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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만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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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공
작품등록일 :
2017.10.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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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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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2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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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피칭 (1)

DUMMY

뻥! 스트라이크 아웃!


1회의 타자들이 연거푸 당해버리는 삼구삼진에 한숨만 내쉬던 라이온스의 이유준 감독은 급기야 가슴까지 치며 답답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1번 타자가 삼진을 먹고 들어오며 말했다.

"아! 아깝다."

이유준 감독 역시도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었다. 오늘 신진한의 컨디션이 영 별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나갔던 배트가 밋밋한 변화구를 정말 아깝게 스쳤던 것이니 감독 눈에도 아깝게 보였다.

1번의 타격을 지켜보던 2번 타자가 마찬가지로 삼진을 먹고 들어왔을 때도 말했다.

"아깝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밖에서 보던 것과는 꽤 달랐다고 한다.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미묘하게 약간 더 들어오는 공을 정말 아깝게 놓쳤다는 것이다.

그렇게 2번타자 박해일이 타석에서 느낀 점을 3번 타자에게 전해줬다고 한다.

완벽하게 공략할 수 있을 거라고 떵떵거리던 박해일의 예상과는 달리, 3번 타자 김태인 역시도 삼구삼진.

이쯤 되자 감독은 왠지 모를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꼈다.

정말로 정말로 아깝다는 듯 나라 잃은 표정을 짓던 김태인이 덕아웃으로 돌아와 한 마디 내뱉었다.

"와..."

그 말을 들은 이유준 감독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물었다.

"왜? 너도 아까워?"

감독이 김태인을 빤히 쳐다봤고, 김태인은 머쓱해서 뒷머리만 벅벅 긁었다.

김태인이 헛기침을 하면서 감독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리곤 얼른 장비를 벗어던지고 그라운드를 향해 얼른 뛰쳐나갔다. 자기가 수비수인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유준 감독은 수비하러 나가는 선수들에게 뭔가를 소리치려다가 말았다. 울화통을 삭이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감독이 옆에 놓여있던 배트를 집어 들고 타격자세를 취한 뒤 붕붕 휘둘렀다.

"아니 저걸 왜 못 치냐고. 이걸 못 해? 이걸?"

이유준 감독 역시 잘나가던 타자 출신이었다.


*


"이유준 감독이 배트를 휘두르고 있네요."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으니 답답한가 봅니다."

"답답해서 직접 치고 싶다, 뭐 이런 의미일까요?"

"하하... 그런 마음도 이해는 갑니다. 오늘 신진한 선수의 컨디션이 그렇게 썩 좋아보이지는 않거든요? 이전 경기들에 비해 볼끝이 밋밋하고 변화각이 크지 않습니다. 이런 날이야 말로 신진한을 공략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겠죠. 비록 1회는 쉽게 끝나버렸습니다만, 곧 타자들이 저 공에 익숙해진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


백동임은 신진한을 묘한 눈길로 쳐다봤다. 늘 예상 밖의 결과를 보여주는 형이었지만, 오늘의 투구는 무슨 컨셉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표현 그대로 끝이 가벼워 보이는 공. 백동임은 저런 공을 던지는 신진한을 처음 봤다.

연습경기에서 갑자기 내려간 구속을 봤을 때 다소간 놀라긴 했어도, 그 주체가 신진한이었던 만큼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내려간 구속이 무색하게도, 그 비리비리한 공의 볼끝은 매우 견고했었다.

오늘은 그런 것도 없었다. 점잖게 얘기하면 힘없는 볼이고, 안 좋게 얘기하면 똥볼이었다. 물론 세 타자 삼구삼진이라는 결과가 나오긴 했지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고교시절의 백동임은 안하무인이었다. 실제로 본인이 제일 잘 하는 줄 알았다. 그걸 부정하는 반례 따윈 없었고, '내가 제일 잘 한다'라는 명제는 신인지명 이후까지도 부정당한 적 없었다.

그러다가 자이언츠로 들어와 훈련을 하며 신진한을 만나고, 그의 투구를 봤다. 그렇게 백동임은 자연스럽게 찌그러졌다. 화면 속의 신진한과 실제의 신진한에겐 너무나 현격한 차이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쯤은 호기로운 패기이며 오만이었다. 그래도 리그 최고 투수정도는 되어야 자신의 라이벌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마주치고 보니 이길 엄두가 나질 않았다. 야구를 시작하고 한 번도 꺼지지 않았던 오만의 불길은 생각보다도 쉽게 사라졌다.

내가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자 새로운 세계가 보였다. 자신에겐 부족한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리고 그걸 신진한은 가지고 있었다.


그 때부터 열심히 비볐다. 엄청 까칠할 것 같던 신진한은 생각보다 더 쉬운 사람이었다. 물어보면 그냥 고민 없이 대답해줬다. 가끔 어려운 소리를 할 때도 있었지만, 얻는 게 더 많았다.

자신은 여러 코치님들과 진한이형의 가르침으로 한참을 발전했다. 이제는 좀 비슷하려나 하고 위를 쳐다보면 한참을 더 가있는 그런 사람이 바로 신진한이었다. 끝이 안 보이는 사람. 아니, 그냥 자신이 아는 만큼 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자신은 여전히 발전하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점점 줄어간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에 '내 재능이 여기까진가' 하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오늘의 경우 또한 비슷한 케이스다. 신진한이란 사람이 의미 없는 투구를 할 리가 없는데, 그 진의를 파악할 수가 없다.

신진한의 가르침에서 이해하지 못 하는 부분이 많아질수록, 자신의 초조함도 커져만 간다. 뭔가를 알아듣기 위해선 그만한 그릇이 필요했다.

백동임이 잠시 생각에 빠진 사이에 자이언츠의 공격이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진한아. 가자."

포수 장민준이 장비를 챙기고 나갈 준비를 하고 말했다. 그의 말에 눈을 감고 있던 신진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도 끝나네."


*


라이온즈의 타선은 강한 편이었다. 강약의 기준이란 게 좀 모호하긴 해도, 3년 연속 우승한 팀의 타선이 적어도 약할 리는 없었다.

타석에는 4번 타자, 이미 레전드 반열에 오른 이승준이 자세를 잡고 있었다.

강타선을 한층 빛내주는 훌륭한 타자이지만, 오늘의 나에겐 좋은 먹잇감이었다.

상대는 게스히터(guess-hitter) 계통의 타자. 올드스쿨식 분류인 건 알지만, 나는 클래식한 것들을 좋아한다.

1구는 좌타자 몸 쪽으로 파고드는 슬라이더.

이승준이 휘두르는 모션을 취하다가 멈췄지만 공은 존 안에 있었다.

1 스트라이크.

2구 역시 같은 공에 존 아래로 빠지는 슬라이더.

배트를 야심차게 돌려봤지만 헛스윙 2 스트라이크.

역시 노련한 타자라 그런지, 별다른 감정표현은 없었다.


나는 이 상황 자체가 너무 즐거웠다. 하나의 스포츠로서, 그리고 그 스포츠의 선수로서는 적합하지 않은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거야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저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승부를 펼치는 것이 즐거웠다. 즐거워서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질 것만 같다.

40대까지 야구를 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 승부라는 매력의 지분이 가장 컸다.

3구는 1구와 같은 공, 같은 코스로 던졌다.

이승준 선배가 진의를 안다면 기분 나빠 하겠지만, 이것은 내가 레전드에게 보내는 시금석이었다.

레전드의 반열에 올랐다는 당신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익숙한 코스의 공에 이 선배가 배트를 꽉 쥐었다. 내 눈엔 기회의 포착이라기보다는 고뇌의 표출처럼 보였다.

천천히 리듬을 타던 배트가 빠르게 휘둘러졌다. 장작을 쪼개버릴 것 같은 스윙.

훙! 스트라이크 아웃!

배트는 간발의 차이로 허공을 갈랐다. 상대가 갈라낸 바람이 내 얼굴에까지 닿는 것 같다.

진의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승준 선배는 기분나빠하는 기색 없이 덕아웃으로 향했다.

확실히 좋은 타자와의 승부가 더 보람차다.

재미있다.


*


신진한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정작 이승준은 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 정도 말고는 없었다. 한국 리그에 이어 일본 리그까지 섭렵하고 오랜 시간을 현역으로 뛰어온 선수였던 만큼, 한 타석의 결과에 마음이 흔들리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좀 이상한 느낌은 들었다.

물론 자신은 졌다. 이번 타석에서의 패배를 부정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어떤 상식이 파괴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전 이닝의 타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기는 했다. 오늘 신진한은 반 쯤 맛이 간 것 같다고 하는 그들의 말. 하지만 마냥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물론 이전까지 봐왔던 평소의 그런 공은 아니었다. 정상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수긍은 갔다. 충분히 칠 수 있는 영역의 공이었다. 1구 1구를 떼놓고 보면 그렇게 생각하기에 충분했다.

모든 투수들이 그러하지만, 가지고 있는 여러 무기들이 조합될 때 투수라는 놈이 탄생하는 법이다. 정말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공일지라도, 다른 공과 섞였을 때는 전혀 다른 위력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오늘의 신진한이 그런 케이스인가 하면 또 그건 아니었다. 다 섞어도 별 거 없으니 충분히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막상 결과물은 그렇게 나오질 않았다.

결과적으론 '섞고 보니, 생각보다는 괜찮더라,'가 되었다. 말이 좀 이상한 것 같아도, 달리 적합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았다.

시범 경기에서도 이랬다던가?

당시에 신진한 부상이라며 기사들이 쏟아졌었다. 실제로 객관적인 지표들과 지난해의 기록이 부상신호를 보내고 있었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다만 역설적인 기록이 그 의혹들을 말끔히 덮어버렸을 뿐이지만.

이제 겨우 첫 타석인 만큼 관찰할 기회는 남아있었다. 다른 타자들의 승부에서는 볼 수 없다는 게 한계라면 한계였지만, 몇 번만 더 만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


같은 시각의 목동구장.

앤드류 브랜드는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진한을 꼬시러 와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이후로 본의 아니게 챙겨보게 된 한국 프로야구.

극동지역 책임자인 만큼 개괄적 정보들은 어느 정도 머릿속에 꿰고 있는 앤드류였지만, 사실 한국 야구에서 그의 눈을 사로잡는 재목은 신진한 한명 밖에 없었다.

빅리그를 노려봄직한 이들이 아예 없진 않았으나, 대단한 성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좀 바뀌었다.

뭐 어떻게 된 일인지, 한국 프로야구는 꽤나 달라져 있었다. 기존의 평가들을 뒤엎을만한 선수들이 나타난 것이다.

달라진 환경에 판을 새로 짜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한동안 관심을 껐던 한국 리그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시즌 초반인지라 아직까진 변한 상황이 외부로 알려진 것 같지 않았다. 이건 직접 봐야 더 확실하게 와 닿는 영역의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부터 앤드류는 새로운 명단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평가서를.

그렇게 나름대로 추려낸 관찰요망 명단에는 달라진 선수들의 이름이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거기에는 오늘 히어로즈의 선발 김현상의 이름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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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악마의 피칭 (3) +1 17.12.05 1,225 11 13쪽
21 악마의 피칭 (2) +7 17.12.03 1,228 13 11쪽
» 악마의 피칭 (1) +1 17.12.02 1,098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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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해야 하는 것들 (2) +3 17.11.25 1,323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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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천적 (3) +1 17.11.22 1,576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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