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해라, 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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솥불
작품등록일 :
2018.04.09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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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8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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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1)

DUMMY

겨울의 저주. 그 병의 이름은 이렇게 불렸다.


트란실바니아의 왕족들은 마력석에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들은 마력을 가장 잘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마력석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이후 왕족들이 만든 1등급 마력석으로 모든 마력석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완성되었다.


신기한 점은, 왕족끼리 결합하여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마력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왕이 즉위 했을 때 성별에 따라 귀족이나 영주의 자식들이 배우자로 선별된다. 유진의 어머니는 귀족 출신의 영애였다. 그리고 그녀는 둘째를 낳다 숨을 거뒀다.


왕들의 수명은 비교적 짧다. 마력을 끊임없이 뽑아내는 일을 하기 때문에, 쉽게 기력이 상한 까닭이다. 때문에 뛰어난 후사를 만드는 것이 무척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유진과 아일린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마력을 사용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의 아버지는 왕보다는 장군에 가까웠다.


왕족의 자녀 중에 가끔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이도 나타났다. 그들은 보통 안락한 삶을 즐기며 모습을 드러내지 않거나, 방탕하게 살다 단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특이한 점은, 그들이 추운 겨울에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을 찾아내기 위해 연구했다. 그리고 그 답을 찾았다.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왕족들의 혈액에는 특수한 균이 마력의 흐름을 방해했고, 그 균들은 체온이 떨어질 때 활동이 둔해졌다. 이로써 그들이 마력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밝혀졌다.


그러나 발견은 발견으로만 그쳤다. 사람의 체온을 항상 낮게 유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체온은 그 자체만으로 병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이 되기 때문이다. 마력을 사용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체온을 낮추게 되면, 몸이 상할 것이 뻔했다.


사람들은 추운 날씨에만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그들의 병을 ‘겨울의 저주’라고 불렀다. 혹독한 날씨에 스러진 영혼들이 왕족에게 서려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번에 그 죗값을 치룰 사람은 유진이었다. 질병은 때로 무시무시한 무기가 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겨울의 저주’를 지닌 사람과 의도적으로 멀리 지냈다. 한이 맺힌 영혼들을 가까이 해서 좋을 일이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태어난 지 3년이 지나고 흙놀이를 좋아할 나이에, 유진은 격리되었다. 별궁에서 생활하고, 가족들과 만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보다 더 엄격한 사람이었다. 유진은 책을 읽거나, 별궁 내를 돌아다니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유진이 소년이 되었을 때, 시중을 드는 시녀가 마법 공학에 관한 책을 선물했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하던 유진을 유심히 본 그녀가 흥미로울만한 걸 건넨 것이었다. 유진은 순식간에 마법 공학에 빠져들었다. 푸른 눈의 소년은 한 달만에 혼자 마법 공학 기초 이론을 뗐다.


시녀는 유진의 배우는 속도에 놀라 주변인에게 말했고, 결국 왕의 귀에 들어가게 됐다. 그렇게 유진은 수 년 만에 아버지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왕은 유진에게 마법진을 그려 보라는 말을 했고, 유진은 단 5분만에 책에서 나온 가장 어려운 마법진을 그려냈다.


의회의 대신들은 회의하기 시작했다. 뛰어난 인재를 썩히기는 아깝지만, 그렇다고 ‘겨울의 저주’를 가지고 있는 자를 왕궁에 들일 수는 노릇이었다. 그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자, 누군가 나타나 자신이 유진을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마력 증폭 공식’을 만든 칼 홉슨이었다.


의회는 흔쾌히 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뛰어난 수완가였고, 발명가였으며 또한 좋은 선생이었다. 유진의 재능과 칼의 교육이 결합되면 분명 뛰어난 결과가 왕국에 들어오게 될 것이었다.


실제로 칼은 현명하게 유진을 가르쳤으며, 유진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빠르게 마법 공학에 관련된 지식들을 흡수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유진은 청소년이 되었고, 칼은 은퇴했다. 그 즈음에 유진의 실력은 왕궁에 있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의회는 다시 유진의 처치에 대해 고민했다. 왕국에서 유진만큼 마법진을 발전시킬 수 있는 인재는 많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겨울의 저주’가 문제였다. 그들은 고민하다 왕에게 의견을 달라고 부탁했고, 왕은 유진을 마법진 개발 부서에 편입시키라 명했다.


유진은 10년만에 별궁에 나와 본궁에 마련된 숙소에서 잠을 잘 수 있었다. 다른 왕족들처럼 궁 안의 모든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도 주어졌다.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긴 했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한창 마음이 성숙해가고 있는 유진에게 아주 큰 선물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진은 자신에게 책을 선물해주었던 시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다. 지인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 충격이었으나, 그녀의 사인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유진이 별궁을 나간 뒤, 그녀는 일손이 필요 없어진 궁을 떠나 일자리를 찾았으나, 모두 ‘겨울의 저주’에 걸린 왕자의 옆에 있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결국 그녀는 아무 직업도 구하지 못한 채 길거리를 배회했고, 곧 굶어죽었다. 소식을 들은 유진은 아득함을 느꼈다. 자신이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것. 그리고 몸과 마음을 지배하는 분노를 느꼈다.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감정이었다.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유진의 가슴에 응어리가 되었던 일들이 둑이 터지듯 쏟아졌다. 유진은 아무도 없는 별궁에 숨어 잠에 들지도 못한 채 수 일을 웅크려 있었다. 그리고 삼일 째 되는 날, 마법진을 개발해냈다. 아주 강력한 폭발 마법이었다.


유진의 마법은 중앙 의회실을 날려 버렸다. 대신들은 허겁지겁 대피했고, 구원 기사단이 출동해 유진을 제압했다. 피해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국가의 중심인 궁 안에서 폭발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은 궁 안의 모두가 기겁할 만한 일이었다.


의회는 모두 입을 모아 유진을 극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왕국을 위협하는 범죄자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그러나 왕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유진이 만든 마법진의 위력이 탁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라리 장군 같은 사람이었다. 야욕과 욕심이 있는 사람이었다.


유진의 능력을 아깝게 여긴 왕이 의견을 피력해, 처벌은 유배를 보내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대신 유배지에서 국가에 도움이 되는 마력진을 개발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유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차에 올랐다. 그리고 유진 보다 열 살은 많아 보이는 젊은 기사가 옆에 있었다.


“반갑습니다, 왕자님.”


그게 에밀리아였다. 의회에서 권력을 조금씩 늘려가고 있던 그레고리는, 자신의 딸을 기구한 운명의 소년에게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마침 에밀리아는 출중한 실력을 가진 기사였고, 유진이 유배되어 있는 동안 호위 겸 감시를 맡게 하면 왕과 왕자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왕은 에밀리아가 유진의 호위를 맡는 것을 허락했고, 그렇게 에밀리아 롬바드는 유진의 유배 생활 동안 옆을 지키는 기사가 되었다. 유배지까지 가는 동안 일말의 표정도 짓지 않은 유진의 옆에서 눈치를 살피던 에밀리아는, 자신의 앞날이 캄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에밀리아는 기본적으로 차분하고 침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곧 자신의 옆에 있는 천덕꾸러기 왕자가 괜한 망나니 짓을 하지 않은 것을 차라리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마차에 숨막히는 적막이 찾아왔다.


짧은 시간이 지난 뒤 마차가 갑자기 멈췄다. 마부는 곤란한 얼굴로 나타나 길 앞에 돌 무더기가 쌓여 있다고 말했다. 최근 비가 많이 온 까닭에 산사태가 일어난 것 같다며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부 또한 지금 자신과 함께 가고 있는 사람이 의회실을 박살낸 왕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밀리아는 유진의 안색을 살폈고, 여전히 묵묵한 얼굴로 마차에 앉아 있던 유진은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돌 무더기 밑에 마법진을 그렸다. 십 분이 지나지 않아 거대한 마법진이 완성되었고, 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마법진 위를 걸어나왔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지난 뒤, 돌 더미가 엄청난 소리를 내며 박살났다. 말들이 놀라 발버둥쳤고, 마부는 진작에 마차 뒤로 숨었다. 에밀리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마차 안에 조용히 들어간 소년을 바라보았다. 에밀리아의 마음 안에 흥미가 생기고 있었다.


마차가 다시 움직이자, 에밀리아는 유진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무서운 마법을 쓰는 거, 안 무서우신가요?”


“말 걸지 마.”


냉남한 유진의 말투에 민망해진 에밀리아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마치 상처 입은 동물이 으르렁대는 것 같아 보였다. 그 이후로도 에밀리아는 계속해서 대화를 시도했으나, 유진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유배지인 별장에 도착할 때 까지도 그랬다.


에밀리아는 유진에게 물었다.


“제가 맘에 들지 않으신가요?”


마차에서 내린 유진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마부는 다시 수도로 돌아갔고, 마중 나온 시녀를 따라 둘은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다음 날부터 유진은 방에 틀어박혀 꼼짝하지 않았다. 에밀리아가 곁에 있으려 했지만 그것마저 거부했다. 에밀리아는 하는 수 없이 바깥으로 나가 체력을 단련했다. 검을 휘두르고, 몸을 훈련하는 시간은 하루도 거르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이 지났다. 왕자의 호위를 맡았다고 생각했으나, 실상은 함께 유배를 당하고 만 에밀리아는 마음을 비우고 훈련에 집중했다. 언젠가 다시 돌아갔을 때, 남들 보다 뒤처지기는 싫었다. 그리고 그렇게 훈련에 열중할 때, 창문 밖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는 유진을 발견했다.


공허한 눈이었다. 어떠한 목적이나 집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죽음에 이르기 직전의 눈동자가 어린 소년의 얼굴에 있었다. 에밀리아는 검을 내려놓고 소년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과거의 자신과 닮은, 잘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에밀리아는 계단을 조심스레 올라간 다음, 문을 벌컥 열고 유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유진은 당황한 얼굴로 끌려가다시피 바깥으로 향했다. 갑자기 비춰진 햇살에 얼굴을 찌푸린 유진은, 손으로 눈 위에 그늘을 만들었다. 에밀리아는 유진과 눈을 마주하고 입을 열었다.


“바깥에도 나오고, 운동도 하고, 저랑 이야기도 해요.”


그러자 유진은 고개를 돌려 눈을 피했다. 생기 없는 입술이 별장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움직였다.


“너도 한 맺힌 영혼들에게 쫓기고 싶지 않으면 떨어져.”


에밀리아는 잠시 침묵했다. 유진은 어서 떨어지고 싶은 듯 초조한 얼굴로 자신이 열고 나온 문을 흘깃거렸다.


그러나 에밀리아는 유진의 예상과 다른 행동을 했다. 갑자기 검을 뽑은 것이다. 서슬 퍼런 빛에 유진이 주춤하자, 에밀리아는 힘을 쓰는 듯 인상을 찌푸더니 곧 붉은빛의 기검을 만들어냈다. 유진의 눈에 붉은 빛이 번졌다. 에밀리아는 따뜻한 음색으로 말했다.


“저는 그런 거,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유진의 세상은 그 시간부로 완전히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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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 4-26.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4) 19.09.02 35 1 12쪽
155 4-25.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3) 19.08.30 39 1 12쪽
154 4-24.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2) 19.08.29 40 1 12쪽
» 4-23. 유진 한 트란실바니아 (1) 19.08.28 39 1 12쪽
152 4-22. 질문과 답 (4) 19.08.27 42 1 12쪽
151 4-21. 질문과 답 (3) 19.08.26 41 1 12쪽
150 4-20. 질문과 답 (2) 19.08.23 43 1 12쪽
149 4-19. 질문과 답 (1) 19.08.22 59 1 12쪽
148 4-18. 진리를 향한 걸음 (3) 19.08.21 55 1 12쪽
147 4-17. 진리를 향한 걸음 (2) 19.08.20 59 1 12쪽
146 4-16. 진리를 향한 걸음 (1) 19.08.19 69 1 12쪽
145 4-15. 돌아오다 (3) 19.08.12 61 1 12쪽
144 4-14. 돌아오다 (2) 19.08.09 53 1 12쪽
143 4-13. 돌아오다 (1) 19.08.08 59 1 12쪽
142 4-12. 진실 (2) 19.08.07 56 1 12쪽
141 4-11. 진실 (1) 19.08.06 60 1 12쪽
140 4-10. 소동과 음모 (3) 19.08.05 59 2 12쪽
139 4-9. 소동과 음모 (2) 19.08.02 60 3 12쪽
138 4-8. 소동과 음모 (1) 19.08.01 74 3 12쪽
137 4-7. 귀환 (3) +2 19.07.31 77 3 12쪽
136 4-6. 귀환 (2) 19.07.30 74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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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4-4. 네드 (4) +2 19.07.26 87 3 12쪽
133 4-3. 네드 (3) 19.07.25 7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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