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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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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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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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1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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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고난의 6연전 (6)

DUMMY

[ 로스 카운티는 하루아침 사이에 주전 풀백을 전부 잃어버린 팀이 되었습니다. ]


[ 리 월리스는 경고 누적에 의한 출전 징계를 받은 상태이며, 아메드 델샤드는 발목에 이상이 생겨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제임스 블랜차드가 복귀하자마자 또다시 전력 이탈이 발생하다니, 계속되는 고난입니다. ]


[ 월리스의 부재가 상황을 어렵게 만들 거라 전망해왔었지만, 델샤드마저 빠진 지금, 로스 카운티의 옆구리는 무방비하게 드러난 상태나 다름없습니다. ]


[ 무엇보다 득점이 필요한 이 시기에 잭 마틴이 부상으로 못 나오는 것도 치명적입니다. ]


[ 패배는 물론이고, 무승부를 해서도 안 됩니다. 로스 카운티가 유럽 대항전에서 좀 더 살아남으려면 오로지 승리하는 길 말고는 없습니다. 문제는 올림피아코스도 여유로운 처지가 아니라는 거죠. 양 팀의 경기는 사실상 단두대를 앞에 두고 벌이는 사투가 될 것입니다. ]



하이버니언전을 치른 다음 날. 신문을 비롯하여 TV, 인터넷 뉴스, 라디오 등 스코틀랜드의 각종 스포츠 관련 매체에서는 온통 로스 카운티에 대한 얘기로 가득했다.


보도하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하나 같이 실망과 안타까움이 섞여 있었다.


전부 유럽 무대 예선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탈락해 버린 현재, 스코티시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으니까. 조별 본선은커녕 예선도 처음 치러봤던 팀에게 기대를 거는 것부터 웃기긴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32강이 확정되었을 때 작년처럼 스코틀랜드 국적이 하나도 남아나지 않게 된다면 진출한 유럽 국가들에게 역시 그렇다는 듯이 또 비웃음을 사게 될 테니까. 재수 없는 잉글랜드 놈들이 기고만장해하는 꼴을 보는 건 덤이다.


수준 떨어지는 리그라는 조롱만 받아 오다가 이번에 이름값 높은 독일팀을 꺾어내는 이변을 연출하며 올라왔으니 기대를 거는 게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로스 카운티마저도 조별 본선에서는 계속 저조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며 끔찍한 악재까지 겹쳐 좋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다.


월리스도 없다. 델샤드도 없다. 심지어 전방을 책임져줄 잭 마틴 또한 없다. 이 세 선수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 아는 이들이라면 이미 붙어보기도 전에 가망이 안 보인다고 단언해도 이상할 것 없다.


튼튼한 방어구와 무기를 잃어버린 채로 전투에 임하는 꼴이니.


이틀. 아니, 하루만이라도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잭 마틴의 복귀까지는 기대할 수 있었을 텐데. 무정하게도 운명의 날짜는 자비도 없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


“이런, 오늘따라 왜 이리 차가 밀리는 거야?”


존 프리먼은 움켜쥔 핸들을 초조하게 두드렸다.


일렬로 늘어선 차량의 뒤통수가 빠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 평소 한 시간 정도 여유를 두고서 구장에 미리 도착했던 건데. 애버딘 지역에서 있던 볼일이 예정보다 늦어진 탓에 시간을 너무 허비하고 말았다.


“킥오프할 때쯤에야 도착하면 다행이겠는데.”


그래도 에든버러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는 점에 위안을 삼을 순 있었다. 아마 그랬다면 도착은 고사하고 차 안에서 오디오 중계나 듣는 거로 만족해야 했을 테니.


“그나저나 오늘 라인업이 어떻게 되려나? 좌우에 고든 스미스와 스티브 샌더스는 확실한 것 같고······ 아, 오른쪽은 대니 패터슨이 나올 수도 있겠군.”


차가 빠지길 기다리며 프리먼은 생각에 잠겼다.


잭 마틴이 출전할 수 없을 때 로스 카운티의 선택지는 4-3-3뿐이다. 그리고 델 레오네 감독은 경기 전 컨퍼런스를 통해 후보 공격수 필립 로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울 일은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결국 최전방의 자리는 에이든 딩월의 몫이 될 것이다.


문제는 그 아래 구성이다.


이때까지 4-3-3을 꾸리면서 보여 온 중앙 미드필더진의 최선은 알렉산더 캐리, 리차드 브리튼, 대런 케틀웰. 이렇게 세 명.


이 조합은 상대와 맞부딪치면서 쉽게 밀려나지 않고 주도권 싸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면에서는 좋으나 역시 단점은 화력이 약해져 버린다는 데에 있다.


케틀웰의 경우 수비 임무에 특화된 선수로 공격 능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동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공수 전환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게 치명적이다.


“작년에는 로버트 퀸이 공격 밸런스를 어느 정도 잡아줬고, 요앙 아르킨이 전방을 혼자서 잘 책임졌었지만, 그 둘이 떠나고 나서는 보완점을 찾지 못하고 완전히 어그러진 모습인데 괜찮을는지.”


잭 마틴은 원톱에서 부진함만 연거푸 보여 왔고, 딩월은 워낙 왕성한 활동량으로 뛰어다니는 덕에 기본은 하는 모습이지만 골을 결정짓는 마무리에서의 아쉬움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감독도 그 점을 인식해서인지 예선 통과 이후로는 쭉 4-4-2만 써왔는데, 부상의 변수로 인해 불안정한 시스템이 강제되어버린 것이다. 하필 득점과 승리가 절실한 시점에서.


“그 감독이라면 뭔가 수를 쓰긴 쓸 것 같은데. 아예 손을 놓아버릴 인물은 아니야. 하지만 과연 어떻게 할지······. 평소대로 나온다면 좋은 결과를 보긴 힘들 것 같은데······.”


그때 그 질문에 대답이라도 하듯 짧은 알람이 울렸고, 프리먼은 앞에 시계를 확인하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벌써 일곱 시인가? 라인업이 떴나 보군.”


알람은 그가 설정해 둔 스코티시 스포츠 뉴스에서 제공하는 기능으로 로스 카운티의 선발 라인업이 막 발표된 모양이었다.


“뭐야?”



브라운, 샌더스, 보이드, 얀손, 스미스, 부팔, 브리튼, 캐리, 블랜차드, 데 루어, 딩월



“······뭐지?”


거듭 의문을 내뱉으며 라인업을 재차 들여다보았다.


“데 루어? 블랜차드도 선발에 있는데······. 혹시 데 루어가 전방에 올라간 4-4-2인가? 아니, 그럴 리가······.”


깊게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앞에 차량이 빠지기 시작했고, 프리먼은 허겁지겁 다시 핸들을 잡아야만 했다.


“그래, 맞아. 데 루어는 원래 중앙 2선도 가능한 선수였지.”


딩월의 뒤를 데 루어가 받쳐주는 4-2-3-1 형태라면 이해가 될 만하다. 단지 델 레오네 체제에서 중앙 2선을 수행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게 걸리긴 하지만.


로스 카운티 역시 딩월을 변칙적으로 내려서 활용하는 정도였지 정식으로 4-2-3-1을 운영해 본 적 없다는 것도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역시 확실한 건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건 꼭 가서 봐야 해.”


프리먼은 그렇게 말하며 페달을 밟았다.


*******


같은 시각.


“정신론만 앞세우는 걸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오늘 경기에서 자네들의 마음가짐만큼 중요한 건 없겠지.”


로스 카운티의 라커룸에서는 델 레오네 감독이 선수들을 내보내기에 앞서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있었다.


“뭐, 이런 말이 많더군. 로스 카운티가 유럽 대항전 무대를 역사상 처음 밟아봤고, 예선 통과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니 본선까지 올라온 것에 의의를 두어도 충분하다고.”


“······.”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우리는 더 올라갈 수 있다. 자네들은 이미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정도 되는 전함을 침몰시킨 경험을 가진 선수들이야. 올림피아코스가 그들보다 강한가?”


“아닙니다!”


“그리스 원정에서 자네들은 대등한 싸움을 했고 여기는 우리의 안방이다. 충분히 꺾어낼 수 있는 팀이야. 자신감을 가지고 싸워라. 반드시 올라갈 수 있다.”


감독은 그렇게 말하더니 묘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었다.


“물론 코치진에서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야. 벤치에서 끊임없이 승리에 다가갈 방안을 연구하고 자네들과 함께 싸워나갈 거다. 그동안 훈련한 것들, 그리고 내가 지시했던 것들만 잘 이행하도록. 그러면 내가 볼 땐 이 싸움, 확실히 승산이 있다. 가서 녀석들을 혼란에 빠뜨려 주고 와라.”


“가자!”


주장 브리튼의 외침을 신호로 선수들이 일제히 일어섰고, 운명을 결정지을 전장으로 향했다.


“떨리지 않아, 스티브?”


스미스가 샌더스의 옆으로 다가오며 말을 걸었다.


“이런 중요한 경기에 우리가 갑자기 선발로 나가게 될 줄 몰랐는데.”


“그래서 자신 없어?”


“누, 누가 자신 없대? 그냥 그렇다는 거지.”


“마음 단단히 먹어.”


샌더스가 말했다.


“팀은 지금 위기에 빠졌다고들 하지만 우리에게 이만큼 최고의 환경이 더 있겠어? 이건 다시 오지 않을 기회야. 여기서 실패하면 더는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


“······.”


“난 오늘 모든 걸 다 걸고 싸울 거야.”


스미스는 잠깐 멈춰 서서 앞서가는 동료의 뒷모습을 보다가 다시 뒤따라가며 대꾸했다.


“나도 그럴 거거든?”


*******


< 14-15 UEFA Europa League 'Group I' Match >

로스 카운티 : 올림피아코스

2014년 11월 6일 (목) 19:45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5,989명)



“하아, 그래도······ 늦진 않은 것 같네.”


프리먼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좌석에 앉았다.


경기장에서 좀 떨어지는 거리에 차를 주차할 수밖에 없어 급히 뛰어오긴 했다만 그 정도로 이렇게나 심장이 터질 것 같다니. 요새 일에 몰두하느라 운동을 소홀히 했던 탓이다.


“후······. 딱 시작하기 직전에 맞춰서 도착한 건가?”


호흡이 안정되자마자 프리먼은 필드를 보았다. 선수들은 이미 상대와 악수를 한 차례 나눈 뒤 진형을 갖추는 모양이었다.


“어? 왼쪽이 데 루어잖아?”


처음 시선이 간 곳은 좌측면. 그 자리에는 중앙 2선에 서지 않을까 싶었던 데 루어가 몸을 풀고 있었다.


“그러면 블랜차드는?”


프리먼은 반사적으로 우측면을 보려다가 고개를 멈추고 말았다. 그가 찾던 10번의 선수는 바로 데 루어 옆에, 브리튼의 파트너 자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블랜차드가······ 중앙?”



[로스 카운티 / 4-1-4-1]

FW : 에이든 딩월

MF : 에드빈 데 루어 / 제임스 블랜차드 / 리차드 브리튼 / 소피앙 부팔

DM : 알렉산더 캐리

DF : 고든 스미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스티브 샌더스

GK : 마크 브라운


[올림피아코스 / 4-2-3-1]

FW : 콘스탄티노스 미트로글루

AM : 이브라힘 아펠라이 / 알레한드로 도밍게스 / 마티유 도세비

CM : 파이팀 카사미 / 델빈 은딩가

DF : 아르튀르 마쉬아퀴 / 펠리피 산타나 / 알베르토 보티아 / 오마르 엘랍델라위

GK : 로베르토 히메네스 가고


*******


바르셀로나에서 축구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팀을 만들어 냈던 주제프 과르디올라(Josep Guardiola) 감독이 바이에른 뮌헨의 지휘봉을 잡자마자 했던 일은 바로 월드클래스 풀백 필리프 람(Philipp Lahm)을 중앙에 놓은 것이었다.


뛰어난 선수는 미드필더에 넣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 때문이다.


람은 지능적이고 노련한 베테랑답게 그 위치에서도 최고의 기량을 보여주었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던 이들마저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게 불과 작년에 있었던 일이며, 로스 카운티에서도 본래 측면에서 뛰어왔던 알렉산더 캐리가 충격적인 포지션 변화를 보였던 그 시즌이다.


어쩌면 저 이탈리안은 그와 동일한 사상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캐리에 이어서 블랜차드까지.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상당히 괜찮은 아이디어다.


쉽게 볼을 빼앗기지 않는 간결함과 적절한 기동력,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딩월 다음으로 지치지 않는 체력. 공격진의 핵심인 건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워낙 뛰어난 체격을 지니고 있어 치열한 볼 다툼에도 유리하다.


무엇보다 뚜렷한 단점이 없다는 것이야말로 블랜차드 최고의 장점. 모든 면에서 기본적인 수준은 충족하니 중앙에서 수행하는 임무도 그저 불가능은 아니다.


평소에도 블랜차드는 측면이지만 중앙지향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기에 사실 그렇게 어색한 위치도 아닐 것이다.


고정된 인식을 거두고 보면 오히려 최적의 포지션은 중앙이라 해도 무방하다.


이론적으로는 말이다.



“내 저렇게 될 줄 알았지.”


“저 괴짜는 좋다가도 뜬금없이 명장 놀이를 하는 경우가 있다니까.”


“최선의 라인업을 들고나와도 모자랄 판에 저게 무슨 짓이냐고.”


앞자리에서는 프리먼처럼 칼럼을 쓰기 위해 모인 기자들이 볼멘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들 역시 오늘만큼은 자국민으로서 로스 카운티의 승리를 간절히 바라는 팬들의 마음이었을 테니 이해 못 할 반응까지는 아니다.


전반전 결과만 얘기하자면 일단 0 : 2


원정팀의 우세로 끝이 났다.


첫 실점은 우측의 도세비가 스미스의 뒤를 따돌리며 침투해 들어갈 때 측면 커버를 들어간 얀손이 파울을 범하면서 내준 프리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상대 수비수 보티아의 헤더 슛이 골문을 향하지 않고 엉뚱하게 보이드 쪽으로 향한 것이 오히려 그의 오른쪽 정강이를 맞으면서 반응하기도 전에 안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었다.


두 번째 실점은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자책골을 내준 여파가 컸는지 로스 카운티 선수들은 계속 크게 흔들렸고 올림피아코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샌더스를 개인 돌파로 뚫어낸 아펠라이의 크로스와 미트로글루의 오른발 슛을 허용하면서 순식간에 두 골을 내주고 말았다.


결국 우려했던 대로 허술해진 양 측면에서 문제점이 터진 셈이다.


하지만 그 전에 앞서 불운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자책골이 나올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초반에는 제법 괜찮았다. 아니, 좋았다. 올림피아코스는 깜짝 선발 라인업을 들고나온 것에 당황했는지 전혀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로스 카운티는 그 과정에서 여러 결정적인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당장 생각나는 것만 해도 코너킥 기회에서 얀손의 강력한 헤더 슛을 골대 기둥에 서 있던 수비수가 간신히 막아낸 것이라든지, 데 루어의 중거리 슈팅이 골대를 맞고 나온 것이라든지, 간만에 구석을 잘 찾아 들어간 딩월의 슈팅은 키퍼가 선방해 내기도 했다.


아주 미세한 차이로 오프사이드에 걸려 취소된 부팔의 득점도 그렇다.


전체적으로는 로스 카운티가 더 장악해 가던 시합이었고, 조금만 더 정밀함만 갖추었어도 먼저 점수를 얻어낼 수도 있었을 그런 내용이었다.


통계상으로도 원정팀이 세 번의 슈팅을 할 동안 무려 일곱 번의 슈팅을 가져갔었으니까. 올림피아코스가 앞서 있다고 과정까지 압도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스미스의 실책으로 와르르 무너지긴 했지만······.’


어쨌거나 스포츠는 결과로 말하는 법. 아무리 좋은 경기력을 보였어도 승리를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저 패착으로 기억될 뿐이다.


그런데도 프리먼은 왠지 모르게 편안한 마음이었다.


분명 이대로 끝난다면 로스 카운티의 유로파 무대는 막을 내리게 될 수 있음에도.


“후반전도 이대로 진행하는 거야? 변화 없이 간다고?”


“대체 블랜차드를 왜 갑자기 중앙에 놓는 거야? 왼쪽에서 최고의 폼을 보여주던 선수를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엉뚱한 곳에 쓰는 감독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이윽고 다시 불만이 한가득 들려왔다.


비난의 화살은 블랜차드와 그것을 선택한 감독에게로 전부 쏠리고 있는 듯했다.


‘덤터기를 쓰기엔 너무 가혹한데.’


프리먼이 볼 때 그에게는 큰 이상이 없었다. 공식 경기에서는 처음 서 보는 중앙임에도 무섭도록 빠르게 적응해 나가고 있으니.


오히려 전술적인 측면에서 블랜차드의 기용은 나름의 성과도 있다.


“블랜차드를 다시 측면으로 돌리고 데 루어를 중앙에 세워야 해. 데 루어는 그 경험이 있잖아? 저 감독도 모르진 않을 텐데. 그냥 끝까지 고집할 생각인 건가?”


단지 눈에 제일 잘 들어오고 있어서 표적으로 찍혔을 뿐이다.


‘물론 무난한 정도로는 안 되겠지. 이것보다 더 잘하긴 해야 해.’


저 선수를 왜 굳이 중앙에 놓았는가? 그것이 지금처럼 절실한 상황에서 승리의 열쇠가 될 정도인가?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아마 오늘날의 선택이 실패라는 꼬리표로 평생을 붙어 다니게 될 것이다.


프리먼은 그 증명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경기의 양상은 점수를 지키려는 원정팀과 더 공세를 퍼붓는 홈팀의 대결로 흘러갔다.


올림피아코스는 2점 차로 앞서 있기에 전혀 급할 것이 없었고, 초조한 건 당연히 로스 카운티 쪽일 수밖에 없다.


“더 강하게 압박해야 해.”


프리먼과 텔레파시라도 통했는지 부팔이 강하게 달려들었고, 그 압박을 피하며 길게 걷어낸 수비진의 볼이 블랜차드의 머리에 끊겼다. 이어받은 브리튼의 빠른 패스가 딩월에게까지 도달했다.


삑 -


“좋은 위치야.”


얻어낸 프리킥 위치는 직접 차기에도 좋은 거리였다.


“여기서 만회를 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인데······.”


프리먼은 60분이 다 되어가는 전광판의 시계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키커는 캐리였다.


캐리는 볼을 앞에 두고 코를 매만지며 골대를 노려보더니 주심의 휘슬 소리가 들리자마자 발을 내디뎠고, 그의 프리킥이 벽을 넘어서 좌측으로 향했다.


“덜 감겼어.”


프리먼은 키퍼 정면에 가까이 들어가는 볼을 보며 아쉬움을 내뱉었다.


하지만 워낙 강하게 날아갔기에 잡아내는 건 무리였다. 떨어지는 세컨드 볼을 향해 블랜차드가 매섭게 달려들고 있었다.


깡 -


“또 골대?”


블랜차드의 오른발 슛이 키퍼를 피해 먼 포스트로 날아갔지만 애석하게도 다시 골대를 맞으며 튕겨 나왔다.


철썩 -


그리고 재차 나오는 볼의 경로로 몸을 날리면서까지 발을 뻗어 골망을 흔들어 낸 건 다름 아닌 보이드였다.


“좋았어!”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자책골을 어떻게든 만회하려는 의지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보이드는 셀레브레이션을 할 생각도 없이 곧장 일어서서 볼을 주워들고 중앙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선수들은 아직 포기하지 않은 것 같군.”


이렇게 되면 모든 게 달라진다. 로스 카운티의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이 오르기 시작했고, 올림피아코스는 고작 한 골 차이로 쫓기는 기분이 들기 시작할 것이다.


아아 -


브리튼의 슈팅이 골대 위를 살짝 스쳐 지나가는 걸 보며 관중석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전반에 로스 카운티가 흔들렸던 것처럼 상대가 급격히 동요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건 후반 시작하고 아직까지 한 번의 슈팅밖에 하지 못한 그들의 기록이다.


“상대 3선은 끊임없이 압박을 받고 있어. 묀헨글라트바흐 때처럼. 그래서 전방으로 볼 공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더 세밀하게 따져본다면 압박 강도가 그때보다 훨씬 강하다.


데 루어, 딩월, 부팔이 수비진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3선에는 블랜차드와 브리튼이 밀착해 붙어준다. 그 덕에 상대 팀의 핵심 2선인 도밍게스는 후반전에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


“데 루어가 저 자리에 설 수는 있겠지만, 저렇게 3선을 강하게 짓누르지는 못하겠지.”


그 말에 힘을 실어주기라도 하듯 은딩가에게 블랜차드가 거칠게 달려들어 볼을 빼앗아내고 있었다.


“오오.”


그것을 신호로 네 명의 선수들이 일제히 앞으로 질주하는 모습에 프리먼은 흥분이 일어 오르는 것 같았다.


로스 카운티의 속공이 블랜차드에서 데 루어와 딩월을 거쳐 오버래핑해 올라오던 스미스에게 전달되기까지 상대 팀은 빠르게 진행되는 흐름을 끊어내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기만 하기 바빴다.


스미스의 패스가 뒤에 서 있던 캐리에게 들어가고, 캐리의 패스가 길게 데 루어에게 도달할 즈음엔 어느새 올림피아코스 진영 안으로 깊숙이 파고든 상태였다. 이어서 박스 가까이 진입한 데 루어의 횡패스가 흐트러진 수비진의 틈새로 빠져나갔다.


“찬스다!”


그리고 이미 박스에 진입해 있던 블랜차드의 오른발 슛이 이번에는 골대 안으로 정확히 빨려 들어갔다.



후반 75분.


“교체인가?”


터치라인에서 델 레오네 감독이 앤드류 톰슨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 무언가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올림피아코스는 많이 지쳐있으니까. 톰슨의 스피드가 부담되겠지.”


승기를 잡은 싸움에서 이렇게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면 진이 빠질 수밖에 없다. 체력이 심각할 정도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기지 않으면 안 되는 승부. 뒤가 불안하더라도 공격을 나가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런 면에서 지금 톰슨은 상대가 가장 원치 않을 카드.


“후반전은 저 이탈리안 감독의 계획대로야.”


이제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결과가 나오지 못했던 전반에는 판단을 내리기 이른 감이 있었지만, 결국 감독이 중앙에 세운 블랜차드가 1골 1어시스트로 활약을 하고 있지 않은가?


앞자리에서 한껏 떠들어대던 얼간이들도 조용해져 있고 말이다.


“오늘 블랜차드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로버트 퀸의 상위 호환이라 해도 손색이 없어.”


와아아 -


그때 갑자기 원정팀의 스탠드가 들썩였다.


올림피아코스의 긴 패스가 측면으로 한 번에 넘어가며, 치열하게 경합하는 아펠라이와 샌더스의 앞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한 골 차로 판가름 나는 시간, 치명적인 실책을 저지르는 쪽이 먼저 무너져 내린다.


볼을 먼저 차지한 건 공격하려는 쪽이었다. 아펠라이는 잡지 않고 샌더스를 완전히 떨쳐내려는 양 한 번 더 길게 치고 나갔다.


놓치면 끝난다.


샌더스도 그걸 의식하고 있었는지 끝까지 어깨를 부딪치며 따라붙었다. 평소 그의 빠르지 않은 주력을 생각하면 놀라울 정도였다. 그리고 길게 뻗은 다리가 갈고리처럼 볼을 낚아챘고, 아펠라이는 그대로 필드에 엎어지고 말았다.


“반칙은 아니야!”


한 박자 빠르게 먼저 일어난 샌더스가 정면을 보더니 길게 차올렸고, 상황은 바로 역전되기 시작했다.


이번엔 올림피아코스의 우측면으로 떨어지는 볼을 잡기 위해 톰슨과 마쉬아퀴가 경합하고 있었다. 내내 까다로웠던 부팔을 상대하느라 누구보다 지쳐있을 텐데도 상대 풀백의 투지는 샌더스에 못지않은 것 같았다.


“양 팀 다 승리에 대한 갈망이 엄청난데!”


기어이는 끝까지 쫓아와 톰슨을 쉽게 들어가지 못하도록 대치하는 마쉬아퀴.


하지만 그가 생각지 못한 변수는 따로 있었다.


“어어?”


한 선수가 톰슨의 뒤로 돌아나가면서 짧은 패스를 건네받았고, 한 명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던 수비는 허무하게 그 선수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프리먼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원래라면 전방에서 쇄도하고 있었어야 할 선수였는데 말이다.


와아아 -


어지간해선 쉽게 울려 퍼지기도 힘든 빅토리아 파크의 함성을 들으며 에이든 딩월이 박스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비수 한 명이 급하게 달려들었지만 이미 그 시점에서 끝이 난 싸움.


딩월을 떠난 볼이 간발의 차로 피하며 뒤쪽으로 빠졌고, 아무도 마크가 붙지 않은 브리튼의 슈팅이 왼쪽 구석으로 향해 낮게 깔리며 날아갔다.


“우와아아아!”


프리먼은 기어이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역전 골의 주인공은 고개를 하늘 높이 들고 포효하면서 코너 쪽으로 내달리다가 뒤를 돌아보며 두 팔을 활짝 펼쳤고, 뒤이어 쫓아온 딩월을 시작으로 동료들이 하나둘 그를 덮치면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동안 뜨거운 열기의 셀레브레이션이 끝나고 필드에 대자로 누워 쉽게 일어나지 못하고 뻗어버린 브리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정도면 확실한 증명이지.”


프리먼은 무안함에 아무 말 못 하고 머리만 긁적이고 있는 앞자리의 인간들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있다면 이번 MOM이 누구의 차지가 될 것인지는 저들도 알고 있을 테니까.



=============================

< 로스 카운티 3 : 2 올림피아코스 >

스콧 보이드(57‘)

제임스 블랜차드(68‘)

리차드 브리튼(83‘)

+++++++++++++++++++++++++++++

스콧 보이드(OG 13‘)

콘스탄티노스 미트로글루 (17‘)


=============================



< 제임스 블랜차드 주요 스탯 >

득점 1회

도움 1회

슈팅 3회

패스 성공률 87%

드리블 돌파 2회

볼 탈취 6회

태클 4회

인터셉트 3회

공중볼 경합 승리 6회


평점 9점 (Man of the Match)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 회는 분명 일찍 찾아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다 또 이렇게 됐는지...

건강 문제와 개인 사정이 얽히다보니 쉽지가 않네요.

그래도 늦는 것에 대해서는 정말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저 그만큼 채워넣은 분량과 끝까지 가겠다는 약속 정도겠네요.

연중을 안한다는 것만큼은 반드시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언젠가는 마구마구 써서 연재를 팍팍 올리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벌써 주말의 하루가 지났는데 남은 일요일도 즐거움으로 가득하시길 빌겠습니다.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이풍 님

언제나 감사합니다. (_ _)


제 글을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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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592 38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02 36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46 32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00 34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775 42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32 37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21 39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28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86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4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9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2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37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8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3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62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4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192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7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47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41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53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40 50 27쪽
178 178. 승부욕의 화신 +3 23.04.22 1,268 5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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