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차원 코인전쟁-057
모든 것이 연결될 때
“그렇다면 다른 목적으로 비밀 조직이 만들어졌다는 뜻이로군. 자칫 발각될 우려가 있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뜻이고. 어찌 되었든 섣불리 움직이지 않기를 다행이군.”
상부에서도 어떤 조직인지 파악하지 못한 것을 보면 아주 극비리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준비하는 계획도 바꿔야 할지도 몰랐기에 고민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비밀 조직인지는 몰라도 그로 인해 지금 준비하는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일단 어떤 조직인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어쩌면 혼천의 쟁투 때문에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으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주변 상황을 정밀하게 파악하고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변수가 발생한 이상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비밀 조직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사무실로 돌아온 정윤호는 자신이 부리고 있는 자들에게 지시를 내려 검찰 내부 상황을 파악하도록 했다.
지시를 내리고 며칠이 지나지 않아 보고가 들어왔다.
“목적이나 규모는 확인이 됐나?”
-차장 검사의 지휘하에 비밀리에 만들어졌다는 것은 확인했지만 그 이상은 힘듭니다.
“차장 검사에게 사람을 붙여 봤나?”
-감시 요원을 투입했지만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확인한 바로는 검찰총장도 모르는 사안 같습니다.
“정말 검찰총장도 모르는 사안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지만 전 정권의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다. 검찰총장도 모르게 그런 조직을 만들었다면 심상치 않은 일이다.’
“일단 감시를 중단한다. 너도 꼬리를 자르고 잠수해라.”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상황실장은 곧장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인맥을 이용해 검찰의 내부 상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지만 신통치 않았던 터라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철저하게 가려지며 만들어졌다면 보통 조직이 아니다. 우리를 상대하기 위한 조직인 건가? 아니야. 그 검사도 그렇고, 검찰 내부에서도 우리에 대한 것은 한 번도 언급된 적이 없다. 으음, 일이 꼬이는군.”
주시하던 검사가 이번 투자에 가담한 자들을 수사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선을 넘지 않은 상황이다.
가담자들을 조사하다 조직의 실체를 엿보기라도 한다면 제거해야 할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검찰은 조직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더군다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비밀 조직이 움직이고 있는 이상 섣불리 움직일 수는 없었다.
“처리할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고, 언제든지 결행하기만 하면 되니 어떻게 할지는 조금 더 생각해 보자.”
정윤호는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기존에 만들어졌던 조직들과는 확연히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이 신경을 계속해서 자극했기 때문이다.
“검찰 쪽만 파서는 파악하기 어려 울 수도 있다.”
대한민국의 정보가 집중 되는 곳!
정윤호는 청와대에 숨겨 놓았던 수하를 호출하기로 했다.
다시 전화를 건 정윤호는 검찰 내부에 만들어진 비밀 조직에 대한 정보를 확인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노출 시키지 않으려고 애썼던 정보원이었지만 상황이 급해진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원에게서 몇 장의 보고서 날아왔다.
보고서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정부 부처 내에 목적이 불분명한 비밀스러운 조직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 검찰만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새로 부임한 대통령이 이번 국가 위기 사태를 전 정권의 책임으로 몰아가기 위한 칼로 쓰려고 했기 때문에 드러난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정보원도 알 수 없는 정보였다.
정윤호는 곧바로 지시를 내려 정보원이 제공한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일주일 동안 수하들을 시켜 조사를 진행했다.
“후우우! 대통령을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이 있었는데도 내가 놓치고 있었다니 실수했군.”
그렇게 만들어진 한 권의 보고서를 살펴보면서 정윤호는 자신이 실수했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BH의 수상스러운 움직임과 고위급 인사 단행은 레임덕으로 빠져들어 국정을 전환하려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이제라도 파악한 것만 해도 다행이다. 어디!”
숨어있는 의도를 놓쳤다는 자책감은 잠깐이었다.
곧바로 정신을 차린 정윤호는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비밀리에 조직을 만들고 있는 것은 조직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혼천의 쟁투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
“혼천의 쟁투 때문이라면 아직은 괜찮다. 더군다나 전 정권의 실책을 드러내려 한다면 기회일 수도 있다.”
이번 환란의 이면에는 얽혀 있는 것이 많았다.
무가들의 지배를 받는 세력 간의 이해관계는 복잡했다.
검찰에 만들어진 비밀 조직만으로는 이번 환란을 불러온 책임을 묻기가 어려울 것이 분명했다.
“상부에서도 아직 비밀 조직에 대해서 완벽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황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전 정권의 실책을 이어받지 않으려는 현 정부의 의지를 보면 자신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수사를 한 후 가닥을 잡으면 검찰 조직을 확대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다른 조직은 몰라도 검찰의 비밀 조직을 장악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쓸모가 많을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장악할 수만 있다면 세력을 구축할 수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정윤호는 자신의 또 다른 신분을 이용하기로 했다.
비밀 조직의 실체를 확인하고, 장악하기 위해서는 검찰 내부에 자신의 눈과 귀가 되어줄 자들을 심어야 했다.
검찰에 심을 자들은 조직의 인물이어서는 곤란하기에 집안에서 키우는 자들이 필요했다.
집안에서 오랜 세월 동안 검찰 내부에 장학생을 키우고 있다고는 하지만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안과 연을 끊어야겠지만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명분이 생긴 이상 파벌을 떠나 조직의 중심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수족으로 부리려면 유성 그룹의 후계자 자리를 비롯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내 처지로서는 결코 후계자가 되지 못하는 상황인 이상 장학생들을 얻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방법은 찾았으니······.”
조직에 소속된 터라 함부로 움직였다가는 제재를 당할지 모르기에 비선을 심는 일은 쉽게 할 수 없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권한이 확대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당주님을 찾아가 보자.”
정윤호는 조직에 들어올 때 이후로는 보지 못했던 당주를 찾아보기로 했다.
파벌을 이끄는 수뇌 중에 하나로 실권은 없는 사람이지만 자신에게 한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후후후! 빌어먹을 집안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
재벌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서자라는 굴레로 지금까지 온갖 핍박과 견제를 받으며 억눌린 삶을 살아왔던 터였다.
평생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여기던 자신의 집안이 이런 식으로 도약의 발판이 될지 몰랐던 터라 가슴이 뛰었다.
그동안 숨죽이며 조직의 중심부로 편입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자신의 눈앞에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당주가 자신에게 약속한 대로 그곳에 들어가 코드만 승인받을 수 있게 된다면 날개를 달 수 있었다.
코드를 가지게 된다는 것은 회의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비선을 움직일 수 있는 권한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드를 승인받으면 분명히 조직에서도 권한 확대를 승인해 줄 것이기에 정윤호는 곧장 자신의 거처를 나섰다.
자신의 차를 몰고 거처를 떠난 정윤호는 강남으로 갔다.
그곳에 당주가 사는 저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택 앞에 도착한 정윤호는 주차하고 차에 내렸다.
고풍스러운 돌담이 길게 늘어선 저택은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했는데 대문으로 가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십니까?
“ 상황실장입니다. 당주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자 정윤호는 안으로 들어갔다.
기괴한 모양의 자연석이 늘어선 잔디밭을 지나 저택으로 가자 문이 열리며 집사가 나왔다.
정윤호는 집사의 안내로 2층에 있는 서재로 갔다.
당주를 만난 것은 조직에 가입할 때가 마지막이었으니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라 기대가 되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당주가 반갑게 정윤호를 맞았다.
“어서 오게.”
“안녕하셨습니까?”
“나야 별일 없지. 그래, 무슨 일인 가?”
“말씀드릴 일이 있어서 왔습니다.”
“힘없는 늙은이라 전화만 해도 될 것을 이렇게 직접 온 것을 보니 중요한 일 같은데 자리에 앉게.”
“예, 당주님.”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소파에 앉았다.
“전해는 들었네만, 검찰 문제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일단 들어보세.”
“그동안 제가 조사한 바로는······.”
정윤호는 자신이 알아낸 것을 감춘 채 정부에서 IMF 사태를 불러일으킨 이들에 대한 처벌을 위해 검찰 조직을 확대하리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자네의 의견대로 흘러가겠군. 단순하게 그런 상황을 전해주기 위해 여기 온 건 아닐 테고. 자네가 하려는 것이 정확하게 뭔가?”
“이번 기회에 검찰 내에 장학생을 키우고 싶습니다.”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자네 집안처럼 협조할 자들을 검찰 내부에 심으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 말이 맞나?”
“그렇습니다.”
“으음, 자네 의견은 동감하나 그건 쉽지 않은 일이네.”
“쉽지 않다는 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그동안 많은 기회가 있었으나, 잠자코 있었던 것은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네.”
‘비밀 조직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건가?’
정윤호는 당주가 이미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검찰에도 뭔가 있군요?”
“그렇네. 조직에는 미치지 못하나 가진 힘이 만만치가 않네. 섣불리 접근하면 조직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네.”
“혹시?”
“자네 생각이 맞을 거네. 조직이 거느린 자들 못지않은 이들이 검찰 내부에 포진해 있네.”
“으음. 그럴 수가.”
자신도 알아내지 못한 새로운 정보였기에 정윤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간부들도 잘 모르고 있는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이 땅을 지켜온 자들이 검찰 뒤에 있네. 그래서 조직에서도 가만히 있는 거네. 섣불리 움직여 그들이 나서게 되면 그야말로 처절하기 그지없는 전쟁이 벌어지게 될 테니 말이야.”
‘조직에서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자들이라면······.’
지금 들은 말이 사실이라면 확실히 문제가 컸다.
‘상관없다. 내가 심으려는 자들이 발각될 수도 있지만, 그들의 시선은 유성 그룹을 향해 있을 테니까.’
“그렇군요.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심고자 하는 이들은 현직 검찰들이니 말입니다.”
“써먹을 자들을 벌써 섭외해 둔 건가?”
“제 집안에서 오랫동안 길들인 이들 중에서 몇 명 정도 쓰려고 합니다. 그들을 심는다면 문제는 없을 겁니다.”
“자네 집안사람으로 위장해 심자는 것이라면, 유성 그룹에서는 수족을 내주는 것일 텐데······. 으음.”
생각을 이어가던 당주는 정윤호가 검찰에 사람을 심는다는 말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새로운 세상이 찾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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