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쟉 더 베가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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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7.10.1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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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6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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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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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기사(71) - 무대 뒤의 결말

DUMMY

【 출렁~ 출렁~ 】


이런 소리가 나는 건 아니었지만 그 살덩이들은 분명 그런 소리를 내고 있었다.


적어도 에코의 머리 속에서는···


“오호호호~ 자고로 여자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 가슴, 가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 때엔 그렇지도 않았지만 요즘 젊은 분들은 정말 탐스러운 가슴들을 가지신 것 같아 샘이 난답니다?”

“(우득우득)··· 그··· 그렇지요···”

“딱 봤을 때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가장 큰 요소 중에 하나이기도 하잖아요? 작은 가슴을 가지면 언제 남자로 오해 당할까 전 불안하기까지 하답니다?”

“(우드득 우드득)··· 그··· 그렇겠네요···”

“그렇지요? 오오호호호홓~~~”


아르잔티 후작부인과 그녀가 데려온 가슴 큰 풍만이들 안에서 에코는 심각한 멘탈 데미지를 입고 휘청거렸다.


에코의 공작 축하연회. 바로 그곳에서 아르잔티 후작부인은 마지막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가슴 하나는 끝내주는 여성들만 모아 에코의 곁에서 재잘재잘거리고 있는 것이다.

연회의 주인이라 지나친 ‘가슴뽕’ 을 사용할 수 없던 그녀는 안 그래도 작아진 가슴에 불만스러운 얼굴로 서 있다가 아르잔티의 습격을 받고 정신 붕괴 직전에 놓여 있었다.


남장을 해서 역으로 홀려버리는 좋은 방법이 있지만 어찌되었건 오늘은 자신이 이 연회의 주인. 오늘까지도 쓸 수 있는 필살기가 결코 아니었다.


“으으~ 저··· 저는 좀 바깥 공기를 쐬어야겠어요오···’

“그러세요, 공작 영양. 나가서 가슴으로 ‘크게’ 숨을 들이 마시세요, 오오호호호호홓~~~”

“···(두, 두고보자아~)···”


공작 영양은 연회장과 연결된 발코니로 나가 후하후하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곤···


“바닷물에 똥꼬를 절여버릴 년들! 가슴얘기 좀 그만 하라곳!!!”


걸쭉하게 바르보사식 욕설을 퍼부었다.


한참 동안 헉헉거리고 있을 때 저쪽 어둠 속에서 킬킬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 누구야?”

“난 또 무슨 짠물 들이킨 바르보사놈이 술주정하는 줄 알았네. 이젠 공작이 되실 몸이 그런 말을 입에 담으셔야 되겠습니까?”

“요···”


발코니 난간을 기어올라온 것은 익숙한 그림자, 재수없는 목소리의 남자 코쟉이었다.


“요한!”

“쉬~ 밖에 들리겠네요. 목소리 낮춰요, 일단 난 여기선 불청객이니···”

“야! 네가 왜 불청객이야 이제 내가 공작이 됐는데.”

“어쨌거나 축하 드립니다. 그토록 원하시던 걸 이루셨구먼.”


그는 히죽 웃었다. 그리고 순간 에코는 그의 몸 곳곳에 난 상처들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너··· 다쳤어?”

“그렇게 됐수다.”

“어, 어서 치료사를-“

“그만둬요, 난 여기 없는 거니까. 이후로도 어디서 날 봤다고 말하지 마세요. 어느 마법사놈의 엿 같은 실험실 유리병 속에 둥둥 떠있는 내 머리통이랑 마주하기 싫으면.”

“······”


상처도 상처지만 그는 생각보다 많이 지쳐 보였다.

외모는 변함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가 한 오 년은 더 늙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때 대충 말했잖습니까, 정체를 발각 당했다고. 그 순간, 와우~ 전 세계의 미치광이들이 이 카이제니아로 몰려오는 걸 느끼고 기겁해서 도망친 겁니다.”

“그 괴물을 쓰러뜨린 힘 말이야?”


코쟉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눈을 내리깔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일은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다신 입 밖으로 꺼내지 마시길. 어느 막 나가는 새낄 만나면 유리병 속에 떠다닐 머리통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소.”

“···그런데 왜 다시 돌아온 거야?”

“처리해야 할 마지막 일도 하나 있고··· 그리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놈들은 내가 여기로 다시 돌아올 거라곤 생각 안 할 겁니다. 지금쯤 대륙 전체로 뿔뿔이 흩어졌을 거요. 그러다 중간에 어느 놈한테 걸리긴 했다만···”

“마법사한테 잡혔어?”

“그렇수다, 쯧···”


그는 천천히 목을 뒤틀었다.


“죽다 살았죠. 그 얘긴 할 필요도 없고··· 하여간 공작이 된 것도 축하 겸 마지막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계속 내 곁에 있을 순 없는 거야?”

“같이 실험동물 될래요?”

“사양할게···”


에코도 이제서야 뭔가 조금 느끼고 있었다.


그가 왜 그렇게 마법사를 혐오하는가.

어째서 밤마다 괴이한 광증에 시달리는가.

어째서 가끔 뭔가 극도로 두려워하는 눈빛으로 사방을 힐끔거리는가.

어째서 소위 ‘진짜 마법사’ 들이 그를 노리고 있는가.


이유가 무엇이든 이 남자에게 얽혀있는 것은 자신이 도울 수 없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이별 뿐이었다.


그가 피곤한 듯 목을 주무를 때 에코가 그의 앞으로 나오더니 드레스의 양 끝을 붙잡아 살짝 들어올리고 무릎을 굽혀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나의 기사님. 제게 와주셔서 감사해요. 부디 그대의 앞날에 기이한 행운이 가득하시길···”

“고전풍이군··· 난 기사도 뭣도 아뇨. 간지럽게 왜 이래요?”


에코가 뾰루퉁한 얼굴로 퉁퉁댔다.


“넌 한쪽이 숙이고 들어가면 와서 척 달라붙을 줄 모르냐 좀?”

“···칼슨 공작님이 들으면 목 달아날 소릴 하고 있구만. 바르보사식 농담은 엥간하면 좀 잊어버리시죠. 이제 곧 공작이 되실 분이.”

“남이사!”


어둠 속에서 그가 낄낄대고 웃는 게 눈에 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이 천천히 밑으로 사라졌다. 발코니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었다.


에코 탄타롯드 공작 영양, 곧 공작이 될 그녀는 다급히 달려가 아래에 대고 소리쳤다.


“이거 진심이야··· 날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요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코쟉의 모습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고 야행(夜行)이 익숙한 방랑자의 모습은 더 이상 그녀의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가는 코쟉도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잃은 것도 많지만··· 나름 재미있었습니다. 에코 탄타롯드 공작님.’


**********


어두운 밤, 민스터스에 있는 에코 탄타롯드의 개인 저택에 검은 그림자들이 숨어들었다.


무려 도보로 그곳에 당도한 그림자들은 천천히 소리 나지 않게 검과 화살을 꺼내 손에 들었다. 그 중에서도 악마같이 분노에 타는 듯한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허리로 재미를 보던 칼로 재미를 보던 마음대로 해라. 대신 이 집안에 있는 것들은 하나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 버려. ‘그년’ 이 이곳으로 돌아오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 즐길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돌아온 순간 지옥을 보게 되겠지.”

“기꺼이 그러죠 보스, 킬킬킬···”


그들은 몸을 숨긴 채 저택 입구의 자물쇠를 따고 걸려있던 하급 방범 마법을 간단히 해제해 버렸다.


단순한 강도라기엔 마법에 숙련된 자마저 끼어있는 것이 평범한 무리들은 아닌 모양이다. 그리고 그때 강도 중 하나가 바닥에서 뭔가를 발견했다.


“보스? 여기 이건 뭐죠? 킬킬, 그 높으신 아가씨가 흘리고 갔나 본데 비싼 물건인가요?”

“!!!··· 이 멍청이! 당장 그걸 놔-“


그리고 그 순간 주변 공간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흐릿해진 풍경이 마구 흔들리며 형체를 잃어가자 자리의 강도들이 당황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그 리더로 보이던 자는 그저 나직이 이를 갈며 중얼거렸다.


“강제 전송 마법··· 대체 어떤 놈이냐···”


그렇게 잠시 후 흔들리던 공간이 안정되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낡고 제법 커다란 창고 안이었다. 강도들이 인상을 구기고 입을 열었다.


“보스, 이게 대체 뭡니까?”

“네 녀석이 멋대로 마법이 걸린 전송구를 주워 드는 바람에 이곳으로 날려져 온 거다. 하지만 전송구 하나로 이 많은 인원을 멀리 보내진 못했을 테지. 고작 이런 걸로 시간을 벌 생각이었다면 어림도 없는 짓을 했구나, 에코 탄타롯드.”

“아니, 그런 게 아니야···”


뒤에서 낮고 음침한 목소리가 들렸다.

흠칫 놀란 그들이 뒤돌아보자 창고에서 나가는 유일한 입구 앞에 어떤 사내가 의자를 질질 끌고 오더니 털썩 주저 앉았다.


낡은 후드로 얼굴을 눌러쓰고 있던 그는 천천히 검지를 들고 자기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


“에반 하이랜드, 그 꼬맹이가 그러더라고. 분명 이 대공작제가 모두 끝나면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을 거라고 말이야. 그래서 좀 생각해 봤지. 왜 하필 내게 그런 소릴 했을까? 녀석과 나는 별 대단한 사이도 아닌데 말이야.”

“네놈은··· 도망쳤다던 그 쓰레기 녀석이냐?”


강도들의 두목은 차가운 그리고 증오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납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부하들을 잠시 제지시키면서 말이다.


“그랬더니 결론이 나오더라고. 그게 뭔 줄 알아?”

“···말해라.”

“에코님 곁에 있는 인간 중, 방금 악수한 상대의 멱줄을 따는 개막장 놈들을 이해할만한 놈은 나밖에 없더라고.”

“···흥···”


상대가 비웃자 코쟉 또한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상처 난 몸이 불편한지 천천히 어깨를 우두둑 돌렸다.


“그 꼬맹이, 진짜 영악한 녀석이야. 녀석이 미친 게 사랑이 아니었다면 지금쯤 세상에 뭔 엿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생각만해도 오줌 쌀 것 같아. 그 꼬마 같은 괴물을 전에 못 본 건 아니지만 하필이면 지금 내가 이 동네에 있으니 문제지. 하긴 이 일도 휘말린 거라면 휘말린 거다만.”

“말을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구나··· 그러니까 내가 올 걸 알고 널 여기로 보낸 게 에반 하이랜드, 그 녀석이다 이거냐?”

“내가 이리로 온 게 아니라 너희가 여기로 끌려온 거니 반만 맞았네. 그 전송구 급하게 제작하느라 내 밑천 다 날렸다?“

“그래서 네가 우릴 막겠다? 생각이 짧군··· 게다가 넌 지금 상처를 입은 몸 같은데.”

“아아, 잘 봤어. 전 대륙에 내 정체가 까발려진 탓에 사방 팔방에서 날 잡으러 달려들고 있는 몸이 되었지.”


그는 사실 꽤나 지쳐 보였다. 거칠게 기침을 터트린 그는 무거운 팔을 들어 소르가린을 가리켰다.


“네가 이렇게 막 나갈 놈이란 걸 그 꼬맹이는 알고 있더라고. 그래서 날 자극해 둔 거지. 원랜 지가 하려고 했는데 그럼 그림이 안 좋다나? 제기랄, 진짜 끝까지 이용만 당하는 기분이야.”

“흥···”

“그래도 뭐 어떻게 하겠어. 널 확실히 처리해야 나도 밤에 잠이 잘 올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헛소리! 네가 지금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

“왜 못해?”

“웃기지 마라!”


소르가린이 손을 들자 부하들이 히죽대며 품속에서 작은 약병을 꺼내 들었다. 그것들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자 놈들의 모습이 눈에 띄게 변했다.


근육이 오븐 속의 빵처럼 부풀어오르고 시퍼런 핏줄들이 온몸에 불뚝불뚝 솟아올랐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이 된 놈들은 녹색 입김을 내뱉으며 괴물처럼 그르렁댔다.


“이게 뭔 줄 아나? 라반 녀석을 만들었던 수퍼 솔져 계획의 작은 결과물이다! 일반인에게도 초인적인 힘과 재생력을 일시적으로 제공하지. 물론 라반만큼은 아니다만 너와 그 에코년이 아끼는 계집들을 걸레처럼 찢어발기기엔 충분해.”

“이야~ 그거 벌써 개발했냐? 킥··· 이봐, 내가 알아서 그러는데 그런 종류의 각성제는 앞으로도 수없이 개발되고 또 수없이 폐기될 거야. 왠 줄 알아? 결국 신체가 원래대로 돌아왔을 때 각성제를 사용한 반동이 모조리 되돌아오거든~ 너희들 그 변신이 끝나면 다들 심장 마비로 뒈질 거야. 원망은 니들 보스한테 하라고.”

“뭐··· 뭣?”


강도들이 웅성대자 소르가린이 날카롭게 외쳤다.


“믿지 마라 헛소리다! 놈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마라!”

“오케이 오케이. 믿건 안 믿건 니들 자유고. 자··· 난 좀 몸이 피곤해서 이만 들어가봐야겠어.”

“누가 네놈을 곱게 보내준다고 했나?”


소르가린이 음험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그 손엔 강렬한 마법의 에너지가 화염으로 변해 이글대고 있었다.


그러나 코쟉은 그걸 보고서도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이봐, 난들 너흴 곱게 보내줄 것 같아?”

“라반을 죽인 그 힘을 쓸 생각이냐? 그러나 여기 있는 녀석들은 한둘이 아니다. 결코 그때처럼은 안될 거다.”

“웃기네··· 네가 내속에 있는 게 대체 어떤 건지 알기나 해? 고작 그런 장난감으로 이 악귀 같은 것과 붙어보겠다고? 어림도 없다, 이 멍청한 녀석아···”


소르가린의 표정이 더욱 차갑게 식었지만 코쟉은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래 봐야 나도 더 이상 그 힘을 쓸 생각은 없어. 그걸 또 썼다간 다시 한번 내 위치를 알리게 될 테고 그럼 또 미친 것들이 날 잡으러 달려오겠지. 아오 씨··· 그 마법사놈한테 잡혀서 지져진 부위가 아주 찌릿찌릿하구만.”

“마법사들이··· 널 노린다고?”


그의 눈썹이 쓱 올라갔으나 코쟉은 그에 대해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곤 비틀대며 일어나 앉았던 의자를 뻥 걷어차더니 돌연 창고의 어두운 천장을 향해 외쳤다.


“야, 크녹스. 때가 됐다. 얼른 나와!”

“······”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킥킥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사하기 이를 데 없는 그 목소리는 분명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뭐냐 코쟉. 내 계약은 대공작제가 끝난 시점에서 종료였어. 그런데 여기로 다시 불러놓고 저것들과 만담이나 주고 받더니 이젠 나더러 나오라고? 지금 뭐 하자는 거지?”

“너 나랑 약속한 거 기억나지? 내 의뢰 한번 받아주겠다는 거 말이다.”

“캴캴캴캴.”


지붕 대들보 위에서 두 개의 노란 눈동자가 기분 나쁘게 빛났다.


“그래서 지금 저놈들을 암살해 달라는 거냐? 머리가 나빠졌나 보군. 암살 의뢰는 한번에 한 놈이 원칙이다.”

“누가 암살을 의뢰하겠대? 그리고 이렇게 훤히 다 보이는 데에서 무슨 망할 놈의 암살이야, 저능아 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그럼 뭘 어쩌겠다는 거냐? 대륙 최고의 암살자인 이 몸에게 암살 말고 뭘 의뢰한단 말이지? 설마 널 업고 도망치라고? 그건 사양하련다, 캭캭캭.”


크녹스의 웃음소리가 불쾌하게 울려 퍼졌다.

소르가린과 그 패거리도 두 눈에 살기를 가득 머금고 코쟉이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가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크녹스, 의뢰다.”

“오냐, 도대체 뭐냐?”

“여기 있는 것들··· 전부 먹어도 좋다.”

“······뭐라고?”


갑자기 어둠 속에 있던 노란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당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흥분에 가까웠다.


“지금··· 뭐라고 했지, 코쟉?”

“뭘 빼는 척해 임마? 다 알아, 네 녀석과 네 동족들이 참으로 좋아하는 고기가 뭔지 말이야.”

“······”

“왜? 잘 숨겼다고 생각했나? 날 우습게 보지 마라. 옛날의 나는··· 꽤나 지독한 성격이었다고. 네 취미생활 정돈 다 파악하고 있었어. 언젠가 나중에 써먹을 생각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을 뿐이지.”


짙은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은 소르가린들에겐 대단히 불쾌하고 또 불쾌한 것이었다.


천장에서 성이 난 어린애가 씩씩대는 듯한 묘한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숨소리는 점차 포식자가 먹잇감을 앞에 두고 안달이 나 내는 허기진 흥분의 괴음(怪音)으로 점점 변해갔다.


잠깐의 침묵 후에 결국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한 한마디가 들려왔다.


“저~엉마알~ 그래~도오~ 돼에에에?~~~”


목소리에 피냄새가 흘렀다. 강도들이 그 속에 실린 짙은 탐식(貪食)의 욕망을 깨닫고 움찔 뒤로 물러났을 때, 코쟉은 벌써 창고 문을 열고 반쯤 몸을 빼내고 있었다.


“오냐, 네 맘대로 해라. 아니, 지금 이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난 모른다. 난 여기에 없었고 아무 말도 안 했고 기억도 없어. 혹시 남는 기억이 있으면 다 지운 걸로 알라고, 됐냐?”

“그으으··· 래에에에에?~~~”


그리고··· 코쟉은 그 작게 열린 문틈으로 몸을 완전히 빼고는 앞에 있던 소르가린을 잠시 쳐다보다 다시 위를 쳐다보았다.


인간은 음식과 대화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럼··· 우리 다신 보지 말자. 미친 식인 괴물 놈아.”

“캬아아아아!!!~~~”


코쟉이 밖으로 쏙 빠져나가자 대들보 위에 있던 두 개의 노란 눈동자가 별안간 수백, 수천 개로 한꺼번에 늘어났다.


마치 어두운 동굴 속 박쥐 떼가 동시에 눈을 뜬 것 같았다. 강도들이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우아아아악!!!”


누군가 손에 든 검을 위로 집어 던지자 회색과 녹색이 섞인 괴(怪) 물체가 꼬챙이가 되어 툭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땅에 닿자마자 회백색 재로 변하여 부슬부슬 사라졌다.


“괴! 괴물이다!!!”


그리고 그 수많은 눈동자들이 동시에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어느새 소르가린들의 주변에 똑같이 생긴 노란 눈의 괴물들이 입맛을 다시며 서있었다.


【 꿀꺽··· 】


그 수많은 놈들의 목젖이 동시에 시계종처럼 울렸다. 그리고 가장 앞에 나온 녀석이 천천히 이를 빨며 중얼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너희들은 조롱하기 위한 것이었어··· 인외구제령인지 하는 너희 인간들의 수작 때문에 내 종족들은 전부 내 안으로 몸을 숨겨야만 했거든. 언젠가 종족이 다시 번성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면서 말이야.”

“가, 가까이 오지마!”

“암살 의뢰로 뒈진 놈의 머리통을 집어 들고 X되보라며 입에 넣고 씹었는데··· 그런데 그 고기가··· 정말로 말이지··· 캴캴캴캴···”

“가까이 오지 말라고오오!!!”


약으로 인해 거구가 된, 그러나 얼굴은 흉하게 울상인 강도 중 하나가 손에 든 몽둥이로 다가오던 놈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머리가 없어진 녀석은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 쓰러졌지만 순식간에 그 놈의 자리를 뒤에 있던 녀석이 들어와 메꾸었다.


그리고 ‘괴물’ 들은 그 한 명 사라진 것 따윈 신경 쓰지도 않는다는 듯 천천히 앞으로 한 발자국씩 걸어왔다.


“아아··· 오랜만이야··· 요즘엔 잘 먹지 못했거든. 이젠 알겠어, 왜 너희 인간들이 인외구제령으로 다른 종족을 없애버리려 애썼는지 말이야. 너··· 너희들은··· 우리 입에는 말이지···”

“오, 오지마아아아!”

“너무도 맛이 있어서··· 도어저히 참을 수가 없는···”

“흐와아아아아악!!!~~~”

“그으런~ 고기들이거드으으은!!!~~~”


괴물들이, 인간의 피와 살에 굶주린 괴물들이 달려들었다.


이 안에 있는 것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수퍼 솔져의 힘으로 한층 강화된 초인들.


그러나 그들이 상대하는 것은 죽여도 죽여도, 아무리 부수고 찢어내도 끝도 없이 나타나 달려드는 각다귀 같은 놈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한입씩 베어 무는 케이크 조각처럼 조금씩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안돼! 날 먹지마! 난 인간이야! 고기가 아니라고!···”

“엄마! 살려줘 엄마! 날 먹고 있어! 안돼에에!!!”


이 끔찍한 고블리킨 종족은 끝도 없이 튀어나왔다.

인외구제령이 대륙을 휩쓸던 그때 고블린 종족들은 그들 주술사의 힘을 빌어 종족 전체에 저주를 걸었다. 그들 모두가 단 한 명의 고블린의 속으로 귀속되는 극악의 저주를.


그렇게 고블린 종족 전체의 자아가 소멸되고 단 하나의 새로운 인격체가 태어났다. 모든 고블린을 집어삼킨 그는 스스로를 고블리킨이라 이름 붙였다.


이 참혹한 식사의 과정에서 실로 수많은 고블리킨들이 죽어나갔으나··· 숫자를 가늠할 수 없는 이 식인 악마들은 무한히, 실로 무한히 튀어 나왔다. 그 숫자엔 끝이란 없었다···


그리고 하나씩 하나씩 부하들이 먹혀가면서도 소르가린은 용감히 그리고 냉정하게 싸우고 있었다. 맹렬하게 휘두르는 검과 마법만큼이나 그 입가엔 차가운 냉소가 깃들어 있었다.


“저열한 하등 생물들! 내가 네놈들에게 먹힐 것 같으냐? 황금 공작새 결사단의 멤버인 이 내가 네놈들에게?! 웃기지 마라, 웃기지 마! 난 이런 곳에서 없어지지 않아! 난 이렇게 사라질 몸이 아니다!”

“아아아악! 살려줘요 보스! 살려줘요!”

“방금 내 팔이 없어졌나? 상관 없다! 난 다시 일어설 것이다, 난 여기서 죽지 않는다. 나에겐 꿈이 있다! 나에겐 계획이 있어! 내겐 불가능이란 없다! 난 공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결사단의 가장 위까지 올라가 온 세상을 거머쥐고 조종할 것이다!”

“구해줘요, 보스! 구해줘요! 내가 먹히고 있어! 보스으!”

“또 한 놈 먹혔나? 상관없다! 내 계획에 저런 무능한 것들 따윈 필요 없어! 나 혼자면 된다! 으히히히··· 날 먹지마! 황금 공작새 결사단의 이름으로 날 먹지 마라! 이럴 리 없어, 난 여기서 죽지 않아! 이런 곳에서 없어지지 않아! 그래 이건 꿈일 거야! 으히히히! 꿈이라고 꿈! 난 나를 믿어! 나에게 불가능이란 없어! 자신을 믿는 자에게 불가능이란 없어!”

“보스! 보스! 보스으으으! 아아아아악!!!~~~”

“안돼! 날 먹지 마라! 가까이 오지 마라! 안돼! 날 먹지마! 으히히히! 아니야 아니야~ 난 먹히지 않아! 난 음식이 되지 않아! 히··· 나는··· 나는 공작이 될 거야! 이히히히히···”


【 우그작! 우그작! 】

【 우득! 우득! 】


“히··· 히···”

“히······”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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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3

  • 작성자
    Lv.67 절정아수라
    작성일
    18.08.08 11:44
    No. 1
  • 답글
    작성자
    Lv.24 복복
    작성일
    18.08.08 16:20
    No. 2

    아수라님 후원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쪽지가 따로 안가네요.
    지금 출판사랑 계약 작품 쓰는 중이라 코쟉엔 신경을 못씁니다만 무료 작품으로 계속 손댈 예정이니 가끔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후원 감사드립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1 팔초어
    작성일
    19.12.26 05:50
    No. 3

    허헛 개판이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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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 십자로 - 에필로그 +29 20.01.06 484 25 3쪽
185 십자로 (19) +2 20.01.06 268 17 18쪽
184 십자로(18) +10 20.01.03 302 18 17쪽
183 십자로(17) +10 20.01.01 253 16 16쪽
182 십자로 (16) +7 19.12.30 289 15 16쪽
181 십자로 (15) +6 19.12.27 269 18 16쪽
180 십자로 (14) +6 19.12.23 263 15 15쪽
179 십자로 (13) +8 19.12.18 260 13 15쪽
178 십자로 (12) +6 19.12.16 286 15 16쪽
177 십자로 (11) +12 19.12.13 281 12 16쪽
176 십자로 (10) +9 19.12.11 291 12 17쪽
175 십자로 (9) +7 19.12.06 274 14 16쪽
174 십자로 (8) +6 19.12.04 345 13 17쪽
173 십자로 (7) +6 19.12.02 252 13 16쪽
172 십자로 (6) +1 19.11.29 295 15 16쪽
171 십자로 (5) +4 19.11.27 275 12 16쪽
170 십자로 (4) +3 19.11.25 301 11 16쪽
169 십자로 (3) +3 19.11.22 328 14 13쪽
168 십자로 (2) +10 19.11.20 291 11 16쪽
167 십자로 (1) +3 19.11.18 302 12 14쪽
166 십자로 - 프롤로그 +1 19.11.18 309 11 3쪽
165 단편 - (?) +7 19.10.07 324 1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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