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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만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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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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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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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2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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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살이 (3)

DUMMY

야구판에서는, 특히 현대 야구에서는 온갖 작전들이 횡행한다.

작전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자연히 경기에 필요한 사인의 양은 많아질 수밖에 없으며, 사인 스틸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패턴에 의해 그 분량이 몇 배로 뻥튀기되곤 한다.

상황이 그러한 만큼, 각 팀에서는 사전조율을 하는 방식 등으로 분량을 최소화하려는 노력들을 한다.

이는 투수와 포수라는 한 세트에서도 마찬가지다.

투수와 포수 간의 의사소통을 위한 사인의 양 또한 방대하다.

투수가 던지고자 하는 구질과 로케이션, 운영방향 등등을 따지자면 팀 차원의 작전 못지않게 많다. 자연히 그만한 사전 교감이 필요하게 마련이다.

그게 제대로 되어있지 못한다고 하면, 포수가 마운드로 올라가야하는 상황이 많아진다.


스트라이크!


포수 교체 이후 첫 타자를 잡아내고, 이어진 두 번째 타자와의 승부.

첫 타자와 마찬가지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어후..."

박중덕은 애를 먹고 있었다.

1군 경기 자체는 첫 등판이었지만, 투수들의 공은 충분히 받아봤다. 하지만 신진한은 그들과 전혀 다른 유형의 투수였다.

기본적으로는 신진한과 호흡을 맞춰본 경험이 없는 탓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긴 했지만, 사전조율을 해보려고도 했다.

신진한은 물론이고, 장민준에게까지 의견을 구해봤지만, 그들에게서 나온 답은 하나였다.

'그냥 잘 받아라.'

박중덕 본인도 욕심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던 만큼, 그 둘에게 적극 어필을 했다.

자신의 의견에 공감이라도 하는 양 고개를 끄덕이던 두 사람이 자신에게 말했다.

'한 이닝 끝나고 다시 말해.'

뭐 그리 다를까 싶기도 해서 그냥 넘어갔다.

저렇게까지 말하는 데엔 이유가 있으려니 하면서.


그렇게 경기는 시작되고, 박중덕은 그저 공을 쫓아가기에만 급급했다.

연습 투구 때와 같은 친절한 공은 없었다.

매번 미묘하게 다른 궤도, 어디로 들어올지 모를 그런 변화각들.

이렇게 힘든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사인이란 것들이 죄다 이런 식이었다.

'좌우로 가니까 잘 잡아', '아래로 빠지니까 놓치지 마'

자신이 보내는 사인이 아니라, 신진한이 보내는 사인이었다.

박중덕은 그저 신진한의 사인에 따라 공을 막아내는 게 그 역할의 전부.

자신의 의견이 묵살당하는 건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프로 밥도 몇 그릇 안 먹은 자신의 의견이 존중받는 건 애초에 기대도 안했다.

하지만 어디로 어떻게 던질 지나 좀 알려주면, 이렇게 힘들지는 않을 것 아닌가?


스트라이크! 아웃!


그런데 또 막상 결과는 좋다.

자신 하나만 힘들면, 팀 모두가 만족하는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이래서는 어디 가서 하소연할 수도 없다.

이런 사람과 몇 년째 함께 하고 있는 선배 장민준이 문득 떠올랐다.

선배에 대한 없던 존경심이 절로 생겨났다.


*


"아, 선배님. 너무 힘듭니다."

"그럼 어디 포수 일이 쉬울 줄 알았어? 그래도 잘 하더만?"

엄살 섞인 박중덕의 말에 장민준이 웃으며 대답했다.

"로케이션이라도 좀 알면 안심이나 될 텐데..."

"미트로 안 오는 건 뭐, 다른 투수들도 비슷하잖아?"

"음... 그건 그런데요."

"나는 쭉 같이하다보니 어느 샌가부터 신경 안 쓰게 됐는데... 옛날 생각해보면 네 말도 틀린 건 아니네. 아무튼 나는 되니까 상관없어. 낄낄!"

장민준은 어린 나이부터 주전포수가 되어 경험을 쌓아왔다. 이미 완숙해진 포수였던 만큼, 신진한의 공을 받는 것 자체가 어려울 리 없었다.

물론 그가 박중덕의 고민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신진한은 통상의 투수와 많이 달랐다. 자신도 익숙해지기 전에는 꽤 고생을 했다.

평소엔 얌전하기만 한 놈이, 야구 이야기만 하면 똥고집이 된다.

통 타협이 되질 않아서 한 번 멋대로 해보라 했더니, 경기가 아주 쉽게 끝나는 게 아닌가?

그 때부터는 그냥 신진한에게 일임했다. 자신은 공을 받아주는 데에만 신경을 썼다.


신진한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많은 성장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 최근 들어 달라진 신진한의 공 역시도 잘 받아낼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박중덕이 어려움을 겪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강속구 시절에 비해 더 잡기가 어려워졌다는 건 장민준 역시 인정하고 있었으니.

"형. 안 가고 뭐해요?"

신진한이 덕아웃에 있는 장민준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아, 이제 간다. 얘 이거 걱정돼서 갈 수가 있어야지."

"형이 뭔 걱정이에요. 고생은 내가 하지."

너무나 당당한 신진한의 적반하장에 박중덕은 할 말을 잃었다.

박중덕을 쓱 한번 본 신진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왜? 네가 왜 황당해 하냐?"

"... 아닙니다. 선배님. 근데 로케이션만 좀 말씀해주시면 안됩니까? 더는 안 바랍니다."

"말 해 주잖아?"

"그... 상하좌우 말고요."

"아아~ 그 말이구나. 아 자식 거, 없어도 잘 받더니만. 그걸 언제 다 말해?"

"... 그렇긴 한데, 그래도 반대방향으로 오면 좀..."

"알았다 알았어. 휴... 이 뭔 개고생이냐."

...

"이거, 이거 또 표정... 얌마. 내가 너 안 놓칠 공만 던지고 있는 건 아니? 안 흘리는 게, 네가 잘 해서가 아니에요."

"암, 암."

신진한의 옆에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 장민준의 모습에 박중덕은 울컥했다.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장민준이 존경스럽다던 아까의 말은 취소다.


*


3회 말의 수비가 끝났다.

어린놈이 징징대는 바람에 안 하던 짓을 하려니, 본의 아니게 투구 간격이 길어졌다.

사실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봐야했으나, 중덕이는 내 사인 몇 번에 곧 안정을 찾았다. 아무래도 심리적인 안정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급한 대로 해주긴 해줬다만, 아무래도 다시 원위치를 시켜야겠다.

"어우~ 한결 편하더라고요. 그..."

뭔가를 느낀 건지, 다른 선수와 대화하던 박중덕이 말을 하다 말고 얼어붙었다.

나는 박중덕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다시 그라운드 쪽을 주시했다.

권재형이라.... 들어본 것도 같고, 안 들어본 것도 같고.

잘 기억 안 나는 이름이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좋은 투구를 펼치고 있었다.

"잘 던지네..."

"누가요? 쟤가요?"

나의 중얼거림을 들은 백동임이 말을 걸어왔다.

"쟤 알아?"

"예, 동긴데요. 친하진 않아요. 근데 쟤가 잘 던지는 건가?"

이놈의 성에 차는 투수가 몇이나 되랴...

"기준을 너한테 두면 안 되지. 또 딴 길로 새지 말고, 너 할 거나 해."

"에이, 형은 절 어떻게 보시고..."

"근데 쟤 원래 저만큼 던졌어?"

"음, 비슷한가... 아닐 걸요? 별 특색 없었는데... 아니, 지금도 특색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비슷한 게 되나?"


*


이글스의 김 감독은 팀의 어린 투수들을 앉혀놓고 그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재형이 투구하는 거 잘 봐둬. 장기적으로는 너희들 모두가 가야할 방향이다."

"예."

지난 1년간 겪어보긴 했으나, 그들 역시 들은 게 있다. 거기다가 프로야구 판에 최고 어른이 아니신가?

어린 투수들로선 전설의 김 감독에게 감히 의문을 표할 수 없었다.

어린 투수들이 조용히 있던 그때, 한 구석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노장 투수 하나가 손을 들고 말했다.

"감독님. 태수나 명진이는 좀 다르지 않습니까?"

그의 말에 김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둘도 이렇게 가는 게 좋아. 제 무기를 버리면서까지 하라는 건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재형이처럼 가서 나쁠 것도 없어."

잠시 말을 멈춘 김 감독이 다시 어린 투수들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 가진 걸 끊임없이 궁리해라. 그리고 그걸 살릴 수 있다면 살리도록 해. 하지만 그게 불가능 하다면 어떡할 거야? 야구 그만 할 거야?"

어린 투수들은 말이 없었다.

"내가 판단한 우리의 살 길이 저 모습이다. 화려하지 못하다고 안할 게 아니라면, 어떻게든 이어나가야지. 이런 내 판단이 마음에 안 들면 머리털 빠지게 궁리 해. 그리고 내 판단이 틀렸다는 걸 너희들이 직접 증명하면 된다. 아니, 제발 그렇게 좀 해다오."

김응수 감독은 점점 징징대는 것 같은 자신의 어투를 되돌아보며, 본인도 늙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관둘 때가 된 건가...'

긴 공백 뒤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왔지만 영 녹록치가 않았다.

없는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건 피말림의 연속이다.

젊은 시절이라면 어떻게든 풀어가 보려 노력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없어도 너무 없었다.

"에휴... 늙어서 이 뭔 개고생인지..."


*


"이글스와 자이언츠의 경기. 현재 4회 말에 양팀 모두 득점 없이, 스코어는 0:0. 이제 자이언츠의 공격이 시작됩니다. 오늘 경기, 예상 외로 팽팽한 투수전 양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두 투수 모두 좋은 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만, 특히나 권재형 선수가 호투를 해주면서 경기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개막 즈음의 깜짝 호투로 팬들의 기대감을 한 몸에 받은 권재형 선수, 갈수록 볼이 좋아지는 것 같네요."

"현재까지 23과 2/3 이닝, 3.42의 평균 자책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1군 기록이 없군요? 지난 시즌 2군에서는 주로 계투로 출전, 48경기 57과 1/3 이닝 평균자책점은 3.76을 기록했습니다."

"1군 무대의 선발 경험이 전무한 투수인데도, 흔들림 없이 좋은 투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기를 끌어가는 감각이 탁월하다고 봐야겠습니다."

"박 위원님도 이글스 출신이신데, 권재형 선수는 어떤 선수인가요?"

"하하... 깜짝 등장한 선수다보니, 미처 대화를 나눠 볼 새가 없었네요. 현장에서는 아주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6번 타자 오상택의 안타! 오늘 경기 처음으로 선두타자의 출루가 나왔습니다."


*


으아아아!

오상택! 오상택!

상택아! 사랑한다!


출루한 오상택은 1루 베이스에 서서, 열광의 도가니인 관중석을 바라봤다.

그렇게 욕하다가도, 한 건 해내기만 하면 환호를 보내준다.

평소에도 좀 진득하게 저리 해주면, 힘이 나서 더 잘할 텐데 말이다.

자세히 보니, 일전에 자신에게 쌍욕을 퍼붓던 아저씨들도 보였다. 그들 역시도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고 있었다.

안타 하나에 저리도 태도가 바뀌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어서 웃기기도 했다.

하기야 여기까지 와서 돈 내고 경기를 보는데, 안 좋은 모습에 욕 하는 걸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자신만 잘 하면, 모두가 행복한 결과를 맞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더 잘 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시 한 번 하게 된다.


그렇게 잠시 정신을 딴 데 팔고 있을 때, 순간적으로 위협적인 견제구가 날아왔다.

베이스에서 비교적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나, 예상치 못한 견제 플레이에 허겁지겁 다이빙을 하며 귀루했다.

타이밍은 다소 늦었지만 거리 자체가 멀지 않았기에, 다행히 아웃 당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이빙 포즈 그대로 엎어져 있던 오상택은 세이프라는 판정을 듣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일어날 수 있었다.


야이 새끼야! 술 좀 그만 처먹어라!

정신 차려라! 플레이를 생긴 것처럼 띨빵하게 하려고 하네?!


조금 전까지 환호하던 사람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쌍욕을 퍼붓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 생긴 걸로 욕을...

울고 싶었다.


작가의말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글을 빨리 올리지 못하여 면목이 없습니다.

힘내서 최대한 빨리 쓰도록 하겠습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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