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페 출입금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취몽객
작품등록일 :
2013.06.06 06:25
최근연재일 :
2018.03.11 22:1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869,307
추천수 :
24,738
글자수 :
404,083

작성
18.01.18 22:44
조회
7,096
추천
261
글자
12쪽

죽음의 신 2

DUMMY

그 말에 귀여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세 여인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절대적 중립으로 신용을 지키는 마켓의 관리자가 준영의 한마디에 반항 한번 없이 정보를 토해 냈다.

“이름 한번 거창하네. 뭐 하는 병신이냐?”

“다른 이름으론 문화의 신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인데?”

준영은 물론, 당화련과 미텔도 못 들어 본 이름인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에스텔라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머뭇거리다 준영에게 고백하듯 말했다.

“저······ 준영? 이거 아무래도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 거 같은데?”

“음?”

준영과 당화련, 미텔의 시선이 모이자 에스텔라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문화의 신은 예의상 부르는 이름이고 우리 업계에선 다른 이름으로 불러. 팬질의 신, 또는 덕후의 신.”

“그건 또 뭐냐?”

한 룰 브레이커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도, 다른 룰 브레이커와 싸우는 것도, 차원을 지키는 것도 관심 없었다.

그가 흥미를 가지고 관심을 가진 건 딱 하나, 다양한 영화, 만화, 소설, 드라마 등등 수없이 많은 작가들이 골머리 싸맨 끝에 탄생한 창작품들을 보고 즐기는 거였다.

그렇게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즐기던 중 가장 좋아하던 문화가 융성한 차원이 다른 차원의 침략을 받아 소멸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막아 보고 싶었으니 미약한 자신의 힘으론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래도 안타까워 막아 보려다 계란에 금이 갔을 뿐이다. 그 죽음의 위기를 겪고 나자 룰 브레이커는 두려워졌다. 룰 브레이커는 불로하나 불사는 아니다.

자신도 언젠가는 죽는다. 하지만 죽게 되면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리고 있는 영화의 2탄은? 재미있게 보고 있던 만화의 결말은? 연재 소설들은? 그 결말을 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이 결국은 룰 브레이커가 스스로 세운 법칙마저 바꿔 버리는 유일무이한 일이 벌어졌다.

“잠깐만. 그러니까 죽기 싫어한 이유가 죽은 다음에 나올 신작이나 후속편 못 보는 게 싫어서라는 거야?”

당화련이 질린 표정으로 묻자 에스텔라도 겸연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불사라······ 그걸 구경만 할 리 없을 텐데?”

준영의 물음에 에스텔라는 난감한 표정으로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내가 이래 봬도 차원계에선 꽤 유명하거든. 그래서 이래저래 들어온 정보가 많아. 일단 팬질의 신, 아니 문화의 신은 1차 차원전쟁 이전의 존재라고 해.”

“세상에! 1차 차원전쟁 이전이면 불통의 시대 이전 아냐?”

미텔이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거품처럼 탄생했다 사라지는 차원계에서 그 뚜렷한 흔적을 남긴 전쟁의 상흔이 바로 불통의 시대다.

“그냥 허풍 아냐?”

당화련의 말에 에스텔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그냥 소문이 그렇다는 거야. 정확한 건 아무도 몰라. 아무튼 준영 말대로 그 문화의 신이 불사라는 소식에 룰 브레이커는 물론이고,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은 모조리 달려들었대. 그런데 갇혀서 해부되고 실험당하고 탈출하면 다른 세력한테 붙잡혀서 똑같은 일을 당하면서 꾸준히 자신을 연구하던 자들을 동지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

“동지? 무슨 팬심으로 대동단결 그런 거?”

“나도 들은 대로 얘기하는 것뿐이니까 나한테 묻지 마. 아무튼 그런 같은 팬심과 덕질로 뭉치니까 더 이상 문화의 신을 함부로 건드리기 힘들 정도로 세력이 커졌고, 그사이 아무리 연구해도 도저히 비밀을 알아낼 수 없는 데다 결정적으로 상아탑의 현자들마저 문화의 신을 죽음마저 지배해 버린 죽음의 신이라는 칭호를 선언하면서 포기해 버리니까 다들 미련을 버렸다고 하더라고.”

“보통 죽음의 신, 그러면 다른 의미 아냐?”

“그런데 말은 되네.”

당화련과 미텔은 어째 요즘 들어 자신들이 알고 있는 문장의 뜻이 참 많이 변한다 싶어 키득거렸다.

“와. 이래서 펜이 칼보다 강하다고 그러는 건가?”

준영의 감탄에 에스텔라는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압축된 용량이 엄청나긴 하지만 뭐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이게 어디 전투 쪽 능력이면 욕심 부리는 놈들이 계속 나오겠지만, 알다시피 그런 쪽이랑은 전혀 관련이 없잖아? 오히려 무해한 데다 문화의 신이 관심 있는 건 오직 팬질, 덕질뿐이라 점차 관심을 잃었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이쪽 업계 사이에서만 알음알음 퍼진 유명인사라는 거지.”

“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대단하다.”

당화련의 말에 준영과 미텔, 에스텔라도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원히 팬질과 덕질을 하기 위해 스스로의 법칙마저 바꿔 버리다니. 진정한 팬이자 덕후로서 팬질의 신, 덕후의 신이라 불릴 만했다.

“그래도 마냥 나쁜 것만은 아냐. 신인 발굴 능력만은 끝내주거든. 문화의 신이 눈여겨본 존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차원계의 스타가 될 수 있을 정도니까. 거기에 슬럼프에 빠지거나 일신상의 이유로 힘들어할 때 힘내라고 끝까지 응원해 주는 등 그야말로 팬질의 신, 덕질의 신이라 불릴 만하거든. 그래서 예의를 담아 문화의 신이라 높여 주는 거고.”

“그런 놈이 왜 날 노린 거야?”

준영의 물음에 에스텔라는 우물거리다 고개를 푹 숙이고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화의 신은 내 팬이기도 하거든. 그것도 신인 시절부터 알아보고 후원도 거하게 해 줬어. 내가 가진 아이템의 절반 정도는 문화의 신이 선물해 준 거야. 차원계엔 별의별 미친놈이 다 있으니까 언제 어디서라도 안전해야 한다면서.”

“그런데?”

“그런데······ 내가 활동을 그만두고 준영의 곁에 붙어 있게 된 거지. 아마 문화의 신은 준영만 없으면 내가 다시 활동할 거라 생각했나 봐. 다만 한 가지 알 수 없는 건 결혼 등의 이유로 은퇴한다고 하면 오히려 그동안 수고했다고 선물을 줄 정도인 문화의 신이 어째서 공개의뢰를 했냐는 거야.”

-아, 그건 제가 압니다.

에스텔라의 의문에 레서판다가 앞발을 살짝 들며 말하자 당화련과 미텔이 다시 귀엽다고 꺅꺅거렸는데, 에스텔라는 뭔가 위화감을 느꼈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준영 님께서 학살자로 활동하시며 워낙 악명을 쌓다 보니 죽음의 신은 에스텔라 형수님께서 준영 님에게 강제로 억류중이라 생각한 거 같습니다.”

“아잉! 형수님이라니!”

“이 너구리 새끼가 지금 뭐라 그런 거야? 아가리에 청산가리를 부어 버릴까 보다!”

“너 남자지? 수컷이지!”

레서판다의 아부 섞인 발언에 에스텔라가 몸을 배배 꼬며 좋아할 때 반대로 레서판다의 귀여움에서 깨어난 당화련과 미텔이 레서판다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폭언을 퍼부었고, 레서판다는 어? 이게 아닌데 싶어 필사적으로 귀여운 몸짓발짓을 하며 상황을 모면해 보려 했으나 이니 늦었다.

“그럼 그놈만 처리하면 끝나는 거네?”

“준영이 나설 필요도 없어. 내가 공개적으로 은퇴 선언하고 우리가 행복한 결혼식을 올리는 모습만 보여 주면 돼.”

“뭐! 누구 맘대로!”

“준영 씨는 내 거야!”

준영은 서로의 머리끄덩이 부여잡고는 네가 먼저 놔라 기 싸움을 시작한 세 여인을 무시한 채 레서판다를 향해 물었다.

“없던 일로 하기엔 지금 내가 꽤 열 받은 상태야. 그놈은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거든. 그저 고용됐을 뿐인 용병단 놈들 족치는 걸론 분이 안 풀려.”

그 말에 레서판다는 즉각 대답했다.

-죽음의 신은 박물관에 있습니다.

“박물관?”

준영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에스텔라가 머리끄덩이를 잡힌 상태에서 고개만 돌려 설명했다.

“문화의 신의 개인 차원이야. 문화의 신이 팬질 덕질하며 모은 컬렉션들을 전시하는 곳이지. 가끔 관광객을 받아서 자기 컬렉션을 자랑도 하고 그래.”

“하긴. 진금화를 천 개나 던질 정도면 부자겠지? 1차 차원전쟁 이전의 인물이라고 했으니까 하루에 한 푼씩만 모아도 그게 얼마야?”

말은 거기서 끝났지만 뜯어먹기 좋겠다는 뒷말이 자동으로 들려오는 준영의 미소에 세 여인은 싸움을 멈췄다.

“하긴. 가지고 있는 아이템도 많겠지?”

“으음 속물적이라기엔 그 가치가······.”

“문화의 신이 전투 능력이 없다고 해서 방심하지 마. 격어 봐야 알겠지만 사람들이 문화의 신의 존재를 쉬쉬하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야.”

에스텔라가 꺼림칙한 표정으로 경고했지만 당화련과 미텔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두 사람이 에스텔라를 부러워하는 것 중 하나가 온몸을 도배하다시피 한 아이템들이었으니까.

준영이야 어떻게 하면 잘 조졌다고 소문날까 고민하는 게 다였다.


* * *


통신이 끝나고 준영과 세 여인이 골방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라지자 PC방엔 다시 정적만이 흘렀다. 석호는 골방 문을 지그시 바라보며 헬멧을 벗고는 갸웃거렸다.

“이 양반이 뭔 짓을 했기에 한마디도 안 들린 거야? 고깃덩어리들 반응은 또 왜 저래? 궁금하게. 이쁜아, 넌 들은 거 없냐?”

석호의 물음에 스피커에서 잠시 지직거리다 기계음이 흘러 나왔다.

-완벽하게 정보를 차단했습니다.

“입술 읽어서 대충 해독할 수 있지 않아?”

-학살자와 에스텔라, 당화련과 미텔은 똑같은 문장을 반복했습니다.

“그래? 무슨 말인데?”

-엿들으면 혼난다.

“······신경 끄자.”

아무리 궁금해도 목숨은 소중한 법이다. 석호가 깔끔하게 미련을 버릴 때 엘리베이터에서 세 여인은 준영의 눈치를 살폈다.

“그런데 준영, 마켓 관리자랑은 대체 무슨 관계야? 아니, 그보다 관리자는 무슨 종족이야? 처음 보는 종족 같던데?”

에스텔라가 묻자 당화련과 미텔도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준영을 쳐다보았고 준영은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대꾸했다.

“스위티족이라고 귀여움이 종족 특성인 종족이야.”

“귀여움이 종특이라고?”

“응. 난 모르겠는데 다들 귀엽다고 보호하려고 하더라고. 그놈들 있던 차원이 다른 차원의 침략을 받았는데 아무 힘도 없으면서 그 귀여움을 무기로 애완동물 행세를 하면서 끝까지 살아남은 신기한 놈들이야. 그런데 침략한 차원 놈들 문화가 귀여울수록 맛도 좋다는 인식이 있어서 모피 수확과 식재료로 사육당하던 걸 우리가 구해 줬어. 귀여움을 무기로 쓸 정도로 약삭빠른 놈들이라 마켓을 관리하라고 맡겼지.”

준영의 말에 세 여인은 그럴 듯하다 싶어 공감했다. 확실히 귀엽긴 귀여웠다.

“아니, 잠깐만. 상공 마켓을 맡겼다는 게 무슨 뜻이옵니까?”

“음? 그야 마켓은 우리 거니까.”

“······우리라면?”

“원래는 마이너스 그룹이 운영하던 건데 전 마켓 관리자들이 반란을 일으켰거든. 그래서 나랑 엘레나랑 미스트가 의뢰받아 정리하면서 지분 좀 받았어. 우리 말고 몇 명 더 있지만.”

“어우, 잠깐만. 각오는 했지만 이건······.”

“나 갑자기 현기증이나.”

“음······ 난 아무 말도 못 들었어!”

부담스럽다는 에스텔라와 현기증이 나는지 비틀거리는 당화련, 현실을 부정하는 미텔의 모습에 준영은 킬킬거리며 말했다.

“아. 그리고 이거 비밀이다.”

“당연하지!”

세 여인은 준영을 노려보며 동시에 외쳤다. 이건 0과는 물론이고 어디 가서 떠들지도 못하는 일이다. 마켓은 자유로운 시장의 상징이었다.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 주는 중개자.

그런 마켓을 노리고 덤벼든 세력은 많았으나 수많은 용병들과 룰 브레이커들의 반발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켓이 마이너스그룹과 일부 용병들의 소유라는 게 밝혀진다면?

자존심이 강하거나 성질이 급하거나 명예를 목숨처럼 여기거나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가는 종족들을 죽 뽑아 보면 인간은 중간에도 못 미친다.

그런 종족들이 속았다는 걸 알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뻔하다. 제3차 차원전쟁이 벌어지기 딱 좋다.

“아오. 저주부터 풀고 움직이고 싶은데 저주가 세긴 세네. 아까부터 계속 거슬려. 후딱 끝내고 풀자고.”

그런 고민도 잠시뿐. 준영이 방 안에 놓인 침대를 보며 투덜거리자 세 여인은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꺄꺄거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까페 출입금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중대발표 +51 18.03.03 9,424 0 -
68 발할라 프로젝트 +25 18.03.11 4,003 81 11쪽
67 선거는 전쟁이다. +18 18.03.01 3,408 88 13쪽
66 선거는 전쟁이다. +5 18.03.01 2,971 85 10쪽
65 선거는 전쟁이다. +4 18.03.01 2,767 80 13쪽
64 선거는 전쟁이다. +61 18.02.26 3,424 103 11쪽
63 킹 메이커 +83 18.02.24 3,560 114 12쪽
62 킹 메이커 +198 18.02.22 3,860 128 13쪽
61 킹 메이커 +106 18.02.21 3,732 129 12쪽
60 흔한 클리셰 +46 18.02.21 3,698 118 13쪽
59 흔한 클리셰 +11 18.02.19 3,979 136 12쪽
58 시스템 프로젝트 +10 18.02.13 5,109 133 14쪽
57 시스템 프로젝트 +14 18.02.07 5,115 133 15쪽
56 첫 임무 +6 18.02.01 6,018 146 14쪽
55 첫 임무 +9 18.01.30 5,998 178 15쪽
54 첫 임무 +14 18.01.29 6,311 203 14쪽
53 첫 임무 +22 18.01.24 7,312 221 13쪽
52 팬심으로 대동단결 3 +29 18.01.22 7,062 274 13쪽
51 팬심으로 대동단결 2 +15 18.01.20 7,285 267 13쪽
50 팬심으로 대동단결 +18 18.01.20 7,369 25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