적으로 우월한 타입은 아니거든요."

그냥 말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내 생각도 제대로 정리가 안 되는 마당에, 이야기를 잘 풀어갈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방금 말한 것 또한 사실이었으니, 문제는 없었다.

"150킬로가 넘는 공을 뿌리시는 분이..."

"아... 네. 물론 그렇긴 한데, 장기적으로는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고 느꼈어요. 우선은 떠받칠 수 있는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런 패턴을 지속적으로 가져가기엔 체질적으로 좀 부족한 느낌도 있고 해서... 바꾸고 있습니다."

"참 어렵네요. 이미 대투수가 되어서 함부로 속단할 수도 없고... 아직 얼마 없긴 하지만, 기록 역시도 달라진 신진한의 손을 들어주고 있어요. 사실 이게 저만의 생각도 아니거든요?"

"어떤?"

"내려간 구속, 저하된 변화각에 작년의 소화 이닝 수를 봐서 신체의 이상을 생각하는 건 아주 일반적이지 않겠어요? 이것저것 다 떠나서, 성적이 내려갈 요소가 많아졌는데도 불구하고 현재까지의 페이스는 작년과 비슷합니다. 혹시 성적이라도 폭락했다면 지금보다도 많은 의혹이 있었을 텐데, 성적에는 흔들림이 없으니... 전문가들도 지켜보는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투수는 결국 타자를 잡아내는 게 일이니까요. 구위가 도움이 되긴 하겠습니다만, 뭐 거기에 딱 정해진 방법은 없잖아요?"

"지금 구위로도 국내리그 정도는 문제없다?"

"에이... 그런 건 아니고요."

이 사람도 기자는 기자였다.

"이제 변화구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하는데요..."

그렇게 최 기자는 삼십분 가량을 더 이어갔다.


*


"말 너무 잘 하시던데요? 이런 분이 어떻게 입을 닫고 사셨나 모르겠네. 다음에 한 번 더 하시는 건 어떠세요?"

"인터뷰요? 어휴... 이것도 피곤한데요?"

"처음이라 그런 거니 다음엔 좀 덜 할 거예요."

"그러면 뭐... 봐서요."

얼버무리려고 했지만 최상진은 나를 끈덕지게 물고 늘어졌다.

대충 피하려는 나와 확답을 들으려는 최상진의 수 싸움이 이어졌고, 결국 나는 패배하고 말았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만 투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재정비를 좀 할까 합니다. +1 18.01.20 354 0 -
41 조우 (3) +4 18.01.18 634 11 11쪽
40 조우 (2) +1 18.01.14 558 14 11쪽
39 조우 (1) +2 18.01.12 572 11 10쪽
38 떡잎 (3) +1 18.01.10 586 13 10쪽
37 떡잎 (2) +1 18.01.08 1,066 13 11쪽
36 떡잎 (1) +3 18.01.06 797 10 11쪽
35 작은 결심 (3) +1 18.01.04 700 11 12쪽
34 작은 결심 (2) +1 17.12.31 734 11 10쪽
33 작은 결심 (1) +3 17.12.29 1,293 13 13쪽
32 살림살이 (4) +1 17.12.27 774 8 12쪽
31 살림살이 (3) +3 17.12.25 1,317 8 12쪽
30 살림살이 (2) +1 17.12.21 879 12 12쪽
29 살림살이 (1) +1 17.12.19 1,033 10 11쪽
28 운수 좋은 날 (2) +3 17.12.17 1,011 9 13쪽
27 운수 좋은 날 (1) +1 17.12.15 1,329 10 13쪽
26 Aftermath (4) +1 17.12.13 878 10 11쪽
25 Aftermath (3) +3 17.12.11 980 9 12쪽
24 Aftermath (2) +1 17.12.09 973 9 12쪽
23 Aftermath (1) +1 17.12.07 1,170 10 11쪽
22 악마의 피칭 (3) +1 17.12.05 1,212 11 13쪽
21 악마의 피칭 (2) +7 17.12.03 1,214 13 11쪽
20 악마의 피칭 (1) +1 17.12.02 1,083 14 11쪽
19 안될 팀 (2) +3 17.12.01 1,040 14 12쪽
18 안될 팀 (1) +1 17.11.30 1,072 13 13쪽
17 빨간날 +3 17.11.29 1,587 14 13쪽
16 해야 하는 것들 (3) +1 17.11.26 1,168 14 12쪽
15 해야 하는 것들 (2) +3 17.11.25 1,304 12 12쪽
14 해야 하는 것들 (1) +3 17.11.23 1,775 18 13쪽
» 천적 (3) +1 17.11.22 1,555 13 13쪽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구지공'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