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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만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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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객
작품등록일 :
2017.10.11 05:32
최근연재일 :
2018.01.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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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7.11.26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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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해야 하는 것들 (3)

DUMMY

‘이런 무식한 놈을 봤나...’


와아아!


제대로 맞히지도 못한 타구가 그대로 담장을 넘어갔다.

빗맞은 공에 손이 울리는지 최준수는 인상을 찌푸린 채로 왼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베이스를 돌고 있었다.

진가람은 공이 떨어진 곳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완전히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상대의 힘이 자신의 예상을 넘어선 모양이다.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에 자만이 생겼나보다.

‘제구가 흔들렸나? 아니다. 허용 범위다. 다른 공이었다면?’

결정적인 상황에서의 실점에 안타까움을 느껴야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기회를 놓친 아쉬움보단 투구에 대한 복기가 먼저 일어나고 있었다.

생각보다 쓰리지 않았다.


*


"터지나보네...“

타이거즈의 타격코치 장호일은 그라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홈런을 만들어 낸 최준수를 보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눈은 투수인 진가람 쪽을 향하고 있었다.

현재 신진 3인방이라 불리는 애들한테서 정체 모를 아우라를 본 이후, 다른 팀의 선수들에게서도 비슷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엔 뭐 걸출한 신인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 아우라는 대중이 없었다. 신인에게도, 노장에게도 가리지 않고 생겼다. 공통점이라면 하나같이 성장했다는 것.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질적 성장이 눈에 띄는 이들이었다.

반면 진가람에게선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공은 엄청나게 좋아졌다. 향후 진가람의 성적이 기대될 정도로.

아우라의 정체가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저런 압도적인 성장세의 진가람에게서도 보이지 않는다면, 이건 뭘 나타내는 것인가?


*



"야구는 어떤가요? 좋아하시나요?"

"추상적인 질문이긴 한데 뭐... 그렇죠."

"의외네요."

최은희는 빈말이 아니라는 듯, 정말로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뭐가 의외라는 건가요?"

"운동선수가 그런 경우가 흔치는 않으니까요. 프로가 그러기 쉽지는 않잖아요? 그것도 이미 리그 최고가 된 선수가요."

"사실 그런 면도 있죠. 표현이 좀 그렇긴 하지만, 어... 생계 수단? 같은 느낌도 있고요. 야구 자체에 대해선 별 감정이 없어요. 투구로서의 야구에 한정 한다면... 그러니까 투수라는 보직은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음... 조금만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야구라고 하면 종합적이죠. 투수는 공을 던지고, 수비가 수비하고, 타자는 쳐내서 점수를 만들고 하는 일련의 과정?"

"그럼 투구로서의 야구라는 건?"

"뭐... 공을 던져서 타자를 잡아내는 과정이 좋습니다. 그게 제 일이고요."

"그것도 야구 아닌가요?"

"그렇죠."

"그럼 그 두 가지를 굳이 구분하는 이유도 있겠네요?"

"제가 던져서 타자를 잡아내는 건 좋아합니다. 그걸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르겠네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냥 별 생각이 없어요."

"본인이 투수라서 그런 걸까요?"

"그런 논리라면 오히려 제 본업 쪽 파트를 안 좋아해야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그냥 순수하게 타자를 잡아내는 게 좋습니다. 제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라서 그렇다고나 할까요?"

이걸 정확히 뭐라고 불러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정신상담? 심리상담? 아무튼 이게 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닌 것 같았다. 일전에 서울에서 웬 박사님께 받았던 검사 결과에서도 특별한 문제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이어가는 이유는 나름대로 재미가 있기도 했고, 또 얻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계속 해야 한다는 최은희의 강력한 의견도 있었다.

사실 이전 생까지 통틀어서 야구계 바깥쪽 인사와 이야기 한 건 부모님과의 대화가 전부이다시피 했으니, 지금과 같은 대화 자체에 꽤 신선한 느낌이 있었다.

야구인이 아닌 사람과의 대화. 상대의 수준에 대화를 맞춰야 하다 보니, 나 스스로가 조금 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그런 것들이 있다. 오히려 그렇기에 한층 더 신선하달까?

"제가 진한씨 만큼 야구를 잘 모르긴 한데, 말씀하신 것들이 다 성적에 영향을 주는 것들이잖아요? 타자가 점수를 못 내면 승리를 못하고, 수비가 실책을 하면 실점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뭐... 그렇긴 하죠. 그런데 별로 신경 안 써요."

"신경을 안 쓴다?"

"점수가 없으면 승리를 못하죠. 그런데 승리에 연연했던 적은 없어요. 감독님이나 코치진, 뭐 좀 더 나가면 선수단에 일부는 스트레스 받을 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안 그래요. 수비가 못 하면 확실히 기록이 안 좋아지기는 할 텐데, 뭐 결국은 제가 못 한 거니까요. 누굴 탓하겠어요?"

"신진한씨의 멘탈 담당자는 아주 좋은 마인드라고 말하겠네요."

"덕분에 경기 내적으로 스트레스 받는 요소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확실히 그렇겠네요."

피곤하다는 듯 고개를 내젓던 최은희가 화제를 살짝 돌렸다.

"따로 취미가 있으신가요?"

"취미라... 취미라고 하기엔 좀 애매한데, 하는 게 있긴 있죠. 다음에 같이 가보실래요?"


*


모든 직업인이 그러하듯, 야구선수에게도 힘든 일들이 있다.

물론 사람마다 느끼는 정도가 다르기에, 그 답이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나 아닌 누군가도 이렇게 생각할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짜증에 가까운 직업적 애환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정경기의 존재다.

야구선수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도시로의 원정을 가야했다. 경기의 절반정도는.

버스에 실려 왔다 갔다 하는 것 자체가 우리들에겐 하나의 일이었다. 당연히 그 과정을 괴로워하는 선수들도 존재한다.

내가 그 이동시간 자체를 못 견디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힘든 것은 다른 도시로 간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이런 내 애환에 공감해주는 이가 썩 많지는 않았다. 이동하는 시간을 힘들어하는 거지, 도착 후의 호텔생활 같은 것은 그렇게까지 힘든 일이 아니라고들 생각했으므로.

뭐 가족이 있는 선수들 중 일부는 가족과 떨어지는 게 힘들다고 하긴 하더라.


나는 유독 고향땅에 애착이 강했다. 나이를 먹어갈 수록 더 그리 되어갔다.

고향 바깥이 싫었던 건 서른 넘어서의 일이었는데, 막상 옛날로 돌아와도 고향 땅에 대한 애착은 사그라들질 않는다.

지금 먹고 있는 해물찜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 있었다. 맛의 영역이 아니라 지역적 맥락이라고나 할까?

음식의 간이나 양념, 들어가는 향신료, 요리법 등은 지방마다 미묘하게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는 개별 식당마다 모두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지방색보다는 주인장의 특색에 맞춰 가는 거라고 볼 수도 있었다. 다만 오랜 시간 여러 지방의 음식들을 먹다 보니, 각 식당마다 가지는 특색들도 결국 근본적인 지역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맛있고 맛없는 문제는 아니었다. 애초에 맛이 없었다면 내가 굳이 찾아오질 않았겠지. 여기도 꽤 맛있는 곳이다. 다만 고향의 맛이 그리울 뿐이다.


식사를 대충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돌아갈 준비를 했다. 이번 원정경기는 다 끝이 났고, 다음 경기는 홈경기였다. 행복한 일요일의 저녁이다.

원정을 가야만 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애환은, 소소한 행복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원정경기를 마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는 이 순간을 만끽하는 것 역시 내 일상 속 행복 중 하나였다.


*


신진한이 자리에 앉자마자 백동임이 제 자리를 찾아가듯 그 옆으로 파고들었다.

백동임의 입단 초기에는 다른 선수들이 그 광경을 재미있게 구경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아무런 관심도 주지 않는다.

버스가 곧 출발하고, 선수들은 제각각 할 일에 열중했다. 가볍게 인터넷을 하거나 잠을 청하거나 등등.

신진한이 태블릿pc를 꺼내더니 영상을 틀었고, 백동임도 무슨 일인가 싶어 덩달아 화면을 쳐다봤다. 뒤에 앉은 장준호도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에 신진한이 둘을 보며 입을 열었다.

"뭐야? 왜?"

의아한 신진한의 시선에 둘이 머쓱하다는 듯 웃으며 답했다.

"아뇨. 뭐 하시나 해서요."

영상은 신진한의 등판 날 경기였다.

"왜 보시는 거예요?"

"응? 아, 투구폼을 보는 거지."

백동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 갑자기 왜요?"

"너희들도 너네 거 가끔 보잖아?"

이상하게 바라보는 자신들을 오히려 이상하게 여기는 듯한 신진한의 태도.

"뭐, 그렇긴 하죠. 근데 안 좋을 때나 보는 거 아니에요?"

"보통은 그렇지. 나도 그래서 보는 거고."

신진한의 말이 끝나자 다른 선수들의 시선이 신진한에게로 모였다. 그러자 신진한도 조금 당황한 듯했다.

"왜...들 쳐다보실까?"

"참내..."

포수 장민준이 황당하다는 듯 혀를 끌끌 차며 신진한을 바라보다가 다시 잠을 청한다.

고참급 투수들은 이미 쌓인 경험이 있어선지, 조용히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다시 제 할일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시간의 소요 아닌 소요가 끝났다.

"어디가 안 좋다는 건데요?"

백동임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고, 그에 동조하듯 장준호 역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자, 봐."

신진한이 영상 두 개를 틀었고, 동시에 재생했다.

화면 속의 두 신진한이 동시에 키킹을 하고, 동시에 딜리버리를 가져간 뒤, 같은 타이밍에 공을 놓았다.

두 공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다른 변화를 일으키며 헛스윙을 이끌어냈다.

"네. 봤어요."

"거봐..."

???

백동임과 장준호는 서로를 쳐다봤다. 보아하니 서로 이해 못 한 눈치였다.

"무슨... 뭔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저도 잘..."

신진한이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런...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뭐."

...

"아니... 저 둘 중에 하나는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그런 건 아니고. 둘 다 문제가 있지."

"좀 자세히 말씀해 주시면 안돼요?"

"자, 봐라."

신진한이 펜으로 영상 속의 신진한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설명했다.

"위에는 힘이 여기서... 여기로 요렇게 간단 말이지. 그런데 밑에는 달라. 여기서 이렇게 이렇게 보냈거든. 일부러 하긴 했다만 둘 다 정상은 아니지. 최적의 길을 찾는 일종의 실험인 건데. 아직 답이 안 나왔어. 그래서 보는 거고."

"그걸 경기에서 하셨어요?"

"그럼 뭐 시즌 끝나고 캠프 가서 할 거야?"

"아니... 보통 뭐 따로 연습을 하던가 하는 거 아니에요?"

"매 타석, 매 1구가 다 실험대야. 경기라고 뭐 다르겠냐."

장준호는 침묵을 지켰고, 백동임은 '나는 뭔 말인지 모르겠다.' 라는 말과 함께 벌러덩 누워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장준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신경을 끄고는 곧 눈을 감았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버스는 엔진소리로만 가득 찼다. 운전자를 제외한 모두가 잠든 시간에도 신진한만이 홀로 깨어 영상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나오는 영상들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하등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그 장면들을 수십 번, 수백 번씩 반복 재생한다.

영상 속의 똑같은 움직임을 매번 다른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신진한의 모습은 기이한 듯 섬짓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버스는 고요 속을 달렸다. 신진한의 고향을 향하여.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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