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았소이다.(힘들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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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별별조니
그림/삽화
조니
작품등록일 :
2018.05.03 08:29
최근연재일 :
2020.01.03 13:00
연재수 :
17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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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345
글자수 :
882,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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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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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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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147.대기근과 고난(2)

DUMMY

“다녀왔소이다!”

“아이고,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쌀을 공짜로 나눠 주시고 온 거예요?”

“그렇다고 우리만 먹고 살 수 있나? 다 같이 도우면서 사는 거지.”

“너무 뭐라 하지 마셔요. 사람 살리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에휴, 다들 앉아서 요기라도 하시고 주무세요. 곧 있음 야삼경인데.”


고을 주민들한테 쌀을 다 나눠주고 돌아오니 어느덧 깊은 한밤중이 되어 있었다. 집으로 돌아온 사내들은 먼지를 털고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


“애들은 다 잠들었어?”

“예, 그럼요. 저 어린 애들이 한 밤을 뜬 눈으로 지낼 수야 있겠어요?”

“하긴, 그렇지.”

“고모할머님도 이미 잠자리에 들어가셨고요.”

“하루네 어머님도 들어가셨다고? 이거 도대체 우리가 밖에서 얼마나 오래 있다가 들어온 거야?”

“적어도, 밥을 4번이나 먹고 치우고를 반복해도 될 정도로 오래 있다 오셨을 걸요?”


하루는 망가진 자명종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네 마누라 말이 맞구먼, 봐봐 평소에 종이 울리는 시간보다 짧은 바늘이 4칸은 더 움직여 있잖아?”

“그래요? 벌써 자고도 남을 시간이었구나.”

“에휴, 우리도 대충 찬밥에 물 말아서 먹고 잠이나 자자고.”

“그래, 그래야지 또 내일 일을 하지. 그나저나 이대로 가다간 올해 농사지을 거리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돌아온 사내들은 서둘러 어린 며느리가 차려주는 간단한 식사거리로 대충 끼니를 때운 다음에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남아있던 작은 등불마저 꺼져버렸고 평양성에 남아있는 불이라고는 성벽위에 타오르는 병사들의 불꽃 밖에는 없었다.


짹깍짹깍

자명종 속 태엽이 움직이는 소리


짹깍짹깍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콜록콜록! 콜록콜록!


어디선가 고요한 밤을 깬 기침 소리가 흘러 나왔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이게, 무슨 소리야? 한밤중에?”

“애들방 쪽에서 나는 소리 같은데... 설마?

“에이, 건강한 우리 손자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겠어? 아니겠지.”

“그런가? 그래도, 뭔가 불길하잖아?”


마루는 고개를 저으면서 잠자리에 들었지만 맞은편에서 마루와 마루 부인이 하고 있던 말을 듣고 있던 하루는 뭔가 심상치 않은 기분이 들어서 애들방으로 넘어가봤다.


“아이고, 이게 왠 소란이냐? 혹시 도깨비라도 나타나서 우리 아가들한테 장난이라도 치는 거이냐?”


콜록콜록! 콜록콜록!


“누군가 했더니만 우리 집안 막내구먼, 네 엄마까지 옆에서 코자장 하고 있는데 이렇게 소란을 피우면 엄마아빠랑 형누나들이 좋아할까?”


하루는 천천히 다가가면서 집안 막내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 보았다.


“에구머니나! 이게 뭐야! 애 엄마! 어서 일어나봐! 애가 이지경이 되었는데 자는 사람이 어디 있어! 애 아빠도 빨리 일어나!”


하루의 손바닥을 통해 넘어오는 어린 아이의 몸 상태는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의 마르고 건조한 손을 젖은 수건처럼 축축하게 적실만큼 땀을 뻘뻘 흘리고 있고 방금 끓인 국처럼 뜨거운 아이의 몸 상태는 장난이 아니었다.


“하루 삼촌...?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빨리 애 땀부터 닦아내고 있어! 내가 찬물 적셔서 가져올 테니까!”

“애 땀을 닦아요? 지금이 무슨 여름도 아니고?”

“너희들 부모가 돼서 정신 못 차릴 꺼야! 애 몸이 펄펄 끓고 있잖아!”

“애가요? 헤? 이게 뭐야!”


아직 아이를 키우는 것이 서툴렀던 터라 막내아들의 가족의 판단력은 친자식을 길러본 적이 없는 하루만 못했다.


이제 3척을 조금 넘는 키의 어린 아이의 갑작스러운 고열에 집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뭔데, 이렇게 소란스러워?”

“마루 네 막내 손자가 지금 죽게 생겼어! 얼른!”

“뭐라고? 내 손자가 죽어!”

“진정해! 일단 열을 식히면 소생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빨리 애 몸을 물수건으로 닦고!”


집안은 임진년과 정묘년 전쟁 통에 버금가는 난리 속에서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투쟁을 벌였다.


“우리 아기 엄마가 진즉에 발견하지 못해서 일이... 어떻게.”

“당신 잘못 아니야. 바로 옆에서 기침소리를 듣고도 잠만 퍼질러 자고 있었던 내 잘못이 크지.”

“지금이 누구 탓할 때야! 다 같이 힘써서 우리 막내 손자 살려내야 될 거 아니야!”

“다들 진정들 하고, 애가 언제부터 아팠는지 짐작되는 거 없어? 평소에 콧물을 흘렸다거나, 애가 똑바로 걸어 다니지, 못했다거나.”


하루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진정시키고 이성적으로 요 근래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글쎄요? 딱히 뭐 특별한 증상이라고 할 것들이...”

“밥도 잘 먹고, 형 누나들이랑 잘 뛰어 놀았는데...”

“그래? 그러면 갑자기 이렇게 아파졌단 소리지?”

“네, 뭐 그런 거 같은데...”

“저희도 이게 지금 무슨 질환이라서 이 사단이 일어났는지 알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 어린 애가 열나서 죽게 생겼는데....”


가족들이 애가 타고 있는 가운데 이성적으로 판단을 해본 하루가 한 숨을 내쉰 다음에 불길한 말 한마디를 꺼냈다.


“혹시 애들 깨끗이 씻긴지는 며칠이나 되었지?”

“글쎄요...? 세수야 만날 시켰지만 목욕을 시킨 지는 1달은 넘은 거 같은데...”

“애들이 옆 동네까지 넘어가서 뛰어놀고 그러지는 않았어?”

“애들이 워낙 활동성이 좋으니까 옆 동네까지 갔을 수도 있죠. 근데 갑자기 그건 왜요?”

“이런 말해서 좀 미안하긴 한데... 혹시나 역병에 걸린 것이 아닐까... 싶어서.”


하루는 낮은 목소리로 역병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역병이라는 말을 들은 가족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모두 강한 부정을 하지는 않았다.


“역병이라니! 아닐 거예요. 그게 왜 우리 막내한테만!”

“내가 좀 냉정하게 말해서 마음 상했을 수도 있지만 굶어죽고 병들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대기근이 오랑캐가 쳐들어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어... 다른 가족들이야 밥 잘 먹고 몸도 건강하니까 어느 정도 버텼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내는 너무 작고 여려서...”

“하루 삼촌 말도 있군요. 어린애가 태어나면 2~3명중 하나는 다섯 살이 되기도 전에 죽는 대기근에서 우리가족 아이들만 유난히 건강하게 자란 것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필 왜 우리 막내에요! 왜 하필 우리 막내가!”


아이를 붙잡고 울기 시작한 막내며느리를 마루가 달래면서 말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그리고 아직 정확한 건 모르는 거잖아?”

“내가 쓸데없이 너무 멀리 내다보고 말했나보네... 미안하네.”

“하루 자네가 왜 미안해하나? 아무튼 어떤 병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일단 살려봐야 하지 않겠어! 다들 오늘 밤에 눈감을 생각 하지들마! 가족이 죽게 생겼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보자고! 안되면 밖에 나가서 하늘님한테 기도라도 하고 있어!”


마루는 가족들한테 초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모두들 집안 최고의 막둥이를 살리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가서 찬물 좀 더 가져와! 마른 수건도 다 들고 오고!”

“어떻게 애 상태는 조금 나아졌나요?”

“아직 멀었어! 아직도 몸이 불덩이 같아! 안되면 부채질이라도 해서 열을 더 빨리 식혀 보자고!”

“여기 물 받아왔어요!”

“그래, 잘 했다. 바가지에 물이 줄어들으면 바로 떠와서 새로 채워줘, 알겠지?”


모든 가족들이 정해져 있는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손발이 착착 맞아 떨어지면서 한 어린소년의 숨이 끊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밤새 최선을 다했다.


짹깍짹깍

고장났지만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자명종 시계의 시계바늘들은 어느덧 많이 움직여서 아침 자명종을 울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꼬끼오!

명쾌한 아침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이고,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그래도 애 하나는 겨우 살려낸 거 같군요.”

“다들 고생들 많았어!”

“허허, 이번에 하루 네가 잘못 짚은 거 같은데?”

“그러게,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판단했나? 역병이 아니라 그냥 몸살이었던 거 같네.”


모든 가족들은 기재기를 키면서 가족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해냈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들 잠을 못자서 눈이 약간씩 붉게 충혈 되거나 눈가가 시커멓게 변해 있었지만 다들 한 사람을 살려 냈다는 사실에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들을 띄었다.


“곧 있으면 망가진 종소리가 울리겠군 그래?”

“에휴, 오늘은 이제 일 다 했어 아침 먹고 그냥 잠이나들 자자고.”

“네, 어차피 밭에 나가봤다 말라죽은 작물들만 한둘이 아닌데요, 뭘.”

“올해는 그냥 쉬엄쉬엄 가자고요. 아무리 심어봤자 땅이 기운을 잃어버렸는데 뭔들 되겠어요?”

“아무튼 다들 고생 많았어. 덕분에 한 생명을 구했으니 말이야.”

“고마워요! 다들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우리 애 까딱하면 큰일 날 뻔했으니까요.”

“가족이 좋은 게 뭐야? 이럴 때 도와야지? 하루가 진즉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뭘!”

“‘헤헤, 그런가? 아무튼 좋은 방향으로 끝나서 다행이야.”


하나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밤새 고생한 가족들은 모두 자리에서 가볍게 웃으면서 아침이나 먹고 쉬기로 결정했다.


“다들 고생들 많았어요.”

“그래, 다들 수고들 했다. 그 중에서도 막내며느리랑 우리 막내 손자가 가장 힘들었겠지.”

“아니에요, 아버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어머님이랑 밥상 가지고 올게요.”

“그래 뜨끈한 국물에다 밥 한 숟가락 말아먹은 다음에 쉬어야지.”


밥 짓는 냄새가 모락모락 퍼져 나왔고 배에서는 배꼽시계가 밥을 달라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짹깍짹깍 드르르륵

땡 땡 틱 틱 땡 틱 땡 땡


아침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가 울려 퍼졌고 밥 때에 맞춰서 밥상이 큰 방으로 들어왔다. 가족 다 같이 둘러앉아서 따끈한 밥 한 공기 먹기 위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어허? 아직 한 분이 오시지 않았잖아?”

“누구?”

“누구긴 누구야! 고모할머니지!”

“아하, 그렇다. 아주 밤새 정신없어서 누가 안계신지도 모르고 있었네요. 제가 빨리 가서 모셔올게요.”

“그래, 빨리 모셔오너라.”


밥상에서 가장 중앙 바깥자리에 앉아 계셔야할 하루의 어머니가 없다는 것을 눈치 챘다. 마루의 아들들 중 하나가 눈치껏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집안의 가장 어른을 모시러 밖으로 나섰다.


“아이고, 고모할머님! 벌써 아침인데 아직까지 주무시고 계시고! 빨리 진지 잡수시러 갑시다!”


문을 열고 들어간 가람이는 소리치며 하루의 어머니를 깨워 보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빨리 일어나셔요! 가족들이 다 기다리고 있는데. 아주 큰 사건이 있었는데요? 글쎄 밤새 다들 잠도 못자고 애 하나 살리겠다고 난리를 피웠습니다, 난리를!”


가람이는 천천히 다가가서 고모할머니의 몸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확실한 느껴졌다. 너무나도 차갑고 딱딱하게 굳어있는 고모할머니의 몸 상태가.


그것은 이미 이 세상을 떠난지 몇 시간은 지난 사람의 몸이었다.


깜짝 놀란 가람이는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루 삼촌! 하루 삼촌! 고모할머니가! 고모할머니가...!”


작가의말

늦게나마 복귀했습니다.

글 쓰는 시간이 앞으로도 비정기적일 수 있다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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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마지막회.마지막 여정(5)-잘 살았소이다. 19.12.28 248 1 13쪽
169 169.마지막 여정(4)-조선과 작별하다. 19.12.26 134 1 12쪽
168 168.마지막 여정(3)-일본으로 떠나다. +2 19.12.23 140 2 11쪽
167 167.마지막 여정(2)-임금을 만나다. 19.12.20 101 1 13쪽
166 166.마지막 여정(1)-영웅 마루 19.12.18 70 1 12쪽
165 165.병자호란(5)-쫓는 자, 쫓기는 자 19.12.16 66 1 17쪽
164 164.병자호란(4)-포로가 될 것인가... 19.12.14 56 1 14쪽
163 163.병자호란(3)-항복 19.12.13 79 1 11쪽
162 162.병자호란(2)-몸을 옮기다. 19.12.11 58 1 11쪽
161 161.병자호란(1)-조선을 쳐야만 하겠노라. 19.12.09 116 1 11쪽
160 160.또 한 번의 전운(3) 19.12.07 57 1 12쪽
159 159.또 한 번의 전운(2) 19.12.06 51 1 12쪽
158 158.또 한 번의 전운(1)-불안한 양국 관계 19.12.04 56 1 11쪽
157 157.다시 집으로 19.12.02 72 1 12쪽
156 156.산킨코타이(3)-일정의 끝 19.11.30 60 1 11쪽
155 155.산킨코타이(2)-두 이복형제의 만남 19.11.18 87 1 11쪽
154 154.산킨코타이(1)-합류 19.11.11 65 1 11쪽
153 153.옥새를 찾아라! 19.11.07 5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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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 150.일본행(2)-일본인 상인 19.11.04 5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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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 148.대기근과 고난(3)-어머니의 장례 19.11.01 60 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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