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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 일반연재 > SF, 전쟁·밀리터리

이름가림
그림/삽화
이름가림
작품등록일 :
2018.04.12 16:01
최근연재일 :
2023.11.18 17: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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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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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글자수 :
682,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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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6.21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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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3회 - 살인자 (02)

DUMMY

버기카가 달렸다. 세 명을 태우고, 뒷자리 짐칸에 중기관총을 설치한 네 바퀴 굴림의 아담한 철제 상자가 누란 평원의 정적을 깨부수고 모래 먼지를 휘날렸다. 눈앞에 작은 둔덕이 보이면 일부러 돌진하여 그것을 점프대 삼아 날아올랐다. 공중의 정점에서 운전자가 환호성을 지르고 땅으로 추락하면 다시 야단법석 뛰쳐나갔다.


조수석의 터커가 욕지거리를 뱉었다.

“거니, 너 이 새끼! 얌전하게 달려! 우리 위치가 노출되잖아!”


운전하는 거니가 소리쳤다.

“쫌! 쫌! 달려보자! 트럭 뒤 칸에 꾸겨져 자느라 욕구가 쌓였다고! 풀지 않으면 나는 미쳐버릴 거고, 그러면 너희도 나 감당할 수 없어, 씨발! 열 받아 죽겠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 놈 코 고는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어! 아! 짜증 나 어떻게 할 거야!”


뒷자리의 스태포드가 중기관총을 붙잡고 소리쳤다.

“아, 이 새끼 헛소리 또 시작했네! 다 좋은데, 점프할 때는 허락부터 받아! 내 허리 빠개지면 너야말로 감달 할 수 없어!”


거니가 소리쳤다.

“꺼져, 스태포드! 네놈은 어젯밤에 어빈네 트럭에서 잤잖아! 거기 이쁜 애들은 코도 안 골고, 포근하게 허깅도 해주니, 나보다는 편하게 잤을 거 아냐! 아니면! 그런 하렘 같은 곳에서도 잠을 못 잤다는 거야! 어라? 너 이 새끼, 그 예쁜 아저씨들이랑 뭔 짓을 했길래 잠을 못 잤어! 눈 뜬 거냐, 기어이 네 녀석이 눈을 뜬 거야! 그래서 잠을 못 잔 거야! 솔직하게 고백해!”


스태포드는 거니의 운전석을 뒤에서 걷어찼다.

“병신, 지랄한다. 그 이쁜 애들 아침에 면도하더라, 물도 모자라는데 어찌나 깔끔을 떨던지.”


거니가 소리쳤다.

“발로 차지 마. 핸들 돌아가잖아! 어, 어어, 언덕이다!”


터커가 소리친다.

“아! 그러니까, 일부러 점프하지 말라니까! 야!”


우당탕—


다시 버기카가 추락했다. 거니가 소리쳤다.

“그래서! 스태포트 너 지금 우리한테 고백한 거야! 역시 어빈네서 굴러봤더니, 우리만큼 좋지는 않았던 거야. 그래서 아침에 그렇게 새초롬한 꼴을 하고 돌아온 거고! 사랑스러운 터커를 다시 만나는 게 기뻐서 수줍게 아양을 떤 거야! 그런 거야!”


“쉿! 속도 줄여!” 무언가를 발견한 터커가 운전하는 거니를 두드렸다. 그것을 잘 보려고 버기카의 외부 프레임 밖으로 몸을 내밀고, 모래가 쌓인 초원의 한 곳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흙무덤 길게 쌓인 거 보이지. 가까이 가. 스태포드 주변 경계!”


스태포드가 중기관총을 장전했다. 거니는 속도를 줄이고 주변에 솟은 언덕 뒤를 돌면서, 혹시 있을 매복에 대비하며 접근했다.


100m쯤 되는 모래 무덤이 속이 빈 직사각형으로 형태로 쌓여 있었다. 사각형의 짧은 변 하나가 열려 있었고, 그곳에서부터 바닥에 찍힌 하우스의 바퀴 자국이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졌다.


터커가 무전기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터커입니다. 하우스의 집터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타겟과 동일한 바퀴 12개짜리입니다. 대장의 거점에서 서쪽으로 21㎞ 지점, 동문 방향 하우스로드의 남쪽에서 50m 정도 떨어진 장소입니다. 폭풍을 피한다고 여기에서 하루 묵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퀴 자국이 하우스로드로 안 돌아가고, 평원의 남쪽으로 찍혀져 있습니다. 어떻게 합니까? 오버.”


무전기에서 네이트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이트픽이다. 잘했어, 거니. 그 지역 확보하고 다른 흔적을 찾아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고, 오버.”


터커가 말했다.

“로저, 지역 확보하겠습니다.”


네이트픽이 말했다.

“네이트픽이다. 레드먼, 들었냐? 바퀴 자국이 남쪽으로 가고 있대. 너희 쪽이야. 뭐 안 보이냐? 오버.”


레드먼의 대답이 들려왔다.

“레드먼입니다. 안 그래도 보고하려던 참이었어요. 바퀴 자국 보입니다. 12개짜리예요. 이쪽 근처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아마, 거니가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방향을 튼 것 같습니다. 추적할까요? 오버.”


네이트픽은 단검 손잡이를 톡톡 두드리며 생각했다. 타겟이 예정과 다르게 움직였다. 엄청난 위험 신호였고, 그들만 모르는 변수가 생긴 걸지도 몰랐다.

무엇을 모르는가? 하우스가 어디로 왜 갔냐는 것이다? 혹시 연합의 경찰이 하우스와 운전사를 연행해 간 건 아닐까? 그렇다면 왜 정상적인 도로가 아니라 평원의 비포장도로로 들어간 것일까? 당당한 법의 집행관들이 굳이 불편한 길로 다녀야 할 사정이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면, 하우스의 운전자가 자신의 의지로 평원 안으로 들어갔다는 건가. 미리 정한 경로에서는 벗어났지만, 어쨌든 동문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지 않는가. 운전사가 잘 아는 지름길이 있어서 그리로 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을까. 하우스는 움직이는 거리만큼 비용이 발생한다. 상용 트럭 운전사가 손익 계산도 없이 지저분한 험지로 들어가야 할 만큼의 이유가 생겼다고?

혹시 운전사가 자신과 하우스가 자신들의 표적이 됐다는 걸 알아차린 건 아닐까. 어떻게?

아니, 아니다. 현시점에서 네이트픽에게 더 큰 걱정은 그 하우스의 화물이 아니게 되었다. 임무보다 안전이 우선이다. 팀원들이 누군가에게 노려질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연합의 경찰이나, 화물을 노리는 제3의 세력 같은 것들. 타겟은 그놈들이 벌써 가로챘을지도 모른다. 더욱이 그들이 위험한 무장 세력이라면 팀원들의 생존을 우선시해야 한다.

네이트픽의 팀원들은 모두 덜떨어진 놈들이긴 해도, 높은 수준의 군사 훈련과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이다. 어지간한 위협은 알아서 잘 이겨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을 만큼의 폭력이라면 어떻게 될까. 이를테면 자신들보다 더 강한 화력을 갖춘 조직. 경찰의 특수 부대나 혹은 그에 준하는 수준의 무장과 조직력을 갖춘 머릿수. 없어진 군대 같은 것. 그런 게 이런 곳에 있기는 할까? 네이트픽이 아는 범위 내에서는 없다. 특별한 자원도 없고, 분쟁을 일으킬 만한 집단이 없는, 싸울 이유가 없었기에 평화로운 곳이 누란 평원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안심해도 될까?

최근의 네이트픽은 운이 아주 나빴다. 지금 누란에 있는 것부터가 재수 없는 일이다. 폭풍을 만난 것도 재수가 없었고, 이런 고민을 하는 것 또한 곧 재수 없는 사건이 발생할 조짐이었다. 네이트픽은 아주 강도 높은 방어적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네이트픽은 무전기에 말했다.

“네이트픽이다. 교전 상황이다. 채널 레드, 채널 레드, 오버.”


채널 레드는 그들의 무전 내용을 암호화 기계로 더욱 복잡하게 처리하겠다는 뜻이었다. 은밀해야 하고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 내려지는 신호여서, 팀원들은 자신들의 개인 무장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무전기에 팀원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카피 스테이션 레드, 어빈. 카피, 로벨. ···레드먼. 거니. 오버.”


무전기가 지직거렸다.

“로저 카피, 네이트픽이다. 오버.”


무전기에 질문이 들려왔다.

“로저, 어빈입니다. 교전 수칙은 그대로입니까? 오버.”


네이트픽은 허리춤의 단검 손잡이를 바로 뽑을 수 있는 그립으로 바꿔 잡았다.

“네이트픽이다. 교전 수칙은 변함없다. 아무도 죽이지 않는다. 오버.”


들리지 않아야 할 한숨이 무전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잠깐의 시간이 흐르고 대답이 넘어왔다.


“로저 카피, 어빈. 레드먼···. 거니. 로벨. 오버.”


무전기에 네이트픽의 명령이 들려왔다.

“네이트픽이다. 레드먼은 바퀴 자국을 추적해라. 거니는 지평선 거리를 유지하면서 레드먼한테 붙어. 너희 둘이 몰이꾼이다. 어빈과 로벨은 나한테 와서 붙어, 우리 셋은 그물을 짠다. 몰이꾼이 타겟을 몰아오면 그물이 잡는다. 오버.”


“로저.”


“네이트픽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라. 최우선 행동 수칙은 쓰리런이다. 현 상황 전체가 함정일 수도 있다. 반복한다. 최우선 행동 수칙은 쓰리런이다. 오버.”


쓰리런은 네이트픽이 직접 정한 작전의 은어였다. 네이트픽이 이것을 선언하고, 쓰리런을 외치면 팀원들은 무조건 후퇴해야 하는 명령이었다. 무조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 생존을 최우선으로, 각자 알아서 가장 도망치기 좋은 곳을 향해 무조건 달리라는 뜻이었다. 네이트픽은 지금껏 이 명령을 아주 많은 작전 행동에 덧붙이곤 했었는데, 실제로 실행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번에는 무전기 너머에서 낄낄거리는 소리가 넘어왔고, 곧 대답이 들려왔다.


“예에 앱! 로저!”



— — — — —



누란 평원의 북쪽, 사람 없는 외진 곳에 캐슬 엔터프라이즈가 세워져 있었다.


캐슬이 무엇이냐 하면 하우스보다 더 큰 트럭이었다. 산업 표준을 무시하고 오로지 거대함만을 추구하고 만들어, 보통의 길로는 다실 수 없는, 바다만큼 드넓은 평원의 탈것이었다.


엔터프라이즈는 또 무엇이냐 하면 연합의 병기였다. 국가가 없는 건설시대에 연합에만 허락되어, 학살 무기 금지법이 허용하는 최대치의 화력과 장비를 수송하는 지상 항공모함이었다.


엔터프라이즈는 비밀이기도 했다. 거대해서 눈에 잘 띄었고, 많은 사람을 태우고 다녔기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그 실체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연합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물건이었다. 숨겨진 진실을 부풀리고 상상하는 건 재미있어서 연합의 캐슬에는 많은 소문이 붙어 다녔다. 가장 흔한 풍문은 무기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들이 없애겠다고 정한 학살 무기를 세계가 통합되지 않았던 80년 전의 기술을 캐슬에 싣고 다닌다는 소문은, 그것이 어디서 뭘 하고 돌아다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기에 생겨났다. 길의 하우스가 달리는 누란 평원에, 캐슬 엔터프라이즈가 있다는 정보를 네이트픽이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엔터프라이즈는 군대이기도 했다. 본체의 운영에 1,200명이 필요했고, 하늘과 지상 전투 요원을 3,500명이나 태우고 다녔다. 캐슬의 지휘관은 성주라 불렀으며, 전통적으로 연합군의 영관 계급을 가진 자에게 직무를 주고, 임기를 끝냈을 때 장성이 될 기회를 받는 출세 코스이기도 했다. 현 엔터프라이즈의 성주는 무타렌이었다. 병사들은 앞에서 그를 성주님이고 호칭했고, 뒤에서는 똘아이, 미친놈, 장난감 수집광, 아군 살인자 같은 별명으로 부르곤 했었다.


하급자가 상급자의 흉을 보는 건 어디서나 흔한 일이다. 하지만 무타렌은 유별났다. 그 이전의 성주들과는 더욱 달랐다. 동기들보다 진급은 빨랐지만, 출세욕이 없었다. 군인인데도 전략과 전술에 관심 없었고 대신 무기에 대한 이해도는 높았다. 어린아이가 장난감을 좋아하듯이 병기를 좋아했다. 특히 전차와 전투기에 열광했다. 멋지게 디자인된 살인 장비가 기동하여 적을 짓밟고, 압도적인 화력을 집중하여 생기는 폭발의 울림과 굉음에 전율하고, 그 중심부에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공기층의 단절과, 솟았다가 사라지는 화염 기둥과, 뭉게뭉게 피어나는 폭염의 구름을 보고 싶어 했다. 호전적인 망상가이자 생명의 죽음에 감정을 얻지 못하는 자였다.


연합의 고위층이 무타렌의 본성을 미리 알았으면, 그를 캐슬의 성주에 앉히지는 않았을 건데, 불행하게도 그는 소시오패스면서도 사교성이 뛰어났다. 높으신 분들이 보고 싶어 하는 행동과, 정기적으로 받아야만 하는 인성검사의 정답을 잘 알아서, 조직에 적합한 시험 결과와 모습을 보였고, 중요한 일을 맡겨도 될 인재인 것처럼 냉정하고 과묵한 캐릭터를 빼어나게 연기하면서, 3명 이상이 모이면 언제나 생기는 힘 있는 파벌에 줄을 섰고, 그사이에 생기는 정치적인 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끌어, 아부를 맛깔나게 잘 떨어, 신임을 받아 성주에 적합하다는 오판을 불렀다.

무타렌은 성주 임명장을 받고 매우 즐거워했었다. 진급해서가 아니라, 캐슬 엔터프라이즈에 탑재된 병기 목록을 보고, 손안에 들어온 장난감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게 되어서, 순수하게 기뻐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굳이 부하들에게까지 본심을 숨기지는 않았다. 그는 이치에 맞는 것 같은 말을 헛소리와 잘 섞었다.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적을 섬멸하는 불패의 군대를 양성한다. 훌륭한 지휘관이 할법한 명언이다. 그래서 무타렌은 모의전을 많이 했다. 자신에게 허용된 무기와 보급품을 전부 사용했다. 병사들이 질린 정도로 했다. 피로 때문에 부상자가 생기고, 사고로 사망하는 자가 나와도, 그는 말했다. 어떻게 전쟁을 치르는데 전사자가 안 생길 수 있는가, 너희가 군인이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전체보다 강한 개인은 없다. 명령에 따르라, 그의 용맹한 죽음을 세상은 알아줄 것이다. 라는 식의 소리를 엄청나게 많이 하면서 듣는 사람의 말대꾸할 의지를 죽여가며, 무타렌의 장난감 놀이를 강요했다.


병사의 눈으로 모의전 내용을 들여다보면 소름이 끼쳤다. 아군의 보병 부대가 적 기갑 세력과 만나면 정신력을 내세우며 자폭 공격을 강요하거나, 승리의 최우선 조건은 속도라며 기동 부대를 적 중심 화력의 정면으로 돌격시키는 식의 무모한 명령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리곤 했다.

훈련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사망 판정을 받는 병사가 점점 많아졌다. 부대의 60%가 전멸하기도 했었다. 이러한 황당함이 계속되니 불만이 쌓여가면서, 종교와 비슷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만약 무타렌의 지휘 아래 캐슬 엔터프라이즈가 진짜 전쟁을 치르게 되면, 개전과 동시에 그들 자신은 전사자가 될 거라는 신념이었다.


캐슬의 성탑, 레이더 담당관이 소리쳤다.

“레이더가 새로운 물체를 포착했습니다. 탐지 크기는 2, 5에서 10의 사이, 속도 80㎞, 목표와의 거리는 11㎞. 본 캐슬과의 거리는 32㎞. 탐지 크기가 유동적이고, 크기보다 속도가 빠른 점을 종합하면 위장막을 덮은 차량이라 추측됩니다.”


성주 무타렌은 들떠 올랐다. 선물 상자를 마구 뜯어내어 무엇이 들었는지 보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담담하게 명령했다.

“새롭게 발견한 물체를 돌멩이라 명명한다. 본 캐슬은 이동을 준비한다. 아우트리거를 풀어라.”


성주의 보좌관은 성탑의 오퍼레이터들과 성주 사이에 서 있었다. 그는 큰 목소리로 명령을 복창했다.

“캐슬 이동 준비. 아우트리거를 올려 캐슬의 수평 안정 상태를 풀어라.”

그리고 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성주에게 질문했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본 캐슬의 작전 지역은 이곳이 아닙니다. 북쪽입니다.”


무타렌은 성탑의 메인 모니터를 보며 말했다.

“돌멩이를 추적해 가시거리 안쪽에 넣고 싶다.”


보좌관의 목덜미가 바짝 조여졌다. 인생의 불운을 최근 1년 사이에 모으고 모아 커지고 진득해진 불행의 덩어리에 처맞아서, 성주의 기행을 가까이에서 볼 수밖에 없었고, 그 부당함을 억지로 참고 눈감아 왔기에, 이 미친놈이 뭘 하고 싶은지 바로 이해했다. 성주는 캐슬의 화력이 돌멩이를 타격하는 장면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은 것이었다.


보좌관은 말했다.

“성주님, 명령을 재고해주십시오. 돌멩이를 쫓으려면, 하우스로드 남쪽을 건너야 합니다. 그 길은 민간인이 이용하는 상업 도로입니다. 본 캐슬이 노출되어버립니다.”


성주는 말했다.

“레이더 담당, 현 시간, 이 주변에 민간인이라 추정되는 물체가 포착되나?”


레이더 담당이 외쳤다.

“장거리 탐지, 주변 150㎞ 내에 민간인으로 추정되는 물체는 없습니다. 근거리 탐지, 방금의 돌멩이를 포함 4대의 스텔스 의심 차량이 포착됩니다. 돌멩이 둘, 돌멩이의 두 배 크기 물체 둘입니다.”


성주는 명령했다.

“현 시간부로 돌멩이의 두 배 크기 물체를 바위라 명명한다. 또한 돌멩이와 바위를 적이라 정의하고 교전을 준비한다. 드디어···.” 성주는 잠시 뜸을 들였다. “실전을 맞이했다. 항공반은 출격을 준비하라. 롱켓이 제공권을 장악한다. 공대공 무장을 시켜라. 땅돼지에 폭탄을 붙여라. 급강하 폭격을 시행한다. 지상의 기갑 부대는 기동전을 준비한다.”


성탑이 조용해졌다. 성주의 명령을 실행하려면 보좌관이 명령을 복창해야 했는데, 그 보좌관은 시퍼레진 입술을 부들부들 떨다가, 성주에게 대들 듯이 소리쳤다.


“명령을 재고해주십시오. 성주님의 명령은 지나치게 규모가 큽니다. 트럭 4대 잡는데, 부대 규모의 전면전을 준비시켰습니다! 게다가 이건 우리 임무도 아니잖습니까! 연합 경찰의 작전에 이런···!” 보좌관은 욕이 나오는 걸 억눌렀다. “식으로 끼어드는 건 명백한 월권행위입니다!”


성주는 말했다.

“적은 스텔스 기능을 가진 4대의 중무장 차량이다. 이는 경찰이 제압할 수 없는 화력일 것이나, 다행히 우리는 적을 압도할 수 있다. 더욱이 적은 학살 무기를 탑재했다고 추정되는 하우스를 추적 중이고, 이러한 악마의 도구를 세계에 근절시켜야 하는 연합군의 캐슬이 이를 못 본 척할 수는 없다. 거기에 더해 본 캐슬의 병사들에게는 실전의 막중한 압박감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훈련이 될 것이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부관.”

성주는 소리쳤다. “운전관, 이동 준비 끝났나!”


“끝났습니다!”

운전관은 질문에 즉각 반응했고, 찡그린 오만상을 숨기면서 입만 뻐금거려 욕을 했다. 정신 나간 횡포에 대놓고 막서지는 못하니, 그나마 할 수 있는 최고치의 반항 표현이었다.


성주는 명령을 하나 더 추가했다.

“이동한다. 성내에 실전 상황이 시작됐음을 알려라.”


보좌관은 성주를 노려봤다. 그는 당장 명령을 복창해야 했다. 하지만 실전을 개시하라니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세계 최강의 무력이기에 실질적인 학살 무기나 다름없는 연합의 캐슬이 싸움에 참여한 공식 기록은 아직 없었다. 무엇보다도 연합의 탄생 이유가 인류에 대한 학살 금지였다. 보좌관은 그 의미를 지키고 싶었다.

그의 의식이 허리에 찬 권총으로 옮겨졌다. 자신의 임무에 성주의 월권을 막는 행위가 포함되었는지 기억을 뒤졌다. 내심 누군가가 대신 나서주기를 기대했다. 충동적으로 정의감을 선택하여, 모두가 나눠 가져야 할 손해를 혼자 차지해줄 바보 같은 총알받이를.


성탑의 병사들은 총알받이 후보는 역시 보좌관이 적당하다고 여겼다. 저 성주라면 명령에 항명하는 병사를 반란 분자로 처분할 수도 있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데, 그런 걸 거느니 순순히 명령을 따르는 게 쉬웠다. 왜 직접 총대를 메야겠는가. 나중이 되어 책임을 추궁당하더라도, ‘나는 그저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하면서 둘러대면 그만이다. 무겁고 어려운 선택은 뒤로 미룰 수 있는 것이었다.


자동소총에 실탄을 장전한 성주의 경호병도 생각은 똑같았다. 누군가 성주를 입 닥치게 해야 했다. 문제는 그의 임무가 다른 병사들과는 달랐다는 것이었다. 만약 악의를 가진 자가 성주를 위협하거나, 반란 같은 걸 저지르면 막아야 했다. 때에 따라서는 즉시 사살해야 했다.

그래서 경호병은 그냥 다들 가만히 있으라고 중얼거리며, 안정에 맞춰져 있던 소총의 조종간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힘을 주어 눌렀다. 조종간이 돌아가 단발을 가리켰다. 이제 방아쇠만 누르면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자각하고, 마음으로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자신의 손가락을 꾸중하고, 조종간을 다시 안정으로 되돌렸다.


보좌관의 오른손은 권총에 더 가까워졌다.

그의 생각의 궁전에 아내와 딸이 나타났다. 이어서 성주에게 총을 뽑는다는 것과, 집에 돌아간다, 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순간 성주 뒤에 선 경호병과 시선이 부딪쳤다. 그가 고통이 스며든 눈동자를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어대면서, 몸통 앞으로 파지한 소총을 들어서 보여줬다.


그리고 성탑 안, 모든 병사의 선택은 하나로 모여들었다.


보좌관은 복창했다.

“캐슬 이동합니다. 실전 상황을 선포하겠습니다. 운전관 주행 기관에 동력을 연결하라.”


보좌관이 경보기 버튼을 눌렀다. 캐슬 안에 생소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비이익— 비이이익—


캐슬의 병사들은 지금 울리는 경보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분명 들어보기는 했었는데, 자주 듣던 소리는 아니었다. 아마 내무교육을 받을 때 요새는 쓸 일이 없으니 들을 기회는 없겠지만, 그래도 일단 알아는 놓으라고 교관이 틀어줬었던 것 같은 교보재 소리였다. 기억의 저편에서 경보음의 의미를 떠올리고, 이어서 친절하게 부연 설명을 해주는 보좌관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병사들은 동작을 멈추었다.


“실전 상황을 발령한다. 실전 상황이다. 이 상황은 훈련이 아니다. 반복한다. 실전 상황이다. 각자 정해진···”


누군가 실수로 경보기를 건드린 거였으면 좋겠는데, 보좌관이 그건 아니라고 말해준다. 한 병사가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성내 최고 기록을 가진 소총병이었다. 모의전 사망 판정 최다 수상자였던 그는, 저놈은 전쟁 없는 시대의 군인이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농담을 듣곤 했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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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13회 - 쟝과 세이거 (31) 21.06.24 41 1 20쪽
70 13회 - 쟝과 세이거 (30) 21.05.24 45 1 18쪽
69 13회 - 쟝과 세이거 (29) 21.05.16 42 1 17쪽
68 13회 - 쟝과 세이거 (28) 21.04.15 46 1 20쪽
67 13회 - 쟝과 세이거 (27) 21.03.15 37 1 16쪽
66 13회 - 쟝과 세이거 (26) 21.02.15 44 1 16쪽
65 13회 - 쟝과 세이거 (25) 21.01.16 40 1 24쪽
64 13회 - 쟝과 세이거 (24) 20.12.13 42 1 16쪽
63 13회 - 쟝과 세이거 (23) 20.11.12 61 1 39쪽
62 13회 - 쟝과 세이거 (22) 20.09.21 39 2 22쪽
61 13회 - 쟝과 세이거 (21) 20.08.24 44 2 24쪽
60 13회 - 쟝과 세이거 (20) 20.07.24 51 2 20쪽
59 13회 - 쟝과 세이거 (19) 20.06.26 63 2 27쪽
58 13회 - 쟝과 세이거 (18) 20.05.26 52 1 11쪽
57 13회 - 쟝과 세이거 (17) 20.04.27 57 2 19쪽
56 13회 - 쟝과 세이거 (16) 20.04.08 52 2 17쪽
55 13회 - 쟝과 세이거 (15) 20.03.25 67 2 12쪽
54 13회 - 쟝과 세이거 (14) 20.03.06 54 2 14쪽
53 13회 - 쟝과 세이거 (13) 20.02.06 68 2 23쪽
52 13회 - 쟝과 세이거 (12) 20.01.06 69 1 15쪽
51 13회 - 쟝과 세이거 (11) 19.12.07 114 1 19쪽
50 13회 - 쟝과 세이거 (10) 19.11.08 62 1 15쪽
49 13회 - 쟝과 세이거 (09) 19.10.08 57 1 20쪽
48 13회 - 쟝과 세이거 (08) 19.09.01 62 1 10쪽
47 13회 - 쟝과 세이거 (07) 19.07.20 78 1 16쪽
46 13회 - 쟝과 세이거 (06) 19.07.05 73 1 11쪽
45 13회 - 쟝과 세이거 (05) 19.06.07 90 1 18쪽
44 13회 - 쟝과 세이거 (04) 19.05.25 72 1 13쪽
43 13회 - 쟝과 세이거 (03) 19.05.17 87 1 13쪽
42 13회 - 쟝과 세이거 (02) 19.05.08 94 1 15쪽
41 13회 - 쟝과 세이거 (01) 19.04.30 102 1 12쪽
40 12회 - 길과 명주 19.04.16 178 1 22쪽
39 11회 - 쟝과 마리아 19.04.03 97 1 19쪽
38 프롤로그 - 빚과 담배 19.03.17 100 1 23쪽
37 10회 - 탄생 (07) 19.02.25 107 1 36쪽
36 10회 - 탄생 (06) 19.02.09 99 1 16쪽
35 10회 - 탄생 (05) 19.01.28 112 1 19쪽
34 10회 - 탄생 (04) 19.01.19 119 1 13쪽
33 10회 - 탄생 (03) 19.01.08 122 1 11쪽
32 10회 - 탄생 (02) 19.01.05 136 1 13쪽
31 10회 - 탄생 (01) 18.12.25 118 1 19쪽
30 9회 - 혼란 (02) 18.12.13 137 1 13쪽
29 9회 - 혼란 (01) 18.12.10 124 1 14쪽
28 8회 - 도착 (02) 18.11.17 108 1 14쪽
27 8회 - 도착 (01) 18.11.16 133 1 12쪽
26 7회 - 여정 (05) 18.11.01 121 1 10쪽
25 7회 - 여정 (04) 18.10.31 128 1 11쪽
24 7회 - 여정 (03) 18.10.31 129 2 12쪽
23 7회 - 여정 (02) 18.10.19 126 2 11쪽
22 7회 - 여정 (01) 18.10.13 195 1 10쪽
21 6회 - 수리 (04) 18.10.05 161 1 14쪽
20 6회 - 수리 (03) 18.09.28 156 3 14쪽
19 6회 - 수리 (02) 18.09.14 176 2 17쪽
18 6회 - 수리 (01) 18.09.01 180 3 12쪽
17 프롤로그 - 교차로 18.08.19 189 3 13쪽
16 5회 - 동업 18.08.07 178 3 20쪽
15 4회 - 계약자 (03) 18.07.27 186 2 14쪽
14 4회 - 계약자 (02) 18.07.24 186 2 17쪽
13 4회 - 계약자 (01) 18.07.13 209 2 20쪽
12 3회 - 살인자 (05) +1 18.07.04 230 4 12쪽
11 3회 - 살인자 (04) +1 18.06.28 217 5 10쪽
10 3회 - 살인자 (03) 18.06.25 252 3 11쪽
» 3회 - 살인자 (02) 18.06.21 243 5 21쪽
8 3회 - 살인자 (01) 18.06.12 311 3 13쪽
7 2회 - 몽상가 18.05.25 315 5 24쪽
6 1회 - 동행 (04) 18.05.12 340 6 11쪽
5 1회 - 동행 (03) +1 18.05.11 381 7 9쪽
4 1회 - 동행 (02) 18.05.11 459 4 8쪽
3 1회 - 동행 (01) +2 18.04.25 732 9 18쪽
2 프롤로그 - 5년 18.04.12 805 9 11쪽
1 프롤로그 - 18살 +1 18.04.12 1,672 1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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