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1단계
서해안 모 등대.
촬영팀이 분주하게 카메라를 설치했다. 등대 자체에 이미 달린 카메라들이 있지만 방송국 카메라들보다 여러 방면에서 부족하다. 특히 이번에는 생방송이어서 특별히 신중해야 한다.
"효천이 가만히 있어요. 언니 말 잘 들으면 고기 먹어요."
귀여운 전투복을 입은 효주와 빨갛게 머리를 염색한 여자가 함께 강아지라고 하기에는 꽤 큰 효천의 털을 정리했다. 최영웅 역시 사흘 내내 설사를 한 사람과 같은 얼굴을 하고 얼굴에 이것저것 덕지덕지 발랐다.
"저, 신 팀장님 이 모자를 쓰시는 건 어떻습니까?"
"괴물과 싸우는 일이라 최대한 편한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제가 실수해서 사고가 나면 누군가가 다칠 수도 있으니까요. 제가 좀 예민한 편이라 죄송합니다."
직급이 이미 과장이 된 박철이 아니꼬운 표정으로 신기를 흘겼다. 살집이 넉넉한 여자가 박철의 머리를 다듬어주고 있다. 쉬는 시간이 없어 머리를 자르지 못했는데 방송 덕분에 머리를 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그 방향이 박철이 원하는 것과 너무 달랐다.
"눈이 커서 화장도 필요 없어. 참 부러운 눈이야."
박철의 코에 분을 두껍게 발라주는 목소리가 간드러진 남자의 말에 박철은 소름이 쫙 돋았다.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알게 된 박철은 화장도 안 하고 구경만 하는 신기가 무척 얄미웠다.
조감독이 FD를 혼내는 소리, 누군가를 향한 감독의 잔소리, 조명 감독이 길을 비키라고 외치는 소리로 등대 안은 그야말로 시장통이 되었다. 이미 몇 번째지만 적응이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가끔 자리를 두고 조명과 음향이 싸우기도 했다.
"자, 시청자 여러분. 예고대로 오늘 서해안에서 등대 프로젝트 생방송을 해드리게 되었습니다. 등대 프로젝트 덕분에 지금 괴물이 침입한 국토를 빠르게 되찾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의 분석이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뛰는 각성자의 의견을 듣기 위해 저희 촬영팀이 위험을 무릅쓰고 서해안의 등대를 찾았습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척하던 여자는 곧바로 멘트를 이어갔다.
"여기 등대 프로젝트 특별팀 마스코트 강효주 어린이가 있군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언니 참 이뻐요."
"고마워요. 강효주 어린이도 엄청 이뻐요. 질문 하나만 할게요. 괴물이 무섭지 않아요?"
"아니요. 효주는 초인이에요. 악당을 다 무찌를 거예요."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용감한 어린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지금 전투 준비 중인 특별팀 팀장인 신기 씨를 찾아보겠습니다. 동해안에는 김태풍 서해안에는 신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등대 프로젝트 현장팀 쌍두마차인데요. 검술 스킬 마스터로도 무척 유명합니다."
신기는 음료 한 병을 들고 마시는 척 시늉을 했다.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감독의 요청에 먼 곳을 바라보며 입술만 축였다.
"안녕하세요. 신 팀장님. 사실 오늘 아주 특별한 날이라고 전해 들었어요."
"그렇습니다. 오늘 제가 승급하는 날입니다. 이미 아시다시피 승급하면 전투력이 몇 배로 뜁니다. 서해안의 안정화가 예상보다 최소 보름은 앞당겨질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서해안의 안정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분도 계실 수 있거든요. 좀 더 상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서해안이 안정화되면 이곳은 지원팀에 넘기고 특별팀은 남해안으로 갑니다. 그리고 남해안의 안정화가 끝나면 등대 프로젝트 1단계가 끝납니다."
신기는 잠깐 호흡을 가다듬었다.
"등대 프로젝트의 1단계 목표는 괴물 없는 안전한 대한민국입니다. 올해 안으로 이 목표를 반드시 이루어 국민 여러분께 안전한 대한민국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질문하던 리포터도 신기의 말에 가슴이 벅찬지 바로 말을 받지 못했다. TV를 통해 생방송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환호를 질렀다.
### DUAL SYSTEM ###
서울.
TV 화면은 박철이 불러온 괴물이 꽉 채웠다. 그간의 경험으로 오늘이 괴물을 가장 많이 불러오는 날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99레벨이 벌써 삼 일째인 신기가 반드시 승급할 것도 지금까지의 데이터를 통해 유추했다. 특히 경험치를 2배로 받는 신기이기에 반드시 승급한다.
"저 친구 좀 제동을 걸어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김 비서, 그간 나한테서 뭘 배운 거야. 있는 힘껏 밀어줘. 전폭적으로 지원해."
"태운 그룹으로 향해야 할 이미지를 저 친구가 잘라먹고 있습니다."
강경운은 잔에 든 위스키를 말끔히 비웠다. 건강해져서 가장 좋은 건 먹고 싶은 것과 마시고 싶은 것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김 비서는 일을 잘하는데 사람 볼 줄 몰라. 저 아이는 우리와 다른 부류야. 가는 길이 다르니 우리 앞길을 막을 일도 없는 아이야."
강 회장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 김 비서가 다시 질문했다. 태운 그룹을 통틀어 강 회장에게 되물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우리랑 다르다는 말은 알겠습니다만, 앞길을 막지 않는다는 건 잘 모르겠습니다."
"대화를 해보면 뭔가 아는 게 있긴 하지만 어설퍼. 진짜 밑천이 두둑한 노름꾼은 떨지 않아. 그러나 저 아이는 늘 긴장하는 게 보여. 그리고 지금까지 행적을 살펴보면 원하는 목표가 우리랑 달라. 그게 뭔지 모르지만 우리와 확실히 달라. 그러니까 더 밀어주고 더 높이 가게 해줘. 우리 편으로 만들면 참 든든한 우군이 될 테니 말이야."
강 회장은 신기가 바라보는 방향이 자신과 다름을 관록으로 알아차렸다. 이대로 가도 좋고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어도 좋다. 강 회장이 태운 그룹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 그리고 이제는 결국 태운 그룹에 먹혀 손수 만들어낸 태운 그룹조차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강 회장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태운 그룹을 신기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개인이 뭔가를 해내기에 이미 사회제도와 여러 가지 시스템이 너무 성숙했다. 그리고 지금 태운 그룹은 빠르게 달리는 마차다. 마차의 가장 큰 축인 신기를 의심해서 제동을 걸다가 마차가 전복할 수도 있다.
"볼 때마다 신기하네. 검으로 가리키면 괴물이 픽픽 쓰러지다니."
연출을 위해 신기는 검으로 한 방향을 가리키고 그 방향으로 신성력을 쏟았다. 그래서 화면으로 보면 마치 검에서 무형의 기운이 나가 괴물을 처리하는 것 같다. 신기와 괴물을 번갈아 비추던 화면이 강효주와 최영웅을 비췄다.
"요즘 효주를 그룹 후계자로 내세우자는 소리가 좀 크던데. 막내 수작인가?"
"그렇습니다. 새로 들인 도령께서 자격을 갖추기엔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아마 그 틈을 탈 생각인 것 같습니다."
"효주한테 허튼짓 못 하게 둘째랑 셋째에게 확실히 경고해. 지금 내 핏줄 가운데 가장 쓸모가 있는 아이야."
"알겠습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괴물이 전부 사라졌다. 등급이 올랐느냐는 리포터의 질문에 신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검증기에 손을 올렸다. 신기의 각성자 정보가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다.
"난리 나겠구먼."
김 비서는 강 회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 신기
등급 : 을급
개인 등급 : 0
재주 : 검술(충검) 중급 7, 간파 입문 1
카메라맨이 놀라면서 화면이 흔들렸다. 믿을 수 없는 결과에 모두 깜짝 놀랐다. 리포터가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신기에게 질문했다.
"신 팀장님, 저 정보가 진짜입니까?"
대한민국 최초의 A급 각성자를 확인하러 왔다가 B급 각성자를 확인했다. 그것도 승급해서 B급이 된 각성자다. 그러니까 그 전에 C급에서 이미 B급인 김태풍보다 훨씬 강한 위력을 보였다는 말이다.
"열심히 하면 언젠가 저도 A급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간파는 괴물의 약점을 찾아내는 패시브 스킬입니다."
그때 효주가 불쑥 끼어들었다.
"삼촌, 효주 99레벨 됐어요."
"며칠 지나면 강효주 팀원이 B급이 될 겁니다. 대한민국에 또 한 명의 B급 각성자가 탄생하겠네요. 만약 특별한 스킬을 가진 각성자가 계신다면 태운 등대에 연락 주십시오. 괴물을 상대하는 데 훌륭한 스킬이라면 저희가 책임지고 키워드립니다. 레벨은 물론 스킬 레벨까지 빠른 기간 안에 올릴 수 있습니다. F급은 이틀이면 D급 만들어 드릴 수 있습니다."
빠듯하기는 하지만 운이 좋으면 하루에 올릴 수도 있다. 물론 그러려면 독도 쪽으로 가야 한다. 서해안은 괴물이 동해안보다 훨씬 적다. 거기에 각성자들의 수준도 높아져서 서해안의 안정화가 계획보다 무척 빠르게 끝날 것이다.
남해안의 안정화를 시작하며 동시에 박영광의 '육군'이 육로로 남하할 것이다. 태운 그룹의 이름으로 차지한 '영토'를 수복하고 그곳에 '영지'를 세울 것이다.
"김 비서, 저 청년을 의심하거나 견제하려는 생각조차 버려. 마음을 하나로 합쳐서 열심히 달려야 하는 시기야."
사실 강 회장도 신기를 완전히 신임하지 않는다. 그저 아직 의심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이다. 그리고 각성자는 어차피 무적이 아니다. 총으로 쏘면 죽는다.
### DUAL SYSTEM ###
영국 노팅엄.
"D는 뭐라고 해?"
"탐구 스킬 레벨이 가장 높은 사람은 에릭 너라고 했어."
"그럼 저건 어떻게 해석할 거야? 왜 저 코리안들은 파티를 만드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지?"
"D는 자신이 유일무이하다고 했어. 그러니 K와 같은 존재는 없어."
"그러니까 답을 달라고. 나에게 답을 줘. 명확한, 확실한, 의심의 여지가 없는, 내가 바보가 아니라는 증거를 달라고."
에릭은 미친놈처럼 중얼거렸다. 하나밖에 없는 귀한 사탕을 모래 위에 떨군 아이처럼 울먹거렸다. 맥은 에릭을 골려주려던 생각을 접었다. 각성자가 미칠 수 있는지 굳이 에릭을 통해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뿐이 아니야. 블랙 에그를 먹으면 일반인도 각성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 모두 봤잖아. 지원자 대부분 미치거나 죽었어. 각성에 성공한 자는 극히 일부야. 그런데 정보부에서 가져온 정보를 봐. 이미 수백 명을 각성시켰다잖아. 그러려면 에그가 수천 개는 필요해. 어디서 그렇게 많은 에그를 얻어낸 거야? 만약 안전하게 각성시키는 방법을 모른다면 수천 개가 아닌 수십만 개의 에그가 있다는 뜻이야. 저 작은 나라의 에그 산출이 유럽 전체보다 많다는 뜻이라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누군가가 자신이 모르는 것을 알고 있다는 데서 오는 상실감, 최근 변하지 않는 스킬 레벨에 에릭은 무척 예민하게 변했다. 파티를 맺으면 스킬을 사용할 때 부가 경험치를 얻는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괜찮았을 텐데 이미 알고 있어 그 상실감이 더욱 크다.
"제길, 코리아에도 핵이 있다고 했던가? 어떻게 협박해서 파티 만드는 법 좀 알아내."
"미국과 중국이 이미 움직였어. 다만 아주 평화적인 방법으로 얻어내려는 것 같아."
"파티 정보를 제외하고 다른 고급 정보도 가지고 있겠지. 거기에 일반인을 안전하게 각성시켜줄 수 있으니까. 죽을 날을 받아놓은 늙다리들이 비위를 건드릴 생각도 못 하겠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화가 솟자 에릭은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비 전투형 각성자지만 B급에 달하기에 육체 능력이 일반인보다 훨씬 강하다. 통나무로 만든 책상이 부르르 떨렸다.
"D는 뭐래? 역시 예상 범위 안의 변수?"
"에그를 통한 각성은 예상 범위 밖의 치명적인 변수. 우리더러 지혜롭게 대처하라고 하던데. 그거 좋은 거 아니라고 하더라."
뭔가 단서를 얻은 에릭은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한참 생각하다가 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각성한 사람에게 나쁜 거야 아님 우리에게 나쁜 거야?"
"D에게 나쁘다고 하더라고."
"각성자가 많으면 괴물을 더 확실하게 제압할 수 있어. 그런데 D에게 나쁘다라. 뭔가 있는데 뭔지 모르겠어. 오늘 밤은 위스키를 마시고 밤을 새워야겠군."
위스키를 마시면 뇌가 흥분해서 사고가 더 잘 된다고 믿는 에릭은 미리 밤에 어떤 위스키를 마실지 고민했다. 사실 등대 프로젝트는 에릭이 예전에 생각해 놓았었다. 그러나 화력 부족으로 실행하지 못했다. 각성자와 군대의 힘이 부족해서 모을 수 있지만 처리가 힘들다.
그런데 한국에서 벌써 세 개 해안선 중 하나를 안정화하고 올해 안으로 세 개 다 안정화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물론 신기의 위력은 여전히 뭔가 수작이 숨어있다고 믿었다. 특히 공개된 각성자 정보를 통해 자기 생각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 작가의말
글을 더 잘 쓰려면 공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식도 지식이지만 글에 분위기를 입히는 방법을 잘 고민해야겠습니다. 어떤 장르가 되었든 다양한 취향의 분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글 하나 쓰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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