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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가림
작품등록일 :
2018.04.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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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2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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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08 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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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 쟝과 세이거 (02)

DUMMY

창고 건물은 100m짜리 하우스 6대를 일시에 수용하고도 내부 공간이 남을 정도로 컸고, 그 크기만큼이나 주차장에서 창고까지 이동하는 거리도 멀었다. 그래서 창고 주변의 공터에는 자전거에서부터 오토바이, 2인승에서부터 9인승 카트, 1t에서부터 25t 트럭까지로 다양한 이동 수단들이 곳곳에 널려있었고, 창고 터 안에서라면 누구든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게 시동키가 꽂혀 있었다.


길은 명주를 2인승 카트에 태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뜻하지 않게 나타난 공짜 탈것들의 선택지 앞에서 무엇을 타면 재밌을지 곰곰이 고민하다가 자전거를 타겠다고 주장해다. 길은 그러라고 말하고, 자신은 자전거 옆에 세워진 50cc 스쿠터의 핸들을 잡고 시동을 걸었다. 그러자 명주는 자기도 그걸 타고 싶었는데 타는 법을 몰랐다며 이제부터 알려달라고 땡깡을 부려댔고, 길은 알았다고, 그런데 지금은 조합으로 가야 해서 가르쳐 줄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했다.

명주는 뭐가 불만인지는 몰라도 1초 동안 울상이 되어 발을 구르다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길에게 달려들었다. 친구를 스쿠터 안장으로 밀어붙여 억지로 앉히고는, 그 뒤에 올라타서 외쳤다.


“달려!”


길은 시키는 대로 스쿠터의 기어를 1단으로 놓고 스로틀을 돌렸다. 바퀴 2개가 천천히 굴러갔다. 균형이 안 맞는 건지 꼬리 쪽이 흔들거렸다. 명주는 엉거주춤 두 손을 뒤로하고 스쿠터의 짐받이를 붙잡았으나, 불편하고 자세도 애매해서 ‘에라 모르겠다!’ 길의 허리를 꼬옥 안고 몸을 붙였다. 어쩌면 둘이서 타기에는 그 자세가 가장 편하고 안전한 걸지도 모르겠다. 알맞게 속도 붙은 스쿠터가 매끄럽게 달려나갔다. 엔진 소음과 바람 가르는 소리가 상쾌했다. 질주하는 체감이 몽롱하게 쏟아졌다. 금방 끝나는 롤러코스터의 짜릿함처럼 벌써 창고 밑에 도착했다. 길은 창고 벽 근처의 오토바이 거치대에 스쿠터를 세웠다. 명주는 한 번 더 타자고 조르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고 안장에서 내렸다.


창고 건물이 제아무리 큼지막하다 한들 그보다 더 크고 거대한 건축물이 숱하게 많은 건설시대였으니, 명주가 그 밑에서 허리를 뒤로 꺾고 고개를 젖혀서 올려다봐도 창고 지붕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은 것에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벽에 뻥 하고 뚫린 하우스용 출입문 앞에 서 있는 기분은 기이했다. 폭이 60m에 높이도 60m짜리 구멍이었다. 앞에 아무것도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문구멍 속은 전혀 다른 세계였다. 방대한 구조물, 저기 저 반대편의 멀리 떨어진 장소에 여기와 똑같으나 한낮의 태양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대칭되는 다른 문. 상대적으로 창고 내부는 어둡고, 크레인과 보관용 컨테이너와 정비 시설과 벽을 이루는 강철 구조체가 넓고, 광활하게, 규칙적이나 복잡하게 구성된 인공물의 형태에 넋이 나간 명주의 머리꼭지를, 길이 탁 두드려 정신 차리게 했다.


명주는 길을 따라 조합 사무실로 올라갔다. 창고 벽면에 난 계단을 밟아가면 테라스가 나오는데, 거기에 관광버스 2개를 옆으로 붙인 다음 창고 안쪽으로 박아넣은 것 같은 상자가 사무실이었다.


길은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스무 명이 넉넉하게 자리를 차지할 만큼의 공간에 책상과 모니터가 많았다. 사람은 둘뿐이었다. 한 명은 저 끝의 구석에서 컴퓨터로 카드 게임을 했고, 다른 한 명은 사무실의 중간쯤에 서 있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창고 안을 보여주는 유리 벽 앞에서 그가 물끄러미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길이 아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이에요, 오마르 차장님. 일거리 받으려고 왔는데 다들 어디 갔어요? 지금쯤이면 정신없이 바쁠 시간이잖아요?”


“왔냐···. 너 아무 소식도 못 들었어? 조합 페이지에 공지사항도 띄우고 따로 메일도 보냈을 건데···.”


길과 명주는 서로를 쳐다봤다.


“조합 페이지라면 여기 오기 전에 엄청나게 들여다봤다고요. 공지사항은커녕 이상한 스팸 메일 말고는 아무것도 못 봤어요. 가뜩이나 일거리가 없어서 마음 졸였는데 이게 뭔 일이에요?” 길이 말했다.


“아무것도 못 봤다고···? 그리고 조합원들은 다 아는 걸 너만 모른다? 거참 이상하네. 혹시 네 하우스의 단말기가 고장 난 거 아냐? 아니면 통신 상태가 계속 나빴다거나? 너 어디에서부터 온 건데?”


길은 캔터베리 광산이라고 대답하려고 했으나, 차창은 크게 탄식하며 말을 잘랐다.


“하아···! 됐다. 그게 무슨 상관이겠냐. 앉아봐, 설명해줄 테니까. 마침 나도 마음이 심란해서 얘기 상대가 필요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옆에 아가씨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설마 그 녀석이랑 같이 오신 건···, 아니죠?”


명주는 방긋 웃으며 길에게 밀착해 팔짱을 꼈다.

“안녕하세요! 길 씨의 새 여자 친구예요! 잘 부탁드려요!”


명주의 눈웃음에 요염함이 넘쳤다. 차장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입을 벌리고 이게 무슨 기적이냐고 묻듯이 길을 쳐다봤다.


길은 뺨만 살짝 붉어져서 명주를 떼어냈다.

“야, 장난치지 마! 그런 거 아니니까 차장님도 속지 마세요. 얘가 장난치는 거예요.”


명주는 친구가 생각보다 덜 당황해서 실망했다. 치— 소리를 내며 물러났는데, 차창은 마치 그러면 그렇지 하면서 안도하는 기색이었다.


“어라! 차장님. 무슨 반응이 그래요? 그렇게 대놓고 안심할 것까지는 없잖아요.” 길이 말했다.


“하하! 내 표정이 그랬어? 미안. 길의 새 여자 친구라니 놀랄 수밖에 없잖아. 자네 인간관계 복잡해지는 거 싫어했잖아. 심지어는 자네 좋다는 여자마저도 귀찮다며 쳐내버리는 복에 겨운 짓까지 했었던 친구가, 이렇게 아름다운 애인이라니···.”


명주가 방긋 웃었다. 차장이 보기에는 천진난만하며 즐겁다는 웃음이었으나, 길이 느끼기에는 매우 섬찟한 미소였다.


“어머나! 우리 길 씨를 좋아하는 여자라고요? 그 얘기 자세히 들어보고 싶은데요···.”


명주는 길의 팔꿈치를 붙잡아 구속했다. 저항하는 친구를 잡아끌고 차장에게 데려갔다. 재미난 얘기를 나눌 생각에 신이 난 차장은 자리를 마련하려고 사무실 의자를 끌어왔다.


“그럽시다! 내 자세히 알려주리다. 그런데, 아가씨는···?”


“명주예요. 이 친구의 임시 동업자이자 운전 조수예요. 잘 부탁드려요.” 명주는 기운차게 악수하는 손을 내밀었다. 차장은 잠깐 당황하다가 그녀 손을 움켜잡았다.


“히야, 이거! 내 얘기보다는 아가씨 이야기가 훨씬 흥미로운걸요. 앉으세요. 어디 자초지종 좀 들어봅시다. 아참! 뭐 마실 거라도 대접해드려야지. 커피라도 갖다 드릴까요, 아니면···.”


차장은 목을 빼고 턱을 들어 그들 뒤쪽의 구석에서 카드 게임하는 남자를 훔쳐보며 속삭였다.


“아예 시원한 맥주까지 곁들여서 노는 건 어때요? 냉장고에 차가운 게 있어요. 일할 기분도 아니겠다, 한잔 마시면서 노가리나 풀어봅시다.”


길은 차장과 명주의 손을 잡아 뜯고 투덜거렸다.

“우리 놀러 온 거 아니에요. 그보다 여기 분위기가 왜 이래요? 망하기라도 했어요?”


차장은 갑자기 시무룩해져서는 가까운 책상에서 자기가 앉을 의자를 끌어당겨 왔다.

“말도 말아. 나도 정신이 없어. 하루아침에 확 바뀌어 버렸거든. 어떤 사장이 나타나서 우리 조합을 인수해버렸어. 아무 조짐 없이 떨어진 벼락처럼 별안간에···.”


“엣! 진짜 망했나 보네.” 길이 말했다. 명주는 다소곳이 무릎을 붙이고 차장이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아니! 망한 거는 아닌데···, 나는 도무지 새 사장의 생각을 모르겠어. 보통은 회사 인수를 하더라도 직원들이나 협력사들 불안하지 않게 그 회사가 유지해왔던 운영방식을 지켜주다가, 조금씩 단계적으로 자기가 원하는 모양으로 바꾸는 게 일반적인 인수 절차일 텐데, 이번의 새 사장은 모든 걸 당장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대. 덕분에 불만 생긴 하우스 기사들과 조합원들이 항의하려고 단체로 들고 일어나기는 했었는데, 사장은 일주일 동안 얼굴도 안 비취고 그 사람 직속 부하들은 무슨 말을 해도 들어 처먹질 않고 하니까 다들 지쳐서 관망세로 돌아서더라고. 그런데 그 사람들도 다들 일을 해야 먹고 살잖아. 대화도 안 통하는 상대 붙잡고 놀기만 할 수는 없으니까 트럭이며 하우스 기사들은 다른 데로 옮겨가고, 협력사들의 운송 의례는 뚝 끊겨 거래는 사라지고 직원들은···! 이놈들은 사무실 안 지키고 다들 어디 간 거야!”


차장은 동료 직원들 얘기에 흥분해서 소리를 꽥 질렀다. 그리고 다시 흐느끼며 한탄했다.


“아이고!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정말로 망한 게 맞잖아! 아침에 출근한 직원들은 자기 살 구멍 찾으려고 돌아다니느라 뿔뿔이 흩어져서 퇴근할 때쯤에야 돌아올 거야. 나는 어떡하면 좋지? 대출금 갚고 애들 학교 졸업시키려면 한참을 더 일해야 하는데, 침몰하려는 배에 계속 타고 있을 수는 없잖아···.”


길은 울상이 된 차창을 위로했다.

“진정하세요, 괜찮을 거예요. 아직 완전히 망한 거는 아니라면서요···.”


“새 사장이 나 같은 놈은 필요 없다고 해고해버릴지도 모르잖아. 벌써 조합의 중요한 서류와 장비들은 그 사람 부하들이 와서 다 차지해버렸단 말이야. 자리 불안해서 미치겠다고!”


“일 잘하는 사람을 왜 짤라요. 차장님 정도로 인맥 넓고 평판 좋은 경력자는 흔치 않아요. 그런 사람을 내칠 정도로 바보면 이 바닥에서 장사 못 하죠!”


“그런데 그 바보가 나의 새 사장이야. 젠장!”


“······.” 차장의 푸념에 말문이 막힌 길은 무안해지지 않으려고 일부러 소리쳤다.

“아니! 도대체 그 사장이라는 자식은 뭘 어떻게 바꾸고 싶어서 차장님을 괴롭히는 거예요?”


“그걸 도통 모르겠다니까! 나로서는 이해가 안 돼! 사장의 부하가 설명해주기로는···.”

차장은 다시 카드 게임 하는 직원의 눈치를 살피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지금껏 잘만 쓰던 조합 서버를 없애버릴 거래. 우리는 말도 안 된다고, 그래서는 주문을 주고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진다고 반대했더니 걱정하지 말래. 새 시스템이 제때 적용되기만 하면 서버를 의지하지 않고도 주문자와 하우스 간에 똑같은 정보가 저장될 거라나···? 그러면 중앙 집중식 관리 체계로부터 해방되고, 훨씬 자유로운 거래와 더 많은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더 많은 수익 시장을 개척하고 또···, 누가 서버를 해킹에서 장난치지 못하게 될 거라는데, 아이고 이게 뭐야! 들은 얘기를 외워서 말하는 것뿐인데도 헷갈려서 전달을 못 하겠어.”


“차장님 그런데 저도 좀 궁금해지려고 하는데요···.” 길은 다른 게 아니라 횡설수설하는 차장 때문에 혼란스러웠다.

“새 사장이 바꾸고 싶어 한다는 그게 문제없이 사용하던 시스템을 단박에 뒤집어엎어도 될 만큼의 가치가 있어서 이 난리인 거예요? 차장님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저로서는 필요한 주문을 제때제때 받을 수만 있으면 사장이 뭔 짓을 하든 간에 상관없을 거 같거든요. 주문 수수료가 비싸지지만 않는다면 말이에요. 싸지면 더 좋고···.”


“바로 그거야!” 차장은 허공에 집게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뭐가 바로 그거예요?”


“수수료 말이야. 정말로 내릴 거래. 그렇게 잔뜩 깎아주면 조합에 남는 이윤이 없을 텐데 뭘 바라고 그러는 건지···.”


“왓! 진짜요? 얼마까지 내려가는데요?


“수수료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수준이야. 처음에는 0.3%만 받다가 그것마저도 더 내려서 아예 없애고 싶어 하는 눈치더라고. 단, 그런 혜택을 받으려면 조합이 제시하는 몇 가지 부가조건에 동의해줘야 해. 그리고 네 하우스에 블록체인 단말기라는 걸 설치해야 한대.”


“오옷!” 길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빨대 꽂고 악랄하게 피 빨아먹던 40% 수수료가 0.3이 된다고요? 그 정도면 뭐가 문제예요! 저라면 뭐든지 OK예요. 우리가 그 고리대금 같은 수수료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 했는지 차장님도 잘 아시죠? 양심이 있으면 그렇게나 뽑아가면 안 되는 거였지. 우하하하! 그런데···.” 길은 기쁨에 겨워 소리 질렀으나, 곧 제정신과 합리적인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나 깎아주면 차장님 말씀대로 조합은 뭘 먹고 살아요? 사장은 무슨 이득을 얻는 건데요?”


“그러니까 미치겠다는 거야! 물론 창고 이용료나 수리·정비 비용을 플러스알파로 따로 계산하기는 할 건데, 그래도 받아야 할 돈을 그 정도로 줄여버리면 조합 운영 자금은 어떻게 메꿀 건데. 지금까지의 규칙으로 머리가 굳은 나로서는 새 사장의 혁신이라는 게 뭘 말하는 건지 알 수가 없어···.”


길은 팔짱을 끼고 물러났다.

“흐음···. 확실히 수수료가 싸니까 끌리는 마음이 생기기는 하는데, 새 사장이 자선사업가는 아닐 테고 뭔가 원하는 게 있으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수수료를 제시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다른 운전사들은 뭐가 불만이어서 떠난 거예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변화가 떨어지기는 했어도, 그 정도로 파격적인 수수료가 미끼라면 좋아서 덥석 물고 일 시작하는 기사도 있었을 건데···.”


“다들 기다리는 거야. 자기가 직접 확인할 용기는 없으니 누군가가 선뜻 나서서 새로운 것이 얼마나 좋은지 나쁜지를 체험해보고 알려주기를 바라는 거지. 만약에 잘못돼서 손해를 떠안아야 한다면 남이 대신 피해 보는 게 낫잖아. 신중하다고 봐야 할지, 겁이 많다고 해야 할지, 변화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을 거고. 어떻게 보면 선구자니 개척자들이니 하는 이들은 다른 이들이 겪어야 할 실패를 대행해주고 대가를 받는 직업일지도 몰라···.”


“아이고, 차장님! 안 하던 소리를 다 하시고, 갑자기 한가해지니까 감상적으로 변하시네요. 어쩌면 사람은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면 동물에서 철학자로 바뀌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여기서는 일을 못 받는 거예요? 우리 둘도 가야 할 목적지가 있어서 서둘러야 하는데 이래서는 다른 조합을 알아봐야 할 판이잖아요?”


“일이라면 있기는 한데···.” 드르륵—


저 끝에서 카드 게임을 하던 직원이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차장은 하던 말을 멈췄고, 그가 대신 말을 이었다.


“괜찮으시다면 저도 여러분의 대화에 끼어도 될까요? 엿듣고 싶지는 않았는데, 세 분의 목소리가 저절로 제 귓속으로 들어오더군요.”


카드 치던 직원이 다가왔다. 차장은 얼굴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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