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대법
밀실을 박차고 나온 한선후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다음 단계를 실행한다. 당장 준비를 끝내놓아라."
한선후는 천살마기와 신화공을 합치는데 한달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신화공이 아예 항복을 해버리는 바람에 동화가 아닌 포식이 이루어졌다. 천살마기의 소화력이 대단해 지금 한선후의 몸안에는 천신기라고 직접 명명한 기운으로 가득차 있다.
열흘도 걸리지 않았기에 다음 단계의 준비를 당장 끝내놓으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장현성은 전혀 당황한 기색이 없이 대답했다.
"반시진만 기다리시면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 분류를 마친 재료들부터 들이겠습니다."
한선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한선후는 자신의 감정표현이 예전보다 솔직해진 것을 느꼈다. 아마 실력이 급증해서 그런 것이라고 판단했다.
'성공하면 절정고수에 준하는 전투력을 가진 무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세상을 발아래에 두어야 하니 이정도 오만함은 당연한 것이다.'
반시진이 지나자 건장한 사내 한명이 점혈당한채 끌려왔다. 한선후는 사내의 명문혈에 손을 대고 천신기를 주입했다. 그리고 괴령이 알려준 운기경로를 통해 천신기를 돌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사내는 얼굴이 검게 되면서 피를 토하고 죽어버렸다.
장현성은 곁에서 세필을 들고 사내가 얼마간 버텼는지와 어떻게 죽었는지를 꼼꼼히 적었다. 그뒤로 여자도 들어오고 아이도 들어오고 노파도 들어왔다. 하지만 예외없이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피를 토하며 죽어버렸다.
분류한 자들이 전부 죽어버리자 한선후는 휴식을 취하러 방으로 돌아갔다. 장현성은 한선후를 따르는 자들을 지휘하여 죽어버린 자들이 버텨낸 시간에 따라 분류하고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분류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처음에는 한화령의 명령 때문에 장현성의 지휘를 마지못해 따랐는데 장현성의 지시에 따르면 일이 훨씬 쉽게 진행되자 점점 진심으로 장현성을 따르기 시작했다. 교주가 예상보다 일찍 나와서 준비를 마치라고 명을 내렸을 때 모두가 당황했지만 장현성은 침착하게 반시진의 시간을 벌었고 세세하게 분업을 지시하여 교주를 만족시켰다.
그렇게 천살이 알몸으로 단전속의 천살마기를 강탈당했던 밀실에서 매일 십수명에서 수십명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채 죽어나갈 때 괴령은 자신이 어렵게 모은 약초들과 독물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괴령의 예상처럼 천살의 육체가 약물을 소모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제자들이 분주히 움직여준 덕분에 멈추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중간에 한번이라도 멈추면 당분간 약물이 먹히지 않기에 최상의 효과를 보지 못한다. 그리고 약물은 육체를 강화하는 작용뿐 아니라 상대의 정신을 약화시키는 작용도 있다.
사십구일째가 육체가 가장 강해지고 정신이 가장 약해지는 날이다. 그뒤로는 약물이 육체를 소모시키고 약물에 적응한 정신력은 외려 강해진다. 훌륭한 육체를 얻게 된다는 기쁨과 모아둔 아까운 재료들이 사라진다는 아픔이 서로 교차하여 괴령을 괴롭히고 있었다.
"살다살다 이렇게 질긴 놈은 처음 본다. 나라면 지금쯤 비명을 지르느라 목이 쉬었을거다."
괴령이 천살을 독한놈이라고 자꾸 욕하는 것은 천살의 정신력이 너무 강해 이혼술이 실패할까 두렵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 과정을 생략하거나 간략하게만 진행하고 육신을 바꾸려 계획했다. 지금 사용중인 육신이 약의 기운으로 겨우겨우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종일관 비명 한마디 없는 천살의 독기에 육체도 강화할 겸 정신력을 무너뜨리려고 약물을 사용하고 있는데 아직도 무너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자 초조해진 것이다.
'개잡놈이, 패는 놈이 눈물 흘린다는 말을 안 믿었는데 진짜 이런 놈이 있을 줄이야.'
괴령의 괴로운 마음을 모르는 천살은 천살 나름대로 부아가 치밀었다. 시종일관 두드려맞고 있는 상황인데 패는 놈이 비명을 안 지른다고 불평하니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약물로 천살의 정신력을 무너뜨리려는 희망과는 달리 천살의 정신력은 괴령의 푸념 덕분에 점점 더 강인해지고 있었다.
"이거,이거,이거 세개씩 필사해 오도록 하세요. 서로 구분할 수 있도록 종이 후면에 갑을병을 적는것은 잊지 마시고."
점점 교주의 천신기에 오래 버텨내는 자들이 늘었다. 그런 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내 교주의 천신기에 적응하는 자들을 찾아내는 것이 마지막 단계의 계획이다. 남자가 더 잘 버티는지 여자가 더 잘 버티는지, 아이가 더 잘 버티는지 노인이 더 잘 버티는지, 무공을 익힌자가 더 잘 버티는지 안 익힌자가 더 잘 버티는지 관찰하며 그 대상을 좁혀가고 있었다.
지금까지 오래 버텨낸 자들은 전부 남자였다. 그리고 대부분 신체가 건장했다. 하지만 모든 건장한 사내가 오래 버텨낸 것은 아니다. 오래 버틴자들 중에 무공을 익힌 자도 있고 익히지 않은 자도 있다. 다만 고수라고 칭할만한 자는 한명도 없었다.
장현성은 눈을 지긋이 감았다. 일이 풀리지 않으면 조급해 지고 조급해지면 시야가 좁아져서 실수를 하게 된다. 천살이라는 자와 처음으로 대결했을 때 긴장한 나머지 상대를 너무 의식해서 패배하게 되었다. 비록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자존심이 매우 상해 있었다.
형산으로 돌아간 후 밤낮으로 무공수련에 심혈을 기울였다. 몇년 안 지나 같이 형산삼걸로 불리우던 남은 둘을 멀리 제쳐버렸다. 하지만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자신이 잘해야 장원산처럼 형산파의 장로가 되는 것임을 더 명확히 깨달아 나갔다.
자신의 무공이 강해질수록, 가진 능력을 보여줄수록 점점 더 소외되었다. 장원산이 모용세가의 무력을 빌어 형산파의 장문인자리를 빼앗아 자신에게 넘기겠다고 제안했을 때 장현성은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끝까지 입이 떨어지지 않아 결국 묵인한 셈이 되었다.
형산에서 일이 파탄나자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모용가에서 보호해 주겠다며 모용가로 투신할 것을 권했다. 장원산은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원산을 설득해서 명화교로 데려온 것이 장현성이다. 천살이라는 외부인이 명화교로 들어가서 소교주까지 되었으니 모용세가에 가서 형산파나 그 세력과 협상하는 밑천이 되어줄 생각이 없었다.
일도 술술 풀려 장원산은 명화교의 장로가 되었다.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해 적지 않은 친분을 쌓고 있다. 자신도 우연히 만난 한화령과 몸을 섞는 사이가 되었고 얼마전에 한화령을 임신시키는데 성공했다. 교주가 황제가 되면 자신은 부마가 되는 것이다. 황제자리는 언감생심이니 부마가 되어 황제의 위세를 등에 업고 한세상 호쾌하게 살아보고 싶었다.
아름다울 미래를 생각하자 기분이 많이 풀렸다. 하루에 한시진도 잠을 못자며 버틸 수 있는 이유다. 체력적인 부담은 거의 없지만 정신력은 바닥나기 직전이다. 완전히 무너지기전에 어떻게든 성과를 얻어야 한다.
"장공자, 무언가 발견한 것 같습니다."
괴령은 무공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 다만 약으로 인해 항상 넘쳐나는 내공을 보유했기에 경공만큼은 천하에서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황당한 것은 대단한 경공법을 익혀서가 아니라 내공이 넘쳐나서 부담없이 경공을 펼쳤기에 몸이 알아서 익힌 것이다.
몸을 비틀며 세번이나 방향전환을 한 금련사를 똑같이 따라하며 칠촌을 제압하는 괴령의 모습에 제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괴령의 몸은 허공에서 세번이나 방향을 바꾸었음에도 평지에서 천천히 걷다가 방향을 바꾸듯이 자연스러웠다. 금련사를 급하게 주머니에 담은 괴령은 천살이 있는 동굴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마지막 사십구일이다. 오늘 자정이 되면 대법을 진행할 것이다. 계산상으로는 약물이 충분하지만 자꾸 부족할 것 같은 예감이 든 괴령은 제자들을 이끌고 부족한 독물들을 주으러 나왔다. 이 지역의 모든 독물들을 상대해 봤기에 줍는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하지만 몇몇 날렵한 목표들은 괴령이 직접 나서야 시간에 늦지 않을 수 있다.
자정이 되기까지 한시진이 남은 시점에 모든 약물을 전부 부어넣었다. 천살이 여전히 비명 한번 안 지르고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괴령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픈것을 참는 것과 이혼술을 견디는 것은 별개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자정이 되자 진법으로 동굴의 입구를 막아버렸다. 이혼술이 오래 걸리는 것은 아니지만 제자들중 누군가 딴마음을 품고 자신에게 해코지 할까 걱정된 것이다.
"자, 우리 소교주께서는 세상과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시게."
괴령이 추한 얼굴로 싱글거리며 기를 채웠지만 천살은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대침으로 단전이 격리되었기에 천살은 신화공이 몸집을 불리고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괴령이 이혼술을 시전하기 위해 몸속의 대침을 전부 뽑아버리자 단전속의 변화를 깨닫고 놀라움에 괴령의 말을 귀로 흘렸다.
한편 천살마기도 단전속의 신화공의 변화를 감지하자 경각심을 높였다. 단전내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천살과는 달리 천살마기는 단전속의 천살마기가 교주에게 흡수된 것도 알고 있고 신화공이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명확히는 인지하지 못했는데 대침이 뽑히자 하단전을 포기해야 함을 인정했다.
천살마기는 하단전과 중단전에 각각 작은 조각 하나씩 넣어두었다. 하단전을 전부 신화공에게 빼앗긴 지금 중단전을 고수해야 한다. 중단전마저 빼앗기면 천살마기는 천살의 몸을 장악할 가능성의 거의 사라진다. 그때 강력한 힘이 중단전으로 밀려들자 천살마기는 본능적으로 밀어냈다.
괴령은 천살의 손발을 묶은 족쇄를 그대로 두었다. 탈골공을 익혔기에 몸만 빼앗으면 탈골공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 탈골공은 무공이 아니라 천축의 비술이기에 중원에는 익히는 사람이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여라도 실패할 것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까지 조심하는 괴령이었다.
이혼술을 시작하자 괴령의 영혼이 천살의 중단전으로 향했다. 이혼술의 절차는 간단하다. 그 과정이 흉험하기 그지없는데 비해서 말이다. 우선 대상자의 중단전에 들어간다. 마음이 담기는 중단전에서 상대의 육체에 충분히 적응한 다음 상단전으로 가서 상대의 영혼을 쫓아낸다.
쫓겨난 영혼은 중단전을 통해 이혼술 시전자의 몸안에 들어간다. 몸안의 영혼이 바뀌면 시전자의 육체가 영혼에 적응하지 못해 반응을 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이혼술의 시전이 중단된다. 그렇게 되면 두 사람은 영혼이 바뀐 상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중단되지 않는다면 어떤 요소로 중단될 때까지 둘의 영혼은 계속 뒤바뀔 것이다. 이혼술은 그 자체로도 마공이지만 그 과정 역시 완전하지 못하다. 북명신공은 비록 마공 같지만 그 내용을 보면 정공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완전한데 반해서 말이다.
괴령의 영혼은 천살의 중단전으로 들어가려는 시도에서 막혀버렸다. 신처럼 위대하고 악마처럼 강한 무언가가 천살의 중단전을 차지하고 있었다.
'시발 교주새끼, 천살마기 다 빼갔다면서.'
이혼술의 시전을 멈출 수 없기에 괴령의 영혼은 끊임없이 천살의 중단전을 향해 돌진했고 철벽같은 수비에 부딪혀 튕겨나갔다. 약으로 겨우겨우 지탱하며 매일 걱정하던 육체보다 괴령의 영혼이 먼저 파괴되었다. 육체의 죽음으로 인해 영혼이 소실될까 평생 걱정하며 살아온 괴령은 육체보다 영혼이 먼저 죽는 호사를 누리게 된 것이다.
"장공자, 여기 오래 버틴 자들을 보시면 소교주의 호위대에 지원했던 경력이 공통점으로 있습니다. 지원자들 중 바로 죽은자들의 자료를 뒤져보니 전부 석달미만에 탈퇴한 자들입니다."
장현성의 보고를 받은 한선후는 호위대에서 탈퇴한 자들을 모아오라고 지시했다.
'천살 이자식이 뭔가를 알고 있었나 보구나. 횡련일기공을 익히겠다고 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어. 괴령이 천살의 몸을 차지하고 오면 생포해서 잘 연구해봐야겠다.'
- 작가의말
생전의 괴령 : 어떡하지, 육신이 죽어버리면 이 영혼도 사라질턴데.
사후의 괴령 : 얼쑤, 육신의 죽음에 좌지우지되지 않았으니 호상이로구나.
간절히 바라면 신은 항상 그 소원을 들어줍니다. 다만 그 신이 착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어제 심심해서 시 한수 지었습니다. 품평 부탁드립니다.
제목 : 해골의 슬픔
지은이 : 감기약 복용후 한시진뒤의 글쇠
언젠가 좀비가 갑자기 물어왔다네, 해골이 되면 뭐가 좋아?
한번도 생각해본적 없어서 당황해 대답을 못했다네, 잘 모르겠는데.
흥, 해골이 좋긴 좋은가 보구나. 대답하기 싫어하는 걸 보면.
하루는 구울이 갑자기 물어왔다네, 해골이 되면 뭐가 좋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을 했다네, 샴푸와 면도기가 필요 없겠지.
흥, 해골이 좋긴 좋은가 보구나. 대답이 바로 나오는 걸 보면.
어느날 뱀파이어가 갑자기 물어왔다네, 해골이 되면 뭐갸 좋냐?
잠시 생각하는 척 하다가 대답을 했다네, 삼푸와 면도기가 필요 없습니다.
흥, 해골이 좋긴 좋은가 보구나. 대답을 꾸며내는 걸 보면.
오늘 갑자기 화가 났다네, 해골이 좋긴 뭐가 좋아?
그렇게 궁금하면 나 말고 다른 해골한테 물어봐, 리치랑 해골용한테.
흥, 해골이 만만하긴 만만한가 보구나. 대답을 강요하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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