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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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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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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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0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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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진리를 향한 걸음 (2)

DUMMY

구원 기사단은 단장직은 단원 모두와 국왕의 인정을 받은 자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높은 직위다. 그리고 그 자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의지였다. 자신이 하고자 하지 않으면 절대로 중책을 맡길 수 없다는 왕족의 명제 하에 설립된 기사단이기 때문이었다.


직위의 특성 상 한번 선출된 기사단장은 오랫동안 맡은 바 책임을 다했다. 때문에 언제든 모두가 인정할만한 새로운 인재가 나오면 자리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이었다. 구원 기사단의 수장이라는 자리는 그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부담을 안고 있어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번 단장인 에밀리아 호프라이트가 자신의 직책을 내려놓겠다고 했을 때에는 적지 않은 파장이 일어났다. 역대 단장들을 놓고 보았을 때에도 손에 꼽힐 정도로 강자인 에밀리아가 돌연 기사단장직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에밀리아를 능가할 새로운 인재 또한 발굴되지 않았다.


때문에 많은 단원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의사를 거둬달라는 말을 건넸지만, 에밀리아는 완고했다. 결국 국왕의 승인이 떨어졌고, 에밀리아 호프라이트는 호프라이트라는 성을 반납했다. 이윽고 거대한 퇴임식이 열렸다.


구원 기사단은 왕국의 국민들에게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는 강력한 기사단이였다. 때문에 대외 행사를 할 때에도 그만큼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선보였다. 특히 기사단장과 관련된 일은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게다가, 보통 새로운 기사단장이 선출된 뒤 물러나는 게 일반적인 관례인 것에 반해 이번 경우는 기사단장의 자리가 잠시나마 공석이 된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물론 행정상 잘못된 것은 전혀 없었고, 국민과 구원 기사단은 아쉬울지언정 에밀리아를 떠나보내야 했다. 구원 기사단장은 분명 강력한 위치의 자리였으나, 구원 기사단의 개개인 또한 뛰어난 존재였기에 구원 기사단의 건실함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은 드물었다. 저잣거리에서 불티나게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화두는 ‘어째서 기사단장이 물러나는가’였다.


혹자는 이번 왕관 분실 사건이나, 안드로의 재판에 참여 했을 때 불필요하게 완강한 태도를 취했다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강한 에밀리아가 책임감을 느껴 사퇴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구원 기사단은 모든 위치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강한 인재를 내쳐야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사람들의 입방아는 수많은 가설을 만들었지만, 결국 누구도 모두를 이해시킬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채 퇴임식이 열렸다. 거리에는 온통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섰다.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구원 기사단이 거리에 나타났고,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며 손을 흔들었다.


갑옷의 행렬은 에밀리아를 선두로 왕궁 안으로 입성했고, 사람들은 끝까지 환호하며 그들을 배웅했다. 국왕이 붉은 융단이 깔린 왕궁 입구의 넓은 광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왕궁에서 일하는 모든 이들이 주변에 서서 구원 기사단을 구경했다.


그 중에는 마법공학 실험부 사람도 있었다. 대장은 1등급 마력석을 받은 뒤에도 실험실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가끔 식사를 하기 위해 바깥에 나왔을 때에는 호세의 얼굴 앞에 지팡이를 들이밀고 번쩍이다가 다시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실험실로 사라졌다. 피곤해 보이기보단 집념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에밀리아의 모습은 여느 때처럼 강렬했다. 왕궁의 사람들도 구원 기사단을 향해 박수 갈채를 보냈다. 호세도 입을 꾹 다물고 박수를 쳤다. 패트릭이 건넸던 말이 떠올랐다.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 때문에 구원 기사단의 번쩍거리는 갑옷이 무섭게 느껴졌다. 누군가 정말로 구원 기사단을 부릴 수 있다면, 분명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리라.


국왕이 천천히 일어서 입을 열었다.


“구원 기사단의 단장 에밀리아 호프라이트! 이제 귀하는 국가를 수호하는 임무를 무사히 완수하고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나는 귀하를 긍휼히 여기며, 앞으로 있을 모든 공적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수여하고, 나아가 어떠한 불편도 없이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


모든 이들은 귀하를 기쁘게 반길 것이며, 당신의 존재가 명예가 될 것이다! 트란실바니아에 영광을!”


국왕이 말을 마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에밀리아는 허리춤에서 검을 풀어 국왕에게 건넸다. 국왕은 검을 쥐고 에밀리아의 어깨에 가져가 댔다.


“고생하셨습니다, 에밀리아 경.”


구원 기사단에 한 번이라도 소속된 기사는 퇴임을 하더라도 경이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에밀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국왕이 돌려준 검을 조심스럽게 착용한 뒤, 뒤로 돌아 구원 기사단을 향해 경례했다. 그러자 준비하고 있던 구원 기사단이 전부 차렷 자세를 취했다.


“일동, 차려엇!”


패트릭의 우렁찬 목소리가 왕궁에 울려퍼졌다. 마치 한 사람인 것처럼 절제된 움직임으로 부동 자세를 취한 기사단원들은, 패트릭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단장님께 경례!”


그러자 모두 검을 빠르게 뽑아 명치에 가져갔다. 검이 얼굴의 반을 덮은 자세에서 검의 손잡이를 굳게 잡은 자세는, 완전한 예를 표하는 구원 기사단의 자세였다. 에밀리아도 검을 뽑아 경례에 답했다. 구경하던 이들은 그들의 기백에 눌리면서도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호세도 손뼉을 치며 에밀리아와 구원 기사단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자신에게 체력 훈련을 지시하던 에밀리아와, 함께 뛰던 은빛 갑옷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으나, 자신의 변화를 알고 있는 호세는 감회가 새로웠다. 데이지는 환호를 지르며 방방 뛰고 있었다.


군중들을 흥분에 빠뜨린 에밀리아의 퇴임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


“이제 에밀리아 롬바드가 되었구나, 우리 딸.”


“네. 아버지.”


그레고리는 퇴임식이 끝난 뒤 자신의 집무실에 찾아온 에밀리아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에밀리아는 고개를 숙이며 차분한 표정으로 그레고리를 응시했다.


“그래. 그 반푼이 왕족이 1등급 마력석을 받았다지?”


“네. 같은 부서의 사람이 전달해주었으니 확실할 겁니다.”


그레고리는 만족한 표정으로 의자에 눕듯이 앉으며 다리를 책상에 올렸다.


“받아올 방법은 생각해 보았겠지?”


에밀리아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레고리는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물었다.


“아직 방법이 떠오르지 않은 게냐?”


“확실한 방법이 없는 듯하여···.”


그레고리는 가볍게 고개를 젓더니 손을 뻗어 에밀리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 자가 내게 처음 왔을 때, 너를 자신의 부서에 넣어도 되겠느냐고 물었지. 나는 녀석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 그것은 말이야···.”


에밀리아는 고개를 들어 그레고리를 응시했다. 그레고리는 빙글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연심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에밀리아는 잠시 침묵하더니 대답했다.


“함께 부서에 있었을 때, 이성으로 접근하려는 태도는 일절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는 혀를 끌끌 찼다.


“네가 젊음을 오래 얻은 까닭에 무뎌졌구나. 뜨거운 감정은 때로 감춰야 하는 법이야.”


에밀리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레고리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말을 꺼냈다.


“가서 너의 비밀을 알려줘라. 그리고 1등급 마력석이 필요하다고 해.”


“하지만···.”


“진리의 문을 여는 것에 비하면 값싼 비용이다. 분명 효과가 있을 거야.”


에밀리아는 한동안 침묵을 유지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고리는 웃으며 일어나 에밀리아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침착한 표정의 에밀리아는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그리고 마법공학 실험부로 걸음을 옮겼다.


본관에 도착하고 문을 열자, 차오가 가장 먼저 나타나 에밀리아에게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기사단장직을 내려놓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건 마법공학 실험부에 진심으로 다시 오셨다는 것으로 생각해도 되겠습니까?”


차오의 눈빛은 따뜻한 말투에 비해 매서웠다. 에밀리아는 차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지가 팔짝팔짝 뛰며 에밀리아의 팔에 매달렸다. 호세는 어정쩡한 자세로 인사를 건넸다.


“어서 와!”


“어서 오세요, 에밀리아 씨.”


에밀리아는 포근한 목소리로 인사에 답했다.


“그래. 고마워.”


대장은 의자에 앉아 에밀리아를 바라보았다. 대장과 눈이 마주친 에밀리아는 곧바로 걸어 대장에게 향했다. 갑작스러운 직진에 대장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에밀리아를 노려보았다.


“뭐지? 에밀리아.”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에밀리아의 말에 마법공학 실험부의 모두가 긴장했다. 에밀리아가 대장에게 독대를 요청한 경우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대장이 핀잔을 주며 공부를 가르쳐야 한다고 휴게실로 데려가는 경우가 더 잦았다. 대장도 살짝 놀란 눈치였다.


“···무슨 일이지?”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말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좋다.”


대장은 일어나 실험실로 내려갔다. 에밀리아도 따라서 이동 마법진으로 향했다. 데이지와 호세는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고, 차오는 팔짱을 끼고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실험실에 도착한 대장은 의자에 앉아 에밀리아에게 물었다.


“둘이서 이야기 해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이야기인가? 굳이 이렇게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대장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에밀리아가 상의를 벗었다. 대장은 순간 얼음처럼 굳어 눈을 질끈 감았다. 에밀리아는 머리카락을 위로 질끈 묶은 다음 가슴을 팔로 가리고 입을 열었다.


“앞을 봐 주십시오.”


대장은 천천히 눈을 떠 에밀리아의 상체를 확인했다. 그리고 곧 눈을 번쩍 뜨며 의자를 박찼다. 에밀리아의 명치 부근에는 복잡한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 검은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대장은 아래턱이 저릴 정도로 이를 악물고 마법진을 관찰했다.


“각인···.”


“제 모습에 변화가 없었다는 걸 눈치 채셨습니까?”


“···그래.”


대장도 이상할 정도로 신체에 변화가 없는 에밀리아의 모습에 의구심을 품었다. 그러나 그것은 구원 기사단의 강한 훈련 덕택이거나, 혹은 그레고리의 밑에서 좋은 약품들을 받았을 것이라 추측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마주한 현실은 참혹했다.


“영원한 젊음을 주는 각인입니다.”


“대가는?”


에밀리아는 천천히 대답했다.


“제 감정입니다.”


대장은 옆에 있는 책상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내려치며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누가 새긴거지?”


“말씀 드릴 수 없습니다.”


대장이 드물게 이성을 잃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당장 말해! 아니면 네가 한 부탁은 없는 걸로 하겠다.”


에밀리아는 잠시 갈등했다. 그레고리의 명령과 대장의 분노 사이에서 어떠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그레고리의 말을 떠올리고는 말을 꺼냈다.


“저의 양아버지, 그레고리 롬바드 대신입니다.”


대장의 눈이 이글거리며 불같은 증오가 쏟아져 내렸다. 꽉 쥔 주먹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대장은 마족의 마법진을 가르쳐 준 호세에게 다시 감사함을 느꼈다. 당장 에밀리아의 몸에 새겨진 각인을 지워버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에밀리아가 대장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먼저 말했다.


“각인을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제 아버지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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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4-18. 진리를 향한 걸음 (3) 19.08.21 55 1 12쪽
» 4-17. 진리를 향한 걸음 (2) 19.08.20 60 1 12쪽
146 4-16. 진리를 향한 걸음 (1) 19.08.19 69 1 12쪽
145 4-15. 돌아오다 (3) 19.08.12 61 1 12쪽
144 4-14. 돌아오다 (2) 19.08.09 53 1 12쪽
143 4-13. 돌아오다 (1) 19.08.08 59 1 12쪽
142 4-12. 진실 (2) 19.08.07 56 1 12쪽
141 4-11. 진실 (1) 19.08.06 60 1 12쪽
140 4-10. 소동과 음모 (3) 19.08.05 59 2 12쪽
139 4-9. 소동과 음모 (2) 19.08.02 60 3 12쪽
138 4-8. 소동과 음모 (1) 19.08.01 74 3 12쪽
137 4-7. 귀환 (3) +2 19.07.31 77 3 12쪽
136 4-6. 귀환 (2) 19.07.30 74 3 12쪽
135 4-5. 귀환 (1) 19.07.29 78 3 12쪽
134 4-4. 네드 (4) +2 19.07.26 87 3 12쪽
133 4-3. 네드 (3) 19.07.25 7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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