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주혈전
"으헉."
나뭇가지가 뿌직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올가미가 추격조원의 발목을 옭아맸다. 그리고 추격조원의 몸이 다리부터 허공에 들렸다. 그때 나무를 깎아만든 창 몇개가 허공에 매달린 추격조원의 몸을 향해 쏘아졌다. 공중에서 최선을 다해 몸부림 쳤지만 나무창에 관통된 추격조원은 이내 숨을 멈췄다.
함정에 당해 목숨을 잃은 자가 벌써 셋이나 된다. 부상을 입은 자도 여럿이다. 관부의 도움과 충분한 정보를 통해 수준 낮은 무림인들을 나포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이런 환경의 작전에 투입된 경험이 있는 자가 한명도 없으니 사냥꾼들이 만든 함정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마인들이 우리의 존재를 눈치챘다는 가정하에 움직인다. 굳이 기척을 숨길 필요가 없으니 조금 소란스럽더라도 함정을 있는지 확인하면서 가도록 한다."
지휘자의 명이 떨어지자 긴 막대기를 든 자들이 막대기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바닥도 후려치고 허공도 휘저으며 함정을 하나하나 파훼했다. 산꼭대기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선득은 키득거리며 입을 열었다.
"마교 녀석들은 안전한 곳에서 곱게 자라다보니 대처능력이 몹시 떨어지는구나. 저놈들의 목을 사장로한테 보내 확실한 경고를 해야겠다. 우리를 예전처럼 돈만 주면 부려먹을 수 있는 잔챙이 취급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똑똑히 알려줘야지."
이들은 사장로가 또다른 천마신공의 비급을 손에 넣은 사실을 모른다. 사장로가 그 부분을 매우 조심했기에 엿듣지 못한 탓이다. 장현성의 비급을 빼앗아내고 그 비급을 통해 강한 무력을 보유하게 되자 사장로따위는 눈에 차지 않았다. 사장로의 수하들이 자신들의 뒤를 쫓은 목적이 천마신공을 빼앗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사장로는 그저 이들이 가진 천마신공을 없애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이들의 인솔자격인 선연은 상대의 전진속도가 빨라지자 사제들에게 움직일 것을 명했다.
"전진속도가 빨라졌으니 우리도 움직이자. 한가지 명심해야 할 것은 저자들에게 포위당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장로가 몰래 키우는 암살단이 섞여있다면 등뒤를 항상 조심해야 한다."
미리 선정해둔 대나무숲에서 혈선들과 추격조가 마주쳤다. 포위가 쉽지 않고 대나무들의 방해로 암기의 사용도 제한된다. 천마신공을 익혀 반응속도와 이동속도가 빨라져서 매우 민첩한 혈선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전투장소가 없다.
이들 일곱은 전부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천마신공을 익히니 굳이 무기를 들 필요가 사라진 것이다. 육체능력이 발달했고 본능적인 움직임이 많아졌기에 무기를 사용하는 것보다 사용하지 않는것이 더 나았다. 최근 철로 된 수투(手套 - 장갑)를 만들어서 무기로 사용할 계획도 꾸미고 있었다.
추격조의 기본적인 무위는 약하다. 여러가지 암기와 도구 그리고 항상 많은 머릿수 덕분에 크게 고생해본 적이 없다. 상대하기 어려울 정도의 고수들은 경험많은 특무조나 무공이 강한 무림추살대가 맡았기 때문이다. 대나무 때문에 제대로 진형을 펼칠 수 없게되자 추격조는 혈선들에게 농락을 당했다.
선득은 앞으로 달리다가 상대가 찔러오는 검을 피해 옆으로 신형을 날렸다. 동시에 손으로 대나무를 잡고 몸을 회전시켰다. 그 회전의 힘을 빌어 발로 자신에게 검을 찔러온 추격조원을 걷어찼다. 가벼운 동작임에도 불구하고 추격조원의 몸은 날아가다 대나무에 부딪혀서 땅에 떨어졌다.
쏜살같이 달려간 선득은 오른손 손가락을 곧추 세워 추격조원의 가슴을 찔렀다. 상대의 가슴에 박히자 손가락을 오무리고 힘을 주어 갈비뼈와 근육을 동시에 뜯어냈다. 추격조원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온몸으로 반항해 왔지만 선득은 무시하고 다시 손가락을 집어넣어 심장을 통째로 뜯어냈다.
심장을 자신의 머리위에서 터뜨린 선득은 뜨끈한 핏물이 가져다주는 안락함을 느끼며 다음 목표를 향해 달려갔다. 다른 자들도 선득과 마찬가지로 온몸에 피칠을 하고 있었다. 상대의 검을 빼앗아 배를 가른 후 얼굴을 파묻는 사제의 모습을 보고 선득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천마신공과 같은 절세신공을 익힐 때 정도(程度)를 지키는게 매우 중요하다. 천마신공이 가져다주는 광기를 부정해서도 안되지만 거기에 함몰되어도 안된다.
"그만, 싸움을 멈추고 흔적을 지우며 이동한다."
추격조원들 중 몇몇은 전투 중반에 몸을 돌려 도망갔다. 맨손으로 사람의 몸을 찢고 심장을 터뜨리는 괴물들에게 겁을 먹은 것이다. 선연은 이정도면 사장로에게 충분한 경고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을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종부리듯 하던 사장로에게 한칼 먹여줬다는 생각에 선연은 기분이 좋았다.
"사형, 슬슬 맹수의 피를 사람피로 바꾸어야 할 것 같소."
선득이 건네오는 말에 선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 이곳은 야만인들의 세상이라 짐승피에 몸을 담그는 것까지는 용납해 주지만 사람피는 다르다. 지금 대부족들 사이의 전쟁을 획책중에 있으니 미리 피가 굳지 않게하는 약을 많이 만들어놓고 때를 기다리자. 전쟁이 일어난 곳에서 시체를 줍기만 해도 우리 연공에 차질이 없을 것이다."
선득은 자신의 뜨거워진 눈주위를 문질렀다. 몸에 피 한방울 튀지 않은 선연을 보며 아까 사제를 비웃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천마신공에 대한 이해가 선연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통령술로 인해 서로의 마음을 대강 느낄 수 있지만 지금은 천마신공을 운용하는 중이라 그것이 되지 않았다. 자신은 선연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데 선연은 자신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선득은 급히 머리를 비웠다.
천마신공의 기운이 서서히 가라앉자 이들은 이성을 완전히 되찾았다. 계곡물에 피를 씻어내고 새옷으로 갈아입은 후 흔적을 지우며 움직였다. 괴령의 제자들은 자질에 따라 무공의 강약이 있지만 경공 하나만큼은 전부 훌륭하게 익혀냈다. 독물들을 생포하고 약초를 수시로 캐야 하는 이들로서는 경공이 약해 실적이 낮으면 괴령에게 죽임을 당한다. 목숨을 걸고 경공수련에 매진해야 했고 그래도 경공이 별로인 자들은 괴령에 의해 사라졌다.
무림맹과 서무림맹의 고수들이 숙주위에 도착한지 며칠이나 지났지만 벽휘동은 아무런 언질도 없었다. 감숙에서는 성공했지만 귀주에서는 실패했고 사장로는 아직까지 답이 없다. 벽휘동은 서신으로 황제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특무조는 한명의 인명피해도 없이 감숙의 마인양성소의 마교 적도들을 전부 주살하고 그곳에 보관중이던 마인들에 관한 자료들을 전부 입수하였습니다. 스물다섯명의 마인을 전부 생포하여 대동(大同)으로 압송중입니다. 대동에서 이 마인들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여 천살 및 한선후의 약점을 캐낼 것입니다.'
'반면 추격조는 교만을 부려 군에 협조를 구하지도 않았고 일곱밖에 안되는 마인들과 정면대결을 하여 세명의 생존자만 남았습니다. 그중 한명은 실성을 하여 전후가 모순되는 말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남은 두명의 진술을 토대로 귀주의 마인들을 나포하는데 특무조 일부와 무림추살대를 투입할 계획입니다.'
'현재 숙주위에는 남궁천과 원각을 포함한 무림맹의 고수들과 당문과 청성을 위수로 하는 서무림맹의 정예들이 도착해 있습니다. 청성의 고수들은 강호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무위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문의 독혈대(毒血隊)는 당문과 원한을 진 자들만 상대한다는 당문 최강의 전투부대라고 합니다. 특히 독혈대의 대장인 당무영은 한때 마교에 첩자로 침투한 적이 있어 마교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합니다. 특무조와 무림추살대가 준비되는 대로 양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시작할 계획입니다.'
사장로는 금의위에 대한 대답을 피일차일 미루면서 가문의 중책들을 닦달했다.
"고삼이라는 자의 종적을 아직도 찾지 못했느냐? 그자를 확보해야 미래가 있다. 그자를 확보하지 못하면 교주를 버릴 수가 없다는 것을 너희들도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사장로는 개인의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자신의 손으로 모든것을 이루고 싶은 욕심에 가문의 미래를 망치면 안된다. 그래서 고삼을 확보하는 즉시 금의위와 손잡고 교주를 팔아버릴 계획이다. 하지만 고삼의 흔적은 어느순간 뚝 끊겨서 하늘로 솟거나 땅속으로 파고든게 아닌지 의심되었다.
"사천으로 향하는 배를 수소문하고 그뒤로 종적이 끊겼습니다. 하오문에 거금을 쥐어주고 그 일대를 광범위하게 수색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과가 없습니다."
"천살이라는 자는 생각할수록 두려운 자로구나. 이 모든것이 그 어린놈의 안배라고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사장로는 세상에 우연이라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고삼이 천살의 심복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고삼이 갑자기 사라진 것은 천살이 시킨 비밀스러운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사장로와 중책들의 판단이다.
"장로님, 급전입니다."
회의실에 정보책임자가 기척도 없이 난입했지만 누구도 책망하지 않았다. 그자의 손에 불꽃모양의 문양이 세개나 그려진 서신이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가문의 존폐와 관련된 일에만 불꽃 세개가 그려진다. 사장로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서신을 읽었다.
"실혼인들을 가둔 곳이 습격을 받았다. 그곳을 지키던 자들은 전부 죽었고 실혼인들은 전부 사라졌다."
사장로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톡톡 두드렸다. 회의장에 자리한 모두는 사장로의 손가락이 자신의 심장을 두드리는 기분이었다.
"밖으로 나간 자들을 전부 고삼을 찾는 일에 투입해라. 그리고 금의위에게 상세한 계획을 요청하도록 하거라. 우선 교주를 던져주고 시간을 번다."
"고삼이라는 작자는 분명 한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천살이 시킨 일을 수행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돈이 얼마 들어도 좋으니 하오문에게 특이한 일들이 생기면 가장 먼저 알려달라고 하거라."
고삼은 호수의 밑바닥을 걸으며 섬으로 돌아갔다. 아무런 도구도 없이 만든 떼목은 한참 가다가 나무와 나무를 묶은 나무껍질이 풀리면서 흩어져버렸다. 고삼이 수영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백냥에 달하는 은자와 두자루의 한철과 강철을 섞어서 만든 검의 무게 때문에 바닥에 가라앉았다.
대성에 이른 횡련일기공 덕분에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지만 물위로 뜨려면 검과 은자를 버려야 한다. 그래서 고삼은 다시 섬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섬에 돌아가서 한참 숨을 몰아쉰 고삼은 문득 호수바닥에 가라앉은 배들을 보고 자신의 머리를 탁 쳤다.
나무껍질을 꼬아서 밧줄을 만든 고삼은 바닥에 가라앉은 배들을 하나하나 건져올렸다. 그중 손상이 비교적 적은 배들의 밑창을 수리한 후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수리한 배들을 하나로 묶어버렸다. 한두개의 배에 물이 들어오더라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고삼은 배에 몸을 실었다. 노를 저을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그저 호수의 흐름에 따라 배가 흘러가게 내버려 두었다. 고삼의 배가 멀리 떠난 후 몇척의 배들이 섬에 도착했다. 도망친 수적들이 하오문의 현상금을 탐내 고삼이 이 섬에 있다고 정보를 팔아넘긴 것이다.
"젠장, 이미 섬을 떠나버렸구나. 빨리 돌아가서 호수 주변에서 이자의 행적을 본 자가 없는지 수소문 하라고 해야겠다."
하오문의 무리들은 배를 타고 돌아갔다. 저녁이 되자 호수의 흐름이 바뀌면서 고삼의 배는 다시 섬으로 돌아왔다. 설상가상으로 대충 수리한 배들이 파손되어 가라앉기 시작했다. 몇달간 물고기만 먹고 살아온 고삼은 이젠 물고기만 보아도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허기를 달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적들이 사용하던 낚싯대를 들었다.
- 작가의말
사실 고삼이 배없이 호수를 빠져나갈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그 방법을 생각해낼 겁니다.
팔목과 상박의 통증이 심해져서 오늘 두편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첫글을 쓸 때까지 아무 느낌 없었는데 두번째 글을 쓸때 통증이 오네요. 절세신응 때 통증을 무시하고 연참한 적이 있는데 그러다 큰코 다쳤습니다. 근육염증이 와서 약값 좀 날렸습니다. 인체공학 키보드가 도착하면 조금 나아지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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