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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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YEORANG
작품등록일 :
2018.07.02 19:16
최근연재일 :
2019.07.01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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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2.04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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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 사랑은 매일이 다르다

DUMMY

“야. 괜찮아?”


민준이 떠난 자리 남겨진 진우가 겨우 꺼낸 말이었다. 평소와 같은 말투였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이 달랐다. 인화와 민준이 마주쳤을 때 눈물을 감추지 못했던 청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 되었다. 쓰라리던 그 마음도 같이 말이다.


“괜찮아. 괜찮네.”


청아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질리도록 상처받고 흔들린 마음이 많이 무뎌진 것 같았다. 계속 처음처럼 아파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그런 것이다. 사랑을 느꼈던 순간이 갑작스러웠던 것과 같이 눈을 가리고 있던 사랑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때에서 벗어나는 것 역시 갑작스러웠다.


“밥이나 먹자.”

“그래.”


둘은 한참을 침묵했다. 오가지 않는 말속에서 둘은 수많은 감정을 서로 나누었다가, 감추었다가를 반복했다.



**



청아와 진우가 동아리방으로 들어서자 선호와 구양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수상하게 놀라는 두 사람 덕에 청아와 진우는 의아해했다.


“둘이 뭐하냐.”

“뭘 하긴. 아무것도 안 했어.”

‘뭘 하긴 했네.’


진우는 눈에 보이는 선호의 당황을 읽었지만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무슨 일이야?”

“여기 오는데 무슨 일이 있어야 오냐.”


진우가 구양 옆에 앉으며 말했다. 넷은 소파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건 그렇지.”


선호는 생각했다. 넷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기류를 자기만 느끼고 있는 건가하고 말이다. 구양은 생각했다. 선호가 귀엽다고. 진우는 생각했다. 선호와 구양이 사귀는 건가하고 말이다. 그리고 청아 기분은 어떻게 풀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청아는 생각했다. 사랑은 잡는다고 잡히는 게 아니구나 하고 말이다. 더불어 얼마 전부터 콩을 볶는 선호와 구양을 보니 이런 자신의 마음이 더욱 쓰게 느껴졌다. 선호와 구양은 술을 마시며 고백 아닌 고백을 나눈 뒤부터 썸 아닌 썸을 타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두 사람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뭐하고 있었는데?”


청아는 문득 심술이 나서 굳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어쩜 저렇게 명백할까.’


구양의 옆에서 급하게 눈을 굴리는 선호를 보니 청아는 웃음이 났다.


“아. 우리 동아리 만화 구상하는 거.”

“둘은 다 했어?”

“어. 선호랑 나는 거의 다? 청아 넌 하고 있어?”

“응. 어차피 보고서는 금방 쓸 거 같아서 어떤 내용으로 할지만 계속 생각 중.”

“진우 너는?”

“난 다 했어.”


진우는 예빈과 인연을 끊은 그날 이야기를 완성했다. 풀리지 않았던 매듭이 풀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듯 쉬웠다.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자신을 다양한 방법으로 말하는 것과 같았다. 진우는 한참을 묶여있던 자신을 느슨하게 해주고 나서야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오? 보여줘.”

“나중에 다들 다 쓰고 나면 보여줄게.”

“에이. 뭐야. 치사하게.”

“너네거나 보여줘.”

“나도 싫거든?”

“이미 다 보이는데.”


책상에 널브러진 만화들을 보며 진우가 구양을 놀렸다.


“언니 그림 진짜 잘 그리네?”

“그 정도는 아니야.”


구양이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봐도 돼?”

“어 상관없어.”

“둘 다 진짜 만화를 그렸네? 난 그림은 진짜 못 그리는데.”


청아가 책상 위의 만화들을 가져다 읽으며 말했다.


“우리는 그냥 하고 싶어서 한 거고. 다른 사람들은 보고서만 쓰면 돼.”

“둘 다 웹툰 그려도 되겠는데?”

“그니까. 재밌네.”

“언니. 이거 주인공 마지막에 어떻게 돼?”


구양의 만화 속 주인공 가영은 대학생이다. 어렸을 때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대학교 2학년 겨울 갑자기 떠올라 방황하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돌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시간들을 쏟아부으며 가고 있는 현재의 길을 벗어나지 못해 힘들어하는 모습을 가능한 유쾌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주제는 가볍지 않았지만 만화는 무겁지 않았으면 하는 의도에서였다.


“나도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감이 안 잡혀서 선호한테 물어보고 있었어.”

“그렇구나. 되게 공감된다.”

“선호는 자기랑 안 어울리게 연애 이야기를 썼네.”

“그치. 나도 처음에 보고 놀랐잖아.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아. 최구양. 우리 수업 가야 된다. 가자.”

“맞다. 우리 먼저 갈게. 담에 봐.”


구양은 선호의 말에 시계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곧장 짐을 챙겨 선호와 함께 동아리방에서 나갔다.


“둘이 뭐냐. 언제부터 저렇게 친했냐?”


둘의 뒷모습을 보던 진우가 허공에 남긴 말이었다.


“그러게. 사귀나?”

“근데 구양 언니 만화 말인데.”

“왜?”

“언니 얘긴 거 같지? 아무래도.”

“뭐. 이런 고민 많이들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건 그래. 나도 그렇고.”

“너도? 왜 하고 싶은 일 있어?”

“그냥. 진로 고민은 다들 하잖아.”

“너 괜찮아?”

“모른 척 해줘. 나도 괜찮은지 잘 모르겠으니까.”


여전히 쓰린 마음에 청아는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을 하지 않아도 가슴은 뜨거웠고 생각이 하나 떠오를 때마다 불이 지펴지는 느낌이었다. 그대로 청아는 소파에 누웠고 진우는 게임을 하러 책상 앞에 앉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청아와 진우 안에 가득 자리 잡았지만 평소와 같은 하루였다.



**



“엄마, 사랑은 왜 맨날 어려워?”


청아는 침대에 누워 수영과 전화를 하고 있었다. 민준과 인화가 마주침을 두 번째로 목격한지 일주일, 청아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마음에 고통받고 있는 중이었다.


“얘가 또 뭐라는 거니.”

“엄마는 아빠가 왜 좋았어?”

“그냥. 몰라. 그 사람이라 좋았어.”

“그렇구나. 아직도 사랑해?”

“별 걸 다 물어. 밥은 먹었어?

“먹었지.”

“그러면 방 청소 하고. 이불도 한 번씩 빨아두고. 알겠니?”

“아니. 엄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

“내 마음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어.”

“네가 네 마음 잃어버린 걸 왜 엄마한테 찾아.”

“그러게. 답답해서.”

“마음은 한 갈래로만 난 건 아니야. 그래서 그렇게 헷갈리는 거지.”

“사랑은 한순간에 식기도 하는 거야?”

“사랑은 말이야. 원래 한순간인 거야. 그래서 아주 연약하기도 하지만 상상도 못할 만큼 단단하기도 해.”

“엄마. 요즘 너무 힘들어. 사귀지도 않았는데 이별하는 기분이야. 원래 좋아하던 남자한테 더 이상 설레지 않는 내 마음이 이상하고, 서운해.”

“뭐가 그렇게 서운해. 더 이상 그 사람 앞에서 뛰지 않는 심장이 무슨 잘못이니. 네 마음은 그저 네 마음대로 움직였을 뿐인데 말이야. 서운할 거 없어. 원래 그렇게 갈대만도 못한 게 사랑이야. 그래서 함부로 사랑을 맹세하면 안 되는 거란다. 알겠니. 아가?”

“그런가. 요즘 갈 길을 잃은 기분이라서. 한곳을 향하던 내 마음이 길을 잃었어.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길은 또 생겨. 네가 어떻게 하겠다고 굳이 정하지 않아도 또 생기는 게 길이야. 엄마 바빠. 끊는다.”

“아. 엄마. 끊지마요.”

“사랑해. 방학 때 와.”


여전히 끊음엔 매정한 수영이었다. 청아는 그런 수영의 매정함에 허탈했지만 그래도 속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민준의 숨결 한 번, 눈짓 한 번에 잠 못 들던 나날들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토록 무심해진 마음이 한없이 가볍게 느껴지고 한 편으로는 어이가 없었던 것 같다. 원래 사랑이 그렇다는 말을 들으니 청아는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누군가의 입으로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보답받을 수 없는 사랑에 지쳤던 것은 맞는 것 같았다.


‘피곤하다.’


눈을 감은 청아는 가만히 민준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를 사랑했던 만큼 인정하기는 싫지만 사랑이 끝난 지금도 한순간에 모든 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사랑에는 딸려오는 부산물들이 너무 많았다. 기쁨도 그랬고, 행복도 그랬고, 기억도 그랬고, 미움도 질투도 아픔도 슬픔도 모두 사랑이 가져온 것들이었다. 혼자 쌓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청아는 이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



선호는 베스트 프렌드라도 된 듯 깔깔거리는 정현과 구양 사이에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하면, 정현과 피시방에 갔다가 나오는 길에 집에 가던 구양과 마주친 것이었다. 선호는 딱히 더 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구양이 옷깃을 잡고 이끄는 통에 결국 거절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셋이서 맥주를 마시러 오게 된 것이었다.


“오빠는 선호랑 어떻게 친해졌어요?”

“안 봐도 너랑 비슷할걸? 선호는 백 번 들이대야 한 번 웃어주는 스타일이잖아.”

“어 맞아. 나도 완전 혼자 친구였어요. 지금은 다행히 아닌 거 같지만.”


대화 주제는 과반수가 선호였다. 물론 둘의 유일한 연결고리이니 이해는 되었다.


‘그래도 내가 여기 있는데.’

“얘가 완전 철벽이라 상처받지.”

“저기요.”

“맞아요. 저도 거절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저. 앞담화도 상처거든요?”

“야. 이게 무슨 앞담화야.”

“그래. 추억 공유지.”


생각해보면 정현과 구양은 비슷한 점이 많았다. 매번 밝은 기운이 넘쳐 어둠 속에 사는 선호를 밝혀주는 것도 그랬고 결국 동굴에 가만히 있던 선호를 끌어내는 데 성공한 것도 말이다. 항상 용기가 부족한 선호에게 두 사람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너 구양이 좋아하는 거 맞구나. 아니라고 하더니. 새끼.”


구양이 잠시 화장실 때문에 자리를 비운 사이 정현이 맥주를 들이켜고는 물었다. 딱히 추궁하는 말투도 아니었고, 놀라는 것도 아닌 말투였지만 어딘가 씁쓸했다. 선호는 가득 차 있는 맥주 잔을 이리저리 만지다 생각했다.


‘내가 솔직해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 굳이.’

“맞아. 좋아해.”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곧 실체가 되어 몸집을 부풀렸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던 것이 현실 세계에 발을 디디니 그제야 실감이 나는 느낌이었다.


“그렇구나. 신기하네. 네가 연애를 다 하고.”

“아니야. 연애하는 거. 구양은 나 안 좋아해.”

“진짜?”


이번에는 진심으로 놀란 듯 정현의 눈이 동그래졌다.


“뭘 그렇게 놀래. 흔한 짝사랑이지 뭐.”

“너는 역시 멍청해.”

“내가?”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요?”


자연스레 자리에 앉은 구양의 질문에 역시 선호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분위기가 내 험담이라도 한 분위긴데?”

“아니야. 선호가 너 좋대.”


정현의 한 마디에 두 사람의 마음이 크게 일렁였다. 쿵쿵. 뛰어대는 두 사람의 심장 소리는 서로에게 들리지 않았지만 정현에게만큼은 확실하게 들렸다.


“아니. 구양이 네가 이것저것 챙겨주고 그래서. 얘가 많이 고마운가 봐.”

“아. 하하하. 그렇죠? 요즘엔 그런 거 같더라고요.”

“맞아. 그런 얘기 하고 있었어.”

‘빠져줘야 되는 건가.’


두 사람의 귀여운 사랑놀이에 끼어 있기에 정현은 조금 외로운 상태였다. 그래도 거의 업어 키워 겨우 사람을 만든 선호가 사랑을 한다니 뿌듯하기도 했다. 진짜 즐거울 때 유독 깊게 패는 선호의 보조개가 정현의 눈에 자리 잡는다.


‘다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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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32. 그러나 그랬다. 19.05.06 38 0 12쪽
31 #31. 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19.04.15 46 0 13쪽
30 #30. 그날, 별안간 로맨스 19.04.01 54 0 11쪽
29 #29. 커피 한 잔의 반복 19.03.25 39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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