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

까페 출입금지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취몽객
작품등록일 :
2013.06.06 06:25
최근연재일 :
2018.03.11 22:1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856,629
추천수 :
24,652
글자수 :
404,321

작성
18.02.19 20:39
조회
3,847
추천
135
글자
12쪽

흔한 클리셰

DUMMY

뚝.

준영이 무심결에 흘린 한마디네 까페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에스텔라와 당화련은 태블릿을 들고 만지작거리는 준영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카운터 안쪽으로 들어갔다.

“뭐지? 내가 잘못 들었나?”

“아냐, 나도 들었어.”

“와. 나 소름 돋은 거 처음이야.”

호들갑을 떨며 작은 목소리로 소곤대는 에스텔라와 당화련, 미텔.

“준영이 어디 아픈 건가? 죽는 건가?”

“······저도 확신은 못 하겠네요.”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 그렁그렁한 눈초리로 트리시아에게 매달리는 나비렌과 심각한 표정을 한 트리시아까지. 출 입문 앞에서 처 잔다고 못 들은 타르찬을 제외한 모두가 절대 준영의 입에서 나올 리 없는 한마디에 패닉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심심하다니. 준영이 심심하다니. 그래. 준영도 사람이니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준영은 저주에 걸려 있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는 거다.

게으른 성격에 더 게으름 피우게 만드는 저주다. 그러니 준영의 입에선 절대 심심하다거나 뭔가 할 일이 없는 건가 하는 말이 나오면 안 되는 거였다.

다들 빼꼼 고개를 들어 카운터 너머를 훔쳐보자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준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라? 이거 이상하네?”

뭐가 안 풀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준영을 보고 에스텔라와 당화련, 미텔은 눈빛을 교환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쭈뼛거리며 준영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 트리시아가 천천히 언제라도 도망칠 수 있게 여유거리를 확보한 채 뒤따랐고 나비렌은 고양이로 변해 트리시아의 어깨 뒤에 올라탄 채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오들오들 떨었다.

“뭐, 뭐가 이상한데, 준영?”

“상공, 제가 도와 드리겠사옵니다.”

“준영 씨, 우리 같이해 봐요.”

어색함이 듬뿍 담긴 세 여인의 목소리에도 이상한 걸 못 느끼는지 준영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심심해서 나 학교 다닐 때 보던 개그 프로나 다시 보려고 그랬거든. 그런데 아무리 검색해 봐도 안 나오네?”

“학교 다닐 때라······.”

“으음. 그건 다른 의미로 한번 보고 싶다.”

“하악 하악. 준영 씨가 교복 입은 모습······.”

학교를 다녀 본 적이 없는 에스텔라는 학교에 뭔가 환상을 가지고 있는지 몽롱한 표정을 지었고 당화련은 준영의 어릴 때가 궁금한지 혹한 표정을 지었고 미텔은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프로그램 이름을 잘못알고 있는 거 아냐?”

“아냐. 군대 가기 전까지도 계속 보던 거였어. 얼마나 재미있는 프로였는데.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프로였다고. 그런데 이상하게 검색하는데 하나도 안 나오네?”

“이미 폐지된 프로그램이라 그럴 수도 있사옵니다, 상공.”

“그럴 리가. 그거 폐지되면 아마 뉴스에도 나올걸? 그게 아니더라도 폐지했다고 인터넷에 기사라도 떠야 하는데 아무것도 안 나와.”

“준영 씨, 마지막에 본 기억이 언젠데요?”

“마지막? 어라? 그러고 보니 군대서도 본 적이 없네?”

“그거 프로그램 이름이 뭔데?”

“으아, 힘들다.”

“아구구. 삭신이야.”

준영이 입을 열려는 찰나 까페의 출입문이 벌컥 열리며 엘레나와 미스트가 소란스레 들어왔다.

“어? 나도 가서 좀 도와줄까 했더니 벌써 끝난 거야?”

준영의 물음에 놀랐는지 움찔한 엘레나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에스텔라와 당화련, 미텔을 향해 눈인사를 건네며 말했다.

“잠깐 들른 거야 아직 일 안 끝났어.”

“그러면 나도 갈까?”

엘레나의 말에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준영을 미스트가 막았다.

“안 와도 돼요. 그냥 필요한 게 있어서 가지러 온 거예요.”

“냥?”

미스트의 몸에서 나온 그림자 촉수가 나비렌의 뒷덜미를 잡아 올리자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나비렌이 냥냥거리며 허공에서 발버둥 쳤지만 미스트의 힘을 뿌리칠 순 없었다.

“무슨 일을 하기에 고양이가 필요한 거야?”

준영의 물음에 엘레나는 쓰게 웃으며 대꾸했다.

“웬만하면 우리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는데 그쪽 동네가 심장에 안 좋은 동네라서. 고양이 좀 빌려 간다.”

엘레나의 말에 깜짝 놀란 나비렌이 눈빛으로 구원 요청을 보내자 트리시아가 나섰다.

“하루 3시간 이상은 반드시 공부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예방 주사 꼭 맞으시고요. 잘 때 이빨 닦는 거 잊지 마세요.”

뼈아픈 배신에 나비렌이 최후의 희망으로 준영을 바라보자 준영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밥은 챙겨 줘.”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주 지극 정성으로 모실 테니까.”

“아 참. 혹시 모르니까 똥개도 잠깐 빌릴게.”

“켕?”

갑자기 목덜미에 목줄이 차인 타르찬이 깜짝 놀랄 때 나비렌이 필사적으로 항의했다.

“이, 이건 부당하다!”

누구에게도 와 닿지 않는 나비렌의 단말마와 같은 목소리와 함께 엘레나와 미스트는 타르찬을 질질 끌고 사라졌다.

“갑자기 이게 뭔 일이래?”

“그러게? 쟤들은 대체 뭘 하고 다니는 걸까?”

“난 조만간 우리도 저럴 거 같은 예감이 드는데 과민 반응이겠지?”

미텔의 중얼거림에 에스텔라와 당화련은 무거운 침묵으로 대신했다. 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주변 정리를 시작한 트리시아를 훔쳐보며 쑥덕거렸다.

“와. 저거 봐, 마치 방학 끝난 애들 학교 보낸 주부 같아.”

“원래 갑작스러운 휴가가 기분은 최고잖아.”

“준영 씨는 휴가······ 같은 건 없겠네.”

뭔가가 떠오른 듯 활짝 웃다가 트리시아에게 라면 하나 끓여 달라는 준영을 보곤 다시 시무룩해진 미텔에게 에스텔라와 당화련은 다시 무거운 침묵으로 대신했다.

그때 다시 딸랑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일제히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난 모르겠는데? 아는 사람?”

“나도 모르겠는데?”

세 여인이 힐끗 트리시아를 바라보자 트리시아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딱 봐도 비싸 보이는 검은색 고급 정장에 곱게 자란 귀티가 좔좔 흐르는 얼굴의 남자는 스윽 까페를 한번 둘러보고는 여인들을 향해 다가가서 90도로 넙죽 허리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잘 부탁드립니다!”

에스텔라와 당화련, 미텔과 트리시아에게 한 번씩 허리를 넙죽넙죽 숙이며 건네는 명함을 엉겁결에 받아 든 여인들은 명함에 적힌 마이너스 그룹 제13인간계 영업부 부장 허시영이라고 인쇄된 명함을 보고는 말했다.

“어라? 그러면 운희, 고년은?”

“아. 전임 영업부장은 월권 행위 및 권한 남용이 적발되어 담당 부서가 변경됐습니다.”

에스텔라의 중얼거림에 시영이 즉각 답하자 당화련이 다시 물었다.

“어라? 나 이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거 같은데?”

“삼합회랑은 선의의 경쟁을 몇 번 했죠.”

“너 그 몽키매직이란 놈과 똑같이 상공의 부하였지?”

“······그랬었죠.”

삼합회를 제법 물 먹였는데 그런 사실은 전혀 기억 못 하는 당화련의 모습에 시영이 시무룩해졌다.

“아! 나 누군지 알겠다. 상계의 차원기획팀장! 호구 허시영 맞죠?”

미텔의 말에 시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오해하시는데 그건 동음이의어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호구가 아닙니다.”

“그런데 상계의 후계자가 어째서 마이너스 그룹에 있는 거죠?”

트리시아의 물음에 시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저희 상계는 마이너스 그룹의 인수합병에 동의했습니다.”

그 말에 놀란 세 여인이 수군거렸다.

“상계라면 마이너스 그룹 상대로 꽤 버티던 곳 아냐? 그런데 갑자기 왜 먹힌 거지?”

“호구 짓을 너무 심하게 해서 저항할 힘도 없었던 거 아닐까?”

“그거지? 사람 좋게 막 퍼 줬는데 막상 도움이 필요하니까 다들 등 돌려서 망해 버리는 거?”

“원래 호구 짓의 결말이 그런 거지.”

“그러게 호구 짓도 적당히 해야지. 불쌍하다. 상계의 소속원들은 뭔 죄야?”

쯧쯧 하는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딱하다는 시선과 한심하다는 시선이 섞여서 날아오자, 시영은 울컥하는 감정을 비즈니스맨답게 자본주의 마인드로 꾹 눌러 참으며 말했다.

“전임 영업부장이 전출 가면서 대신 담당할 인재가 저 밖에 없다 보니 그룹 본사가 직접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저 호구 아닙니다.”

“마이너스 그룹 본사가 움직인 거면 상계도 어쩔 수가 없겠지.”

“그런데 이 정도 소식이면 우리한테 정보가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조용하지?”

“준영 씨랑 관계된 거라 속만 태우고 있을 거 같은데?”

“아니, 그보다 마이너스 그룹에서 고르고 고른 인재가 겨우 호구야?”

“호구 아니라니까요! 그리고 내가 군대 있을 때 저 양반, 아니 사장님, 아니 우리 형님 밑에서 얼마나 굴렀는데! 그 인연 때문에 마이너스 그룹이 나 고용할 거라고 집안을 망하게 만든 겁니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벌컥 소리 지르자 에스텔라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너 호구 허시영 아냐?”

“맞기는 맞는데 동음······.”

“호구네.”

“호구야.”

당화련과 미텔의 연속 콤보에 결국 포기한 듯 시영은 한숨을 푹 내시곤 세 여인을 지나쳐 제법 오래 대화를 나눴는데도 태블릿만 붙잡고 있는 준영을 향해 다가갔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형님.”

꾸벅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하는 남자를 본 준영이 두 눈을 끔뻑거리며 바라만 보자 남자는 다시 한 번 인상을 구기곤 말했다.

“접니다, 허시영이.”

“······아! 그래, 응. 오랜만이다.”

시영의 말에 약간 늦게 반응하며 알은척을 하자 시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저 기억 안 나죠?”

그 말에 준영이 제법 성의 있게 시영을 쳐다보자 시영은 서운하다는 표정으로 한탄했다.

“와. 행님, 당직 설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야식으로 랍스터와 캐비어, 송로버섯에 푸와그라를 먹었는데, 이제 와서 모른 척하깁니까?”

그 말에 준영은 기억났다. 군 생활 내내 전령이라고 같이 붙어 다니던 놈.

“아. 기었 났다. 너 호구지?

가진 건 돈밖에 없다면서 애들이 조금만 기분 맞춰 줘도 좋다고 P.X를 털어 대던 호구.

“저 호구 아닙니다.”

그 말에 준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너 호구 아니야?”

“······아니. 맞기는 맞는데 그러니까!”

끄응. 시영은 설명하기를 포기하곤 준영을 향해 명함을 내밀었다.

“아무튼 이제부터 행님은 제가 담당하게 됐습니다.”

“음? 운희는?”

“전임 영업부장은 성과를 인정받아 다른 차원의 지사장으로 전출 가셨습니다.”

“출세했네?”

“······그렇다고 볼 수 있죠.”

원래 승진이 이렇게 갑자기 이뤄지고 작별 인사 할 시간도 없이 갈 정도로 급한 건가 의아했지만, 아무렴 어떠랴 싶은 준영이 말했다.

“이번에 할 일은 뭐야?”

“예? 아뇨. 아직은 일 없습니다. 그냥 얼굴도 보고 인사도 할 겸 온 겁니다. 석호 형은 위에 있죠?”

“그게 누군데?”

“······컴퓨터 잘하는 형요.”

“아, 걔? 먹고살기 힘들다고 해서 내가 일자리 하나 만들어 줬지. 너도 힘들면 때려치우고 나한테 와. 그래도 내가 너 하나 먹여 살릴 힘은 있다.”

“······감사합니다.”

은근히 뻐기듯 으스대는 준영의 태도에 시영은 수많은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준영을 잠시 바라보다 간신히 한마디 하자 준영이 아쉽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진짜 할 일 없어? 나 심심한데?”

그 말에 시영은 놀랍다는 듯 준영을 바라보다 피식 웃고는 말했다.

“게으름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더니 진짜였네요. 석호 형 얼굴 보고 일거리 하나 가져올게요. 근데 급한 게 아니라서 재미는 없을 거예요.”

“막 끝까지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니지?”

“그럼요. 싫증나면 언제든지 그만둬도 돼요.”

그 말에 좋아하는 준영을 참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사라지려던 시영의 뒷덜미를 세 여인이 낚아챘다.


작가의말

하도 연재를 안했더니 해야 한다는걸 까먹고 있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까페 출입금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중대발표 +48 18.03.03 8,604 0 -
68 발할라 프로젝트 +24 18.03.11 3,741 80 11쪽
67 선거는 전쟁이다. +18 18.03.01 3,273 87 13쪽
66 선거는 전쟁이다. +5 18.03.01 2,839 84 10쪽
65 선거는 전쟁이다. +4 18.03.01 2,638 79 13쪽
64 선거는 전쟁이다. +61 18.02.26 3,289 102 11쪽
63 킹 메이커 +83 18.02.24 3,394 113 12쪽
62 킹 메이커 +198 18.02.22 3,736 127 13쪽
61 킹 메이커 +106 18.02.21 3,597 128 12쪽
60 흔한 클리셰 +46 18.02.21 3,555 117 13쪽
» 흔한 클리셰 +11 18.02.19 3,848 135 12쪽
58 시스템 프로젝트 +10 18.02.13 4,959 132 14쪽
57 시스템 프로젝트 +14 18.02.07 4,980 132 15쪽
56 첫 임무 +6 18.02.01 5,877 145 14쪽
55 첫 임무 +9 18.01.30 5,837 177 15쪽
54 첫 임무 +14 18.01.29 6,151 202 14쪽
53 첫 임무 +22 18.01.24 7,142 220 13쪽
52 팬심으로 대동단결 3 +29 18.01.22 6,899 273 13쪽
51 팬심으로 대동단결 2 +15 18.01.20 7,135 266 13쪽
50 팬심으로 대동단결 +18 18.01.20 7,212 249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취몽객' 작가를 후원합니다!

  • 보유 골드: 0 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