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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만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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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공
작품등록일 :
2017.10.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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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5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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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피칭 (3)

DUMMY

긴 시즌을 지내다 보면 정말 간발의 차로 아웃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오곤 한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아홉 타자가 입을 모아서 아깝다고 외치는 경우는 없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상대방의 공을 의심해봐야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이성적인 판단을 하고 들어서도, 결국 공이 날아오는 그 0.x초 단위의 극한 상황에서 본능을 이겨내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공이었다. 막상 눈앞에 보이는 공은 이성을 마비시킬 정도로 먹음직스러웠다. 이런 공을 보고도 안 치는 타자는 타자도 아니다.

이번 공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상도는 스트라이크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켜보겠다고 다짐했다.

‘대체 이걸 왜 못 치는 걸까?’


오늘따라 유독 성의 없어 보이는 투구폼 이후, 공은 신진한의 손끝을 떠났다.

‘패스트볼’이라는 말이 과분할 정도로 느릿느릿하게 날아오는 공. 아무 특징도 힘도 뭣도 없이, 그냥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오는 공. 휘두르기만 하면 잡아낼 수 있을 공.

정말 휘두르고 싶었지만, 무슨 일이 있더라도 1구에 휘두르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참아냈다.

공은 이변 없이 존 안으로 들어왔고, 카운트는 0-1 가 되었다.

스스로가 안 치겠다고 다짐한 것이라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2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이 올까? 1구와 똑같은 공이 오면 확실히 쳐낼 수 있을까? 첫 타석에서도 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못 치지 않았던가?

온갖 잡생각이 이상도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생각이 많아지자 몸이 무거워졌다. 괜히 배트를 다시 한 번 고쳐 쥐게 되고, 자신의 자세가 어색하진 않은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저도 모르게 자꾸 몸에 힘이 들어가는 걸 의식적으로라도 떨쳐내고자 했다.

괜히 허공에 배트를 몇 번 휘둘러보고, 어깨를 툴툴 털어보는 이상도의 모습을 본 신진한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상도가 준비를 마치고 다시 타석에 들어와 자세를 잡자, 신진한도 투구를 준비했다.

야수의 눈빛을 한 신진한과 호락호락 당하지 않겠다는 이상도의 눈빛이 부딪혔다.

2구가 날아온다.

이상도는 마음속으로 정해둔 타이밍에 맞게 앞발을 지면으로부터 가볍게 떼었다.

높게 들어오는 공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꼭 공이 허공에 멈춰있는 것만 같았다.

준비하던 타이밍과 전혀 상반된 공이 날아오자 이상도의 밸런스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공에 배트는 맞혀보겠다는 일념으로, 들었던 앞발을 잠깐 내려 다시 디뎠다. 재차 타이밍을 재고 앞다리를 올려봤지만, 한 번 무너진 밸런스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힘조차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허무한 스윙이 허공을 가르고, 공은 포수 미트에 안착했다.

90km/h

아리랑 볼과 커브의 사이 어디쯤 있는 공에 완전히 당해버렸다.

이쯤 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궁지에 몰린 이상도가 상대방을 있는 힘껏 노려보며 위풍당당한 자세를 재차 취했으나, 그것은 허장성세. 이미 이상도의 기세가 완전히 죽어버린 뒤였다.

신진한도, 이상도도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저 간단한 확인의 과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


라이온스의 2번 타자 박해일이 삼진을 당하고, 그렇게 6회 초의 라이온스 공격은 다시 한 번 삼자범퇴로 끝났다.

"썩을!"

140도 안 되는 느릿느릿한 직구에 헛스윙 삼진을 당한 박해일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배트를 바닥에 힘껏 내리쳤다. 바닥과 부딪힌 배트는 힘없이 부러졌다.

평소에 화내는 일이 거의 없었던 박해일이었던 만큼, 그의 분노한 모습에 자이언츠 선수들은 물론이고 라이온스의 선수들까지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것은 박해일 스스로도 깨닫고 있었다.

실제로 박해일 본인은 평소에도 별 감정의 동요가 없는 편이었다. 딱히 표출하지 않으려 한 적은 없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모르게 속이 끓어오르는 걸 경기 내내 의식적으로 참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터져버렸다.

프로 선수가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걸 썩 좋게 보는 편이 아니었는데, 선수생활을 통틀어 해본 적 없는 그 감정적인 행위를 직접 해버리는 제 모습에 본인도 놀랐다.

신진한의 투구에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힘없는 공도 치지 못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분노일까?

덕아웃으로 돌아온 박해일에게 타격코치가 말을 걸어왔다.

"해일아. 괜찮냐?"

"하나를 치기가 힘드네요."

"아직 남았잖아. 열 내리고 차분하게 가자."

타격코치 역시도 명쾌한 답을 줄 수 없는 현실이 답답했다. 박해일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멘탈이라도 잡아주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박해일은 심호흡을 하며 3번 타자 김태인의 타석을 지켜봤다. 우스꽝스러운 자세로 헛스윙하는 김태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김태인은 상당히 똑똑한 타자였다. 타격의 근간에는 특유의 야수적 본능을 심어두고, 그걸 억누른 채로 지능적인 승부를 펼치는 그런 타자가 바로 김태인이었다.

평균의 상위 타자들만큼이나 지능적인 승부를 펼치다가도, 자신의 수가 안 먹힐 때는 과감하게 본능에 몸을 맡겨버린다. 그리고 그 날카로운 야수의 본능은 수 싸움 패배 이후의 손실을 메워준다.

쉽게 말해서 본인이 상정하는 상대의 공은 이성으로 쳐내고, 상정 외의 공은 본능에 맡겨 해결하는 그런 타자다.

좀 웃긴 표현이기는 하나, 본인이 그토록 말하는 그놈의 ‘리스크-헷징 타격’으로 몇 년째 리그 상위권에서 군림하고 있었다. 투수의 입장에선 수 싸움에서 져도 한 수가 더 남아있는, 처치곤란형 타자다.

그런 김태인의 우스꽝스러운 헛스윙에 박해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눈을 돌려 이승준을 살펴보니, 그의 표정도 슬슬 굳어가고 있었다.


김태인은 장점과 단점이 뒤섞여있는 선수였다. 황당한 노림수에 허무하게 당할 때도 있었고, 오히려 그 노림수가 먹혀서 기막힌 장면을 뽑아낼 때도 있었다. 기본적으로 기복이 심할 수밖에 없는 마인드의 김태인에게 안정성을 부여해주는 요소는 역시 그의 본능이었다.

본능만을 떼어내서 완벽하게 가다듬으면 대단하겠다는 생각을 거의 모든 타격 코치들이 해봤지만, 그런 일은 불가능했다. 김태인은 혼탁하게 섞여있는 그 자체로 완성된 상태였다.

그만큼 그의 본능은 대단한 것이었다. 메이저에서 좀 뛰어봤다고 하는 용병 투수들의 공도 어렵지 않게 따라가곤 했었다. 그런 김태인이 저런 똥볼에 쫓아가지를 못 하고 있었다. 변화구도 아니고, 직구에.

그 이해 안 가는 광경에 이승준과 박해일이 의문을 가진 것이다.


*


라이온스의 2군 숙소.

한 청년이 배트 하나를 손에 꼭 쥔 채로 야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스코어는 1-0, 라이온스가 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신진한의 공에 저항도 못하고 당해버리는 타자들의 모습에 과몰입한 듯,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특히 청년의 우상이자, 소중한 배트를 주고 간 대선배 이승준마저 힘을 못 쓰고 당하는 장면에서는 배트를 쥔 손에 핏줄이 돋아날 만큼 힘이 꽉 들어갔다.

"너 또 중계 보고 있냐?"

문이 열리며 그와 같이 방을 쓰는 선배가 들어왔다.

"예. 우리 팀 경기잖아요."

"거 애정 한 번 대단하다."

"형. 신진한 만나보셨죠? 신진한이 그렇게 세요?"

청년의 선배는 1군으로 종종 올라가는 선수였다. 1군의 공기를 꽤 많이 맡아 본 사람이니 만큼, 신진한도 만나봤을 것이다.

"세냐고? 존나 세지. 조오오온나 세다고."

잠시의 고민도 없이 답하는 선배의 모습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화면으로 보는 신진한의 모습만으론 확실하게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그 정도까진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막상 그에게 당하는 타자의 면면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스프링캠프 당시에 봤던 팀 내 상위 타자들의 타격은 그야말로 살벌했다.

훌륭한 타자들이 그렇게나 많은 라이온스 1군이 이렇게 허무하게 당한다는 걸 쉬이 납득할 수 없었다. 아무리 업앤다운이 있는 스포츠라고 해도 그렇지, 저런 공을 공략 못한다는 걸 어느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요즘은 안 만나봐서 모르겠는데, 구속이 많이 줄었다면서? 근데 만나봤던 입장에서는 구속이 내려갔다고 약해지진 않았을 거 같다."

"어째서요? 구속이 다는 아니어도, 큰 영향을 주긴 하지 않아요?"

"순전히 내 생각인데, 신진한이 무서운 건 꼭 구속이 아니거든. 누가 내 말을 믿겠냐마는... 야, 너 그 배트 좀 놓으면 안 되냐? 그게 네 애인이야?"

"신체의 일분데요?"


*


"쟤들 왜 저래?"

"그러게요... 좋아하긴 해야 되는데..."

자이언츠의 타격코치 진팔용이 헛스윙만 돌리고 있는 라이온스의 타자들을 보며 덕아웃의 선수들에게 물었다.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나?"

"아, 몰라. 어차피 진한이 만날 일 없는데 뭐..."

"모를 일이다, 모를 일이야."

"동임아. 네가 보기엔 어떠냐?"

선수들끼리 머리를 맞대어 봐도 답이 나오진 않았다. 공은 자연스럽게 백동임에게로 넘어갔다.

"저도 잘 모르겠슴다."

"측근인 네가 모르면 어떡해 인마?"

"그게... 초반까진 좀 감이 왔는데, 지금은 아예 모르겠슴다."

한편 불펜에서 대기하고 있는 장준호 역시 신진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거...]

'왜요?'

[나랑 비슷한 것 같은데...]

'저렇게 했었어요?'

[상황이 다르니 비교하긴 어렵겠지만, 확실히... 아니, 좀 다른가?]

'어떻게 다른데요?'

[나는 저런 악의를 품고 던지진 않았었거든.]


*


9회 초 2아웃, 주자 없는 상황에서 신진한은 라이온스의 마지막 타자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라이온스 덕아웃은 이미 초상집이었다. 모든 코치진들과 선수들이 말 한마디 못 하고 있는 침울한 분위기.

고작 시즌 초반의 한 경기이긴 하지만, 노히트의 무력한 패배는 치명적이다.

라이온스의 4번 타자 이승준이 그라운드로 눈을 돌렸다. 1번 타자 정형수가 무기력한 모습으로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상대라고 해도 저렇게 시작부터 지고 들어가는 모습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쓴 소리를 하기도 어려웠다. 상대는 노히트 중인 신진한이고, 이 경험 부족한 타자가 오늘 경기의 마지막 타순이었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도 경기는 이미 기울었다. 고작 1점이었지만 그 1점까지의 거리는 너무도 멀었다.

다시 시선을 거두고 지금까지의 경기를 복기했다.

분명 초반은 이 정도까지 상황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변했다. 어쩌면 변한 것은 타자들일지도 모르겠다.

경기 초반의 오늘은 할 만하던 소리가 중반부터는 아예 사라졌다. 호되게 당해서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갔을 지도 모를 일이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투구가 묘하게 달랐던 것 같다.

이제 와서야 알아차릴 만큼 미묘한 변화였다. 그것도 굳이 달라진 점을 찾다보니 보이는 것 같다.

형편없는 공이었다. 힘없는 직구, 직구와 큰 차이가 안 나는 슬라이더, 그리고 보여주기식 아리랑 커브.

조합이 대단했냐고 묻는다면, 확실히 공 자체보다는 좋았다고 봐야했다. 한구, 한구가 거의 유사한 궤적에서 들어왔다. 형편없는 공을 쳐내지 못한 이유도 거기에 있었겠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게 마련이다. 안 좋은 재료로 만드는 요리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프로 타자로서 부끄러운 분석이지만, 초반엔 운이 안 좋았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중반부터는 달랐다.

공은 그대로였지만, 패턴이 달라졌다. 로케이션의 이점을 포기한 듯, 타자들이 예상하기 쉽게끔 던져줬다. 하지만 칠 수 없었다.

극한의 이지선다라는 느낌을 아마 본인이나 다른 타자들이나 비슷하게 느꼈으리라. 직구냐 슬라이더냐, 무엇이든 좋으니 오라고 하는 이들에겐 커브로 타이밍을 뺏는다. 그리고 다시 이지선다의 세계로 끌어다 앉힌다.

투수와 타자 사이에 일어나는 수 싸움들을 투수 본인이 제한하는 기묘한 투구. 상존하는 온갖 확률을 제외하고 50:50의 승부를 직접 만들어준다. 그리고 모든 타자들이 번번이 패한다.

왠지 모를 싸한 느낌이 왔다.

감았던 눈을 번쩍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정형수를 쳐다봤다.


뻑! 스트라이크 아웃!

게임종료


투수와 포수가 웃으며 서로를 향해 걸어가고, 타자 정형수는 고개만 떨군 채 타석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완전히 당하고 말았다. 처절하게 박살이 나고 말았다.

어떻게 가능한 건지는 몰라도, 그것이 아니라면 설명이 되질 않았다.

이승준은 차라리 자신의 예상이 틀렸길 바라며, 차마 덕아웃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정형수를 향해 걸어갔다.


작가의말

조금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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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Aftermath (4) +1 17.12.13 877 10 11쪽
25 Aftermath (3) +3 17.12.11 979 9 12쪽
24 Aftermath (2) +1 17.12.09 973 9 12쪽
23 Aftermath (1) +1 17.12.07 1,169 10 11쪽
» 악마의 피칭 (3) +1 17.12.05 1,212 11 13쪽
21 악마의 피칭 (2) +7 17.12.03 1,213 13 11쪽
20 악마의 피칭 (1) +1 17.12.02 1,082 14 11쪽
19 안될 팀 (2) +3 17.12.01 1,039 14 12쪽
18 안될 팀 (1) +1 17.11.30 1,071 13 13쪽
17 빨간날 +3 17.11.29 1,584 14 13쪽
16 해야 하는 것들 (3) +1 17.11.26 1,167 14 12쪽
15 해야 하는 것들 (2) +3 17.11.25 1,303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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