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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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글터파수꾼
그림/삽화
ysdp
작품등록일 :
2018.04.09 10:06
최근연재일 :
2018.05.02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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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4.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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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제6화 개와 늑대의 시간(4)

DUMMY

조순철은 그 아파들들 중에 하나로 들어갔다. 10층에서 내려 거침없이 현관문 번호키를 누르고 쑥 들어갔다. 김혁도 벽을 통과해 따라 들어갔다.


아파트 내부는 그저 지어진 그대로 평범한 구조에 별다른 장식이나 꾸밈도 없다. 깨끗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마구 어질러진 상태도 아니다. 아무도 반겨주지 않고 다른 소음도 없는 걸로 보아 혼자 사는 건지 모두 외출한 건지 지금은 집안에 그 혼자임이 분명했다.


조순철은 겉옷을 소파 위에 아무렇게나 벗어놓고 욕실로 들어간다. 이내 샤워기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김혁은 빠르게 이 방 저 방 벽을 통과하며 스캔하듯이 집 내부를 훑어보았다.


거실 한 켠 장식장에는 상패 따위들이 한가득 세워져 있다. 모두 조순철이란 이름이 박혀 있다. 생소하고 이름도 길고 다양한 곳에서 받은 제각각 모양의 상패들이 꽤 많았다.


'유명한 천재라더니 천재들은 이런 걸 받는군.'

상패들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김혁은 혼잣말을 한다. 상이라곤 받아본 적 없는 김혁에겐 그런 것들이 생소하기만 했다.


벽에는 커다란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 모를 남자아이와 좀 더 작은 여자아이가 부모와 나란히 찍힌 사진이다.


가족 네 명. 역시 가족사진은커녕 그런 가족조차 없는 김혁에게는 낯선 물건이다. 핏줄을 나눈 가족, 서로 조금씩 닮은 존재들이 함께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건지 궁금했다. 그건 어떤 느낌일까? .....모르는 건 패스.


하지만 뭔가 집안 곳곳에 여자의 손길이나 가족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건 눈치 챌 수 있었다. 방치된 부분들이 많이 눈에 띈다. 서정이라면 그냥 보아 넘기지 않고 어김없이 잔소리를 날릴법하게 방치된 옷가지들, 싱크대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설거지 그릇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들과 먼지.


아이들 방으로 보이는 곳의 책상에도 먼지를 뒤집어 쓴 문제집들이나 참고서들은 보였지만 최근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이혼남이거나 기러기 아빠?


또 다른 방에는 널찍한 작업대 위에 어지럽게 공구며 이런 저런 부품들이 되는 대로 널려 있었다. 뭔가 만들다 만 것들도 여러 개 보였지만 뭘 만드는 중인지는 알아 볼 수 없었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김혁은 거실로 돌아갔다.


조순철은 벌거벗은 채 욕실에서 나와 드러난 배를 텅텅 두드리며 가서는 냉장고 문을 연다. 냉수를 물병 채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는 안방으로 들어가 편한 옷을 걸쳐 입고 나온다. 그리고는 거실 소파에 앉자마자 리모컨으로 TV부터 켠다. 설거지가 수북한 싱크대를 한번 힐끗 보더니 배달음식을 시키는 전화를 건다.


김혁은 너무도 지루한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이내 질려버렸다. 참 재미없다.

하긴 인간의 드라마는 원래 누군가 함께 있어야 펼쳐지는 법이지. 밥을 먹이고 데려갈까 그냥 지금 데려갈까? 조금만 더 놔두기로 한다.


김혁은 안방 침대에 가서 벌렁 누웠다. 자신이 살아 있었다면 49세에 어떻게 살게 될까 생각해보지만 너무도 먼 미래여서 잘 상상이 되질 않는다.

정이랑 결혼했을까? 딸 하나 아들 하나 낳고.... 하하하, 괜히 뱃속이 간지러운 느낌에 웃어본다.


그 페가에서의 밤이 떠올랐다. 가슴에 배어들던 서정의 눈물. 가슴이 저릿해진다. 정이랑 결혼하게 된다면 늘 고아원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갑자기 오렌지색 오라를 두르고 있던 오수연이 떠올랐다. 같은 나이인데 둘은 너무 다른 느낌이다. 만약에 그런 여자애랑 결혼을 한다면 어떨까? '귀엽네.'라고 말하던 목소리. 창가에 매달려 돌아오라고 소리치던 여자애. 자신을 귀엽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살게 되면 어떤 생활이 될지 궁금하긴 하다.


아,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마치 서정을 두고 다른 여자랑 바람이라도 피운 것 같은 가책이 든다. 이건 또 무슨 마음이지?


김혁은 생각을 떨쳐 버리겠다는 듯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조순철은 여전히 TV를 보고 있었다. 재미가 없는지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며 새로 볼 것을 탐색중이었다. 김혁은 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으악, 누구야? 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조순철은 아무런 소리도 없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김혁을 보고 정말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들고 있던 리모컨을 떨어뜨렸고 반사적으로 몸을 소파 끝으로 젖히면서 현관문 쪽과 김혁을 번갈아 보았다.


“누구냐? 여기서 뭐하는 거야?”

“뭐 그건 알 것 없고 니가 조순철이냐?”


악마가 준 종이를 꺼내 리스트에 적힌 걸 읽어 내려갔다.


“조순철 49세. xx 고등학교 과학교사, 맞아?”

“그, 그런데 ....그걸.... ”


조순철은 눈치를 보며 슬몃 일어나 소파를 사이에 두고 김혁의 반대편에 섰다. 여차하면 주먹이라도 날릴 자세다. 김혁은 주먹 따위론 상대할 수 없는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해 몸을 한번 더 사라지게 했다가 다시 나타나게 만들었다. 조순철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글쎄, 제대로 좀 살지 그랬어. 오늘이 당신의 마지막 날이 될 것 같은데?”


“뭐, 무슨 말이지? 넌 대체 뭐야?”


“나? 저승사자. 밥은 먹일까 했는데 너무 지루해서 말이지.”


“내, 내가 왜, 난 아무 잘못도 없어. 내가 왜, 난 지병도 없는데 내가 왜 벌써 죽어?”


“글쎄, 그건 지옥에 가면 악마한테 물어봐. 나도 궁금하니까.”


“지옥이라고? 내가? 내가?”


“오늘만 해도 한 건 하던데, 너 때문에 여학생 하나가 죽을 결심까지 했더라고.”


“누가 지영이가? 그럴 리 없는데.”


“지영이는 또 누구야?”


“그, 그럼 누가.....?”


뭔가 기억을 뒤적이는 듯 하던 남자는 생각난 듯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애는 이미 오래전에 떠났는데.”


“뭐냐, 도대체 몇 명이나 건드린 거야? 이 자식.”


“아, 아니 그런 게 아니고 ... 그래 그 애들은 날 좋아했어. 내가 이래 봬도 인기가 좀 많은데 그러니까 용돈도 좀 주고 그랬는데 상황이 그래서 그때는 걔는....”


“무슨 횡설수설이야. 지금.”


“내가 가정이 있으니까 어떻게 해줄 순 없었어. 좀 더 설득해서 방법을 찾아주려고 했는데 학교를 그만둬버려서 그애가 죽은 거야? 벌써 몇 년도 전 일인데 갑자기 왜... 난 잘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정말 죽었어?”


“진짜 미친놈이군. 그러니까 뭐냐, 여학생을 건드리고 책임도 회피하고 학교도 그만두게 했다는 거야? 이 인간 진짜 지옥 가야겠네.”


“뭐야, 아니야? 그, 그럼 누가."


“오수연. 오늘 창고에서 만났지. 아주 볼만하던데.”


“뭐... 뭐, 에이 난 또, 그건 그냥 대회가 얼마 안 남았는데 자꾸 그냥 가버리길래 타이르려고 한 건데.”


내 앞에만 서면 진실을 술술 불게 하는 능력은 부여되지 않은 모양이다. 이토록 길게 발뺌하는 걸 보니. 그 여학생이 원래 말이 많은 거였다.


“내가 누구라고? 저승사자를 속이려고 용을 쓰는구나. 아주.”


“하, 하지만 난 좋은 일도 진짜 많이 했어. 봐봐.”


조순철은 장식장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더니 속사포처럼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특허도 스무 개도 넘고 상용화 된 것도 여러 개야. 지옥에서 왔다니까 뭔지 말해줘도 모를 거고. 하여튼 다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음, 또 불우이웃돕기 성금도 많이 내고 .... 어, 그래, 자식들을 위해서 외로움도 참고 뼈 빠지게 돈 벌어서 다 보내주고 이렇게 불쌍하게 살고 있는데 봐봐. 봐봐. 이렇게 훌륭한 시민, 좋은 아버지가 지옥에 간다는 게 말이 돼?”


학교 선생이라 그런지 말빨이 역시.


“어, 말 돼. 솔직히 말해 봐. 건드린 여자애들이 몇 명이야? 교사라는 게 공부나 가르칠 것이지 대체 뭔 짓을 하고 돌아다니길래 그 어린애가 죽을 생각을 다 하게 만들어? 그러니까 악마한테 찍히지.”


“악...마? 그런 게 있다는 건가....?”


조순철은 잠시 눈을 끔뻑끔뻑하더니 이내 표정이 밝아졌다.


“아하, 내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군. 이렇게 생생한 꿈은 꾼 적이 없는데 핫, 희한한 꿈이네. 너무나 생생해.”


“웃기는군.”


“내 잘못을 일깨워주려고, 그래 그 스크루지 영감인가? 그거 ... 알았어, 알았다니까. 내가 사람을 좋아하다 보니까 친근하게 대하다 보니. 아, 이제부턴 정말 아무도 안 건드리고 가르치기만 할게. 이제 됐지?”


“되긴 뭐가 돼. 완전 지 멋대로구만.”


“정말, 정말 앞으론 안 그럴게. 진짜야. 약속해. 꿈이든 뭐든 빨리 사라져줘. 제발!”


그때 딩동 딩동, 현관에서 초인종이 울렸다. ‘배달 왔습니다’, 음식 배달부가 소리쳤다.


“이제 그만 가자.”


김혁은 조순철에게 다가갔다.


“안돼, 오지마. 아악.”


퍽.


초인종은 몇 차례 더 울리다가 멈췄다. 얼마 후 인터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쓰러진 조순철은 아마 심장마비로 죽은 걸로 처리 될 것이다. 그 흔하다는 중년 남성의 돌연사.


김혁은 벽의 가족사진을 바라보았다. 성폭행범으로 밝혀져 손가락질 받거나 자살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악마가 준 종이 위에서 조순철의 이름이 불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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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제43화 슈퍼맨의 마음1 +1 18.05.01 866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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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제41화 새로운 가족 +1 18.04.30 827 8 8쪽
41 제40화 천사를 만나다 +1 18.04.29 823 6 7쪽
40 제39화 출생의 비밀 +1 18.04.29 887 7 10쪽
39 제38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7)- 지옥으로 +1 18.04.28 820 9 8쪽
38 제37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6) +1 18.04.28 835 9 8쪽
37 제36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5) +1 18.04.27 777 7 8쪽
36 제35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4) +1 18.04.26 878 8 8쪽
35 제34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3) +1 18.04.25 798 8 8쪽
34 제33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2) +1 18.04.25 813 8 7쪽
33 제32화 겨울이 가르쳐주는 것들(1) +1 18.04.23 848 13 8쪽
32 제 31화 인형의집(3) +1 18.04.23 838 9 10쪽
31 제 30화 인형의집(2) +1 18.04.22 861 10 8쪽
30 제 29화 인형의 집(1) +1 18.04.22 816 7 7쪽
29 제28화 너 자신을 알라 +1 18.04.21 950 10 9쪽
28 제27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9) +1 18.04.20 852 7 9쪽
27 제26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8) +1 18.04.20 833 8 10쪽
26 제25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7) +1 18.04.19 862 9 11쪽
25 제24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 (6)- 상철이형 +1 18.04.19 1,065 9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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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제19화 그 바닷가에서는 무슨 일이(1) +1 18.04.16 992 9 11쪽
19 제18화 잔인한 여름 +1 18.04.16 991 8 10쪽
18 제17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7) +1 18.04.15 1,192 8 11쪽
17 제16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6) +1 18.04.15 978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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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제14화 우리는 모두 외톨이(4) +1 18.04.14 1,215 1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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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제7화 첫 임무 완수, 그리고 여름 +1 18.04.10 1,563 19 9쪽
» 제6화 개와 늑대의 시간(4) +1 18.04.10 1,583 21 10쪽
6 제5화 개와 늑대의 시간(3) +1 18.04.09 1,737 22 8쪽
5 제4화 개와 늑대의 시간(2) +1 18.04.09 1,814 22 8쪽
4 제3화 개와 늑대의 시간(1) +1 18.04.09 2,026 22 8쪽
3 제2화 악마가 원하는 것, 악마의 리스트 +2 18.04.09 2,612 25 9쪽
2 제1화 지옥을 선택한 남자, 김혁 +5 18.04.09 3,685 2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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