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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진)
작품등록일 :
2018.07.05 19:05
최근연재일 :
2018.08.11 18:11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410
추천수 :
4
글자수 :
59,319

작성
18.07.05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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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서장

DUMMY

마력으로 정제되지 않은 마나는 독이나 다름없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마나가 요동치는 것만 같았다. 울컥, 하고 역류하는 피를 애써 삼키고 방실방실 웃고 있는 황녀를 노려봤다. 선혈이 튀는 아수라장 앞에서도 태연자약 않는 눈동자. 허나 이젠 달관할 수 없으리라.


미스텔테인, 신화 속 보구. 비록 마법진을 무력화시킬 순 없겠지만 최소한 지연을 할 수 있겠지.


처음부터 내가 노린 건 이것이었다. 나는 멀쩡한 왼 팔로 한껏 마력을 머금은 미스텔테인을 내던졌다. 흰 빛을 내는 보구는 마치 화살처럼 긴 궤적을 그리며 연성진 중앙에 그대로 박혀 들어갔다.


순식간에 아찔한 굉음의 검은 벼락이 몰아쳤다. 채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파직거리는 스파크가 계속해서 번뜩였다. 허나, 뿌리의 움직임만은 분명히 멎어있었다.


부디, 보다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도망칠 수 있길. 겨우 한숨 돌린 나는 맥이 풀려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저건 뭐야?!”


그제야 저 불길한 것을 인식하게 된 이들이 소리쳤다. 미스텔테인은 그 마법진 중앙에서 맞물리는 룬 톱니바퀴 사이에 끼어있는 모양새였다. 설마 그 격마저 현실로 끌어내릴 줄은 몰랐지만, 어차피 그도 오래 가진 못할 것 같았다.


“저게 무엇인지도 모르고 지키려 했던 거야?”


기가 찬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로열 나이츠들을 쏘아붙였다.


“한심한 것들. 눈이 달렸으면 똑바로 봐라, 너희들이 불러들인 게 무엇인지.”


“우, 우린 제국을 위해···”


“얼빠진 소리 집어치워라! 저것이 너희들이 약속받았던 승리를 가져다 줄 것 같으냐!”


재차 호령하려던 때, 황녀가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말을 잘랐다.


“어머, 에단 경. 귀여운 짓을 저질러주셨군요.”


마침 주박을 풀어낸 요한 경은 황녀 앞에서 고개를 조아렸다.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합니다, 황녀님. 허나 한낱 시간 끌기에 불과하니 괘념치 마소서. 저 불충한 가신은 제가 처단하겠습니다.”


말을 마치며 칼을 빼든 요한 경을 뒤로하고 나는 황녀에게 충언을 건네는 양 넌지시 비아냥거렸다.


“황녀. 어찌, 당신이 자랑했던 <용사>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는 답니까? 제국의 대업에 훼방을 놓는 이를 이리 자유롭게 둔단 말입니까. 모쪼록 요한 경의 연세가 적지 않으니 노장을 부리시기보다는 저 젊은이들이 나서는 게 합당한 줄 아뢰옵니다.”


“경의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황녀님!”


요한경의 외침에도 싱긋 웃어보였지만 과연 속내도 그럴까. 황녀의 긍정에 나 역시 얼굴에 만연한 미소로 화답했다. 비록 핀치에 몰렸다지만 배짱은 주눅 들지 않았다는 걸 간과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쩐답니까? 저들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나올 수 있는 건, 플레이어들의 모습에 내가 숱하게 봐온 이들이 겹쳐 보였던 이유에서였다. 개전 초기에 징집당해 칼 한 자루 덜렁 쥐어주고 전장으로 내몰렸던 어린 병사들··· 단언컨대 저들은 적에게 검을 겨눌 적의도, 각오도 없이 강요당한 싸움을 받아들여야 했던 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허나 다른 점이 있다면, 어린 병사들을 지탱했던 혹은 강하게 만들었던 무언가가 저들에겐 없다는 것이다.


갈대처럼 흔들리는 눈동자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저들은 참으로 나약한 이들이다.


“어차피 칼을 대지 않아도 곧 다할 목숨입니다, 황녀. 그럼에도 저들은 무엇이 두려워서 병사들 뒤에 숨어있는 겁니까? 제 손에 피를 묻히는 걸 무서워하는 겁니까? 어리석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황녀님. 혹 당신은 그 연유를 아시는 지 여쭙고자 합니다.”


“네 이놈! 그만 입 다물라!”


노한 요한 경의 칼날이 곧장 내게로 날아왔다. 흐릿해져가는 초점에 담긴 시야는 조금씩 느려져가는 세상이 비췄다. 내 죽음은 전장에서 맞이할 줄은 알았지만 같은 인간 손에 끝날 줄은 몰랐는데.


주마등이라 했었지. 스쳐가는 지난 과거의 일들이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생동감 있게 재생되는 과거의 영상들, 이제는 볼 수 없는 그 안에 함께했던 이들을 추억하며 눈을 감으려던 찰나


챙-!


누군가의 검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에단 님. 그만하면 됐습니다. 뒤는 저희에게 맡겨주십시오.”


수 명의 로열 나이츠가 나를 등지고 섰다. 그들의 칼날은 내가 아닌 반대편을 겨누고 있었다. 방황하는 칼날이 아닌 서린 예기를 품은 명검들이었다.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건지 알고 있느냐! 감히 황실 적통 황녀님께 칼을 겨눈 것이더냐!”


노발대발하는 요한 경의 외침에도 그들은 담담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 걸까. 그래봤자 소수였다. 아직 저편엔 수 많은 로열 나이츠들이 도열해있었다. 뿐더러 황제 직속 정예병 일 천의 군세에 아직 어느 정도 힘을 가진 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플레이어들까지. 허나 그 모두를 적으로 돌리면서도 그들에겐 주눅 든 기색은 추호도 없었다.


“요한 경.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전선에서 화살이 쏟아지고 있던 그 때 말입니다. 모든 건 대의를 위해서라는 당신의 꾐에 우리는 피를 나눈 전우를, 그리고 지켜야 했던 백성을 버리고 도망쳤었지요. 매일 밤 꿈에서 그들이 나타납니다. 왜 우리를 버렸냐며, 원망하는 그들에게 저는 당신이 했던 말을 되풀이 했었습니다.”


착잡한 듯 길게 숨을 내쉰 기사는 점차 소리를 높여갔다.


“허나 이게 무엇입니까. 동료를 제물로 바쳐 완성한 마법이 고작 이것이었습니까? 저 흉한 나무가 당신이 약속했던 승리의 열쇠였습니까!”


동조하듯 다른 기사들도 목소리를 보탰다.


“우리는 그래선 안됐습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켰어야 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런 것인 줄 알았으면 전선을 떠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신을 따르지 않았을 거라고 말입니다!”


“맹세를 저버린 우리에게 지킬 명예라곤 남아있지 않지만 두 번 다시 후회할 일은 만들지 않겠습니다. 목숨이 다할 때까지 우리는 제국의 기사로써 그 소명을 다하겠습니다.”


누군가가 내 팔을 잡고 비틀거리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이미 무너져가는 시야는 상대의 얼굴조차 식별할 순 없었다. 다만 그 익숙한 목소리로 누군지를 짐작할 뿐이었다.


“군단참모님. 당신이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동부 전선에서 영웅적인 분전으로 적의 군세를 패퇴시켰던 역전의 기사, 특유의 유려한 검술에 매료된 이들이 입을 모아 칭송했었지, 은의 기사라고.


“뤼펠 경. 마음은 감사하지만 전 이미 틀렸습니다. 후일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제가 아닌 프란츠 경의 곁으로 가십시오. 그에겐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대들의 목숨은 제가 아닌 신민들을 위해 써 주십시오.”


그들의 가세는 분명한 전력이 될 터이지만, 힘이 실리지 않는 다리는 한 발짝 떼기조차 버거운 현실이었다. 숫 적으로도 전력으로도 균형추는 너무 크게 기울어져 있었다. 짐짝인 날 감싸면서 이 군세를 상대로 활로를 연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허나 체념한 나를 뤼펠 경은 더욱 단단히 붙들어 맸다.


“약한 말씀하시지 마소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지키겠나이다.”


“경!”


그를 다그쳤지만 굳게 선 그의 결심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괘념치 마소서. 명예를 잃은 그 날 우리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저희에게 생기를 불어넣은 건 당신입니다. 에단 님 그저, 먼저 간 전우들에게 부끄럽지 않을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설령 이곳에서 목숨이 다한다 한들 후회는 없습니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몇 개의 검이 더 칼끝을 돌렸다. 우리는 적었지만 기세만큼은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헛소리를 하는군! 어리석은 것아, 명색에 기사라는 것들이 어찌 감정에 휘둘리는 것이냐!”


요한 경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가 당장이라도 군세를 시켜 우리를 쓸어버릴 수 있었지만, 뤼펠 경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요한 경. 당신은 대의를 말했지요. 허나 신의를 저버린 그것에 그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우리는 기사입니다. 경!”


“뤼펠 경, 아직도 모르겠나? 그렇기에 우리가 이곳에 서 있는 것이다! 신의? 좋지. 허나 그 만으로 이 대전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나!”


놈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마라! 요한 경은 술렁이는 군세를 다그쳤다. 아무리 수가 많다 해도 사기가 떨어진 군은 본연의 전투력을 낼 수 없음을, 병법에 능한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들어라! 과연 저들이 정의라 생각하느냐, 저들을 따른다면 엘프를 몰아내고 대륙을 되찾을 것이라 생각하느냔 말이다! 저들의 말이 달게 느껴진다는 건 안다. 허나, 우리 역시 제국을 위해, 신민을 위해 이 자리에 섰다는 것을 잊지 말아라!”


그가 제국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서기까지 희생했던 이들을 상기해라! 그들의 목숨을 헛되이 할 참이냐!”


검날이 교차하는 삼족오의 형상이 바람결에 펄럭였다.


“저것, 바벨이 승리의 열쇠이자 반격의 기치가 될 것이다!”


하며 그는 목에 핏대를 세워 외쳤다.


“바벨이! 이 불리한 국면을 단숨에 뒤집을 유일한 길을 열어줄 것이다! 저 나무를 수호하는 것이 제국을 구하는 것이오, 신민을 지키는 것임을 명심해라!”


너희들의 가족을 위해 검을 들어라! 그것이 결정적이었다. 호령하는 요한 경의 외침에 머뭇거리던 군세의 기도가 변했다. 부쩍 살벌해진 공기가 숨을 조여오고 있었다.


이윽고 요한 경이 손을 높이 들었다. 천천히 내려가던 그의 손끝은 우리를 겨냥하며 멈춰 섰다. 우리는 충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뤼펠 경은 이에 질 세라 검을 쥔 양 손을 머리 위로 가져갔다. 참격만으로 갑옷을 가른다던 그의 기수식이었다.


“저 변절자들을 쳐라!”


“에단 경을 지켜라!”


서로의 목소리가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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