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이야기 : 낯선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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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ov
작품등록일 :
2017.12.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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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8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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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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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임시방편

DUMMY

“그래서 제가 누차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폴 몽고메리 수석 스카우트의 말이었다.


“우리 팀은 선수층이 두껍지가 못해서 일정을 거듭할수록 점점 힘겨워질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는 거의 다그치듯 의견을 피력 중이었고, 그 앞에 앉아 있는 감독은 깍지 낀 손을 책상에 올려놓은 채 얘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후반기에 안정적인 운영을 하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보강을 한 다음에 시즌을 들어갔어야 했습니다. 그랬다면 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것을······.”


어제 있던 셀틱전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치를 충족해주었던 시합이었다.


양 팀의 퍼포먼스는 훌륭했고, 서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으며, 후반에 나왔던 전술 변화나 선수들의 투지로 인한 역전극 등 볼거리 또한 많았기에 프리미어십 무대에서 잘 나오기 힘든 수준의 경기로 평가받고 있었다.


장소가 셀틱 파크였어도 전 좌석 매진이 가능했을 거라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면 더 말할 것도 없다는 소리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3 : 3 무승부로 마무리, 서로 승점 1점을 나눠 가지면서 끝내 셀틱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한 로스 카운티로서는 득보다 실이 더 많았던 경기이기도 했다.


전통 깊은 스코티시 왕위를 찬탈할 수 있는 거리까지 겨우 두 발자국만 남겨둘 수 있던 절호의 기회를 놓친 지금, 여전히 두 팀의 간격은 5점이고, 추월하려면 최소한 두 경기는 필요해져 버린 상황.


문제는 그 정도의 타격을 잊게 할 만한 출혈이 다른 부분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심상찮은 것도 그 까닭이었다.


“아시겠지만 우리 팀 중앙은 캐리나 브리튼, 둘 중 한 명만 빠져도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대체할 수 있는 자원이 후보군에 아예 없으니까요. 그리고 이 상황은 어떤 식으로든 찾아올 예정이었고.”


여전히 대답이 없는 이탈리안은 무언가의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이제껏 커리어의 대부분을 잘 뛰지도 않아 왔던 선수가 갑작스럽게 운동량을 늘리고 많은 역할을 소화했습니다.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지요. 결국엔 무리가 올 수밖에 없다는 걸 감독님도 짐작하지 않으셨습니까?”


교체 당시에 약간의 절뚝거림은 있었어도 분명 제 발로 걸어 나왔기에 아무도 그에게 문제가 생겼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훈련 도중 알렉산더 캐리는 잔디에 주저앉으며 고통을 호소했고, 급히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본 결과, 발목 상태가 많이 악화되어 있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다.


결정적인 원인은 로스 카운티가 역전 골을 넣기 직전, 스콧 브라운이 과격하게 들어갔던 태클 때문이었겠지만 그걸 가지고 마냥 탓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단지 셀틱의 선수로서 본분을 다했던 것이고, 축구판에서 이런 충돌로 인한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발목 상태를 보았을 때 그저 언젠가 터졌을 것이 좀 더 일찍 앞당겨졌을 뿐이었다.


빅토리아 파크에 암운을 드리우는 판정이 내려진 이후 선수단의 최종 결정권자가 택해야 할 두 가지는 이대로 부상을 참아내며 시즌을 마무리한 뒤 대수술에 들어가는 것과 지금 당장 팀에서 제외하더라도 수술대에 올리는 것이었다.


물론 둘 다 만족스러운 선택지는 아니다. 그래도 결정을 내려야만 했고, 짧은 고민의 시간을 거쳐 캐리는 끝내 부상자 명단에 등록되었다.


“하필 이럴 때······.”


몽고메리는 오른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환장할 노릇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순위 경쟁 싸움을 해나가야 할 시기인데. 하일랜드 지역의 작은 마을을 연고로 한 팀이 셀틱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역대급 사건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순간인데.


하필 이럴 때 핵심 선수의 이탈이라니.


“저번에 그리스 원정을 갔다 온 후 피로 누적 진단을 받았을 때, 그걸 경고 신호로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그때부터 관리를 철저하게 했으면······.”


하지만 다시 말을 흐리고 말았다.


사실 캐리를 관리하는 데에 있어서 소홀한 적은 없었다. 후반이 되면 교체하여 체력 안배를 꼬박꼬박 해주었고, 일정이 빡빡할 때는 몇 번의 경기에서 선발을 빼주기도 했다.


심지어 칼레 시슬과의 중대한 라이벌 경기를 앞두고서도 피로 누적으로 인한 부상이 우려되자 즉시 출전 명단에서 이름을 지우고 휴식을 부여해 줄 정도였다. 이 이상 더 철저하게 관리할 수가 있었을까.


“이래서 미드필더를 추가로 영입했어야 했는데.”


몽고메리가 말했다.


“캐리와 브리튼만 가지고 한 시즌을 통째로 버티려 했던 것부터 잘못된 방향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유럽 대항전도 병행 중이지 않습니까? 아무도 영입하지 않고 그대로 간 바람에 이 사달이 나버린 겁니다.”


“어느 정도는 그 말씀에 동의합니다만.”


침묵을 지키던 감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확신이 드는 매물이 아니라면 영입하지 않겠다는 제 방침을 고칠 생각은 없습니다. 그 포지션이 중앙 미드필더라면 더더욱.”


“대체 그렇게까지 고집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중앙은 팀의 척추이자 메인 시스템입니다. 미드필더의 구성만 보아도 그 팀이 어떤 축구를 하려는 건지 얼추 파악할 수 있죠. 그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간단하게 다루고 끝낼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관점 말이죠?”


“시즌 레이스를 거듭할수록 점점 많은 이들이 로스 카운티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집중 분석 대상이 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일 터.”


그가 계속 말했다.


“이제 상대 팀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3선 미드필더를 빌드업 단계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해옵니다. 알렉산더 캐리의 발에서 시작되는 전개를 가만히 두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당장 이번에 만난 셀틱이 그랬고, 하위권 팀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칼레 시슬의 경우 더 치밀한 계획으로 승리를 앗아가기까지 했고요.”


“······.”


“유럽 대항전에서는 잘츠부르크가 얼마나 노골적으로 캐리에게 달려들었었는지 몽고메리 씨께서도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뭐······. 기억하고는 있습니다만.”


스카우트 팀장이 볼을 긁적이며 대답하자 이탈리안은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이 팀의 시스템은 이제 모두가 인식하고 있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로스 카운티를 짓밟을 수 있을까 연구 중인 이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그 시스템의 중추에 문제가 발생해버렸죠.”


미소를 짓던 얼굴이 순간 날카롭게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결과가 불 보듯 빤하지 않겠습니까?”


로스 카운티 시스템의 핵심, 알렉산더 캐리를 제압하기 위한 방법들이 끊임없이 제시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어설픈 대체자 하나를 투입해 수습하려는 건 그저 굶주린 야수들 앞에 자신의 몸을 순순히 내어주는 꼴이다.


캐리가 수행하던 역할을 확실하게 이어받지 못할 거라면 현재 시스템을 고수할 이유가 없다. 그게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인 듯했다.


“그렇기에 중앙 미드필더를 선별하는 기준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전체적인 시스템을 조직하는 데 기본이 되는 판을 고르는 중요한 작업이니까요.”


“그러면 지금의 방식을 바꾸시겠다는 겁니까?”


감독은 짧게 눈을 감았다가 뜨며 대답했다.


“바꿀 수밖에 없는 것이죠. 정확히 표현한다면.”


“으음······.”


로스 카운티의 위상과 재력으로는 캐리에 버금가는 실력자를 쉽사리 구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얘기를 듣고 보니 제법 수긍이 가는 내용들이었다.


그렇다고 몽고메리 쪽에서 할 말이 전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해는 했습니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스쿼드의 두께입니다. 미드필더의 구성, 다 좋습니다. 근데 그것도 어쨌든 쓸 수 있는 선수가 확보되고 나서의 문제 아니겠습니까? 구성할 수 있는 인원조차 없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일까요?”


“물론이지요. 다만 제가 쳐낸 대상들은 그러한 것들을 전부 고려했음에도 자격 미달이라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셀틱과 경쟁하는 팀이고, 그에 걸맞은 퀄리티를 갖춘 선수가 필요합니다. 어중간한 자원은 차라리 없는 것이 낫습니다.”


“그거야 이상적으로는 그렇죠. 허나 매번 좋은 형편만을 바라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현실적으로도 괜찮은 대안이 있는지 찾아봐야죠. 저는 어중간한 자원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 또한 전부 염두에 두었던 사항들입니다. 현실적인 대안으로 놓고 봐도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인물은 없었습니다. 그런 자원들을 늘려봐야 스쿼드의 무게만 쓸데없이 불어날 뿐이죠.”


“그런 자원들도 지금 로스 카운티의 백업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말씀에는 동의할 수가 없군요. 우리 팀에 있는 선수들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제의 경기를 방불케 하는 뜨거운 논쟁이 반복되면서도 둘은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작년을 생각해 보시죠. 에릭 시코스가 큰 부상으로 두 달간 뛰지 못했을 때 그를 대신하여 내세울 라이트백이 아무도 없었잖습니까? 그래서 감독님은 중앙에서만 뛰었던 대니 패터슨을 오른쪽에 세웠죠. 결과는 좋다고 할 수 없었고요. 그저 악화되는 상황만 간신히 틀어막았을 뿐이니까요. 그런 상황이 다시 되풀이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당시에는 말 그대로 라이트백 자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요. 캐리를 대신하여 뛸 수 있는 3선 미드필더가 존재합니다. 몽고메리 씨께서 어떤 우려를 하고 계신지는 알겠으나 우리 팀의 기존 선수들이 그렇게 못 미더워할 정도는 아닙니다.”


‘이런 고집불통 같으니!’


몽고메리는 순간 속마음을 내뱉을 뻔했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고집을 부리려 하다니. 가만 보면 이 괴짜 외국인은 예의가 반듯한 사람 같으면서도 은근히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면이 있다. 아니면 뭔가 그럴만한 확신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의도는 알만하다. 저 감독이 정말로 지금 로스 카운티의 선수들을 제시했던 매물들보다 나은 수준이라고 여기는 건 아닐 것이다.


다만 확연히 차이 나는 게 아니라면 굳이 지출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다. 몽고메리는 지출을 해서라도 스쿼드를 더 두텁게 만들 필요성을 느끼는 중이고 말이다.


결국 이 끝이 보이지 않는 갑론을박에서 합의점을 보려면 지독히도 눈 높은 이탈리안을 만족시킬만한 대상을 제시하는 방법 외엔 없을 것이다.


“좋습니다. 좋아요.”


몽고메리는 천천히 양 손바닥을 내보였다.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본래 자신이 감독실에 찾아온 용건을 본격적으로 말하고자 하기 위함이었다.


“다 지난 일에 열을 내서 뭐하겠습니까. 감독님이 그토록 완강하시니 저도 더 얘기를 꺼내지 않겠습니다. 제가 오늘 찾아온 건 실은 다른 목적이 있어서입니다.”


단지 캐리의 느닷없는 부상 소식을 듣고 흥분한 나머지 잠깐 다른 길로 샜을 뿐이다.


“말씀하신 기준치를 만족시키는 매물은 겨울 시장에서 구할 수 없을 겁니다. 한창 시즌 레이스를 달려야 하는 이 시기에 어떤 구단이 선뜻 그 정도의 핵심 전력을 내주겠습니까? 나머지는 전부 감독님께서 낙제시켰고 말입니다.”


감독은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중앙 미드필더 자리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지금부터 당장 내년의 계획을 세워둘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꼭 눈여겨보셔야 할 선수가 있습니다. 단언컨대 이번에는 쳐내실 수 없을 겁니다. 그만큼 자신할 수 있지요.”


“호오, 기대되는군요.”


“그 선수는 다음 상대인 세인트 미렌과 경기할 때 주목하시게 될 겁니다.”


긍정적인 반응에 몽고메리는 살짝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아직 후반기가 남았긴 해도 5위까지 올라서 있는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작년보다 전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는 그들이 갑자기 왜 위로 도약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이 어린 선수가 팀의 중심이 되면서 시작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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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긴(John McGinn)

포지션 : CM

국적 : 스코틀랜드

소속 : 세인트 미렌

나이 : 21

신장 : 173cm

체중 : 62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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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맥긴이라······.”


이탈리안은 수석 스카우트가 서류 가방에서 꺼낸 파일을 건네받자마자 이름을 되뇌며 조용히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얼굴은 점점 흥미로움으로 번져가고 있었다.


“정말로 이 선수가 세인트 미렌 돌풍의 중심입니까?”


“그렇습니다.”


“고작 스물한 살의 나이에 한 팀을 이끌어 갈 정도면 상당한 재능이겠는데요.”


“열여덟 살의 어린 나이에 데뷔하자마자 주전을 꿰찬 것만으로도 보통 재능이 아니죠. 벌써 삼 년 차에 접어드는 프로 선수입니다.”


“주 역할은 박스 투 박스군요.”


“활동량도 준수하고 다재다능하니까요.”


“그렇다면 우리 팀에 올 경우 장기적으로 브리튼의 후계자가 될 수 있겠군요.”


“맞습니다. 브리튼의 자리를 이어받기에 적격이죠.”


감독은 질문을 잠시 멈췄다가 몽고메리의 눈을 마주 보며 물었다.


“브리튼과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그 이상의 선수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몽고메리는 흔들림 없이 대답했다.


“수비는 감독님이 다루기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공격적인 능력은 분명 브리튼을 능가하는 재능이라고 감히 말씀드리죠. 아니, 몇 년 후에는 여기 프리미어십에서도 감당하기 힘든 선수가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


“흥미롭군요. 정확히 어떤 능력이 우리 팀의 든든한 주장을 능가할 수 있다는 거죠?”


“이 선수는 중앙에서 전진할 수 있는 유니크한 타입입니다.”


스카우트 팀장이 말했다.


“현재 기록된 드리블 성공률이 75%나 되죠. 50%만 넘어도 준수한데 어린 나이의 선수가 70%를 넘었어요. 이것만 해도 유의미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스코티시 팀들이 이 선수를 제어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죠.”


“중앙에서 전진이 가능한 미드필더라면 확실히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겠군요.”


감독은 평소와 다르게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몽고메리는 속에서 미묘하게 터져 나오는 승리감을 억누르며 추가로 몇 장의 CD 케이스를 꺼내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건 제가 최근 존 맥긴을 위주로 편집해 놓았던 영상 자료입니다. 참고하시기에 좋을 겁니다.”


“마침 세인트 미렌을 분석하려고 준비하던 참이었는데 감사히 받도록 하지요.”


“워낙 가지고 있는 무기가 많아서 크게 드러나는 단점이 없다는 게 이 선수의 가장 큰 메리트라 할 수 있죠. 정확히 한 달 전부터 이러한 능력들이 만개하여 두드러지는 중입니다.”


몽고메리는 그렇게 말하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 이 선수를 발견했다면 이렇게 골머리를 앓을 것도 없었을 텐데. 지금이야 몸값이 싼 편이지만 이번 시즌이 끝나면 그 액수가 얼마나 오를지 가늠도 못 하겠군요.”


“가치가 있다면야 가격이 대수겠습니까.”


이미 감독의 눈에 제대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반응은 성공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몽고메리는 여전히 어두운 표정을 풀어낼 수가 없었다.


“그러면 당장은 어떻게 하실 계획입니까?”


이러나저러나 진전된 부분은 아무것도 없다.


세인트 미렌은 적어도 겨울 시장에서 존 맥긴을 판매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여름에도 치솟는 몸값과 달라붙어 올 경쟁자 등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나도 많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하이버니언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익명의 두 스코티시 팀 또한 눈독을 들이고 있다고 했다. 최악의 경우 셀틱 쪽에서도 경쟁에 참전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당장의 난관부터 해결해야 한다.


몽고메리의 레이더망 안에서는 이제 그 정도 선수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미드필더 보강 없이 겨울 시장을 마감하겠다는 의미.


캐리가 부상으로 빠진 이 상황을 감독은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는 걸까?


“이제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봐야지요.”


명쾌한 답을 원했지만, 얻어낼 수 있는 건 없었다.


*******


다음 날 기자 회견장에는 셀틱전을 앞두고 진행했던 컨퍼런스 때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몰린 듯했다.


캐리가 부상당했다는 소식을 한 명이 입수하자마자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모든 언론사의 관심이 그쪽으로 전부 쏠렸기 때문이었다.


감독에게서 직접 그 대답을 듣기 위해, 그리고 그의 반응과 표정을 사진에 담아내기 위해.


“캐리는 발목 상태가 전체적으로 좋지 않아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아마 4월 중순에 돌아올 수 있을 겁니다.”


오우 -


이탈리안의 컨펌에 탄식과 경악의 소리가 회견장을 가득 메웠다.


무려 삼 개월 가량의 결장. 예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그것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알렉산더 캐리의 부상이라니. 이건 앞으로 치를 리그 경기와 우승권 경쟁에도 영향을 끼칠 만큼 위험한 상황이지 않은가?


“그······ 그럼 이번 겨울 시장에서 미드필더를 보강할 계획이신 건가요?”


“추가적으로 보강할 계획은 없습니다.”


“캐리 선수 없이 남은 시즌의 대부분을 치러야 할 텐데요?”


“캐리의 이탈은 뼈아픈 일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훌륭한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해결책을 강구하여 이겨낼 생각입니다.”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기자들의 웅성거림은 더욱 커져 갔다.


심각해 있어야 할 얼굴이 내내 평온해 보이는 거야 저 괴짜 이탈리안의 특성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지금 로스 카운티에서 가장 없어서는 안 될 선수가 시즌 아웃이나 다름없는 부상을 당했는데 보강할 계획도 없고, 현재 있는 스쿼드로만 수습할 생각이라니.


저 능글맞은 감독이 순순히 리그 우승을 포기할 위인은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럼 현재 스쿼드에서 캐리를 대신하여 내세울 선수를 찾아내신 건가요?”


“물론입니다.”


“그게 누구죠?”


감독은 자신에게 끈질긴 질문 공세를 퍼붓는 기자를 한동안 마주 보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그건 저번 셀틱과의 후반전을 보시면 될 겁니다. 저 또한 거기서 힌트를 얻었으니까요.”


*******


< 14-15 Scottish Premiership 22 Round >

로스 카운티 : 세인트 미렌

2015년 1월 17일 (토) 15:00

빅토리아 파크 (관중 수 : 6,235명)



[로스 카운티 / 4-2-3-1]

ST : 에이든 딩월

AM : 제임스 블랜차드 / 에드빈 데 루어 / 앤드류 톰슨

CM : 대런 케틀웰 / 리차드 브리튼

DF : 리 월리스 / 폰투스 얀손 / 스콧 보이드 / 아메드 델샤드

GK : 마크 브라운



셀틱전에서 달구어졌던 열기가 미처 가시지 않은 건지, 아니면 2주간의 휴식기 동안 경기를 못 본 탓에 갈증이 심해져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인트 미렌과의 시합에서도 빅토리아 파크에 몰린 관중은 6천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시간 없어! 빨리 공격해!”


조지 맥도넬은 그가 운영하는 펍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경기를 보고 있었지만 말이다.


“젠장! 여기서도 비기면 정말 안 된다고! 셀틱 놈들은 또 이겼단 말이야!”


그는 맥주가 넘쳐 바닥에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 않으며 잔을 거칠게 흔들어대었다.


후반 70분이 되어가는 시간, 스코어는 1 : 1


분명 혼전 상황에서 밖으로 빠져나온 볼을 브리튼이 중거리 골로 만들어낼 때까지만 해도 좋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전반이 종료되기 직전 한 선수의 저돌적인 돌파로 중앙이 한순간에 무너졌고, 수비진이 전부 그에게로 신경이 쏠린 사이 침투해 들어간 공격수를 완전히 놓쳐버리면서 실점.


후반전부터는 계속 답답한 경기만 지속되고 있다.


[존 맥긴, 다시 한번 제칩니다. 거침이 없습니다. 스루패스를 시도하지만 이번에는 브리튼 선수가 차단해냅니다.]


“저 쬐그만 놈은 뭔데 저렇게 날렵한 거야?”


답답한 경기의 원흉은 대런 케틀웰이 계속 맥긴이라는 선수에게 시달리면서 완전히 중앙을 먹혀버린 게 클 것이다.


“계속 저 선수만 돋보이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아냐, 해리. 내 눈에도 그렇게 보여.”


해리 윌슨의 말에 대답하며 맥도넬은 TV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케틀웰의 수비 능력만큼은 로스 카운티 내에서도 상위권이다. 결코 호락호락한 수준이 아닌데 그런 그를 장난감 다루듯이 농락하는 저 선수는 대체 뭘까.


“저런 선수가 로스 카운티에도 있으면 좋을 텐데.”


맥도넬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로스 카운티에서 교체 카드를 꺼냅니다. 맷슨 클락을 투입하려는 것 같네요.]


교체 판에 표시된 숫자는 18번, 결국 내내 휘둘렸던 케틀웰을 불러들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어 두 번째 교체는 제임스 블랜차드군요. 그를 대신해 소피앙 부팔이 들어갑니다.]


“블랜차드를 뺀다고? 또?”


이번에는 케니 풀러 쪽이었다.


“아니, 블랜차드 같은 선수는 남겨두는 게 맞지 않아? 득점이 필요한 상황일수록 그의 해결사 능력이 필요할 것 같은데?”


“거기에 부팔은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으로 나오는 거 같아. 대체 왜지?”


두 열성적인 팬들의 아우성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는 건 윌슨뿐이었다.


“감독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지. 진정하고 가만히 지켜보자고.”


“이제 15분도 채 안 남았는데 어떻게 진정해?”


“이건 조지 말이 맞아. 이번에 비기면 승점 차이가 무려 7점까지 벌어진다고!”


그러는 중에도 경기는 계속 흘러갔고, 80분이 넘어가자 불평은 더욱 커지기 시작했다.


“이거 봐. 블랜차드가 빠지면서 제공권을 다 잃었잖아. 그가 좌측에서 공중볼은 죄다 따주었었는데 말이야. 이것만 해도 지금 손해가 막심한 거라고.”


“블랜차드를 뺀 건 실수였어. 난 델 레오네 감독을 정말 좋아하지만 이번엔 그가 판단을 잘못한 거야. 부팔도 왼쪽에서 뛰니까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기만 하고.”


“오늘은 잭 마틴도 투입할 기미가 없고, 이래서 득점할 선수가 있기나 하겠냐고.”


“제기랄, 케니. 이번에도 못 이기면 난 적어도 이틀간은 불면증에 시달리고 말 거야.”


이제는 거의 우는소리를 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세인트 미렌의 공격, 왼발로 붙인 크로스가 브라운 키퍼에게 잡힙니다. 그리고 길게 측면으로 던져줍니다. 빠른 역습! 월리스가 한 명을 떨쳐내고 단독 질주를 하고 있습니다. 중앙선을 넘어서 에드빈 데 루어에게!]


월리스의 패스를 받은 데 루어는 상대 수비가 달라붙기 전에 도로 돌려주면서 완전하게 측면을 열어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진행되자 맥도넬과 풀러는 투덜거림을 멈추고 숨죽이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월리스, 계속해서 올라갑니다. 상대 수비가 아직 정돈되지 않았는데요. 부팔에게 전달하는 패스.]


“어?”


둘 중 침묵을 먼저 깨뜨린 건 맥도넬이었다. 볼을 주고 박스 안으로 침투하는 월리스를 수비수가 의식하는 틈에 부팔이 그와 반대되는 오른쪽으로 직접 볼을 드리블하고 있었다.


[부팔, 왼발로 접고, 한 번 더 옆으로 접고!]


“어어?”


[오른발 슈팅! 고오올! 들어갔습니다! 역전 골입니다! 믿을 수 없는 역전 골이 부팔의 발에서 마법처럼 일어났습니다!]


“아아아아악!”


“부파아아아알!”


그리고 두 투정꾼들은 세인트 미렌의 골문이 흔들리는 걸 보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왼발과 오른발을 이용하여 두 명의 수비를 벗겨내더니 오른발로 우측 상단 구석에 강력히 꽂아 넣는 마무리. 리플레이로 다시 확인해도 믿기지 않는 장면이었다.


중계 화면 속 팀원들도 마찬가지로 놀랐는지 키퍼까지 달려와서 그를 거칠게 껴안으며 축하해주고 있었다.


“부팔 저 선수는 진짜 대단하다니까! 임대인 게 너무 아쉬운데. 그가 내년에도 우리 팀에서 뛸 리는 없겠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젠장, 어떡하지? 너무 흥분돼서 한동안 잠자리에 들 수 있을지가 걱정이야.”


“자네, 분명 경기에서 지면 불면증에 시달릴 거라 했잖아? 이겨도 결국 똑같은 거 아니야?”


“알 게 뭐야. 그냥 이 순간을 즐기자고!”


“그러니까.”


한창 흥이 오른 둘에게 찬물을 끼얹는 한 마디가 들려왔다.


“내가 진정하고 지켜보자고 했지?”


윌슨의 일침에 맥도넬과 풀러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멋쩍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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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 카운티 2 : 1 세인트 미렌 >

리차드 브리튼(19‘)

소피앙 부팔(85‘)

+++++++++++++++++++++++++++++

케니 맥린(43‘)


=============================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늦은 것에는 정말 어떻게 드릴 말씀이 없네요..

이런 글쟁이가 쓴 글을 매번 기다려주시고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께는 정말 무한한 감사와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격려해주시는 분들의 한 마디도 전부 잊지 않고 있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한분 한분 덕에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다들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언제나 감사드리고 죄송합니다. (_ _)


소중한 후원금을 보내주신

이풍 님

언제나 감사드립니다. (_ _)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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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200. 공간 싸움 +6 24.02.06 701 36 26쪽
199 199. 대립 +5 24.01.25 745 32 26쪽
198 198. 대면 +5 24.01.14 799 34 25쪽
197 197. 팀의 완성도 +8 24.01.04 774 42 24쪽
196 196. 신뢰의 결실 +5 23.12.23 831 37 28쪽
195 195. 한 마리의 송골매 +5 23.12.10 820 39 23쪽
194 194. 두 마리의 사자 (2) +5 23.12.02 828 41 25쪽
193 193. 두 마리의 사자 +4 23.11.22 886 42 25쪽
192 192. 캡틴 잭 +3 23.11.10 847 40 26쪽
191 191. 경기장 위의 숫사슴들 +6 23.10.31 897 35 28쪽
190 190. 계몽의 시대 (3) +3 23.10.20 922 44 23쪽
189 189. 계몽의 시대 (2) +5 23.10.08 937 39 26쪽
188 188. 계몽의 시대 +4 23.09.26 983 42 26쪽
187 187. 새로운 국면 (5) +7 23.09.15 1,035 45 22쪽
186 186. 새로운 국면 (4) +6 23.09.03 1,061 42 25쪽
185 185. 새로운 국면 (3) +8 23.08.19 1,146 45 22쪽
184 184. 새로운 국면 (2) +8 23.08.04 1,192 40 26쪽
183 183. 새로운 국면 +7 23.07.13 1,272 56 22쪽
182 182. 지상 최고의 팀 (4) +8 23.06.28 1,247 50 29쪽
181 181. 지상 최고의 팀 (3) +5 23.06.16 1,140 39 24쪽
180 180. 지상 최고의 팀 (2) +6 23.05.27 1,252 50 24쪽
179 179. 지상 최고의 팀 +5 23.05.07 1,339 50 27쪽
178 178. 승부욕의 화신 +3 23.04.22 1,267 50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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