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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만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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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공
작품등록일 :
2017.10.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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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2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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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2)

DUMMY

부웅!

스트라이크!


1구는 놓치고 스트라이크. 2구는 가까스로 골라냈지만, 이어지는 3구에 다시 한 번 당하면서 볼 카운트는 1-2가 되었다.

3구의 헛스윙으로 핀치에 몰린 장민준은 잠시 타석에서 벗어나 한 손으로 허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안 그래도 부쩍 나빠진 허리에, 큼직한 헛스윙까지 했더니 허리가 시큰거린다.

'진한이한테 한 번 더... 아니다, 아니야.'

순간 떠올린 생각을 지워버리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장민준이 허리를 가볍게 돌려보고는 타석으로 다시 돌아왔다.


권재형의 공 자체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변화가 극심하지도, 구속이 썩 빠르지도 않은 공. 제구도 기가 막히진 않았다.

그러나 정작 타자들이 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공은 충분히 위력적이라고 평가할 만했다.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진한이와 비슷한 케이스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은 많이 달랐다.

권재형의 최대 강점은 디셉션에 있었다.

이번 시즌 들어 달라진 권재형의 폼은 손에서 공을 최대한 숨기는 쪽에 특화된 것으로 보였다. 그 특유의 디셉션은 릴리스 포인트를 최대한 앞으로 끌고 나오는 딜리버리와 결합되어 통상적인 투수와는 약간 다른 타이밍을 가져왔다.

극단적인 형태는 아니었지만, 오히려 극단적이지 않기에 그 장점이 부각되는 묘한 폼이었다.

'아마도 김 감독의 작품이겠지.'

뒤에서 앞으로 공이 전달되는 타이밍이 통상의 것과는 조금 다른, 뿌려내는 시점이 조금 더 늦은, 원래의 구속에 비해 조금 더 빠르게 느껴지는. 이 세 가지가 잘 맞아떨어진 결과, 동급의 투수에 비해 늦게 출발해서 더 빨리 들어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공이 되었다.

장민준 본인은 포수였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놈이나 진한이나, 못 치는 타자들이 욕먹을 공처럼 보인다는 게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일까.

'이런!'

권재형의 손을 떠난 제 4구가 눈에 보였다. 앞선 세 번의 관찰 덕에 공이 눈에 익은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위력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몸 쪽으로 얕게 파고드는 직구에 배트를 냈지만, 공은 중간에서 한 번 더 꺾여왔다.

배트를 조금 더 내려 보고자 노력했지만, 이미 손 쓸 수 없는 지경에까지 가있었다.


부웅~

뻑! 스트라이크 아웃!


큼직한 선풍기가 다시 한 번 시원하게 등장했고, 몸을 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던 장민준은 또 다시 허리를 부여잡았다.


*


민준이 형이 어기적어기적 걸어서 덕아웃으로 돌아왔고, 감독님은 그 모습에 식겁하셨다.

"민준아! 왜 그래? 다쳤어?!"

"다친 건 아닌데 허리가..."

"안 된다, 안 돼! 누가 파스 좀 가져와!"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의무병이라도 찾는 것처럼 소리치는 우리 감독님.

이런 광경을 볼 때면, 감독님이 너무 불쌍했다.


프로야구에 어디 모든 게 풍족한 운영을 하는 팀이 있겠냐마는, 역시나 정도의 차이였다.

풍족한 팀은 구멍이 좀 나도 대충 메우면 그럭저럭 돌아가고, 없는 팀에 구멍이 나면 들어오는 빗물을 그대로 맞고 가야한다.

어디 하나만 구멍이 나도 팀 전력에 크나큰 누수가 생겨버리는 게 바로 우리 팀의 현 주소.

전 포지션의 사정이 거의 비슷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파트는 역시 포수 쪽이다. 다른 쪽은 일정부분 전력 저하를 감내하면 그만이지만, 포수 쪽은 경기 자체를 풀어가기가 어려웠다.

민준이 형이야 타격도 좋고, 본의 아니게 많이 쌓인 경험까지 갖고 있는 훌륭한 포수인데다가, 젊은 편이기까지 했다. 이렇게 성적 좋고, 젊고, 튼튼하기까지 한 포수가 존재하다보니 백업포수가 제대로 클 새가 없었다.

코칭스태프가 유난스러워 지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형. 그때 허리 관리 좀 받아보라 했는데, 안 갔어요?"

"어... 그때 그 너한테 마사지 받고 나니까 가뿐해서 안 갔지."

"에휴... 그 잠깐 잡아놓은 게 전분데 그러면..."

나의 말을 들은 감독님이 나를 기대 섞인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

"진한아. 해결 가능하겠어? 넌 만능이잖아, 임마!"

"저 트레이닝 파트 아니고 투순데... 아무튼 급한 대로 하더라도 오늘 경기는 힘들 거예요."

난감한 이 상황에서 굳이 위안거리를 찾자면, 명목상으로나마 백업포수가 있기는 하다는 정도.

"중덕이로 괜찮으려나..."

감독님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주전을 과감히 뺄 수도, 또 마냥 넣을 수도 없는 이 딜레마를 팀 차원에서 돌파한 적이 없었다. 미루고 미루다 여기까지 와버렸으니, 다들 패닉에 빠져 혼란의 수습이 안 된다.

"형은 일단 옆에 누워보세요."

"어... 그, 그래..."

뭔가 잔뜩 얼어붙은 표정이었다.

"이것도 임시방편밖에 안 돼요. 오늘은 꼭 가보세요."

"자, 잠깐만..."

"아, 괜찮아요. 전에는 처음이라 그런 거고, 두 번째부터는 괜찮아요."

"그래? 그럼 잘 부탁해."

예상대로였다.

꾹! 꾹!

"억! 지, 진한아. 오늘은 왜 이렇게... 억! 아프냐?"

"허리 상태가 그만큼 말이 아닌 거죠. 한 번 해봤으니까 알죠? 조금만 참으면 됩니다."


따악!


"오!"

잠시 눈을 떼고 있던 사이에 오늘 경기의 첫 안타가 나왔다. 당황해서 안절부절 못하던 감독님의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


5번 타자 손강민이 8구의 끈질긴 승부 끝에 가까스로 출루를 하고, 타석으로 용병 타자 후퍼가 들어섰다.

1루 베이스에 있는 손강민은 슬쩍 눈을 돌려 덕아웃을 쳐다봤다. 다들 뭔가 안심하는 눈치였다.

밖에 있으니 모를 일이나, 아무래도 기회가 왔다는 생각들을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막상 출루에 성공한 당사자인 손강민은 생각이 달랐다.

'쉽지가 않을 거 같은데...'

그의 표정을 봤는지, 1루의 베이스코치가 물었다.

"잘 쳐놓고 표정이 왜 그래?"

"그냥 느낌이 좀 안 좋아서요. 별 거 아니에요."

상대 투수가 아직 1군 선발 경험이 없는 투수라 그런지, 다소 불안정한 느낌은 없잖아 있었다. 구위나 제구에 기복이 상당한 편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복들을 차치하더라도, 전반적인 공들이 꽤 출중했다. 그 중에서도 절반쯤은 운으로 걸러냈던 제 4구는 그야말로 치명적이었다. 실제보다 빠르게 느껴지는 공이라는 걸 처음으로 느껴본 듯했다.

손강민 본인이 비록 출루하는 데에 성공했지만, 뒤에 선수들까지 해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니, 회의적이었다.

투수의 공도 공이지만, 전반적으로 팀 내 타자들의 컨디션이 아직은 별로였다.

비록 전망에 회의적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출루에 성공했으니, 계속 최선을 다해야 했다.

타석 밖에서도 투수를 흔들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고, 손강민 본인은 주루 플레이에 꽤 자신 있는 편이었다.

타자와 투수가 서로 준비를 시작하고, 손강민은 늘 하듯이 리드폭을 슬금슬금 넓혀갔다.

포수와 사인 교환을 하던 권재형이 그 광경을 어깨 너머로 슬쩍 노려봤다.


*


"아... 조우진 감독이 나왔는데요. 판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어필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보크가 아니었냐는 이야기 같네요."

"2회 초 1아웃 주자 1루 상황에서 견제사가 나온 이후, 현재 자이언츠 쪽의 판정 어필이 나왔습니다. 지금 화면에 나오고 있는 장면이... 조금 전의 상황이군요."

"... 타이밍 자체도 완벽한 아웃이었고, 보크의 여지는 없어 보이네요. 아니면 다른 부분의 항의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네. 바로 결과가 나왔네요. 판정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보크 여부에 대한 항의였고, 문제가 없었다는 심판 의견이 나왔습니다. 주자 없는 2아웃에서 그대로 경기가 진행됩니다."


*


"와, 억울하네... 진짠데."

"진짜긴 뭐가 진짜야, 자식아! 난 또 뭐라고..."

"진짜 발도 안 떼고 던졌다니까요?"

"에라이 인간아, 본 사람이 몇인데? 나중에 퇴근하면서 녹화본이나 돌려보고 말해."

손강민이 억울하다는 듯 펄펄 뛰었지만, 코치님은 그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쪽을 파신 감독님께선 별 다른 말씀을 안 하셨다.


그렇게 둘이 옥신각신 하는 사이에 타자가 초구에 배트를 내고 허무한 1루수 땅볼로 아웃카운트 하나를 더 늘렸다.

조용히만 계시던 감독님이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말하신다.

"에휴... 요즘 왜 이렇게 순탄한 날이 없냐, 왜?"

확실히 감독님은 개막과 함께 급격한 노화를 겪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이런 일이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요즘' 왜 이러냐는 감독님의 말은 틀린 셈이다.

"다 외우고 있지?"

"예. 다 외웠습니다."

"아, 걱정된다. 민준아. 얘 괜찮겠지?"

"괜찮겠죠. 그래도 오늘인 게 다행이지..."

배터리 코치님과 민준이 형, 그리고 신인 포수 박중덕, 세 명의 대화가 들렸다.

코치님은 장비를 착용하고 있는 박중덕에게 뭔가를 열심히 주지시키는 중이었다.

박중덕은 예고 없이 찾아온 기회 아닌 기회에 당황한 건지, 정신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알겠다는 중덕이의 대답에도 코치님은 영 불안했는지, 민준이 형에게 끊임없이 뭔가를 확인받고자 하는 듯 보였다.


그들의 모습에 감독님도 덩달아 불안해지신 건지, 질문이 나에게까지 왔다.

"진한아. 괜찮겠지?"

포수 하나 바뀐 게 대수는 아니었다.

"뭐 상관없죠."

'언젠 안 이랬어요?'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그런 말을 하자니 감독님의 표정이 너무나 애잔했다.

원래는 이런 느낌을 못 받았던 것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감독님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 보인다. 나도 모르게 자꾸 측은한 마음이 간다.

향후로도 쭉 고생하실 걸 알기에 그런 걸까?

"포수 쪽이니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


"선배님. 영광입니다."

함께 그라운드로 향하는 박중덕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뭐가 영광이야?"

"저 선배님 공 받는 게 꿈이었는데, 드디어 이뤄져서요."

"이게 택도 아닌 소리를... 너 지금 20살 아니냐?"

"맞는데요."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를 하니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너랑 나랑 5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저 원래 투수였슴다. 고 2때 포수로 전향했거든요."

아...

말은 된다.

"그...렇냐? 그럼 뭐 포수 얼마 하지도 않은 거네. 이거 믿어도 되겠어?"

"걱정 마십쇼. 절대 안 빠뜨리고 다 받아내겠습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제 위치에서 잘 잡기나 해."

"예, 알겠슴다."

경기에 나가게 되어서 그런 건지, 박중덕은 생글생글 웃고만 있다.

하기야 이 팀 사정에서 신인 포수가 출장할 수 있는 경우가 별로 없으니...


*


신진한은 평소에 하지 않는 연습투구를 자청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을 위한 수고로움임을 박중덕 역시도 잘 알고 있었다.


뻑!


직구가 살아있고 힘이 느껴지긴 했어도, 눈이 못 쫓아 갈 정도로 구속이 빠르진 않았기에 잡는 것 자체가 어렵진 않았다.


뻑!


올 시즌 들어 구사율이 높아진 이 커터같은 슬라이더도 잡을 수는 있었다. 끝에 가서 급격하게 예리해지긴 했으나, 정신만 차리면 잡을 수 있다.

'근데...'

신기하게도 공이 미트에 정확히 들어온다.

본능적으로 움직이고는 있지만, 막말로 가만히 멈추고 있어도 미트 안에 들어올 것만 같은 느낌이다.

연습 시작 전에 신진한이 해줬던 말을 떠올렸다.

'변화를 봐두라고 했었지?'

이렇게까지 제구가 될 공 같으면, 변화고 뭐고 풀어나가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그 결과까진 장담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갑자기 출전하게 된 박중덕의 머릿속은 탈 없이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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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해야 하는 것들 (2) +3 17.11.25 1,323 12 12쪽
14 해야 하는 것들 (1) +3 17.11.23 1,799 1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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