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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만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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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공
작품등록일 :
2017.10.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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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8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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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2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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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결심 (1)

DUMMY

아드레날린이 뭉글뭉글 샘솟는다.

별 것도 아닌 타자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는 것에 분노, 짜증, 불쾌함 등의 온갖 감정들이 솟구쳤다.


으드득!


김현상이 으스러져라 이를 꽉 물었다.

'어디 이것도 한 번 쳐 봐라.'

과거로 돌아오고 난 이후, 이렇게까지 격렬한 감정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그 감정의 격류에 김현상은 지금껏 지켜오던 임의의 한계치를 훌쩍 넘겨버렸다. 전신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객관적 기준과는 전혀 관련 없는 일종의 징크스였지만, 회귀 이후 한 번도 넘어선 적 없는 미지의 리미터. 그걸 넘겨버린 탓에 순간적으로 흠칫하기도 했다.

그러나 끓어오르는 이 분노에 비하자면, 그따위 징크스란 아주 사소한 것들에 불과했다.

원인 모를 이 분노의 감정이, 선을 넘어버린 것에 대한 걱정 따위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오기 반 분노 반으로 끌어올린 힘 덕에 온 몸이 뻣뻣해져오는 것만 같았다.

꾸준히 훈련해온 젊은 몸에서 쥐어짜낸 그 힘은 전생까지 통틀어 김현상이 내본 적 없는 수준의 것.

정도 이상의 페이스에 피칭을 제대로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현상은 그리 급 낮은 투수가 아니었다.

끊임없는 훈련과, 은퇴 이후까지도 유지했던 이미지 트레이닝은 이 돌발 사태에서도 가야할 길을 정확히 제시했다.

바짝 들어간 힘이 경직으로 이어지기는커녕, 한층 더 응축된다.

그리고는 김현상으로 하여금 제 어깨를 완전히 사용하도록 만든다.


어느 순간부터 녹이 슬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던 어깨. 그곳에 윤활유가 흐르고, 조금씩 녹이 벗겨져 나간다.

그렇게 공포탄만 줄곧 쏴대던 평화의 리볼버는 곧 죽음을 선사하는 흉기가 되어, 실탄을 발사할 준비를 마쳤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격렬하게.

'간다!'


*


고오오!


흉악한 기세로 날아오는 김현상의 공.

칠 테면 쳐보라는 듯이 한 가운데로 오는 직구였으나, 박상훈이 느끼기에 그 기세가 영 범상치 않았다.

'아까 하나 쳤다고, 아주 죽일 듯이 던지는 구나.'

뻔히 보이는 공을 주는 만큼, 휘둘러 줘야 한다.

'차분히... 차분히...'

10년이 넘는 선수 생활을 해오면서 는 거라곤 타격이나 수비도 아니요, 마음을 다스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오늘 김현상을 만나니, 알 수 없는 감정이 요동치는 게 아닌가?

고요한 마음에서 좋은 타격이 나온다는 지론의 박상훈에게는 썩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내 마음에 마가 끼었구나.'

그야말로 주화입마(走火入魔)다.


짧지만 한없이 긴 시간.

공이 포수미트를 향해 날아오는 그 찰나에서 박상훈은 온갖 방법으로 평온을 찾으려 노력했다.

의식을 이리저리 돌리며 동요를 최대한 억누르고,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했다.

그리고 잠깐이나마 평온을 되찾은 어느 순간, 박상훈의 배트가 공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


배트는 마치 신대륙을 개척하는 탐험가처럼 조심스레 한 발짝 한 발짝, 공이 오는 지점을 향해 나아갔다. 느리지만 정확하게.

공이라는 점과 배트라는 면의 아름다운 만남이 그려졌다.

공과 배트의 궤도가 완벽하게 일치하는 듯 보였다.

아름다운 타구가 나오리라는 기대에 한 치의 의심조차 없었다.


따악!


그런 박상훈의 기대와는 달리, 오른쪽으로 밀려나는 타구.

파울이었다.

'배트가 밀렸다.'

타이밍 상 자신의 승리라고 판단했지만, 공의 위력이 박상훈의 예상을 한참 넘어섰다.

이처럼 알고도 못 치는 경우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자신이 가진 너무나 훌륭한 '능력'의 한계. 아니, 본인 능력의 한계.

박상훈에게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잠시 호흡을 다스리고자 눈을 돌려 전광판을 쳐다봤을 때, 거기엔 156이라는 숫자가 떡하니 찍혀있었다.



한편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앤디는 흥분한 표정과 격앙된 어투로 옆자리의 사내에게 쉴 새 없이 물었다.

"156? 97.5마일의 좌완? 대체 이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그... 글쎄요."

앤디의 극성으로 함께 따라오게 된 스카우터는 그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설마 이 꼴을 보고도 반대하는 개짓거리는 하지 않겠지?"

"그...렇겠죠?"

확실히 이쯤 되면, 앤디만의 아집이라고만 보기 힘들었다.

"혹시라도 이 광경을 촬영하지 않았다면, 아마 내가 너를 가만히 안 둘 것 같은데."

"하루 이틀도 아니고... 다 촬영했죠."

"그러면 빨리 보고를 올리도록."


*


미국 뉴욕의 리치 코퍼레이션 본사 안으로 웬 남성 하나가 들어섰다.

"어이~ 이쁜이. 잘 있었어?"

밝은 회색 정장의, 정갈하지 못한 그 모양새에서 약간의 날끼가 느껴졌다. 얼핏 봐도 40줄에는 근접했을 법한 사내 치고는, 나잇값을 영 못 하는 차림이었다.

"여기에 뭐 먹을 게 있다고 자꾸 찾아와요?"

"어우. 나라고 뭐 오고 싶어서 이 조그마한 곳까지 찾아오겠어?"

그의 말대로 본사라는 이름에는 걸맞지 않은 작은 사무실.

"나야 앤디 놀려먹는 맛으로 사는데, 통 만날 수가 없어서 말이지. 그 작자 아직도 일본에 있어? 이제 올 때 안 됐나?"

"아뇨. 한국에 갔어요."

"한국에 있다고?"


*


포수에게 갔던 공이 다시 김현상에게로 돌아갔다.

박상훈은 1구와 마찬가지로 중앙에 메다꽂는 2구의 직구를 쳐내지 못했다. 노볼 1 스트라이크의 카운트는 2 스트라이크까지 갔다.

'너무 생각이 많았다.'

2구에는 배트를 제때 휘두르지도 못했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 집중한다.

조금 더 결정적인 상황에서 사용하고자 했지만, 0-2 카운트의 외통수에서는 답이 없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사용하는 것이 최적의 타이밍일 수도 있었다.

박상훈이 잠시 눈을 감고, 배트를 쥔 양손을 앞으로 쭈욱 뻗었다.


[발동!]


이질적인 소리와 함께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3구에서 안타로 끝낸다.'


심판의 신호에 김현상과 박상훈이 준비 자세를 잡았다.

둘 모두 이 3구에서 결판이 나리라는 걸 직감했다.

김현상의 눈에는 천천히 리듬을 타며 타이밍을 잡아가는 박상훈이, 박상훈의 눈에는 천천히 다리를 올리는 김현상의 모습이 보였다.

프로인 두 사람이 늘 보게 되는 익숙한 광경.

하지만 그 익숙함이 어느 순간 생소함으로 변해갔다.

두 사람의 시간이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 두 사람만 남은 것처럼.

극한의 집중에 이른 탓일까?

김현상의 다리가 점점 느리게 올라가고, 리듬을 타는 박상훈의 박자가 점점 느려졌다.

투수가 아직 공을 던지지도, 타자가 아직 공을 보지도 못한 어느 시점.

멈춰버리는 듯한 세계 속에서 서로간의 치열한 수 싸움이 이어졌다.


공의 로케이션과 움직임을 간략하게 볼 수 있었던 박상훈의 능력이 발동된다.

가상의 스트라이크존이 자신의 머릿속에 그려지고, 김현상의 투구를 읽어낼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곧 이변이 일어났다.

상대방의 공이 나와야 할 박상훈의 존에서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다행일까 불행일까, 점점 느려지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조금이나마 당황 할 수 있는 여유는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능력이 고장난 건가?'

'동류에게는 통하지 않는 능력인가?'

별별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지만,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진 않는다.

그렇게 고민하던 사이, 김현상은 벌써 투구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직구? 슬러브?

1,2구 모두 한 복판 직구였는데, 3구도 가운데 직구이진 않을까?

혹시 한 번 뒤집어서 슬러브로 농락하려나?

그걸 한 번 더 뒤집어서 직구로?

낮게 올까? 아니면 몸 쪽으로?


정리되지 않는 온갖 상념이 박상훈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을 때, 공은 김현상의 손끝을 떠났다.

그 순간 미묘하고도 희미한 궤적이 가상의 스트라이크 존에 그려진다.

이렇게 오는 이 공은 직구인가, 아니면 슬러브인가?

느려진 시간 속에서도 휙휙 거리를 좁혀오는 김현상의 공.

그리고 실제 공보다는 미묘하게 빠른 속도로 그려지는 이 가상의 궤적선.


슬러브가 올 것 같다는 심증이 있어서였을까, 박상훈에게 그 공은 마치 슬러브처럼 보였다.

나름의 판정을 내리고, 차분히 궤적을 읽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안타깝지만 이제는 배트가 나가야만 할 시간이었다.


한없이 무거워진 시공간 사이를 힘겹게 파고드는 박상훈의 배트.

가야할 길이 아직 더 남았건만, 배트는 급한 주인의 마음과는 달리 느긋하게만 나아간다.

'제발!'

공과 배트가 만나고, 그 충격이 손에 온전히 전해져야 하는 그 순간이 왔다.


부웅!


박상훈의 손에는 아무런 감촉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와아아아!


들리지 않던 관중들의 환호소리도 다시 돌아온다.

고개를 뒤로 돌린 박상훈은 포수의 미트에 들어가 있는 공을 볼 수 있었다.

헛스윙 삼진.


*


배트를 피해 날아간 공이 미트 안으로 쏙 들어가고, 심판의 아웃콜이 들렸다.


스트라이크! 아웃!


김현상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허공에 휘둘렀다.

그때 갑자기 뜨는 시스템의 팝업창.


['동종포식' 최초 달성]

- 스탯 포인트 10 지급

- 2주 간 훈련 효율 50% 상승

- 상태 변화 및 능력창 개방


평소에는 찾아볼 수 없던, 파격적인 보상.

보상도 보상이지만, 뭔가를 해냈다는 만족감이 먼저 차올랐다.

동종포식이라는 말처럼, 동류이기에 이토록 격한 감정이 나왔던 건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만 가질 수 있는, 나만의 특권이 아니었다는 유치한 생각의 발로였는지도 모르고.

'그래. 나만의 것이 아니면 또 어떤가?'

내가 다 이기면 그만이다.


*


중덕이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툭툭 치며 격려를 해준다.

누가 보면 마지막 타자에게 홈런 맞은 마무리 투수인줄 알겠다.


딱!


뒷통수를 한 대 때려줬다.

"악!"

좀 세게 때렸나?

박중덕이 고개를 쓱 들어 나를 보고는 입을 열었다.

"선배님..."

이 꼴을 보고 있자니 참 뭐랄까...

이런 게 어떻게 프로가 된 거지?

"얌마. 뭐 죄 지었어?"

"그... 저 때문에 괜히..."

누가 보면 역전패라도 당한 줄 알겠지만, 이겼다.

완투승으로.

"괜히 뭐?"

"첫 실점을 하셔서..."

"하이고... 남의 실점 걱정도 해주고. 여유 있다?"

중덕이는 말이 없었다.

"까짓 거 실점 좀 해도 되니까, 빨리 크도록 해라. 너 당분간 내 전담이다."

"예?"

화들짝 놀라는 박중덕.

'아직 감독님이 말씀 안 하셨나?'

그 때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한아! 인터뷰!"

"예. 지금 갑니다."


*


"오늘의 주인공은 9이닝 1실점의 완투로 팀에 승리를 안겨준 신진한 선수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승리 축하드립니다."

"예. 감사합니다."

"오늘도 위력적인 투구로 9이닝까지 막아냈습니다. 오늘 경기 어떠셨나요?"

"컨디션이 썩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좋은 결과가 있어 다행인 거 같습니다."

"포수까지 교체되는 일이 있었어요. 호흡은 잘 맞았나요?"

"아, 예. 하하. 민준이 형보다 낫더라구요."

"이거, 장민준 선수가 들으면 섭섭해 하겠는데요?"

"둘 모두 좋은 포수죠. 사실 비슷비슷합니다. 하하..."

"8회에는 올 시즌 첫 실점까지 있었는데, 아쉽진 않으셨나요? 0의 기록이 깨졌는데요."

"시즌 자책점이 0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기록이네요. 네. 아쉽진 않습니다. 안 하면 좋겠지만, 안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과연 에이스다운 면모네요. 마지막으로 시청자 분들께 소감 한 마디와, 올 시즌의 목표도 함께 말씀해 주세요."

"네. 자이언츠 팬 여러분. 항상 응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모습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어떤 구체적 목표를 가지고 야구 해 본 적은 없었는데요. 올 시즌엔 목표를 하나 가져보려고 합니다."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올 2014시즌, 반드시 우승하도록 하겠습니다."


*


푸웁!


TV로 신진한의 인터뷰를 챙겨보고 있던 한 청년이 입에 머금고 있던 맥주를 뿜었다.

전국 각지에 흩어져있는 다른 자이언츠 팬들의 반응 역시, 청년과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인터뷰를 시청하고 있던 거의 모든 자이언츠 팬들이 비슷한 한탄들을 내뱉었다.

"진한아, 안 된다... 너마저 설레발을..."


작가의말

퇴고를 많이 못해서 좀 불안하네요.

이런 거에 익숙해져야 할 텐데, 경험이 일천하다보니 걱정부터 앞섭니다.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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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악마의 피칭 (1) +1 17.12.02 1,083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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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해야 하는 것들 (2) +3 17.11.25 1,305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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