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 가르기
한국.
태운 그룹의 발표는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태운 그룹은 구체적인 수치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 시발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말이잖아?
= 유통망 유지, 생필품 가격 낮추는 일, 각성자도 전부 태운 그룹 직원, 군에서 사용하는 총과 탄약도 절반 이상이 태운 그룹이 무상으로 공급. 정부는 뭘 한 거야?
= 정부는 통일을 했어요. 곧 삼천만이 넘는 주둥이가 태운 그룹을 향해 짹짹거릴 겁니다.
= 이 어려운 상황에 태운 그룹이 일본을 돕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잘한 건 잘한 거라도, 일본 돕는 결정은 정말 잘못된 일인 듯.
= 위에 병신은 뭐지? 그러니까 태운 그룹도 잘못한 게 하나 있으니 다른 대기업들 까지 말라는 거야? 혹시 국정원 분이신가?
= 그래도 경기도와 강원도를 버려야 한다는 주장은 심했음. 고향을 버리고 떠나는 게 쉬운 일이 아님.
= 여러분, 태운 그룹이 하는 일은 무척 쉬운 일입니다. 대한민국 일 년 국가 예산을 몇 달에 소모하면 됩니다. 그것도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말입니다. 참 쉽죠잉?
= 태운 그룹 부처님인 듯. 저 정도 저력을 가지고 다른 대기업들을 여태껏 살려두다니. 나 같으면 다른 대기업들 다 망하게 만들고 한국 시장 독점했을 거임.
= 이 멍청이들아.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아. 태운 그룹이 힘들다고 발표한 지 일주일이나 지났는데 정부가 아무 반응도 없다는 게 핵심임.
= 나 서울 사람인데, 태운 그룹 지지한다. 이대로 버티다 방어선이 무너지면 다 죽는 거야. 아는 형한테 우연히 얻어들었는데, 북한 한 달도 버티기 힘들단다. 식량도 부족하고 총과 탄약도 부족하다. 통일이 아니라 그냥 백수 삼촌이 우리 집에 기어들어 온 거랑 같은 상황이야. 어릴 때 말 안 듣는다고 나를 때리던 삼촌이 철판 깔고 기어들어 올 때 그 기분, 니들이 알아?
네티즌들만 의견 발표에 극성인 건 아니었다. 정치인들과 저명인사들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발표했다. 신기하게도 중립을 지키는 사람이 드물고 태운 그룹 편 아니면 정부 편을 아주 확고하게 들었다.
= 태운 그룹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 지으려고 정부에 허가를 신청했는데 정부가 도리도리했다고 함.
= 나 태운 그룹에 아는 사람 있는데, 태운 그룹이 이번에 칼 뽑았다고 함. 구체적인 건 태운 그룹에도 아는 사람이 몇 안 됨.
= 서울에 있는 친구 몇이 전화 와서 우리 집 잘 데 있냐고 물음. 서울에서 잘나간다고 그렇게 유세 떨더니 개꿀임.
= 탄핵이 답임. 그리고 국회의원들도 싹 물갈이해야 함.
태운 그룹이 뽑은 칼이 무엇인지 모든 국민이 바로 알게 되었다. 다른 기업에 대한 지원을 멈추며 생필품 가격이 출렁이게 되었다.
경제학에서는 한 공장이 생산한 제품을 판매한 수입과 운영비가 같다면, 쉽게 말하면 통장의 잔액이 매달 정산 후 변하지 않는다고 해도 공장을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실제로 돈이 안 되는 공장을 계속 돌리는 사람은 없다. 경제학은 단순히 돈 따위를 가지고 계산했지, 인간의 정신적 스트레스 따위는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번 일은 태운이 좀 심했음. 유예 기간을 어느 정도 줘야 하는 거 아닌가?
= 두 달 전부터 힘들다고 정부에 말했는데 정부가 아무 조치도 없이 놀고 있었던 거임. 태운 그룹은 할 만큼 했다고 봄.
= 태운 그룹에 아직 여력이 있다고 들었는데.
= 윗분 혹시 원빈? 오늘만 사는 사람임? 여력이 다 사라지고 수비선이 무너져서 괴물이 목을 물 때 조치할 거임?
= 나만 모든 포커스가 태운 그룹에 가는 게 불편한가? 잘해주다가 덜 잘해주니까 심하다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했던 놈들은? 물론 기업이 국민을 위해 헌신할 의무는 없어. 그럼 정부는? 북한 사정을 네티즌들도 아는데 정부가 몰랐다고? 국정원 키보력이 대한민국 최강인데 모를 리가 있나? 그런데 통일을 추진한다? 그것도 우사인 볼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만 을사오적이 생각난 거야?
때에 맞춰 군부에서 사망자 숫자와 명단을 발표했다. 서해안은 백 명도 안 되고 동해안은 수백 명, 남해안은 만 명에 가깝게 사망했다.
= 일본 연해에 소각장이라는 걸 운영해서 괴물이 한국으로 오기 전에 소멸한다고 함. 그러면 남해안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고 함.
= 차라리 남해안을 버리는 게 나은 게 아님?
= 대가리 비우고 살지 마라. 괴물이 뭐 바다가 좋아서 해변에만 머문다나? 우리가 물러나면 괴물이 안 따라 올라올 것 같아?
= 수비선이 길고 이동 거리가 멀어서 괴물이 대량으로 침습했을 때 지원을 적시에 못 한다고 함. 지금 정부는 앞날이 창창한 젊은이들 목숨을 갈아 넣으면서 현상태를 유지하는 거임. 태운 그룹은 일선에서 직접 뛰니까 그게 마음 아팠던 거고. 경기도와 강원도를 버리고 사람들을 남으로 몰아넣으면, 남해안에서 죽는 사람이 줄어듬.
= 사람 수백 수천 살리자고 수천만 사람을 이동하라고? 말이야 방구야?
= 그럼 니가 가서 죽어.
= 병신인가? 그게 아니라도 이동해야 하는 판인데. 태운 그룹이 유전을 찾은 줄 알아? 유통망 유지 못 하면 쌀을 전국에 배달하지 못한다고. 그때 가서 빌빌 짜며 걸어서 쌀 있는 곳 찾지 말고 미리 한곳에 모여 살자는 거 아냐.
= 제길, 키보드 잡고 타자밖에 모르는 방콕 띨띨이들도 아는 이치를 정부 놈들은 왜 모를까? 내가 보기에는 뭔갸 야료가 있어.
= 전력 공급, 가스 공급, 물 공급, 통신망 유지, 도로망 유지. 미국도 지금 모든 지역을 지켜내지 못하고 있어. 일부 지역은 버리기로 하고 강제로 이주시킨다고. 민주주의 타령은 좀 그만해. 지금 전시체제라고. 태운 그룹이 아니라 정부가 먼저 나서서 수비면적을 축소해야 하는 거야. 태운 그룹이 확실히 여력이 없나 봐. 돈 좀 찔러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이렇게 질질 끄는 걸 보면 말이야.
양표, 유표, 육표 등 때문에 사재기도 안 된다. 매달 살 수 있는 양이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대부분 사람도 알고 있다. 양표가 있어도 쌀이 없어서 사지 못하는 날이 언젠가는 올 것을.
다른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끊은 후, 태운 그룹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유통망을 정부에서 책임져주기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며칠 지나도 정부에서 반응하지 않자, 한 달 뒤부터 경기도와 강원도로 차를 보내지 않을 것을 성명했다.
= 특급 소식이다. 정부랑 북한이랑 손잡고 태운 그룹 엿 먹이려 했단다. 그 뒤에는 중국이 있고.
= 뜬금없는 소문이지만 이치에 맞네.
= 정부 대단하네. 태운 그룹 보고 북한까지 먹여 살리라고 했다고?
= 통일을 전제로 몇몇 대기업이 지금 북한에 물자를 지원하고 있다고 함. 개돼지처럼 자기들 제품 사서 주머니 불려주던 한국놈은 나 몰라라 하고 북한 혁명동지들 빨아주고 있음.
= 다들 남쪽으로 고고!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와 장거리 버스들이 미어터지기 시작했다. 지진이나 홍수가 오기 전에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감지한다. 개미들은 홍수가 오기 전에 떼를 지어 높은 곳으로 향하고, 쥐를 비롯한 동물들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안전한 곳을 찾으려 애쓴다.
서울과 경기도 그리고 강원도 사람들도 이성과 본능의 완벽한 일치에 남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제야 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운 그룹의 건축 허가가 전면적으로 떨어졌다. 허가가 떨어지기 전부터 기초를 다지고 있던 건축 현장들에 불이 붙었다. 시급은 평범하게 주지만, 하루 세끼를 책임진다는 말에 몰려온 사람이 무척 많다. 정부에서 주는 양표 따위로는 하루에 두 끼를 먹는 게 한계다.
10평 정도의 작은 방들로 꽉 찬 아파트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 주방이 없고 침실과 화장실만 있다. 난방은 개인이 할 필요 없이 외부에 대형 보일러로 끓인 뜨거운 물이 흐르게 하여 직접 공급할 수 있게 했다. 아파트 단지 중앙에는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주방과 대형 목욕탕이 만들어졌다.
생필품 생산을 멈추거나 가격을 올렸던 기업들이 다시 생산설비를 가동하고 가격을 내렸다. 중국 배로 추정되는 거대한 화물선들이 인천항을 빈번하게 드나든 사실은 매우 빠르게 인터넷에 퍼졌다.
한 달이 지난 후 태운 그룹이 운행을 멈춘 경기도와 강원도를 여러 기업 로고가 붙은 차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모 대기업의 공장이 24시간 돌아가며 원유에서 휘발유를 뽑아냈다. 적지 않은 사람이 남쪽으로 내려갔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남은 사람이 절반 이상이어서 모두를 먹여 살리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 DUAL SYSTEM ###
노팅엄.
"에릭, 변화가 생겼어."
에릭은 불타는 눈으로 맥을 바라보았다.
"한국이 중국으로, 성기사는 봉인 각성자로, 죽이라는 말은 저지하라는 말로 바뀌었어."
에릭은 화를 꾹 참았다. 한국의 성기사를 죽이라는 말이 중국의 봉인 각성자를 저지하라는 말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 쉬운 말을 저렇게 어렵게 하는 맥의 능력에 감탄하다 못해 이가 갈렸다.
"봉인 각성자는 어떤 존재지?"
"에릭, 난 그저 D의 말을 전달할 뿐이야. 남은 건 네 몫이지."
"D한테 질문 안 했어?"
"미안, 다음번에 잊지 않고 질문할게."
D가 똑같이 반복하던 내용이 바뀌었다는 데 흥분한 나머지 봉인 각성자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 질문할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시간이 넉넉했다면 바보가 아닌 맥도 봉인 각성자에 대한 의문을 떠올렸을 것이다.
"D가 언급한 걸 보면 매우 중요한 존재겠지?"
"삼 년 가까이 반복하던 말도 멈춘 걸 보면, 성기사보다 더 중요한 존재인가 보군. 첩보부에 한국 변태 가면의 정체 대신 중국의 봉인 각성자를 찾아내라고 해. 각성자 중에서 갑자기 사라지고 누구도 그 행방을 모르는 사람을 찾으면 되겠지?"
영국 첩보부는 매우 우수하다. 그들이 변태 가면의 정체를 찾아내지 못한 건, 한국에서 마음대로 활동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국적이 아닌 자들은 모두 추방되었다. 첩보부는 인터넷을 통해 변태 가면에 대한 정보를 분석한 후, 한국의 흥신소 따위를 통해 인물을 특정하고, 다른 흥신소를 통해 변태 가면이 맞는지 확인하는 번거롭고도 불확실한 방식을 사용했다.
"중국은 활동하기 편하니까 이번에는 기대해도 될 것 같아."
"기대 안 하는 게 좋을걸. 팀을 만드는 방법도 알아내지 못했잖아."
"공산주의 국가의 특수성을 몰랐던 우리 탓이지."
신기는 세 명의 중국 각성자에게 파티원을 받는 방법만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 세 명의 각성자는 24시간 엄중한 감시하에 생활하고 있다. 심지어 화장실을 가거나 여인과 밤을 보낼 때도 감시자가 따라다닌다. 영국의 첩보 요원은 접근은커녕 먼발치에서 얼굴 한 번 보기도 힘들었다.
"성기사는 죽이라고 했는데, 봉인 각성자는 저지하라고 했어. 이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건, 봉인 각성자는 쓸모가 있고 성기사는 나쁜 놈이라는 거야."
### DUAL SYSTEM ###
중국.
TV에서만 보던 부총리의 인자한 얼굴을 마주한 각성자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흑소호, 당신이 얻은 기능을 잘 설명해 주세요."
"화산을 봉인할 수 있습니다. 봉인한 화산에서는 괴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몇몇 화산을 돌아보았는데, 대부분 화산이 어느 정도 봉인되어 있습니다. 아마 시간이 흐를수록 그 봉인이 많이 풀리는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그 봉인을 100%로 만들어 놓으면, 괴물이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겁니다."
"소호,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세요. 정부는 당신이 원하는 걸 최대한 들어줄 겁니다."
흑소호는 회족이다. 사실 회족은 혈통으로 이루어진 민족이 아니다. 그저 민족을 나눌 때 회교도들을 전부 회족이라 칭한 것이다. 흑소호는 독립한 감숙쪽이 아닌, 남경 출신이다.
"독립한 국가에서 탈출한 회교도들을 돌봐주십시오."
"물론입니다. 세상 사람 모두 형제가 아닙니까."
신의 품에 있는 모든 사람은 형제다. 부총리의 말에 흑소호는 눈물을 뚝뚝 떨궜다.
"당신의 정체가 알려지면 목숨이 위험합니다. 우리 조국은 아직 강대하지 않습니다. 이번 위기를 발판으로 옛 영광을 되찾고 당신이 떳떳하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얻은 기능을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엄중한 경호를 하면 오히려 의심받는다. 당분간 스킬 수련을 해야 하기에 본인에게 깊은 주의를 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물론 몇몇이 흑소호의 친구인 척 붙어 다니며 감시 및 보호를 할 것이다. 부총리가 경계하는 건 외국이 아닌 태자당과 공청단파의 눈길이다.
흑소호를 내보낸 후, 부총리는 황급히 비밀 통로로 이동했다. 너무 오래 자리를 비워도 감시하는 자들의 의심을 받는다. 비밀 통로를 걸으면서 부총리는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한국의 발표가 정확하다면, 화산을 봉인하는 건 일시적인 미봉책이다. 한국이 거듭 주장하고 미국에서 이미 실행에 옮긴 소각장을 운영해야 한다.
'어떻게 티 안 내고 다른 멍청이들을 설득하지?'
- 작가의말
다행입니다. 봉인 스킬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니라서 말입니다.
일부 비문 혹은 오타는 일부러 사용했습니다. 서술 부분에 비문이나 오타 있으면 지적해 주시고, 인터넷 의견들에 나오는 부분은 무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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