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9화 사자들의 고독2
그런 주은정을 바라보고 있자니 여태껏 몰랐던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악마가 주은정을 저승사자로 꼬시려고 무슨 수작을 걸었을까 하는 것. 악마는 자신이 찍은 인간을 데려다 놓고 저승사자로 만들기 전에 천국과 지옥을 선택하게 한다. 그건 저승사자가 되기 위한 시험과정이랄까 악마가 즐기는 신입 곯려주기 같은 통과의례였다.
그건 절대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없었다. 김혁이 당해본 바로는 거의 사기에 가까웠다. 약간의 트릭과 그럴 수밖에 없는 환상을 짜서 결국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는 ‘너의 선택’이었다고 하는 악마의 수작질. 당하고 나서야 천국에 갈 수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거고 선택 같은 건 할 필요가 없었음을 깨닫게 되지만 사실이 그렇대도 결코 되돌릴 수 없는데다 천국에 가기엔 이미 늦었다는 것만 알게 되고 만다.
애초부터 천국에 갈 수 있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윤회의 굴레에 걸려들게 만들어 놓고 환생할래 저승사자 할래 하면서 킥킥거리는 악마의 모습은 쉽게 떠올릴 수가 있는데 주은정에게 뭘 보여주고 천국을 포기하게 만들었을지는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주은정에게 복수할 대상은 그 아버지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 역시 그날밤 지옥으로 떨어졌고 구하러 갈 가족조차 남아 있지 않는 상태였다. 악마에게 들은 바로는 그 밤에 살아남은 가족은 없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더 이상 복수를 한다거나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필요도 없었다는 말인데 주은정은 왜 천국으로 가지 않았던 거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뭘지 전혀 떠오르는 게 없었다. 생각해 보니 주은정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적다는 것에 좀 놀랍기도 했다.
10여년을 함께 일했지만 주은정에 대해 아는 건 악마가 해준 말 외에는 없었다. 저승사자들끼리 자주 만날 기회가 없기도 하고 민하진처럼 묻지 않아도 떠들어대는 애가 아닌 이상 일 얘기 외엔 안 하는 성격과 딱히 뭔가를 꼬치꼬치 캐묻지 않는 성격의 조화 속에선 그럴만했다.
김혁은 자신이 악마와 마주하고 서정을 위해 돌아가겠다고 했던 그날의 감정을 기억해냈다. 그때와 똑같은 선택을 하라면 어떻게 할 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지금도 역시 서정과 고아원 아이들을 저버리지 못했을 거라고 말 할 수 있었다. 그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진이 자신을 차로 친 찬수 오빠를 구하자고 악마의 마수에 걸려든 것도 자신을 죽게 만든 진짜 나쁜 존재가 그 매니저였기 때문이었다. 은정에게도 진짜 따로 복수할 누군가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악마는 눈이 밝고 세심하다. 그걸 놓쳤을 리 없었다. 은정이 지옥으로 데리고 온 자는 누구일까? 김혁은 비를 바라보는 은정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궁금한 것들은 많지만 차마 물어볼 수는 없다. 그런 때가 있다. 아래 도심지를 보고 있는 은정의 내리깐 긴 속눈썹이 너무 슬퍼보였다. 앉아 있는 몸 전체가 빗속에서 펑펑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거기다 상처를 후벼파는 것 같은 질문을 던져 더 큰 파문을 일으킬 수는 없다. 지금은 은정이 하고 싶은 대로 내려버려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주은정은 여전히 말없이 비에 푹 젖은 도시만 바라볼 뿐 쉽사리 다음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신도 모르게 뭔가 막 털어놓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후회에 빠진 사람처럼 언제 그랬냐는 듯 고집스럽게 입을 꽉 다물어버렸다. 아무것도 질문할 수 없는 김혁도 주은정에게서 시선을 떼고 그저 묵묵히 내리는 빗줄기만 바라보았다.
악마가 주은정의 죽음에 얽힌 사연을 말해줬을 때도 김혁은 생각했었다. 아기 때 고아원에 버려지는 것과 유년기 동안 사랑받다가 어느날 갑자기 캄캄한 죽음 속에 던져지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나은 걸까를. 그래도 행복한 유년시절을 선물받았으니 그게 좀 더 낫지 않나 생각하다가도 자신은 엄밀히 따지면 버려진 건 아니니 더 나은 건가 싶기도 했다. 부모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아원에 맡겨진 것과 부모가 자신의 불행을 못 견뎌 생을 놓으며 자식까지 죽음으로 끌고 들어간 건 분명히 다르다.
어쩌면 주은정도 버려진 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부모가 죽음으로 떠나면서 버려두고 떠난 게 아니라고 한다면? 역시 말도 안 되는 거다. 누구도 타인의 생을 함부로 할 권리는 없다. 그 아버지가 자신의 생을 버리자고 마음먹었을 때 이미 모든 가족을 버린 거나 다름없다.지난 과거를 이러쿵 저렁쿵 해봐야 무슨 소용인가. 이미 벌어진 일이고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을. 이러나 저러나 우울한 이야기들이다. 운명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 색깔이 다른 불행일 뿐 뭐가 더 나을 리 없었다.
그런 생각들에 잠겨 있는데 주은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까진 빗방울들이 미친듯이 흩날렸었어요. 제 맘 속을 보는 것 같았는데 이제 잠잠하네요.”
주은정은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주은정의 시선을 따라 김혁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먹장구름은 여전했고 굵은 빗줄기가 곧게 쏟아지고 있었다. 세차긴 해도 얌전히 내린다고 할 수 있는 비였다. 좀 전까지 자신이 저 속을 휘젓고 날았던 걸 떠올리고 어? 내 탓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형체가 없더라도 정말 미친 듯이 날면 바람에 영향 정도는 줄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 중의 하나기 때문에 ‘나 때문일 걸?’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둘은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어 이제 둘 사이엔 내리는 빗소리만 그득했다.
김혁은 생각했다. 주은정이 이렇듯 평소보다 많은 말을 하는 건 비가 오기 때문일까? 아니면 단둘이 있어본 게 처음이라서일까? 대화 내내 궁금하고 헷갈리는 것과 별개로 느껴지는 이 기분의 정체는 뭔가? 좀 어색하고 기분이 이상했다. 민하진과 나란히 앉아서 이야기 나눌 때완 뭔가가 달랐다. 그게 뭔지도 분명치 않고 어느 것 하나 이건가 싶은 게 없었다. 정말 낯선 느낌이었다.
주은정은 언제나처럼 속을 알 수 없는 아이, 늘 차갑고 쌀쌀맞은데다 질문을 해도 퉁명스럽게 되쏘아대는 대답이 전부였기 때문에 오늘처럼 길고 긴 말들 속에 속깊은 곳에서 끌어올려진 감정까지 담아둔 이야기들을 할 거라고 예상치 못해서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구름 속을 해맸던 좀 전의 기분이 남아있어서거나 그도 아니면 좀비가 쏟아지기 직전일지 모를 지금 생겨나는 미래의 불안감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인지도.
아니 어쩌면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가족에 대한 이야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가족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데다 흔히 경험키 힘든 주은정의 불행에 감정이입할 수 없는 탓일지도 몰랐다. 이런 난감함은.
김혁은 그저 비에 젖어 있는 도심지를 내려다보았다. 모든 게 충충한 날이었다. 여길 가도 저길 가도. 하늘도 땅도. 묶여 있는 조직원들 맘이나 저승사자들 마음속도 전부.
그때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허공을 갈랐다.
“아니 세상에. 둘이 지금 뭐하는 거래요?”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민하진이었다. 쏘아보는 눈빛과 허리에 손을 얹고 허공에 떡 버티고 선 모습이 꽤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럼에도 언젠가 공원에서 본 모습이라서 살짝 웃음이 났다. 저건 화났을 때 항상 하는 제스츄어인가? 기억을 잃었던 때 한밤 공원에서 어떤 낯선 여자애와 있다가 민하진이 등장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바람피다 들켰을 때 같은 기분? 절대 그런 게 아닌데 그런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민하진만의 연기력이 만들어내는 효과.
“응? 넌 왜 벌써 왔어? 그 여자 잘 보라고 했잖아.”
김혁이 살짝 당황한 기분을 감추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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