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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 나만 투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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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공
작품등록일 :
2017.10.11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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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결심 (3)

DUMMY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한국 프로야구의 기념비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이글스의 에이스인 류진헌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것이다.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프로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것은 처음이었다.


진출 확정 이후,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다양한 이들의 수많은 반응이 나왔다. 성공을 기대하는 이들, 난항을 예상하는 이들, 혹은 성패를 떠나 한국프로야구사의 일대 사건이라는 이들 등등.

그 각양각색의 의견들이 궁극적으로 기대하는 바는 하나였다. 세계 최고 리그를 통해 한국야구의 수준을 평가받고 싶었던 것이다.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던 한국 야구의 수준이란 것이 류진헌의 진출로 인해 어느 정도 객관화되는 듯했다.


파격적인 조건으로 미국에 넘어간 류진헌이 메이저리그에 순조롭게 안착, 호성적을 거뒀다.

그리고 그걸 본 거의 모든 이들은 한국 야구도 세계무대에 통할 수 있다는 생각들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메이저라는 이름값의 허들은 점점 낮아져갔다.


'그것도 두어 해 반짝이었지.'

김현상은 지금 사람들이 상상도 못할 미래의 광경을 떠올려보고 있었다.

류진헌의 2013 시즌 성공적인 데뷔와 그런대로 무난하게 이어가는 듯 보이던 2014시즌이 지나가고,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상상도 못 하던,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리그의 격차를 목격하게 된 것이다.


*


"그 하나가 뭔데?"

"올 시즌의 특수성입니다."

두 분이 잠시 서로를 쳐다보다가, 다시 나에게 되물었다.

"특수성?"

"예. 다른 사람들은 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올 시즌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올 시즌의 특수성이라... 올 시즌..."

꽤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진 다시 오지 않을 유일한 기회.

"9구단 체제의 마지막 해입니다."

"음?"

의문 가득한 표정의 단장님. 다른 걸 생각하셨나?

그 때 감독님이 천천히 입을 떼셨다.

"혹시... 휴식일 때문이냐?"

역시 감독님이다.

"예."

당장 내년부터 10개 구단 체제가 된다. 그리고 한동안은 10구단 체제가 그대로 쭉 이어지게 된다.

그 말인즉 8개 구단이 붙고 한 구단은 필연적으로 쉬게 되는, 이 홀수 대전 체제 하에서의 기형적인 리그 진행이 올해로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주전 야수들이 전 경기를 출장하는 게 힘들긴 하지. 휴식일을 활용하는 교체기용으로 체력을 회복한다라... 아무리 우리 팀 백업과 주전의 격차가 크다곤 해도, 그것만으론 힘들 것 같은데?"

"투수 휴식일도 있죠."

내 말에 감독님이 조금 더 고민을 하시고, 그 사이에 단장님이 의문을 표하셨다.

"그건 다른 팀이라고 크게 다를 것 없잖아? 우리 팀만 유독 좋은 대진을 가진 것도 아니고."

합리적인 의문이다.

"그렇죠. 작은 사고의 전환입니다."


*


김현상의 생각이 다시 신진한에 미쳤다.

생태계 파괴자.

신진한을 표현하는 아주 좋은 단어다.

사용하기에 따라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겠지만, 경우가 좀 달랐다.


신진한의 존재가 류진헌의 메이저 진출에 큰 영향을 주는 일은 없었다.

신진한의 출현 이후 그 존재감이 다소 흐려진 게 사실이나, 류진헌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투수였다. 비록 당대의 신진한이 날아다니긴 했지만, 그건 류진헌 역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누군가와 굳이 비교하지 않아도 될 만큼 훌륭한 투수였고, 그간에 누적된 커리어도 있었다.


다만 문제는 그 이후.

류진헌이 부상으로 나가떨어지고, 후속 진출자들이 죽을 쑤는 과정에서 상황이 달라졌다.

FA를 취득한 신진한은 해외진출을 거부한 것이다.

신진한의 자이언츠 잔류와 국내파 해외선수들의 부진.

아무 관계없어 보이는 두 사건은 묘하게 맞물리며 없던 관계를 만들어냈다.



류진헌을 비롯한 여타 한국 선수들이 죽을 쑤고, 메이저에서는 한국야구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이 생겨났다. 자연히 한국 프로야구에 대한 평가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것이 코리안 디스카운트의 시작이었다.

스카우터를 비롯한 관계자들이 고르고 고른, 그런 이들마저 번번이 실패하는 통에 메이저 구단의 한국선수에 대한 투자는 점차 줄어들었다.

제 덩치를 줄이려는 각 구단들의 노력까지 더해지며, 한국 선수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류진헌의 전성기를 보며, 신진한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던 구단들까지도 조금씩 생각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런 마당에, 여타 선수들에 대한 투자가 이뤄질리 만무했다. 리그를 꽉 잡고 있는 신진한 앞에선 투수고 타자고 상관없었다.

안 좋은 선례까지 목격한 메이저 구단 입장에서는 한국에 과한 투자를 할 생각 자체도 없었다. 하물며 그것이 신진한도 못 넘는 이들임에야...


신진한도 못 넘는 이들밖에 없는 리그에 관심을 가질 구단은 거의 없었다.

구단 수준의 러브콜은 고사하고, 진출을 원하는 선수들에게 오는 제안 규모 자체가 점점 쪼그라들었다.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의 선수들도 마이너의 루키들과 비슷한 계약을 무릅쓰고 모험을 하진 않았다.

그런 여러 사건들이 맞물리며, 메이저 무대의 한국 야구 입지는 사라지다시피 했다.

그나마도 야수 쪽은 양반이었고, 투수 쪽은 아예 전멸.

그런 음울한 현실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백동임이 등장하기 전까지.


*


한참을 침묵하시던 감독님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럼 너..."

감독님은 감을 잡으신 것 같다.

"네가 나를 아주 죽이려고 작정했구나. 후우..."

"무슨..."

"안 된다. 그건."

감독님은 단장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 된다는 말부터 꺼내셨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무슨 소리야? 된다, 안 된다는 게?"

"감독님은 짐작하신 것 같은데..."

내 말에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이신다.

"4일 휴식을 말하는 거냐?"

역시 감독님이다.

그리고 그 말에 의문을 표하는 단장님.

"지금도 4일 휴식이잖아요?"

"얼핏 보기엔 그리 보일 텐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 6일 경기에 선발이 5명이라면, 4일 휴식을 취하는 건 한 명뿐이거든요."

"그럼..."

"이 놈은 제가 4일 휴식으로 던지겠다고 자청하는 거겠죠."

감독님의 말에 단장님이 어느 정도 이해하신 듯 했다.

"그런데 화요일 일요일 선발을 했다 쳐도, 그 다음 주엔 다시 5일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건 다른 팀 역시 마찬가지잖아요?"

단장님의 물음에 감독님이 나를 쳐다보신다.

그 시선에 내가 대신 답했다.

"약간 다릅니다. 휴식일이라는 변수도 있고요. 팀 일정을 생각하셔야 하는 감독님께 조금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모든 경기와 휴식일을 포함한 4일 휴식 체제로 갈까 합니다."


한 주의 화요일에 등판하면, 일요일에도 등판할 수 있다.

그리고 통상적인 경우라면 그 다음 등판은 토요일이 된다. 월요일은 휴식이며, 화요일에 2선발이 들어가게 되므로.

하지만 로테이션을 논외로 순전히 내 등판에만 집중한다고 하면, 4일 휴식 이후인 금요일에 등판이 가능해진다.

금요일 이후엔 정상적인 목요일이 아닌, 4일 후의 수요일. 그 다음은 다시 화요일과 일요일로.


"이렇게 하면, 4주에 6회 등판이 가능해집니다. 산술적으로요. 그리고 올 시즌의 특성상 쉬어가는 텀까지 있으니, 비중이 약간은 더 올라가겠죠. 다른 투수들 휴식일도 어느 정도 늘어날 테고요."

"...그걸로 될까 싶기도 하지만... 근데 그렇게까지 해야겠어? 그랬다가 결과적으로 달라지는 게 없으면?"

"될 겁니다. 제 예상이 맞다면 아마 올 시즌 중상위권 간의 승점차가 크지 않을 거예요. 일정에 따라서 제 등판을 상위권 대진에 맞추면 조금 더 효과적이겠죠.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5회에서 6회로, 고작 한 번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가 더 있죠."

"하나가 더?"

"제가 불펜에도 투입되는 겁니다."

감독님과 단장님이 질린다는 표정을 지으신다.

그 중에서도 감독님은 심각했다.

"네가 내 야구인생을 끝내는 것도 모자라서, 아주 칼까지 맞게 하려고 작정을 했구나..."

"어느 정도 제한은 있겠죠. 다만 저 스케쥴에서도 일정상 필연적으로 5일 휴식이 되는 날이 있거든요. 뭐 결정적인 때만 나가는 게 전부긴 하겠지만, 지금 우리 팀에 마무리랄 게 없잖아요?"

이어지는 내 플랜에 감독님은 아예 사색이 되셨다.

그 때 단장님이 분위기를 한 번 환기하셨다.

"진한아. 내가 야구는 너나 감독님보다 잘 모르지만, 그렇게까지 해서 우승하려는 이유가 뭐니? 구단에 충분한 기여는 했잖아? 게다가 그렇게까지 던지면, 메이저 계약에도 안 좋은 영향이 있을 텐데."

30년의 세월...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아니지만, 투수로서 못 해본 건 우승이 유일했다.

"뭐... 못 해본 거니까요. 그리고 제가 어디 돈 보고 야구한 적 있었나요?"


*


사실 그 누구도 신진한의 잘못이라 말하진 않았다.

진출 여부 자체야 전적으로 본인의 결심이다. 또 막상 신진한이 앞장서서 선수들의 앞길을 막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어느 선수가 비난을 할 수 있으랴.

그러나 머리로는 어떨지 몰라도, 심적으로는 신진한에 대한 악감정이 있을 수 있었다.


사실 김현상 본인이야 진즉에 은퇴한 몸이었으니, 거기에 특별한 영향을 받을 일이 없었다. 당연히 어떤 감정을 느낄 리 없었고.

다만 외부인의 눈에도 보였던 그것을 현장의 선수들이라고 못 느꼈을까?

신진한이라는 미지의 존재에 의해 잠재적 디스카운트를 당할 뿐만 아니라, 뉴 타이틀러고 뭐고 아무것도 나오질 않는...

그들에게 있어서 신진한이라는 댐이 얼마나 큰 먹먹함으로 다가왔을 지를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먹을 만큼 먹고 다 컸으면 더 큰 물로 가야 할 물고기가 자발적으로 알 박아버린, 그야말로 고인물 중의 고인물.

그 덕에 일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큰물로 가고 싶어 하는 다른 물고기들마저 못 가도록 막아선, 존재 자체가 하나의 댐이 되어버린 흉악한 생태계 파괴자.


동년배인 자신이야 별 영향이 없을 터다. 어차피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나갈 각오가 되어있기도 했고.

그런데 만약 그놈이 메이저로 간다고 하면?

'웃을 사람, 울 사람 여럿 있겠구만.'


*


휴우...


두 분이 동시에 큰 한숨을 쉬었다.

“네가 간다는 걸 어떻게 막겠냐... 나로선 다시 한 번만 생각해달라고 말 하는 게 전부다.”

단장님.

"네가 가는 건 감독의 영역도 아니고, 또 계약이 그런 거라고 하니 뭐라고 할 생각도 없다. 그래도 방금 말한 그거는... 조금만 생각을 해보고 결정하자.“

감독님.

두 분이 요 몇 분 사이에 급격하게 노화되셨다.

"예. 너무 갑작스레 말씀드려서 죄송합니다. 믿기 힘드시겠지만, 지금까진 별 생각 없었거든요."

나의 말에 두 분 모두가 고개를 저으신다.

"그건 우리도 안다. 애초에 갈 생각이었으면, 입단 전에 받은 오퍼로 바로 갔겠지. 갔어도 잘 했을 테고."


그 말에 왠지 모를 울컥함이 솟았다.

아무것도 아닌 그 말이,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도 되는 것인 양 다가왔다.

진즉에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도 없었기에, 그때는 이 두 분의 생각을 알 길이 없었다.

미래를 겪어보지도 않고서도 나를 이해해 준다는 것에 묘한 감정이 찾아와 가슴에 스민다.

"...예. 그럼 저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간질거리는 가슴을 애써 외면하며 말했다.

"그래. 도움 필요하면 연락하도록 해. 전폭 지원할 테니까."

이만 감독실을 떠나가려는 나에게 단장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사장님이 안부 전하시더라. 아버님은 잘 계시지?"

"그럼요."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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