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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mist
작품등록일 :
2018.06.23 20:45
최근연재일 :
2020.12.11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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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0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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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결과

DUMMY

나는 그들을 향해 덤벼들었다. 있는 힘을 짜내어 달리는 와중에 능력을 전개했고, 그 상태로 싸웠다. 전부 죽이진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이 사지를 빠져나가고 싶었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로 무기를 휘둘렀다.


멀리서 날아오는 마법을 어떻게든 쳐내려 애쓰고, 갑옷 사이의 틈새를 노리는 칼날을 막으려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당연했다.


바닥이 미지근하다. 머릿속에 여유라는 게 생겼을 때 처음으로 든 생각이었다. 그것이 땅에 고인 피 때문이고, 그 피가 나에게서부터 흘러나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땐 더는 웃을 수조차 없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으면 처음부터 약을 투여하고 싸울 걸 그랬지. 목숨이 아깝다는 생각은 괜히 해서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그래봤자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중간에 마음이 급해져서 꺼내 들은 주사기는 곧바로 박살 나버렸으니까. 하필 그게 깨진 파편이 있는 곳에 쓰러지는 바람에, 조각난 플라스틱이 뺨을 긁고 있다.


지금 이건 냉철함 따위가 아니라 체념이다.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에서 오는 회한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알고 있었다. 내게 승산이 없다는 것 정도는.


총알이라도 있었으면 한 놈쯤은 처리하고 시작했을 텐데. 쓸 수 있는 무기라곤 전부 사용한 마당에 잘 쓰지도 못하는 능력만 믿고 설쳐봤자 잘될 리가 없잖아. 그 와중에 용케도 팔다리는 멀쩡히 남겨놓은 게 신기할 따름이다.


갑옷이 단단하긴 하더라. 마법사가 뒤에서 깔짝대면서 날리는 마법 정도는 다 튕겨내던 걸. 그 좋은 갑옷의 무게를 몸이 지탱하질 못해서 자멸해버렸지만 말이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가졌더라면 좀 더 잘 사용할 수 있었을 텐데. 이를 테면 크림이라든가. 형은 힘이 셌으니까 나처럼 약물에 의존하지 않아도 싸울 수 있었을 거다.


결국 본래의 나는 이 정도였다는 거다.


내게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머리로는 방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팔이 더는 올라가려 하지 않는다.


“이만하면 시간은 충분히 준 것 같은데.”


머리 위에서 이단심판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무슨 시간? 나보고 발악이라도 해보라고? 숨겨둔 힘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꺼내 봐라 이거냐?”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차라리 기도를 올리는 건 어떤가?”


심판관이 장검에 묻은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말했다. 나는 짤막하게 답했다.


“이미 할 만큼 해본 거 같은데.”


자고로 신이라는 것들은 제 신도들이 어찌 살아가는지에 관심이 없다. 죽을 위기에 처해서 힘을 내려달라고 해도 들어주지 않으며, 사제라는 이들이 변절한 채로 자기 이름을 팔고 다녀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노랗든 까맣든 마찬가지로.


물론 사람에 따라서 다르다고는 하지.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신이 쳐다보면서 관심을 줄지도 모른다. 근데 그게 나는 아니었거든.


“네놈도 사제이긴 하니까 나름대로 배려해주는 거다. 죽기 전에라도 회개해야 그간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을 테니.”

“하, 너희 신은 되게 착한 놈인가 보네. 극악무도한 범죄자라도 잘못했다고 빌면 죄를 사해주나? 그건 착한 게 아니라 호구 같은데.”

“그런 이를 성인이라고 부르는 거다, 이단의 사제 놈아. 예로부터 관용은 선인들의 미덕이었지.”

“야, 난 어려운 말 해봐야 못 알아들어. 그냥 호구라고 치자고.”


내가 그의 신을 모독했음에도 그는 별로 화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딱한 눈빛으로 내려 보았다.


“제대로 된 교리를 배우지 못한 자인가. 무식하기 짝이 없군.”

“내가 그쪽 교리는 배워서 뭐하게?”


놈의 일행이 두런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생각보다 어려 보이는데.”

“젊은 놈이 한둘인가?”

“아니, 아무리 어려도 그렇지 사제라는 자가, 좀 이상한데.”

“이봐. 너 학교는 제대로 나온 거냐?”


그 중 하나가 물었고, 나는 별 생각 없이 답했다.


“다녀본 적 없어.”

“......그러면?”

“우리 고향엔 의무교육 같은 거 없었거든. 여기로 내려와서는 곧장 흑룡교에 들어갔고. 대충 열여섯쯤이었나.”


직접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내가 왜 이것들하고 사이좋게 떠들고 있냐. 바로 옆에서 동료가 죽었는데. 나도 곧 죽을 거라고 마음이 풀리기라도 했나 보다. 죽을 때가 되면 전부 체념하게 된다던데.


저승이란 게 진짜 존재할까. 문득 궁금해졌다. 가서 먼저 도착한 형제들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나답지 않다는 생각에 그만두었다.


내 옆에 누워있는 저 사제는 죽어가면서도 전의를 잃지 않았을 거다. 그런데 선배라는 놈이 이렇게 쓰러지면 무슨 꼴이야. 나에게 다른 사제들과 같은 충성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동료들을 위한다면 한두 녀석은 길동무로 데려가야겠지.


아무래도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아서, 나는 기회를 보기로 했다. 마침 저들은 날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는 머저리 정도로 여기고 있을 테니, 긴장이 풀리는 순간에 역습한다. 명색이 복수를 부르짖는 교단 소속인데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째 놈들이 날 바라보는 시선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간다.


“설마 이 자식들, 미취학 아동을 납치해서 전투원으로 사용했다고?”


이단심판관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야, 너 지금 뭔가 오해를 하는 거 같은데, 우리 교단은 그런 짓 안 해.”


머리에 편견이 들어있는 것도 정도가 있지.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뭐라고 말하려다가, 입에서 힘이 빠져서 그만두었다. 말을 말자. 이미 자기들끼리 소설을 쓰기 시작했으니.


“아니 그래도 신을 모신다는 것들이 할 게 있고 안 할 게 있지. 이게 지금 무슨.”

“흑룡교가 위험한 사이비 집단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

“불쌍해......”


아냐, 불쌍해 하지마 이것아. 적한테 동정 받는 거 진짜 기분 더러워지니까. 어차피 결국 죽일 거면서 괜히 감수성 있는 척 하지 말란 말이다. 그보다 망상 좀 그만해라.


“결국 이 남자도 피해자였군요.”

“진짜 이단자들은 안전한 장소에 몸을 숨긴 채로 세뇌된 민간인들을 소모품처럼 사용해온 건가......”

“설마 내가 지금까지 죽인 이들이 전부?”


심판관들의 면면에 혼란스러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황룡교에서 이것들한테 세뇌교육을 잘못해놨나. 아니면 이거 고문하는 거냐? 이렇게 고문하려고 하는 거야?


언제까지고 여기 죽치고 앉아서 자아성찰을 할 것만 같았던 그들이었으나, 누구나 그렇듯이 결단은 빠르게 내려졌다. 다만 그게 내 예상과 달랐을 뿐.


“이자는 이대로 데려간다.”


놈들의 대장 격인 이가 선언했다. 아니 이거 이상하잖아.


“언제는 죽인다면서. 저기요, 심판관 씨? 뭐 잘못 먹었냐?”

“불운한 일에 휘말린 탓에 잘못된 길을 걸어온 자다. 저 꼴을 보아하니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것 같고, 아직 큰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을 거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면, 옳게 된 교리를 따른다면 달라질 수 있어.”

“아니라니까 그러네? 귀 먹었어?”


죽는 건 싫지만, 동료를 죽인 놈들한테 동정받는 건 더더욱 싫다. 아무리 나라도 기본적인 자존심은 있단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적어도 고문 정도는 받아야 마음이 편하다고.


“우리는 이단심판관이다! 황룡교의 이단심판관은 약자를 지키는 검이다! 악의 마수에 빠져 운명을 달리한 청년조차 구하지 못한다면 그 누가 우리를 사제로 여기겠느냐!”

“그 말이 옳다!”

“흥,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네.”

“우오옷! 믿고 있었다고 젠장!”

“아니 미친놈들아 좀.”


안 되겠다. 어째 다들 눈빛에 무언가 결의가 서려 있는 것 같아서, 그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인 것 같다.


결국 나는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설마 이것까지 부정하진 않겠지.


“신께서 직접 죽이라고 했다며? 상태창 다시 열어봐. 거기 써져 있다면서.”

“전지전능한 황룡님께서도 가끔은 틀린 결정을 내릴 수 있지.”

“그거 전지전능하지 않은 거 아니냐?”

“어쩌겠나? 그런 게 인생인 걸.”


이젠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는 거 봐라. 안 되겠다. 더 이상 논리가 통하지 않아.


마법사가 눈물을 훔치며 결계를 해제했다. 건물 밖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가로막던 막이 사라지는 게 보였다.


뭔가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지만, 아무튼 허점이 생겼으니 다행이네. 이제 일어나서 뭔가 해보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동료 사제의 죽음을 떠올려라. 당장 바로 옆에 후배의 시체가 있지 않나. 그걸 보고 느꼈던 분노를 되새김질하는 거다. 분노는 힘을 만들고 한계에 다다른 몸조차 움직일 수 있게 한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가만히 있어라. 그러다 상처 터지겠네.”


마법사의 말에 약간의 호의가 담겨 있는 걸 애써 무시했다.


“눈앞에서 동료가 죽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


이건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멋대로 체념해버린 내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그런다. 아직 이렇게 움직일 수 있으면서도 패배를 확정지었으니.


한순간이나마, 저들에게 굴복하면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버린 게 더없이 죄책감이 든다. 나는 다시 동료의 시체를 눈에 담고자 했다. 그 사제는 복부를 철근으로 관통당한바 다시는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 되었...... 움직이네?


“쿨럭!”


사내가 기침하며 피를 토했다. 분명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진작 죽고도 남았을 상처인데도, 아직도 숨이 끊어지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어째서?


“아, 쟤?”


내 시선이 향한 곳을 보고 마법사가 말했다.


“보니까 재생이나 치유와 관련된 능력이 있는 모양이더라고. 이 정도면 끝났겠지 하고 보면 한 십 분쯤 지나서 다시 일어나길래, 반쯤 죽여 놓고 미끼로 쓰려고 했어. 저대로 놔두고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놈들이 구하러 올 테니까.”

“잔인하네.”


적한테 자비를 베풀 정도로 고결함을 따지는 놈들이 그런 작전을 쓰나? 저런 걸 보면 이단의 목숨을 벌레 취급하는 놈들이 맞는데, 방금은 왜 그런 거냐고. 역시 이상하잖아.


황룡교의 내부교육이 무시무시하게 잘못된 게 틀림없다. 인성교육을 어떻게 해놨길래 저쪽 사제들이 전부 미쳐있는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그래서 어쩔 거야?”


마법사가 말했다. 무엇을 묻는지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무리 재생한다고 해도 저대로 두면 곧 한계가 찾아올 테고, 언젠가 마나가 다 떨어지면 픽 죽어버릴지도 모르는데. 저대로 두고 도망칠래?”


어차피 답변은 정해져 있었다.


“아니면, 순순히 따라올래.”


빌어먹을 라이덴, 염병할 능력자들 같으니라고.


“살려주십쇼.”


간신히 곧추세웠던 고개가 땅에 닿을 때까지 숙였다.

내 자존심이랄 게 별거 있나. 하나라도 살려야지.


작가의말

사실 저거 반쯤 맞는 소리라는 게...


+ 쓰다보니 12시를 넘겨버렸네요. 장염 때문에 글을 제대로 쓰질 못해서 늦은 주제에 분량도 짧습니다. 크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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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흑룡교 사제 드웬(7) +2 20.11.26 33 1 11쪽
126 흑룡교 사제 드웬(6) +2 20.11.24 35 1 15쪽
125 흑룡교 사제 드웬(5) +2 20.11.23 40 1 15쪽
124 흑룡교 사제 드웬(4) +2 20.11.22 51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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