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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만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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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공
작품등록일 :
2017.10.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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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1.3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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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될 팀 (1)

DUMMY

와이번스의 타자 박상훈은 당황하고 있었다. 들어본 적도 없는 무명 투수에게 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글스에 이런 투수가 있었나?'

압도적인 구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조금 달랐다.

경기 자체를 떠나서, 이놈에게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과 동류 같되 동류 같지 않은 이상한 느낌.

이전까지는 아주 심플했다. 동류구나 혹은 아니구나 하는 두 가지의 느낌. 그런데 이놈은 이도저도 아니었다.


놈이 처음 올라오고 팀의 타자들이 연거푸 잡혀나갈 때만 하더라도 이상한 느낌은 없었다. 타자를 만나면 만날수록 불리해지는 경향을 띄는 게 투수인 만큼, 첫 만남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쪽은 투수다. 타자들이 처음 보는 투수에게 당하는 일은 꽤 흔하다.

‘그렇게 위력적인 구위도 아닌 투수에게 너무 쉽게 당해주는 것 아닌가?’, ‘컨디션들이 안 좋나?’ 하는 생각 정도만 할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타석에서 만나니 좀 달랐다.

'이놈한텐 뭔가가 있다.'

리그 최강이라는 신진한의 공마저도 골라낼 수 있었던 자신의 능력이 놈에게만 묘하게 흔들리는 느낌.

가상의 존이 그려지고, 놈이 던질 공의 대략적인 코스가 표시된다. 여기까진 좋았다.


투수가 와인드업을 하고, 스트라이드를 펼친다. 바깥에서 보던 것 보다 훌륭한 딜리버리.

그리고 어깨위로 올라갔던 팔이 앞으로 나오면서 공이 뿜어질 타이밍을 속으로 세고 있을 때, 뭔가가 일어난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뜬금없이 공이 발사되듯 갑자기 뿜어져 나왔다. 타자의 밸런스를 무너뜨리는 황당한 타이밍. 이전의 타자들이 죽어나간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대략적인 코스를 알아도 대응하기 어려운 묘한 타이밍이 형성된다.

호흡을 뺏는 타이밍에 갑자기 공이 날아오자, 박상훈은 다시 한 번 허겁지겁 배트를 돌렸다.

'이런!'

스윙도 뭣도 아닌 어정쩡한 배트 컨트롤을 비웃기라도 하듯, 공은 포수 미트로 쏙 들어가 버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허무한 이닝 종료.

아무래도 꽤 힘든 경기가 될 것 같았다.


*


야구란 참 알다가도 모를 스포츠였다.

스포츠라는 범주에서는 결국 비슷하긴 하겠지만, 되는 팀과 안 되는 팀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렵다. 그 이야기가 코리안 시리즈 우승에까지 가버리면, 구분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물론 몇 년씩 해먹는 왕조 구단이면 그나마 유의미한 차이가 나기도 하지만...

애초에 타율이니 피안타율이니 하는 것들이 주요 기록으로 취급받는 스포츠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쨌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는 그만큼 예측불허의 성격을 띠게 마련이고, 그런 요소들 덕분에 사람들이 야구를 좋아하는 걸지도 몰랐다.

내가 예나 지금이나 이런 잡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 건, 한국 프로야구의 최대 미스테리 중 하나인 우리 팀 때문이었다.

기억이 맞다면 올해 우리 팀 성적은 7위쯤에 그친다.


내 길었던 프로 생활에서 팀이 우승을 노릴 수 있었던 해가 세 번쯤 있었다.

전력은 물론이고, 후반기부터 갑자기 미쳐 날뛰는 타자들과 느닷없이 호투하는 투수진이 조화되며 쭉쭉 치고 올라가는 그런 해였다.

사실 세간의 평가만 놓고 보자면, 전력이 강했던 시기는 생각보다 많았다. 다만 투타간은 물론이요, 선발-계투와 앞 타자-뒷 타자까지 매번 따로 놀다보니 결과가 늘 안 좋았을 뿐이다.

험난했던 시즌 중의 과정들은 막론하고, 그렇게 기껏 포스트시즌에 올라가면 귀신같이 미끄러져 내리는 게 바로 우리 팀이었다. 내 27년 커리어의 최고점이 코리안시리즈 진출이었으니 말 다했다.


'올해는 우승이다!' 하는 시즌에 허무하게 죽쑤는 경험을 몇 번 하다보니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아! 우리 팀은 우승을 못 하는 팀이구나.' 라는 것을.

왜 안 되는 건지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사실은 알 필요도 없었을지 모른다. 알아도 안 되므로.

내 상식 밖의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들을 목도할 때면, 야구 참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에 대한 고찰도 한 번 해보게 된다.

지금의 우리 팀도 비슷한 맥락에 있었다.

물론 올 시즌은 전력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게까지 하위권에 머물 것도 아니었다. 젊은 투수와 타자들이 자라나고, 고참 선수들도 나름대로 버텨주고 있다. 선수들 간 분위기도 나름 좋았다. 어디 하나가 심각한 곳도 없는데 왜 이 모양인 건지 참 미스테리했다.

'그래도 27년을 야구했는데, 이제 알 만큼 알았다.' 하는 자만심이 생길 때는, 그 눈을 우리 팀으로 돌리면 된다. 그 순간 자만이 싹 가시고, 저도 모르게 겸손해진다.


따악!


우리 팀의 5선발인 김준성 선배가 한 대 맞았다.

팀 내 투수진들 중에서도 최고참급의 형이었는데, 로테이션을 거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게 장점이었다. 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것도 특징.

공이 중견수 뒤로 빠지고, 타자는 2루까지 도달했다.

순조롭게 가나 싶었지만 슬슬 기복이 시작되는 모양이었다.

이닝 단위로 기복이 있는 것도 저 형의 큰 특징이다.


경험 많은 포수 민준이형이 한 번 올라가나 싶었는데, 투수가 괜찮다고 만류했다.

타석으로 라이온즈의 7번 타자가 들어섰다. 쌕쌕이 타입의 2루수로 이름은 이상도. 꽤 비중 있는 타자가 될 놈이었다.

루상으로 나가면 골치 아파질 놈인 만큼, 출루만은 기필코 막겠다는 준성이형의 강한 의지가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투구를 준비하며 2루 주자를 잠깐 쳐다본 형이 투구를 시작했다. 특유의 뻣뻣하고 힘찬 투구폼이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기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스트라이드를 가져가는 시점에서 갑자기 밸런스가 흐트러졌다. 정말 미묘한 변화였다. 두 눈은 여전히 투지로 가득 차있는 걸 봐선, 아직 제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만큼 미묘한 것이기도 했다.

올라가는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안 그래도 나이 때문에 팔을 힘차게 위로 올리지 못하는 마당에 신체 균형까지 무너지니, 보는 내가 다 힘들 지경이다. 팔의 스윙 속도 또한 미묘하게 느려졌다.

투구 과정에서 생긴 그 미묘한 변화들, 발에서 다리로 허리로 어깨로 손으로, 힘이 모여드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주 조금씩 분산되었던 힘이 마침내 공에 다다랐다.

미세한 흔들림으로 분산되었던 그 힘이 하나로 공에 모였을 때엔, 생각보다도 유의미한 차이를 만들어냈다.

이전 이닝에 던졌던 공들과는 확연히 다른, 맥없는 비행을 하는 노쇠한 직구.

이상도가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뜨악!


확신에 찬 시원한 스윙이 공의 궤도에 정확히 안착했고, 기어이 공과 배트가 충돌했다.

쌕쌕이가 힘찬 스윙을 할 줄은 몰랐는지, 준성이형은 맞고 나서야 아뿔싸 하는 빛을 보였다.

공은 힘차게 뻗어나가 달려가는 중견수와 우익수 뒤로 넘어갔다.

맥 빠진 1구는 2점 홈런으로 연결되었다.


와아아!!


3루 관중석의 라이온즈 팬들은 기대도 안 했던 뜬금 홈런에 열광했다.

준성이 형의 실점을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노회한 피쳐인 만큼, 실점 하나에 멘탈이 흔들리고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부상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방금의 미묘한 밸런스 흐트러짐은 꼭 부상의 전조를 연상케 했다.

당장은 어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형은 그냥 얻어맞은 분노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투구를 조금 더 봐야 확신할 수 있겠지만, 이전생에서도 큰 부상 한 번 없던 금강불괴다.

팀에 대한 충성도가 워낙 높은 선수다보니 부상을 숨기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투구로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나는 준성이형의 투구를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


'아유... 알았으니 이제 좀 그만 해요. 이거 볼륨 줄이는 기능은 왜 없는 거야?'

장준호에게는 변화가 생겼다. 변화가 생긴 것은 어제 밤부터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는 아니었지만, 꽤 큰 변화였다. 그동안 자신에게만 보이던 시스템창 같은 일련의 것들을 자신의 동거인 역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떻게 된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뭔가가 맞아 떨어져서 갑자기 변화가 일어난 건지 뭔지...

애초에 이 시스템이란 게 그리 친절한 편이 아니었다.

이유여하야 어떻든 꽤 유의미한 일이었기에, 그냥 잘됐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현 상태와 향후에 나가야 할 방향들 혹은 중요한 선택에 대해서, 야구 잘 아는 자신의 멘토와 논의할 수 있게 된 것에 충분히 만족했다.


새로운 걸 보게 된 웨렌 스판은 신기해했다. 본인도 귀신 비슷한 사람이면서,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 말더듬이가 되는 장면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현대인인 장준호 본인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는데, 21년생 옛날 노땅이 어디 게임 같은 걸 보기나 했겠나?

그렇게 이것저것 두루 살펴보며 시스템을 탐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오늘.

신진한의 상태를 확인한 워렌은 감탄성만 내뱉으며 한참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를 기점으로 사람이 확 달라졌다.

관찰 이전까지의 워렌이 까칠한 채찍이었다면, 관찰 이후의 워렌은 묵직한 해머가 되었다. 자신을 향한 인신공격과 타인과의 비교질을 서슴없이 하면서 멘탈을 잘근잘근 부숴버리기 시작했다.

[너는 왜 이것도 못하냐?]

[신진한이 반만 닮아봐라.]

[나 같은 사람이 왜 너한테 붙었는지...]

부모님께 비교당하는 게 스트레스라던 옛 친구들의 심정을 이제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잔소리를 멈출 기색이 도통 안 보인다.


장준호는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돌고 있는 이상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좀 이상한데..."

장준호의 중얼거림을 들은 신진한이 고개를 홱 돌리며 물었다.

"그치? 너도 느꼈어?"

"예...예?"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신진한의 물음에 장준호는 화들짝 놀랐다.

"준성이형 말한 거 아니야?"

"아...뇨. 다른 말이었는데요."

"아, 그래?"

신진한이 고개를 돌리고 관심을 끄자, 장준호는 이상도에게 다시 집중했다.

이상한 느낌이 드는 놈이다. 능력자인지 아닌지 애매했다. 시스템에까지 그 이름이 등장하는 신진한조차 능력자가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저 이상도란 놈은 능력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느낌이 든다.

장준호는 워렌에게 속으로 말했다.

'저거 느껴져요?'

[음... 좀 께름칙한 느낌이 들긴 하네. 이게 네가 말하는 감각이지?]

'그렇긴 한데, 좀 달라요.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이상한 변수의 등장에 생각이 많아졌다.

'근데... 준성 선배 이야기는 무슨 말이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진한의 말이라 마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미묘하게 공이 달라진 걸 말하는 거겠지.]

'공이 달라져요?'

[구속도 약간 내려가긴 했는데, 회전이 많이 달라졌어. 밸런스가 흐트러진 건가본데?]

'그런 것도 알 수 있어요?'

[신진한이도 봤다 하잖아?]

'아니... 무슨 포수도 아니고. 덕아웃에서 육안으로 그게 되나? 구속 대충 때려 맞추는 것도 정도가 있지.'

[너는 부족한 놈이고, 쟤는 잘난 놈이고.]

'참내... 저걸 아는 게 더 이상한 거죠.'

[음... 그래. 가 아니라 너도 노력은 해봐야할 거 아니야, 이 멍청아!]

워렌 스판은 장준호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선 홀로 고뇌에 빠졌다. 물론 장준호에겐 들리지 않는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온갖 업적들과 기능들이 좌르륵 도배 되어있다시피 한 신진한의 상태창을 다시 살펴보고 있자니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신진한의 입장은 장준호와 많이 달랐다. 신진한에게는 장준호 같은 능력이 없었다. 장준호에게서 미리 듣기는 했지만, 어떤 감각을 공유하게 된 이후로는 본인도 느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저렇게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들 모두가 제 업적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장준호의 경우엔 저런 것들을 획득하는 것 자체가 그 목표다. 제 능력을 키워가는 수단인 셈이다. 하지만 신진한에게 있어서 저런 것들은 그저 이룩한 업적이나 이미 가진 능력들의 나열일 뿐이었다.

말 그대로 의문투성이다. 저런 놈이 왜 아직도 이런 곳에 있는 건지도, 저 젊은 나이에 그런 것들을 어떻게 다 가질 수 있는 건지도...


따악!


그 사이에 김준성이 또 장타를 맞았다. 그대로 주저앉아 외야 쪽만 허망하게 바라보던 김준성은, 본인도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를 향해 포수 장민준과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가면서, 경기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 모든 광경을 바라보던 자이언츠의 조우진 감독은 스트레스성 두통이 찾아오기라도 했는지, 머리를 짚으며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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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악마의 피칭 (1) +1 17.12.02 1,083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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