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승자박
일본.
한국은 소각장이라 부르고 일본은 등대라 부른다. 한국에는 괴물을 미리 죽여 자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소각장이지만, 일본은 언젠가 괴물을 몰아내고 땅을 되찾기 위한 등대로 여겼다.
그러나 지금은 일본도 등대보다는 소각장임을 인정해야 한다. 일본의 대부분 각성자와 한국의 많은 각성자가 일본 연해의 등대에서 괴물을 '소각'하느라 정신이 없다. 괴물이 출현한 지 1년이 좀 넘는 시각에 갑자기 화산에서 나오는 괴물이 증가했다.
이 사태를 일으킨 중국마저 그 이유를 제대로 모르고 있다. 축소된 중국이지만, 화산이 많은 지역을 버린 것이지 모든 화산을 버린 게 아니다. 반 이상 줄어든 중국은 동부와 서부에 있는 화산들을 99%까지 봉인했고, 그 반동으로 다른 화산들이 더 많은 괴물을 쏟아냈다.
한국은 아직 구울도 나오지 않았고, 일본은 최근에야 구울이 출현했다. 그리고 화산의 괴물이 많아진 이유를 아는 신기는 냉가슴 앓듯이, 혼자 답답한 속을 달래야 했다. 중국의 봉인 각성자에 관해 말을 흘렸다가, 중국이 소문의 근원지를 찾아 레이저를 신기의 이마에 겨눌지도 모른다. 중국산이 별로라지만, 중국산 스나이퍼까지 별로인지 확인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그래도 이쪽에 봉인 각성자도 없고 내가 덜 나대서 죽이려는 움직임은 없는 것 같구나.'
지난번에는 나댈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이번에는 불, 바람, 번개, 땅의 사대천왕이 포커스를 다 가져가 버렸다. 변태 가면도 인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초반에만 활약했기에 그 인기가 서서히 식을 수밖에 없다.
이유는 밝힐 수 없지만, 해결책은 안다. 소각장을 더 넓게 조성하고 괴물 밀도를 최대한으로 낮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의 각성자들은 한국과 일본 사이의 등대를 맡았고, 일본 각성자들은 혼슈와 규슈 그리고 시코쿠 사이에 지은 등대들을 맡았다.
일본 정부는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에도 등대를 지으려고 했지만, 신기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반년 정도의 시간에 신기는 다른 일을 안 하고 각성자를 만드는 데만 집중했다. 그런데도 각성자의 숫자가 넉넉하지 않다. 검은 구슬이 창고에 가득 쌓였고, 각성 실험에 동원된 강아지는 두 마리를 제외하고 모두 죽었다.
박철이 미끼 스킬을 사용하자 수만 마리의 괴물이 몰려왔다. 신기는 철벽과 강화 각성자들과 함께 앞장서서 달려오는 구울을 처리했다. 철벽과 강화 각성자들은 구울의 발목을 하나만 찍은 후 총으로 머리를 쏘는 방식으로 해결했고, 신기는 그저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구울을 쉽게 해치웠다. 사격술에 자신 있는 몇몇은 달리는 구울의 머리를 명중해서 간단히 해치우기도 했다.
구울을 다 해결한 후 좀비와 해골이 몰려오자, 신기와 기력 각성자들은 뒤로 물러났다. 좀비나 해골 따위는 전혀 위협이 안 되지만,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마법사들이 나서야 한다. 마법이 한바탕 쓸고 지나간 다음, 기력 각성자들이 남은 괴물을 빠르게 처리했다.
신기는 모든 기력을 한꺼번에 쏟아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힘을 쏟아낼 수 있는 범위가 문제 되고 있다. 반경 10미터 정도에만 기력을 투사할 수 있기에, 마르지 않는 기력과 구울도 한 방인 위력으로도 괴물을 처리하는 속도가 무척 느리다.
성휘가 있을 때는 마법사 백 명 이상의 위력을 보였다면, 지금은 겨우 마법사 한 명의 위력을 보여준다. 다른 점은 마법사는 마력을 소진하고 쉬어야 하지만, 신기는 휴식이 필요 없다는 것뿐이다.
속에 불만이 가득 쌓인 신기를, 다른 각성자들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성휘를 사용하던 신기는 감히 따라잡을 생각도 못 할 만큼 절대적인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의 신기는 A급 99레벨이 되면 나도 저 정도 할 수 있겠지라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희망전도사가 되었다.
한바탕 전투의 열기가 휩쓸고 지나간 후, 제이크가 다가왔다.
"변태 아우, 괴물들의 이동 방향이 바뀌었다고 해."
신기가 기다리던 소식이 왔다. 중국이 끝내 봉인을 완성했다.
### DUAL SYSTEM ###
중국.
기다리던 소식이 오자 태운 그룹은 휘발유를 가득 실은 차들을 위로 보내고, 피난 오는 사람들을 안내할 지원자들을 보냈을 뿐이다. 북에서 내려오는 피난민들을 안치하는 일은 태운 그룹에 맡기고, 신기는 일본에서 소각장의 화력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괴물이 가장 많이 출현하는 곳으로 박철과 마법사 네 명과 함께 헬기로 이동하며 '안정'을 이루려 노력했다.
그리고 매우 고맙게도 영국이 이번 사태의 원인을 알아내서 발표했다. 중국이 특별한 스킬을 얻은 각성자를 이용해 화산을 봉인했고, 그 때문에 주변의 화산에서 더 많은 괴물이 나오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중국 정부는 영국의 발표에 침묵으로 대응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중국은 남해의 소각장을 유지하느라 똥줄이 빠졌다. 지난번처럼 소각장 모두가 무너진 건 아니고 일부만 무너졌지만, 무너진 소각장 지역에서 대량의 괴물이 중국을 향해 이동했다. 미리 수비선을 조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우왕좌왕했다. 남쪽은 소각장을 믿고 방비를 덜 했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에서 몰려오는 괴물도 그 수량이 장난 아니었다. 동쪽에서는 해골과 좀비 그리고 구울이 몰려왔고, 서쪽에서는 동혈인과 문지기 그리고 순찰병이 몰려왔다. 남쪽에서는 두 괴물이 섞여서 몰려왔다. 동혈인은 밤에만 움직여서 중국 군인과 각성자들은 낮에 자고 밤에 싸우는 부엉이 생활을 강제로 하게 되었다. 낮에도 괴물이 있지만, 전투시간은 밤이 훨씬 길다. 물론 동쪽에서 언데드를 상대하는 군인은 밤낮이 없이 싸워야 한다.
군인과 각성자들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래도 중국의 사정은 훨씬 나아졌다. 매일 새롭게 각성자가 되는 사람이 있고, 전장에 투입된 각성자들도 점점 강해졌다. 이대로 시간이 흘러 군대가 아닌 각성자만으로 괴물을 막아낼 수 있게 되면, 중국은 차츰 영토를 넓혀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중국은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다.
하지만, 단 두 마리의 괴물이 중국의 이런 야망을 분쇄했다. 흑룡강 오대연지에서 기어 나온 시체 조종사와 운남의 화산에서 기어나온 미노타우로스는 군대도 각성자도 막을 수 없었다. 규격 외의 괴물로 불리는 이 둘은 사람을 죽이는 데 별로 흥미가 없다는 듯, 봉인된 화산을 향해 곧추 움직였다.
수천 명의 각성자와 십수만 명의 군인을 희생시키고 나서야, 중국은 두 괴물을 막을 수 없음을 인정했다. 이미 봉인한 화산을 시체 조종사가 다시 뚫으면, 그 화산에서는 좀비와 해골 그리고 구울이 튀어나왔다. 중국은 우두괴(牛頭怪)라고 부르는 소머리 괴물이 뚫으면 동혈인을 비롯한 문지기와 순찰병이 튀어나왔다.
두 괴물은 더 많은 화산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듯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그리고 시체 조종사가 봉인을 푼 화산에서 시체 조종사 한 마리가 더 튀어나왔고, 우두괴 역시 마찬가지로 똑같은 소 대가리 하나 더 뽑아냈다.
내우외환(內憂外患). 네 괴물이 화산을 연일 터뜨리고 있지만, 중국의 괴물 밀도는 여전히 높지 않다. 그 이유는 화산에서 기어 나온 괴물들이 모두 시체 조종사나 소 대가리를 따라 움직였기 때문이다. 네 괴물이 있는 곳을 제외하면 괴물 밀도가 지극히 낮다. 내우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외환도 끊이지 않으니, 중국은 대혼란에 빠졌다. 안에서는 수백만 괴물이 네 무리를 지어 움직이고, 밖에서도 괴물이 끊임없이 유입되었다.
가장 큰 반사이익을 얻은 건 태운 그룹이다. 시체 조종사와 소 대가리가 나타나기 전 한 달 여의 시간 동안 백두산이 괴물을 과하게 토해냈고, 전보다 훨씬 많은 괴물이 북한과 경기도 강원도로 향했다.
태운 그룹은 일본에서 소각장을 운영하며 갑자기 많아진 괴물의 영향을 최소화했고, 중국 동해안에 있던 화산섬을 중국이 봉인하며 한국 서해안의 압박이 무척 줄었다. 북한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 서울 정부에 통일을 강하게 요구했고, 태운 그룹의 제주 정부는 평양 정부와 서울 정부의 다툼을 즐겁게 지켜보았다.
중국의 지원이 끊겨버리자 서울 정부도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비행기를 띄워 중국으로 도망갔지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들을 중국이 반겨줄지 의문이다.
일본도 강원도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을 차츰 대마도로 옮기기 시작했다. 대마도는 면적만큼은 서울시보다 더 크다. 산간지역이 많아 거주에 불편하기는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신세가 아니어서 일본은 대마도에 많은 건물을 새로 지어 자국민들을 강원도로부터 옮겨갔다.
그 과정에 일본은 태운 그룹에 어마어마한 부채를 지게 되었다. 특히 태운 그룹이 이후 일본에서 회사를 운영할 수 있고 영원히 세금을 면제받는다는 조건이 가장 치명적이다. 태운 그룹이 그렇게 저력이 강한 기업은 아니지만, 태운 그룹의 이름을 달고 회사를 설립하면 면세 조건만으로 전 세계의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도보 혹은 자전거로 이동한 다음, 배를 타고 대마도에 도착한 일본인들은 예외 없이 펑펑 울었다. 비록 한국과 일본 공동 소유로 바뀌었지만, 자기 땅으로 돌아왔다는 생각에 하나같이 가슴이 벅차올랐다.
### DUAL SYSTEM ###
제주도.
고등급 괴물은 바다를 싫어한다. 지구에서 마나 밀도가 가장 높은 게 바다이고, 지구의 마나는 괴물에게 적대적이다. 저등급 괴물은 괴로움으로 인한 저항보다 명령의 강제성이 더 강하기에 바다로 이동하는 걸 거부하지 못하지만, 고등급 괴물은 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면 바다가 아닌 육로를 선택한다.
그래서 중국이 봉인한 동해안의 화산섬은 시체 조종사와 소 대가리 모두 봉인을 풀려고 하지 않았다. 덕분에 한반도의 서해안은 예전보다 괴물이 훨씬 적게 출몰했다.
일본의 괴물 생산량도 줄어들어서 신기는 제주도로 돌아왔다. 평양 정부는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고, 서울 정부도 고개를 숙이고 제주 정부 밑으로 들어왔다. 두 곳의 인구가 대략 3천만은 되니, 어떻게 수용할지가 참 난감하다.
"염치없지만 신 상무의 고견이 필요하네."
"모두 받으면 됩니다. 평양 정부와 서울 정부의 담당 지역들은 모두 버리고, 남은 땅에 꽉꽉 박는 거죠."
"어찌 먹여 살릴 생각인가?"
"북쪽에 중국으로부터 새로 얻은 땅이 있지 않습니까. 그전까지는 서울 정부의 소관이라지만, 이젠 우리 땅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서 농사짓도록 하죠."
"7천만이 넘는 인구네. 일본까지 합치면 8천만이지. 그 많은 입을 당장 먹여 살리는 것부터 문제라네."
"중국에서 쌀을 얻어내야죠. 길림과 흑룡강의 괴물을 막아줄 테니, 식량을 원조해달라고 요청하면 됩니다. 평양 정부와 서울 정부에도 각성자와 군대가 있으니, 그들까지 합치면 넉넉하게 유전과 농지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서울 정부와 평양 정부의 군인과 각성자를 제외하더라도, 현재 제주 정부는 군인과 각성자가 넉넉한 편이다. 일본이 점점 자기 구실을 하며 규슈와 혼슈 그리고 시코쿠의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 일본에 대한 지원을 어느 정도 줄여도 되니, 한국은 지금 전력이 넘쳐나는 셈이다.
"땅을 크게 지키겠다는 건 아닙니다. 화산 주변에 소각장을 운영하고, 유전을 되찾는 거죠. 그리고 농사는 기계가 다 하면 되는 거니까 관리인만 필요할 뿐입니다. 괴물들이 농사짓는 기계를 공격할 것도 아니니, 괴물 밀도를 적당히 유지하면 됩니다."
"자네 혹시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웅크리자고 했던 건가?"
"확신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중국이 멍청한 짓을 하는 바람에 화산을 함부로 봉인하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럼 우선 중국 정부와 협상을 시작하지. 농기구는 일본 정부에서 얻어내면 되겠군."
독일과 더불어 기계화의 선두를 달리는 일본이다. 태운 정밀도 만들자면 못해낼 게 없지만, 괴물을 상대할 무기의 연구와 개발 그리고 생산만 해도 정신이 없다.
"신 상무. 중국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강 회장이 질문했다.
"무너지지는 않을 겁니다. 군대도 충분하고 무기와 탄약 비축도 충분하고 식량 비축도 충분하죠. 거기에 봉인 각성자라는 비장의 카드도 갖고 있으니, 미국이라도 중국 눈치를 봐야 할 겁니다. 중국의 실책이라면, 봉인을 믿고 모든 병력을 밖으로 돌린 것이지요. 만약 누군가가 화산의 봉인을 풀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내부 방비도 단단히 했으면 지금 이 지경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 작가의말
힘과 욕심이 똑같으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갖춘 힘으로 모든 욕심을 채울 수 있으니깐요.
중국은 갖춘 힘보다 욕심이 과했습니다. 신기처럼 소박하게 세상을 구원할 생각만 하면 행복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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