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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가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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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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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 쟝과 세이거 (11)

DUMMY

길의 나쁜 생각이 커져갔다. 화물 상자의 경사도를 걸어 올라갈수록 그 걸음걸이 수만큼의 제곱으로 병들은 잡념이 확장되었다. 내면에 떠오른 더러운 말과 약한 마음이 뭉치고 되새겨지며 사람을 바꾸는 망상으로 바뀌었다. 코스트너의 말 한마디가 시작이었다. 하우스의 입장을 허락한다···.


‘웃기지 마, 내꺼야, 뺏어가지 마! 내 기분이 나쁘니까 네가 잘못한 거야! 나는 옳고 너는 틀려! 내 기분이 풀릴 때까지 너를 괴롭히면 그게 바로 정의야! 그런데···, 불안하다···.’


모르는 장소에서 모르는 일들이 자꾸만 커지는 것 갈았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 없고 원하지도 않는 흐름이 강해져서 집을 뿌리째 뽑아 삼키는 회오리바람으로 변모했고, 그 바람의 중심으로 자신과 명주가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저항할 수 없을 만큼의 거대한 흐름 아래서는 어찌하지 못하고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길처럼 힘없는 개인이라면 특히나 그러하다.

나쁜 생각이 나쁜 예감으로 날아올랐다. 누군가 음모를 꾸미는 거다. 그가 제멋대로의 계획을 세우고 힘 있는 사건을 일으키려 한다. 사람의 믿음을 바꾸는 흐름, 새 유행이 전파될 거다. 세뇌, 암시, 광고, 선전, 선동, 정치, 종교, 악과 정의 모두 같은 말이다. 한 명의 마음을 흔들고 그 파동을 모아 집단심리를 장악하려는 거다. 큰 믿음을 위해 너의 작은 가치를 희생하라며 강요당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사기를 당할 것만 같은 직감이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상태로 사회로 나왔을 때 들어야 했던 듣기 좋은 거짓말들. 그것들이 진실이라 주입 당한 채 이용당하고 착취당해도 옳은 일을 하는 거라며 자신을 합리화하며 애써 속았다는 사실을 외면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뜬금없이 그러한 사기를 또 당할 것만 같다고 망상했다.


그래서 화가 났다. 거칠게 타오른 분노가 용기로 변신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만용이었다. 분노로 익힌 고기와 용맹함은 이기지 못하는 술처럼 해로운 허세였다. 알코올에 뇌를 푹 적셔서 생긴 객기에 조정 당해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거는 척했으나, 사실은 만만해서 건드린 녀석이 알고 보니 격투기 선수였던 것만큼이나 위험한 착각이었다.


그 아찔한 공격성이 저기 저 무섭고 무서웠던 3명의 경호원을 하찮은 녀석으로 바꾸었다. 이 기세라면 저들에게 엉겨 붙어도 맞지 않고 끝날 것 같았다. 그래서 감히 내 앞을 걷고 있는 코스트너의 뒷머리를 죽이려고 째려봤다. 그의 대가리가 말하는 것 같았다. ‘길 안내를 해줄 테니 따라서 오세요.’ 하고 주인처럼 거들먹거렸다.


길의 분노가 소리 내지 않고 소리쳤다.

‘네 녀석의 안내 따위는 필요 없어. 여기가 어딘지는 내가 잘 알아! 내 앞에 서지 말라고!”


들릴 리가 없는 외침을 들은 것처럼 코스트너가 뒤돌아섰다.


길은 급히 눈을 감았다. 무서운 사람과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화물 상자의 깊숙한 곳을 쳐다봤다.


코스트너는 관광 가이드가 안내하듯이 손을 휘둘러, 2명의 경호원과 그들이 주인 모르게 들여놓은 화물을 가리켰다.


무한궤도 차량과 장갑 트럭이었다. 상탑에는 두껍고 질긴 방수포를 둘렀는데 형태로 추측해 봤을 때, 그 밑에 감춰진 장치는 대구경 총탄을 발사하는 포탑이었다. 로터를 접은 공격 헬기의 엔진부에도 방수포를 덮었고, 몸통에서 뒤쪽으로 길게 뻗은 테일 파트는 사막용 위장막으로 윤곽을 바꿔 놓았다.


코스트너의 부하인 휘트니는 아까와 같은 자리, 똑같은 자세로 서류를 읽고 있었다. 휴스턴은 어느새 그녀 곁에 붙어서 뭐라 말을 걸고 있었다.


흡사 꽃 주변을 날아다니며 구애하는 일벌이 날갯짓한다고 앵앵거리는 모양새였는데, 그녀는 그 녀석이 걸어오는 작업질을 귓등으로 흘려보내다 아주 가끔 턱을 끄덕여주며 호응해주었고, 일벌은 예쁜 꽃의 무관심한 태도에 애간장을 태우다가도, 그녀가 반응해줄 때마다 기세가 살아올라, 더 시끄럽게 앵앵거렸다.


쓸모 많았던 일벌이 파리로 변해가는 상황이었다. 귀찮았던 그녀는 벌레 퇴치를 결심했고, 때마침 들어오는 코스트너와 2명의 침입자를 발견했다. 긴급 상황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부터 움직였다. 무릎을 조금 굽히고 손을 풀어 허리 뒤춤에 숨긴 권총 뽑을 준비를 하고, 대장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런데 코스트너가 저들을 안내하는 것이었다. 손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얼른 태세를 바꿨다. 대장과 눈빛을 맞추고, 차렷 자세를 헐렁하게 취했다. 희미하여 알아보기 힘든 환영의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그럼에도 길은 겁을 먹고 눈을 깔았다. 분노로 인해 기세가 올랐음에도, 그녀의 차가움에 압도되어 주눅 들었다. 다행히 그녀가 환영하는 척을 해주었기에 망정이지, 까닥했으면 항복하고 바닥에 배를 깔았을지도 모른다. 하우스를 자기네들 소유물이라 착각하고 활개 치는 놈들의 오만방자함을 묵인하고, 네놈들 마음대로 하라며 앞에서 큰소리치고, 뒤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용기와 만용은 사라지고 비굴함만 남아버렸다. 그게 길의 현실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휴스턴이 으르렁거렸다. 소리 없이 짖어댔다. 주인을 따라다니던 강아지가 다른 수컷이 접근하는 걸 보고 짖어대는, 그런 개 같은 얼굴이었다.


그 개의 목줄을 잡아당겨 제지하듯이 코스트너가 말했다.


“너희들 인사드려. 이분들이 누군지는 잘 알지?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사토시 씨와 운송 책임자인 길 씨야. 우리가 지켜드려야 할 분들이니까 예의 갖춰서 행동하라고. 두 분도 인사 나누시죠. 저희 팀의 믿음직스러운 고참인 휘트니와 팔팔하고 기운 센 신참 휴스턴입니다. 앞으로는 이 녀석들에게 마음 놓고 의지해 주십시오.”


대장이 소개하니 휘트니가 경례했다. 길은 마음이 조금 놓여져서 고개를 숙이며 맞인사를 했고, 사토시는 그녀에게 악수를 청하려다가, 선뜻 손을 내밀지를 못해서 팔꿈치를 꿈지럭거렸다.


휴스턴도 휘트니를 따라 경례했다. 그러나 매우 설렁설렁한 인사였고, 공격성을 드러내며 째려보기까지 했다.


그러한 싸가지 없음에 길은 배알이 꼬였으나 내색하지 못했다. 휴스턴은 체구는 보통 정도였으나 조금만 움직여도 통통 튀는 탄력이 느껴질 정도로 육체가 울퉁불퉁했고, 싸움도 잘할 것처럼 보여서 이 녀석과 시비가 붙으면 확실하게 두들겨 맞을 것만 같았다. 거기에 눈매까지 얇아서 눈깔을 위로 치켜뜨고 노려보면 대단히 무서운 데 반해, 3명의 경호원 중에서는 가장 젊고 묘하게 휘트니를 따르는 모양새가 마치 덜자란 어린 수컷이 깡패 흉내를 내는 것 같다는 게, 길이 그에게 얻은 첫인상이었다.


코스트너가 말했다.

“휴스턴, 네가 화물을 어떻게 묶었는지 길 씨에게 보여드려. 제대로 한 건지 안전 점검을 해주실 거야.”


휘트니의 안광이 번쩍였다가 사라졌다.


휴스턴은 얼굴을 구겼다. 싫은 티를 감추지 못했고, 눈동자가 자꾸 휘트니 쪽으로 굴러갔다. 잘못을 지적받은 아이가 칭얼대는 것 같았다.


“뭣 때문에 말입니까? 보십시오, 시키신 대로 제가 제대로 묶어놨지 말입니다.”


그가 장갑차를 칭칭 감은 탄력바를 가리켰다. 화물에 탄성 강한 로프를 몇 겹이나 두르고는, 이만하면 꿈쩍도 안 하겠지 하고 안심이 될 절도로 힘을 줘서 당긴 다음 잘못 묶은 나비매듭을 해놨다. 하우스가 주행을 시작하면 그 진동으로 확실하게 풀려버릴 엉성한 마무리였다.


그 허접한 처리에 길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코스트너는 ‘이걸 봐라. 전문가가 이렇게나 한심스러워하지 않느냐며’ 미소 짓는 얼굴로 턱 끝을 까딱거렸다.


대장으로서는 질책할 마음이 전혀 없는 가벼운 장난이었지만, 휴스턴은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멍청한 잘못을 저질러서 조롱받았다. 열심히 했는데도 저 자식이 깎아내렸다. 혼자만 있으면 아무렇지 않을 텐데 하필이면 그녀가 보는 데서 망신을 주다니, 이 쪽팔림을 어찌하냐는 마음이 몸에 드러났다. 새빨개졌다. 그렇게나 그녀를 훔쳐봤었는데 이제는 보지 않으려고 목을 딱딱하게 고정하고 승모근이 올라설 정도로 어깨 두 쪽을 치켜세웠다. 수치심에 말까지 더듬으며 대답했다.


“예···. 이 자식···, 아니 길 씨에게 보여주겠습니다···.”


휴스턴은 생각이 온몸에 드러나는 남자였고, 코스트너는 눈치 없는 대장이었다. 그가 말했다.


“아니지! 똑바로 들어. 화물은 보여드리면 안 되고, 네가 화물을 제대로 결박했는지만 확인을 받으라고. 네가 실수한 게 있으면 길 씨께서 찾아서 어떻게 고쳐야 할지 친절하게 알려주실 거야.”


남들이 보는 데서 지적질을 받으라니, 강한 남자 휴스턴의 약한 자존심이 꿈틀거렸다. 그는 들릴 듯 말 듯하게 “예···.’라고 대답하고, 더럽고 개 같은 눈깔을 치켜떠서 길을 노려봤다.


그 노골적인 공격성에 길은 흠칫 놀랐다. 내가 뭘 잘못했나 하고 오만가지 잡생각을 하며 고민하다가,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지고 싶지 않다는 남자의 오기가 솟아올랐다. 두려움을 참아가며 저놈을 억지로 노려봤다.


상대가 눈빛으로 반격해오니 휴스턴도 불타올랐다. 그의 입과 혀가 깔짝이면서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아마 쌍욕이거나 그와 비슷한 말일 거다.


길도 ‘뭘 꼬나보냐, 이 새끼야!’ 소리치고 싶었으나 말하지는 못했다. 저놈의 면상까지 달려가서 욕하고 싶었으나 행동하지도 못했다. 약자의 생존 본능이 참아라, 도망가라며 비명 쳤다. 하지만 어림없었다. 이길 수 없어도 싸워야 했다. 물러서면 모양새가 박살 난다. 체면을 세워라. 자존심을 지켜라. 싸움 전의 고요함이 주변에 깔렸다. 대치 상태의 긴장감이 깨져버리면 바로 전투가 시작될 것이었다. 감고 싶은 눈에 힘을 잔뜩 줘서 저놈을 찔러 죽일 듯이 노려봤으나, 눈썹은 고통에 절여져 일그러졌다. 길의 마음속 저편에서 평화를 바라는 또 다른 자아가 속삭였다.


‘다들 뭐하냐! 보고만 있지 말고 누가 좀 말려달라니까···.’


“아이고, 여러분···!”


별안간 사토시가 끼어들었다. 그도 눈치가 없기로는 코스트너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남들이 하는 말은 듣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말만 생각하는 마이크 독점자였으며, 말은 많이 하면 할수록 잘하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착각쟁이였다.

그는 길과 휴스턴 사이에서, 저들의 대화와 행동은 듣지도 보지도 않은 채,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만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존경받고, 인기도 얻고 싶었다. 그저 말만 많이 하면 저들은 알아줄 터였다. 하지만 이렇게나 불가능한 인간관계를 원해왔던 사토시는 그것이 실현되지 않는 자신의 현실에 항상 불안감을 느껴왔다. 그래서 상사 욕을 습관처럼 했던 거다. 처음 책임자가 되었을 적에는 그런 게 통했었다. 그가 그의 험담을 시작하면 저들과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얘기가 재미있었다. 처음에는 그랬었다···.


“보아하니 여러분도 골칫덩어리를 떠맡으셨나 보군요. 잠도 못 자고 고생들이 많으십니다. 이게 다 그 사람 때문이지요? 멍청한 상관 말이에요. 바빠서 쉬지도 못하는데 새벽부터 배달을 보내다니 미쳤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계획도 없고 체계도 없는 일을 해야 하냐고요. 느닷없이 무기가 필요하다면서 생떼를 쓰질 않나, 다들 안된다고 반대하는 부서를 억지까지 부리면서 왜 만드냐고요. 보통은 제정신인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하나요? 항공·우주 기술 부서 같은 게 생기면 연합하고 충돌 날 게 뻔하잖아요. 하지 말라는 걸 하고 싶으면 티라도 내지 말아야지 뭐가 잘났다고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냐고요. 그 높으신 분이 광산을 몇 개씩이나 사들이면서 똥 싸듯이 돈 뿌리는 걸 보면 서글픈 생각까지 든다니까요. 멍청한 망상가 같은 게 운 좋게 부자가 되어서 그 자리까지 올라간 거잖아요. 고마운지도 모르고 우리 같은 전문가들을 막 쓰는 걸 보면 이 세상은 불공평하게 분명해요. 우리 프로젝트만 하더라도 그래요. 아직 완성도 되지 않은 기술인데 너무 서둘러요. 그렇게나 규칙을 바꾸고 싶으면 조금 더···.”


“그만하시죠! 사토시 씨···.”


코스트너였다. 근엄한 목소리로 매우 다급하게 말했다. 곁눈질로 길을 슬쩍 보고 다시 말했다.


“사토시 씨가 직장 상사를 싫어하는 건 본인의 자유지만, 그분은 저의 상관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뒷담화가 뭐가 그리 재밌다고 자꾸 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코스트너는 사토시의 어깨까지 다가가서 소곤거렸다.

“회사 기밀을 함부로 유출하지 마십시오. 방금의 얘기 속에 저희조차 함부로 알면 안 되는 내용이 포함되었습니다. 말을 조심하지 않으시면 앞으로 큰 제재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부디 그 실행자가 저는 아니기를 바랍니다···.”


코스트너는 ‘합!’하고 입을 닫았다. 귀도 닫았다. 그의 내면 세상이 공포로 차올랐다. 결국엔 온 것이다. 그토록 우려하던 상황이 발생한 거다. 아랫사람이라 생각했던 자에게 주의를 받고 경고까지 먹었다. 모욕감보다는 창피함이 심했다. 자신이 혼나는 모습을 저들이 보고 만 것이다. 그래서 없었던 일로 무마하려고 뭐라 뭐라 변명을 하려고 했으나, 말과 행동이 굳어버렸다. 공기 마시는 법도 잊어버려서 “학학!” 거리다가 토악질을 하듯이 거칠게 숨을 뱉기만 하고, 다리는 후들후들 떨어댔으나, 주저앉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제는 다 필요 없어져서 자리를 뜨고 싶은데, 걷는 법 뛰는 법도 모르게 되었다. 죽고 싶다. 그래도 안 죽을 거다. 그런 것만 생각했다.


“사토시 씨···? 괜찮으십니까?”


코스트너도 당황했다. 주의만 가볍게, 아주 살짝 주려고 말한 건데 효과가 지나치게 잘 먹혔다. 사토시가 벌벌 떨 정도로 겁을 먹었으니, 걱정되면서도 자신이 꼭 약자를 괴롭히는 악당이 된 것만 같아서 싫었다. 그는 언제나 정의의 편에 서고 싶어 했던 순진한 아이였다. 누군가를 협박하는 자세는 코스트너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아니었다. 어서 빨리 사토시를 안심시켜줘야 했다. 지켜주는 것, 그게 코스트너의 임무이며 목표였다.


휘트니가 도움의 손길을 뻗쳐왔다. 그녀가 부드러운 손으로 사토시의 등을 토닥여주니,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남자의 호흡이 안정되었고, 그의 팔을 들어 그녀 자신의 어깨에 두르고 부축까지 해줬더니, 이 자식은 한술 더 떠서 자기 팔을 스스로 움직여 그녀를 더듬고 몸을 붙여 부비부비 안기는 것이었다.


휴스턴이 팔짝 뛰었다. 생각했다.

‘그 손 치우라고 새끼야!’


그녀의 배에 닿은 저 새끼의 손이 슬금슬금 가슴으로 올라갔다. 어린 수컷은 그녀를 지키려고, 사토시를 대신 부축해주려고 튕겨 나갔다.


그 마음을 꿰뚫어 본 것처럼 휘트니가 노려봤다. 멈추라는 말을 앙칼진 표정으로 전달하니, 휴스턴은 멈췄다. 그녀는 사토시를 한쪽 어깨에 멘 체 몸을 폴짝 튕기면서 펴는 반동으로 허우적거리는 남자의 허우대를 추스르고 짐짝을 짊어지듯이 걸쳐 들었다. 그리고 명령했다.


“대장님이 너한테 뭘 시키셨지? 얼른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네가 화물 묶은 걸 길 씨에게 보여드려. 그분이 뭐가 잘못됐는지 지적하면 말대꾸하지 말고 그대로 고쳐놔.”


휴스턴은 반항했다.

“저기···. 무거우니까 그 자식은 제가 대신···.”


“쓰읍—!”


일종의 경고였다. 그녀가 혀를 차고 이빨 사이로 바람을 뱉었다. 네가 내 말을 듣지 않아서 짜증이 난다는 표현이었다. 이웃집 꼬맹이를 타이르는 누님의 자태였다.


휴스턴은 배를 뒤집어 복종을 표현하는 수컷 호랑이가 되었다. 은근히 기뻐했다.


“알았어요. 사고 안 치고 시비도 안 걸게요···.”


“됐으니까 어서 가! 나중에 물어볼 거니까 그분한테 잘 해드려. 만약에 네가 조금이라도! 아주 쥐똥만큼이라도 실례되는 짓을 했다고 들으면 너를 아주 아작내버릴 거야.”


휘트니는 말을 하다가, 짊어진 사토시가 무거웠는지 다시 한번 몸을 튕겼다.


연인처럼···, 그녀 곁을 지키던 코스트너가 얼른 사토시를 잡았다. 그녀 배를 만지는 그 자식의 손부터 치우고 부축한 걸 뺏어와 어깨에 둘러멨다. 그녀에게 엉기었을 때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거리던 사토시가 코스트너에게 안기자마자 낑낑거리며 버둥거렸다. 코스트너는 아랑곳하지 않고 억센 팔로 사토시의 반대쪽 허리를 휘감고 몸부림을 틀어막았다.


“사토시 씨는 내가 처리할게. 우선 내 침대로 데려가서 눕혀야겠어.”


“저도 가서 돕겠습니다.”


“그래 주면 나야 고맙지.”


코스트너는 자신의 숙소 컨테이너로 앞장서 갔다. 사토시는 벌써 기운을 차린 것인지 자기 다리로 버티고 두 손으로 코스트너를 밀어내 서로의 사이를 벌리려고 했으나, 융통성 없는 이 남자는 사토시를 바짝 끌어당겨 몸을 밀착시키고, 저항 못 하게 안은 다음 인간 형태의 쌀 포대를 다루듯이 사토시를 끌고 갔다.


휘트니는 그의 뒤를 따라갔다.


휴스턴은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그녀가 코스트너의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 주인 잃은 개가 불안해하는 것처럼 왔다 갔다 돌아다녔다.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고 왈왈 짖었다. 그녀가 그렇게나 주의를 시켰건만 휴스턴의 안중에 길은 없었다.


길은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으나 참아야 했다. 괜한 장난질을 쳤다가는 주먹이 바로 콧잔등이로 날아올 것만 같았다. 성격 예민한 수컷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뻘쭘하게 서 있다가,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야?’ 하는 기분이 들어 한숨을 뱉었다. 저 어린 수컷은 듣지 못했다. 성격 더러운 놈이 나를 비웃는 거냐며 트집 잡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안심하는데, 저놈이 갑자기 획! 고개를 돌리고 쳐다봤다.


“따라와요. 화물 묶은 거 보여줄게요.”


길은 결국 웃고 말았다. 어쩌면 쟤랑 나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한심하게 마음고생만 하다가 모든 기회 다 잃어버리고 끝나버리는 타입. 동질감이 느껴지니 저 녀석이 친근해졌다. 그리고 몸서리가 쳐질 만큼의 동족혐오가 일어났다. 저 녀석이 나의 부끄러운 과거를 거울처럼 비쳐 보여준다. 휴스턴에 대한 첫인상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음식물 쓰레기에 향기 나는 꽃을 한 바구니 쏟아놓고 휘젓는 것 같았다. 이번 여행도 참 골치 아프겠구나, 라고 예감했다.


휴스턴을 따라갔다.



ㅡ ㅡ ㅡ ㅡ ㅡ ㅡ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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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프롤로그 - 교차로 18.08.19 135 3 13쪽
16 5회 - 동업 18.08.07 116 3 20쪽
15 4회 - 계약자 (03) 18.07.27 121 2 14쪽
14 4회 - 계약자 (02) 18.07.24 125 2 17쪽
13 4회 - 계약자 (01) 18.07.13 135 2 20쪽
12 3회 - 살인자 (05) +1 18.07.04 157 4 12쪽
11 3회 - 살인자 (04) +1 18.06.28 148 5 10쪽
10 3회 - 살인자 (03) 18.06.25 170 3 11쪽
9 3회 - 살인자 (02) 18.06.21 163 5 21쪽
8 3회 - 살인자 (01) 18.06.12 223 3 13쪽
7 2회 - 몽상가 18.05.25 203 5 24쪽
6 1회 - 동행 (04) 18.05.12 227 6 11쪽
5 1회 - 동행 (03) +1 18.05.11 238 7 9쪽
4 1회 - 동행 (02) 18.05.11 277 4 8쪽
3 1회 - 동행 (01) +1 18.04.25 419 8 18쪽
2 프롤로그 - 5년 18.04.12 453 9 11쪽
1 프롤로그 - 18살 +1 18.04.12 953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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