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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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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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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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02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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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110. 역이용

DUMMY

로스 카운티가 구사하는 주요 패턴을 간략하게 정의하면,


왼쪽으로 압박을 끌어들인 뒤 오른쪽으로 빠르게 전환하여 급습을 가하는 축구.


빌드업 시에는 철저히 알렉산더 캐리를 중심으로 움직이며, 무사히 상대 진영까지 볼 운반을 마친 뒤에는 왼쪽에 밀집된 선수들이 패스를 돌리다가 틈이 발생하는 곳으로 찔러주거나 오른쪽으로 크게 전환하는데 이 과정에서도 캐리가 관여하는 횟수는 상당히 높다.


이 플레이를 수월케 하기 위해 레프트백이 날개처럼 넓게 펼쳐 올라가고, 레프트윙이나 전방의 에이든 딩월이 안으로 들어와 중원 싸움의 수를 강화한다.


거기에 빌드업을 주도하는 캐리까지 왼발을 사용하기 때문에 필드의 절반을 점령하기에는 그야말로 안성맞춤.


이제는 모두가 확실하게 알고 있는 그들의 특징이다.


상대하는 팀에게는 대개 두 가지 선택이 주어진다.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패스 줄기가 되는 핵을 파괴하느냐, 한발 물러선 뒤 비교적 허술한 오른쪽 공간에 역습 요원을 배치해 두느냐.


휘터의 선택은 전자였다.


“······당했군.”


그리고 허탈한 표정으로 내뱉은 그의 한마디는 단순히 실점을 내준 지금 상황에 관해서만 얘기하는 게 아니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낀 건 진작 몇 분 전. 아니, 킥오프를 하고 나서 그리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으니까.


앞서 얘기했듯 로스 카운티가 왼쪽 영역을 장악하려면 리 월리스가 올라와야 하고, 그의 오버래핑으로부터 패턴이 시작된다. 그런데 웬걸 중앙선을 넘어올 생각이 아예 없어 보인다. 가장 요주의 인물로 경계 중이던 제임스 블랜차드 또한 무슨 일에선지 공격 가담 횟수가 미미한 수준.


그 결과, 휘터가 준비해온 작전들이 모두 물거품으로 변해버렸다.


월리스와 블랜차드가 올라오는 순간을 노려서 후방에 혼자 남는 캐리를 공격할 속셈이었건만, 그 두 명이 경호원마냥 주변에서 보좌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압박을 가해도 그에게 최소 두 갈래의 무난한 패스 루트가 계속 형성되면서 손쉽게 빠져나올 뿐이었다.


심지어 목표물이었던 캐리도 이상하다.


통계상으로 팀 내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볼 터치 횟수와 전진 패스 비율을 가지고 있는 명실상부한 핵심 빌드업 리더.


그런데 지금 그의 선택지는 대부분 빠르면서 간결한 패스들이다. 제대로 압박이 들어가기 전에 볼이 캐리의 발을 떠나버리는 상황이 연이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러한 까닭으로 잘츠부르크의 압박은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물론 캐리의 전진 패스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는 측면에서만 보면 일부분 성공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휘터는 확실히 깨닫고 있었다.


애당초 저들은 왼쪽으로 공격할 의사가 없었다는 걸.


“캐리는 미끼였어. 우리를 유인하는 미끼······.”


실질적인 전개는 전부 오른쪽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걸 말이다.

잘츠부르크전2.jpg

왼쪽에서 볼을 돌리다가 오른쪽으로 전환하는 방식은 평소와 같다. 차이점이 있다면 중앙선을 넘어오기 전 그들의 진영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과 그 빌드업을 좌우 풀백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 월리스가 반대편으로 전환하고 델샤드가 전개해나가는 식이다.


그 전개 또한 거창하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전환된 뒤에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전방으로 내달리는 딩월과 부팔을 믿고 빠르게 볼을 넣어준다. 이 또한 로스 카운티가 수비 지역에서 단번에 넘기는 롱볼을 선호하지 않는다는 분석과 판이한 상황.


어쨌거나 캐리는 이번 시합에서 그저 달콤한 미끼 역할이었을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잘츠부르크의 시스템 또한 삐걱거리고 있었다.


휘터는 블랜차드의 위협적인 공격 침투를 가장 경계하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크리스토프 라이트게프(Christoph Leitgeb)로 하여금 맨마킹하되 그가 깊숙하게 들어오기 전까지는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 지시해두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그 10번이 올라오기는커녕 수비에 전념하고 있으니 혼란에 빠져버린 모습이었다.


감독의 지시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자니 2선과 3선의 간격이 넓게 벌어진다. 그러면서 캐리를 괴롭히기 위해 출전한 나비 케이타가 도리어 고립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휘터는 로스 카운티의 좌측 라인이 강력하다는 걸 염두에 두고 공격적인 풀백 피터 안커센(Peter Ankersen) 대신 수비에 능한 베테랑 크리스티안 슈베글러(Christian Schwegler)를 투입했었다.


너무 수비적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당연히 반대편 풀백 안드레아스 울머(Andreas Ulmer)에게는 공격적인 주문을 해놓았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 울머에게 수비적인 지시를 내려야 하는가? 그러면 좌우 측면의 화력이 전부 떨어져 버리게 될 텐데? 압박의 무게 추를 오른쪽으로 두어야 하는가? 그랬다간 온순하게 있던 왼쪽 라인이 갑자기 돌변해버릴지도 모르는데? 월리스와 블랜차드는 언제라도 뒤에 감춰둔 칼날을 쥐고 달려들 위험성이 존재하는 선수들 아닌가?


무엇보다 심각한 건 문제점이 뭔지 알면서도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휘터 자신이었다.


명확하게 파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지금 로스 카운티가 보여주는 모습들은 밤새 분석팀과 머리를 맞대며 조사했던 것들을 전부 비웃기라도 하는 듯이 보였다.


아니, 좀 더 깊이 파헤쳐봤어야 했다.


설마 그들이 왼쪽을 가라앉히고 반대편으로 허를 찔러올 줄 어찌 알았을까. 블랜차드의 수비 능력, 브리튼과 델샤드의 공격 능력을 전부 간과하고 있던 탓이다.


결코 무시하면 안 된다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수준 낮은 리그의 팀이라며 가볍게 여긴 대가를 받은 셈이다.


“새······ 생테티엔이 방금 한 골을 더 넣었답니다. 전반에만 두골 차인데 뒤집을 수 있을지······.”


“······.”


코치가 전해오는 암울한 소식은 이제 주저할 시간마저 없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대로 끝난다면 생테티엔은 11점, 로스 카운티는 9점. 그리고 잘츠부르크는 3점으로 탈락이 확정된다.


사실 로스 카운티는 비기기만 해도 유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대담 하면서도 안정적인 전술을 들고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모두에게는 캐리의 원맨팀이 아니라는 확고한 메시지까지 던져줄 수 있고 말이다.


“······이제 우리에게 선택권은 없어. 라인을 끌어올려서 어떻게든 점수를 되찾아야 해.”


휘터는 그렇게 말하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반대편 벤치의 이탈리안을 흘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순간 등줄기에서 오싹함을 느꼈다.


자신이 어떻게 나올지 전부 예상하고 그걸 역이용해오다니.


촌각을 다투는 상황만 아니었다면 기꺼이 박수를 보내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을 것이다.


“저 남자가 묀헨글라트바흐를 잡은 건 우연이 아니었어······.”


*******


“이렇게 수비가 탄탄한 팀은 오랜만에 보는군!”


하일랜드의 딩월시, 하이 스트리트, 맥도넬의 작은 펍.


크레이그 던컨은 결국 참지 못하여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이거야 원. 도무지 골을 먹을 것 같은 느낌이 안 들 정도야! 저 수비수는 대체 누군가? 혼자서 공중볼이란 공중볼은 죄다 막아내고 있군그래.”


“폰투스 얀손이란 선수입니다, 어르신. 이번에 영입한 스웨덴 선수인데 오자마자 적응 기간도 없이 잘해주고 있죠. 저번에 셀틱과 했을 때도 대단한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고요.”


“셀틱? 그래, 셀틱과 저번에 비겼다고 했었지? 그때도 좋은 활약을 했었나 보군.”


“아쉽게 비겼죠. 그때는 주전 몇몇이 나오지 못하기도 했었습니다. 아마 다음에 붙으면 우리가 이길 겁니다!”


그리고 조지 맥도넬이 신나게 옆에서 거들어주고 있었다.


“오늘 서로 초면일 텐데 벌써 오래된 사이처럼 죽이 잘 맞는군. 역시 어르신을 이쪽으로 모셔오길 잘했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케니 풀러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예상대로 노인은 맥도넬과 풀러가 그랬던 것처럼 로스 카운티의 경기를 접하면서 잔뜩 몰입해 있는 모습이었다.


폰투스 얀손에게는 제대로 매료된 듯하고 말이다.


[잘츠부르크가 이른 시간에 변화를 시도합니다. 나비 케이타와 크리스티안 슈베글러를 불러들이고 마르첼 자비처와 피터 안커센 선수를 투입하는군요.]


[4-4-2로 전환하려는 모양이네요. 오늘 케이타를 내세운 4-2-3-1이 큰 재미를 못 봤기 때문에 공격수로 바꿔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커센은 풀백이지만 오버래핑에 능한 선수죠. 상당히 공격적인 교체입니다.]


“후반 60분이 되도록 성과가 없으니 결국 칼을 빼 드는군.”


“그래봤자 얀손과 보이드를 뚫을 수 없어. 오늘 수비진 폼은 완전 최고야.”


해리 윌슨의 말에 맥도넬이 자신 있게 대꾸했다.


“우리 팀 감독이 저런 빤한 수법에 호락호락 당해줄 위인도 아니고 말이지.”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로스 카운티 쪽에서도 그에 대응한다는 듯이 교체가 이루어졌다. 에드빈 데 루어를 불러들이고 잭 마틴 투입.


나비 케이타가 빠지고 4-4-2로 바꾼 걸 보자마자 중앙의 블랜차드를 다시 레프트윙으로 배치한 기존 4-4-2 형태로 돌아온 것이다.


“드디어 잭 마틴이 나오는군! 저 선수도 주목하셔야 합니다. 우리 팀에서 리그 득점왕 경쟁을 하고 있는 선수인데 정말 기막히게 골을 잘 넣거든요!”


“오오, 그런가?”


굳이 얘기를 꺼내지 않아도 이미 던컨은 데 루어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필드에 들어서는 9번 선수를 관심 어린 눈길로 보고 있었다.


[잘츠부르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공격에 비중이 쏠리면서 내내 신경 쓰고 있던 캐리가 다시 자유로워지고 있는 느낌인데요. 이 시점에서 캐리가 풀려나는 게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 것 같습니다. 마침 캐리가 반대편으로 크게 열어주는군요. 볼을 잡는 소피앙 부팔.]


그리고 맥도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장면이 벌어졌다.


[부팔. 그대로 한 명을 돌파합니다! 부팔! 여전히 부팔의 볼!]


“어엇?”


우측 끝자락 깊숙한 진영에서 패스를 받은 부팔이 앞을 가로막는 울머의 다리 사이로 볼을 빼내더니 뒤이어 달려드는 수비의 발까지 날렵하게 피하면서 박스 안에 들어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두 명이 무너져 내린 잘츠부르크의 진영은 슈팅 각이 훤히 드러난 상태.


“날려!”


맥도넬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부팔의 슈팅이 낮게 깔려 날아갔고, 볼은 오른쪽 골대를 맞으며 나왔다.


철썩 -


그리고 튕겨 나온 볼의 경로를 귀신같이 예측하고 찾아 들어간 잭 마틴이 가벼운 동작으로 그물 안에 밀어 넣고 있었다.


“골이다! 역시 잭 마틴!”


맥도넬은 만세를 부르며 던컨을 쳐다보았다.


“이겁니다, 어르신! 이거예요! 이게 잭 마틴입니다! 어르신도 계속 경기를 보시면 이 선수에게 빠져들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 그렇구먼!”


노인은 이미 흠뻑 빠져든 얼굴이었다. 방금은 부팔의 능력이 돋보인 장면이긴 했으나 교체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상대의 희망을 냉철히 부숴버리는 쐐기 골은 정말이지 인상 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가 투입되기 전까지 골문을 제대로 겨냥하지 못하고 두어 번의 좋은 찬스를 날려 먹은 딩월과 대조해본다면 더더욱 말이다.


[마시모 브루노가 준비하는데요. 일산커를 빼나요? 중앙 미드필더를 빼고 더 공격적인 미드필더를 투입하는 잘츠부르크. 이제 세 골을 넣어야 조별 순위 싸움을 계속 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어떻게든 강수를 두어야 하는 처지입니다.]


교체를 기다리는 어두운 표정의 브루노와 그 옆에서 더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리고 있는 아돌프 휘터 감독의 모습이 비친 TV 화면은 지금 로스 카운티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뚜렷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동시에 로스 카운티 쪽에서는 대런 케틀웰이 나옵니다. 이제 점수를 굳힐 생각인 것 같네요. 캐리가 관중석에 박수를 보내면서 천천히 걸어 나옵니다. 급할 게 없다는 거죠. 매섭게 야유를 퍼붓는 잘츠부르크 관중들.]


“십 분······. 이제 십 분만 버티면 진출이야!”


맥도넬은 두 손을 깍지 낀 채 기도하는 자세로 경기를 지켜보았다. 승기가 많이 기울어지기는 했지만 축구에서는 일분일초라도 방심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브루노의 크로스. 얀손이 클리어. 다시 크로스. 이번엔 브라운 키퍼가 안전하게 잡아냅니다.]


“제발!”


[로스 카운티의 마지막 교체는 대니 패터슨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에이든 딩월이 나오는군요. 수비를 강화하려는 목적이겠죠? 남은 시간은 이제 오 분.]


그리고 이탈리안 감독 또한 그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로스 카운티 선수들! 추가 시간이 지나가고 주심이 시계를 보기 시작합니다!]


“다 끝나간다, 버텨!”


[경기 종료! 로스 카운티가 죽음의 I조에서 다음 라운드 진출에 성공합니다!]


“좋았어어어어!”


“해냈다아아아!”


주심의 휘슬 소리가 울리자마자 맥도넬과 풀러가 환호성을 내질렀고, 그걸 시작으로 펍에 있던 인원들이 그 파티에 동참했다.


“32강! 역사상 처음 진출한 시즌에 32강! 와하하! 세상에!”


“미쳤어, 이건! 사실 난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난 오늘 처음 봤지만, 자네들이 환호하는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해!”


맥도넬의 친구들과 오늘 합석한 던컨을 비롯하여 몇몇 젊은 손님들까지. 고작해야 열 명도 안 되는 극소수의 인원이었지만 그들이 내뱉는 기쁨 섞인 합창은 하이 스트리트를 전부 뜨겁게 달구고도 남았다.


지금 이 순간에 작은 펍을 지나치는 행인들이 한 번씩 발걸음을 멈출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곧 얼마 안 되어 미디어에서는 더 화끈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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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드불 잘츠부르크 0 : 2 로스 카운티 >

리차드 브리튼(38‘)

잭 마틴(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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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의 I조에서 기어이는 엄청난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추첨 결과 당시만 해도 유력 후보로 꼽혔던 올림피아코스와 잘츠부르크가 전부 탈락한 것이죠. 생테티엔, 로스 카운티가 진출할 거라 예상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


[ 수많은 도박사들이 아마 뒷목을 잡았을 겁니다.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거든요. 특히 로스 카운티는 초반에 3무를 기록하면서 전문가들 역시 유럽 대항전에 처음 진출한 팀이라 어려울 거란 전망을 내놓았죠. 근데 올림피아코스와 잘츠부르크를 연달아 이기면서 역전에 성공해냈습니다. ]


[ 물론 진출 유력 후보였던 두 팀이 예상외로 많이 부진했기는 합니다만. 그럼에도 찬사를 받아 마땅한 결과물이라고 생각되네요. 정말 대단합니다. ]


스포츠 뉴스를 비롯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로스 카운티의 유로파 리그 32강 진출을 중점적으로 다뤘고, 전문 분석 프로그램 Scottish Football Day에서도 잘츠부르크를 어떻게 잡아냈는지 열띤 토론이 이루어졌다.


[ 캐리의 움직임을 보세요. 그는 얼핏 보기에 빌드업의 중심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상 로스 카운티의 전진을 이끌어 내는 건 오른쪽 라인입니다. 잘츠부르크가 캐리 쪽을 파고들수록 반대편 공간이 훤히 열리고 있죠? ]


[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완벽하게 의도된 플레이라고 할 수 있죠. 발생한 공간으로 델샤드가 서서히 올라가면서 월리스에게 패스 요청을 합니다. 동시에 부팔은 뒤쪽으로 빠질 준비를 하고 있죠. 울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리고 단 두 번의 로빙패스가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게 되고 로스 카운티가 득점에 성공하죠. ]


하지만 가장 떠들썩한 건 소피앙 부팔이 보여준 환상적인 퍼포먼스일 것이다.


부팔은 잘츠부르크전에서 두 개의 어시스트로 승리를 견인하며 MOM에까지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경기가 끝난 후 안토니오 델 레오네 감독 역시 인터뷰를 통하여 거론하는 걸 잊지 않았다.


“부팔이 보여준 활약에 기쁩니다. 우리가 영입하면서 기대했던 모습이기도 하죠. 중요한 일전에서 그는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특히 그가 후반에 보여준 개인 능력은 이날 경기를 시청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우측면을 허물어뜨리고 잭 마틴의 득점을 이끌어냈던 그 장면.


물론 부팔의 드리블은 로스 카운티에 합류한 이후 내내 주목받아온 부분이었지만 잘츠부르크 정도 되는 팀을 상대로 이만큼 맹활약을 해내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로스 카운티처럼 작은 시골 팀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기도 했고 말이다.


*******


그리고 스코티시 컵.


작년 로스 카운티가 셀틱을 꺾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그 대회 주간이 다시 찾아왔다.


상대는 3부 리그의 피터헤드(Peterhead)로 잘츠부르크 등 그동안 만났던 팀들에 비하면 수월한 상대라 해도 무방할 수준이다.


단지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로스 카운티는 치열한 유럽 대항전 이후 삼일 뒤에 바로 치러야 할 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주전에게 대부분 휴식을 부여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를 얻은 셈이다.


그런데 확인한 라인업은 약간 더 특이했다.



< Scottish Cup 4 Round >

로스 카운티 : 피터헤드

2014년 11월 30일 (일) 15:00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4,891명)



[로스 카운티 / 4-4-2]

FW : 필립 로스 / 잭 마틴

MF : 에드빈 데 루어 / 맷슨 클락 / 대런 케틀웰 / 앤드류 톰슨

DF : 고든 스미스 / 대니 패터슨 / 스티브 샌더스 / 딜런 갈브레이스

GK : 데이비드 밀스



감독이 선발 보장을 약속했던 여섯 명.


필립 로스, 맷슨 클락, 앤드류 톰슨, 고든 스미스, 스티브 샌더스, 데이비드 밀스.


거기에 새로운 얼굴이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딜런 갈브레이스(Dylan Galbraith). 작년 프리시즌 기간에 몇 번 얼굴을 비추고 정규 리그에서는 명단에 들지도 못하다가 2부 리그 팀인 던펌린 애슬래틱으로 임대를 갔었다.


다른 이들에 비해 워낙 주목도가 떨어져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 선수 또한 엄연히 1군과의 연습 시합 이후 감독의 눈에 들어 콜업된 여섯 명 중 하나였다. 다섯 명이 주전으로 도약하여 날아다니는 동안 잊혀 있었을 뿐.


본래는 선수 생활의 처음을 풀백으로 시작했다가 윙으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그날 연습 시합에서 앤드류 톰슨과 후반전에 위치를 바꾸어 뛰었고, 이후에는 다시 풀백으로 정착해서 뛰어왔다.


그리고 그 부분에는 감독의 입김이 작용했었다.


“상대가 코앞까지 달려들어도 허둥대는 법이 없더군. 어린 선수가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 침착해. 그게 저 녀석의 최고 장점이지. 물론 아직 발전해야 할 부분은 많아. 당장 본무대에 올려놓는 건 위험 부담이 클 거야. 하지만 경험만 잘 쌓는다면 나름 기대해 볼 만한 재능이라고 보고 있네. 우선은 한 단계 낮은 수준의 팀에 가서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지.”


작년에 스튜어트가 들었던 갈브레이스의 평가였다.


던펌린 애슬래틱은 아쉽게 승격에 실패하고 말았지만, 그 어린 선수는 주전을 꿰차며 성공적인 임대 생활을 보내고 돌아왔다.


그리고 감독은 마침내 스코티시 컵을 앞두고 시험해 볼 좋은 기회라며 주저 없이 라인업에 넣었다.


비록 3부 리그 약체팀이지만 혹여 패배하게 되면 탈락하여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나름 작년 우승팀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고 스코티시 컵 2연패 달성을 이루고 싶은 욕심도 날 법 한데. 여느 때와 그렇듯이 이탈리안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컵 대회에서는 주전을 채워서 나가도 발목을 잡혀버리는 경우가 간혹 있지 않은가? 그런 점을 생각하면 이건 좀 많이 부실해 보이는 라인업이었다.


패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


‘그······ 그냥 압도하고 있잖아.’


스튜어트는 그의 생각이 다시 한번 틀렸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로스 카운티가 열 번이 족히 넘는 슈팅을 할 동안 피터헤드는 고작 한 번의 슈팅밖에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두 골을 앞서있기도 하고 말이다.


선제골은 앤드류 톰슨의 긴 크로스가 먼 포스트까지 넘어가며 쇄도하는 에드빈 데 루어의 머리를 맞추면서 들어갔고, 이후엔 오버래핑해 올라간 고든 스미스의 땅볼 크로스를 받은 잭 마틴의 깔끔한 마무리로 추가 골이 들어갔다.


상대 팀의 공격진은 샌더스와 패터슨에게 틀어 막혀서 기를 펴지도 못하고 있었다.


“피터헤드는 지금 3부 리그에서도 힘겨운 강등권 싸움을 하고 있지.”


감독이 말했다.


“성적이 하락세를 타고 있어 분위기가 상당히 좋지 않아. 심지어 주전 선수 두 명이 부상으로 나오지 못한다는 정보까지 입수했고 말이야. 그 정도면 이 어린 친구들로 구성된 우리 팀이 능히 싸워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지.”


“······.”


“그러니 불안한 표정은 그만 지어도 된다네, 닐. 선수들도 지금 잘 뛰어주고 있잖나?”


“······예, 그렇네요.”


전부 읽히고 있던 모양이었다. 스튜어트는 미소를 짓고 있는 감독에게 웃음으로 화답해 보이고는 화끈해진 뺨을 손으로 비벼대며 경기에 다시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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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2 : 0 피터헤드 >

에드빈 데 루어(17‘)

잭 마틴(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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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제 12시엔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어쩌다보니 넘겨버리고 말아 더 다듬어서 올리게 되었습니다.

항상 좋게 봐주셔서 기쁜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비록 늦고 있지만 올린 것들이 결국엔 다 이곳에 기록으로 남아

한뭉치의 이야기로 쌓여나간다는 생각을 하며 차분히 쓰고 있습니다.

물론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프준 님

이풍 님

피리911 님

aza 님

늦기만 하는 글을 믿고 이렇게 후원을 보내주셔서 

모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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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 202. 공간 싸움 (3) +5 24.03.18 402 31 25쪽
201 201. 공간 싸움 (2) +11 24.02.27 592 38 31쪽
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02 36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46 32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800 34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775 42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32 37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21 39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28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86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4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9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2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37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8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36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62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4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192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7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47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40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5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39 50 27쪽
178 178. 승부욕의 화신 +3 23.04.22 1,267 5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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