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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진)
작품등록일 :
2018.07.05 19:05
최근연재일 :
2018.08.11 18:1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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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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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7.18 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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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서장

DUMMY

핑계는 그럴싸하네. 나는 착잡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군의 동태를 예의주시했다. 다행스러운 건 제국군도 플레이어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수적 우위를 활용할 생각은 접어두고 뤼펠 경과 플레이어의 일전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으니 말이다. 문제는 아군도 다르지 않다는 거지.


짧게 혀를 찼다. 하긴 확실히 눈을 뗄 수 없는 광경이긴 했다. 충돌의 중심지에선 마치 강대한 마법이 지면에 내리꽂히는 폭음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그건 오롯이 병기끼리 맞부딪히며 빚어진 파공성이었다.


그 격전에 모두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뤼펠 경이 뛰어난 기사란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걸 대적할 수 있을 정도로 플레이어의 기량이 출중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어느덧 주변엔 물안개가 끼듯 마력의 잔향이 낮게 깔려왔다. 기사는 마법사완 달리 마력을 체내에 순환시켜 신체적 능력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이들이었다. 그 경지가 정점에 달하면 마치 김이 피듯 몸을 감싸는 마력의 연무가 새어나오는데, 저 두 명은 분명 그 영역에 닿아있었다.


허나 승부는 금세 갈렸다.


“허우대만 멀쩡하군.”


“으아아아악!”


플레이어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플레이어는 비명을 지르며 피를 뿜는 손목을 감싸 쥐었다. 흐름을 이어 목을 잘라내려던 뤼펠 경을 플레이어 몇이 끼어들어 겨우 막아 세웠다. 연무는 점점 더 짙어져갔다. 난입한 저들의 경지 역시 앞선 플레이어와 같았기 때문이다.


“프란츠 경, 가세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내가 우려를 표하자, 프란츠 경은 손을 저어보였다.


“아닙니다. 그럴 필요까진 없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기세를 탄 뤼펠 경의 검은 적들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있었다. 상대해야할 수는 늘었다지만 적들의 연계는 오히려 제 살을 깎아먹는 모양새였다. 동선이 겹치는 건 예사요, 갈피를 잡지 못하는 포지션은 저들의 곤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뤼펠 경이 점한 우위를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저들의 수준은 뤼펠 경과 동등한 절정, 범인(凡人)은 그 경계를 잡아낼 수조차 없다고 불리는 지고한 경지였다.


이런 내 의문을 읽었는지 프란츠 경이 첨언했다.


“경지야 높다지만 검술은 삼류보다도 못한 수준이군요. 참으로 조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체계도 중심도 없는 검술이라며 프란츠 경은 혀를 찼다.


나는 그제야 놓친 게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검에 조예가 부족해 눈으로 검격을 쫓기 바빴을 뿐, 미처 전체적인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탓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플레이어들의 실력은 뤼펠 경과 견주기엔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었다. 마치 어른과 어린 아이의 싸움을 연상케 하는, 압도적인 우위였다. 허나 그 일방적인 우위가 도리어 위화감을 부추기는 것만 같았다.


분명 뤼펠경은 제국에서도 손꼽히는 우수한 기사라지만, 그건 저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검격을 주고받는 이들 모두가 동급인 절정의 기사들이었다.


그러니 문제였다. 일반적이라면 이런 양상은 절대 빚어질 수 없었다. 세기의 재능이라던 뤼펠 경도 오랜 수련과 생사를 넘나드는 실전을 무수히 반복하며 이륙한 성취였다. 헌데 저들은 그 과정을 생략한 것처럼 동격의 연무를 구사함에도 제 힘에 휘둘리는 모양새였다.


거듭 생각해봐도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어떻게든 공격을 피해보려 바닥을 굴러다니는 꼬락서니에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같은 절정의 경지임에도 수준이 이리도 극명하게 갈릴 줄이야. 점차 저들의 몸에 기다란 혈선이 그어져가자, 자신만만했던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이 깃들고 있었다.


결국 수세를 견디다 못한 플레이어들 중 하나가 도움을 청했다.


“씨발! 존나 아파! 힐러들 뭐해! 힐! 힐 안주냐!!”


“마법사들은 자냐! 좆같은 새끼들아!”


그 다급한 독촉에 마법사들이 응했다. 그들 중 몇몇이 허공에 손짓했다.


“니들이 도와 달라 그랬어. 아군 마법에 맞는 흑우들 없제?!”


급속한 마력의 유동은 마법 발현의 전조였다. 그 흐름을 캐치한 나는 급히 뤼펠 경을 감싸는 결계를 구현시켰다.


『철의 비』


동시에 공중에선 마력으로 연성된 철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카가가가가가가가각-!


빗대자면 폭우에 가까웠다. 순식간에 땅이 까맣게 변할 정도로 화살이 빽빽하게 내리꽂혔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에 마법을 시전한 당사자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건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저런 마법을 영창 없이 구현한다는 건 마탑의 수석 마법사들도 해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표적이었을 뤼펠 경에게까지 선혈을 강요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바닥에 흐르는 새빨간 피는 몸을 숨길 엄폐물이 없었던 플레이어들의 상흔이었다.


제 힘을 가늠하지 못하는 건 기사들뿐만이 아니었나보다.


나는 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플레이어란 족속들 모두가 일류를 상회하는 기량을 지녔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그들이 구현하는 경지는 재능이 없는 자가 평생을 매진한다 하여도 닿지 못한다는 영역. 뼈를 깎는 노력, 이치를 깨달을 오성, 형언할 수 없는 영감을 비롯해 갖춰야할 조건은 많지만 그 중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하면 결코 이룰 수 없는 성취였다.


허나 그들에게선 그게 없었다. 마치 제 것이 아닌 것처럼,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꼬락서니였다.


꺼림칙한 느낌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럼에도 황녀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만만하게 내세웠던 플레이어들이 형편없이 깨졌는데, 아직도 숨겨둔 수가 있다는 걸까? 지금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무언가가.


“이 미친놈아!”


겨우 숨을 돌린 플레이어들 중 하나가 화살이 촘촘히 박힌 방패를 마법사들 쪽으로 던져버렸다. 쾌속으로 날아오는 둔중한 철덩이에 마법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혼비백산했다.


“가관이 따로 없군요.”


뒤편에선 프란츠 경의 조소가 들려왔다. 내분을 빚는 저들의 행태가 참으로 볼만 했기 때문이리라.


플레이어간의 분란으로 어느덧 국면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갔다. 나는 그 여유를 빌려 허공에 멈춰선 바벨을 응시했다. 흑뢰를 수반하며 파직거리는 마법진은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형국은 여전한 열세였다. 뤼펠 경의 분전으로 기세는 이쪽으로 넘어왔다지만, 군세의 무리와 병종의 차이를 뒤엎기 위해선 좀 더 결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나 판국을 타개할 수단이 마땅치 않은 지금으로선, 이 기묘한 대치를 유지하기보단 결단을 내려야했다. 주도권을 쥔 지금이 적기였다.


생각을 정리하며 잠시 꾸물거리니, 플레이어들이 다시 해 볼 요량으로 후위에 있던 자들 몇이 전위에 합류했다.


“용기는 가상하군요.”


프란츠 경이 콧방귀를 뀌었다. 설사 저들 모두가 합심한다 해도 뤼펠 경과 플레이어 사이의 간극은 어른과 어린아이에 빗댈 수 있을 정도로 컸다. 더구나 가장 위협적인 요인인 마법사들은 자신의 마법에 우군이 휩쓸릴세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를 알기에 저들의 동태를 뒤로한 채 사단에게 명령하려던 찰나


돌연 전황이 반전했다.


“저, 저게 대체!”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차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몇 번이고 눈을 깜빡여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빛무리가 플레이어를 감싸자 잘려나간 팔이 돋아나고, 꿰뚫렸던 가슴팍이 거짓말처럼 아물어가고 있었다. 쏟아진 화살에 벌집이 되어 사경을 헤매는 자가 갑자기 멀쩡한 몸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광경은, 실로 형언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기적을 칭한다면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겠지만, 이건 마법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 것이었다. 저들은 우리가 인지조차 못했던 힘을 구사하고 있었다. 허나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나는 병사들의 동요를 수습하기보단 황녀를 직시했다. 그녀는 적의에 물든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흘리며 내게 물음을 던졌다.


“에단 경, 경도 보셨는지요? 저분들이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줄 거라는 말, 이젠 믿으시겠습니까?”


황녀는 로열 나이츠의 호위를 받으며 술렁이는 군중들 사이를 가로질렀다. 병사들은 황녀 좌우로 도열해 검을 곧추세우고 예를 표했다. 곧게 뻗은 길을 딛는 걸음걸이엔 한껏 의기양양함이 묻어나오고 있었다. 대열의 선수까지, 황녀의 행차엔 망설임은 없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경. 그만 투항하시는 게 어떠신지요? 이렇게 맞서게 된 건 그저 방식의 차이일 뿐, 그대가 얼마나 제국을 위하는지 저는 잘 알고 있답니다. 오늘의 결례는 지난날 그대의 공로로 덮고도 남음에 문책하지 않겠으니, 그만 마음을 돌리는 게 어떻습니까? 경은 여기서 무의미하게 잃기엔 너무 아까운 인재에요.”


황녀의 설득을 요한 경이 거들었다.


“에단 경. 황녀님께서 이리 말씀하시는 데 무얼 망설이고 있소? 어서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시오. 황녀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이대로 저버릴 참이오?”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내게 요한경이 결정을 독촉했다.


“무엇보다 적을 두고 전우끼리 칼부림을 하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누구보다 그대가 잘 알고 있지 않잖소.”


“혹 병사들을 걱정하신다면 이들은 경에게 맡기지요. 전처럼 11사단을 지휘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안겨주세요. 저는 여기 있는 모두가 제국을 다시 일으켜 세울 영광스런 자리에 함께했으면 좋겠어요.”


재차 황녀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긋나긋한 설득은 말미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쐐기를 박듯 황녀는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허나 경이 끝내 불충한 마음을 돌리지 않겠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될 거에요.


통보가 끝나자, 병사들의 술렁거림은 점점 더 커져갔다.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진화할 수 없는 동요의 번짐이 느껴졌다. 자애를 흉내 낸 목소리가 수준급이었던 것만큼이나 병사들에게 전해진 파급력은 적지 않았을 터. 그러나 섣불리 움직이는 이는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11사단이 정예로 불리기까지, 돌이켜보면 함께 싸웠던 매일이 생사의 갈림길이자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의 우리는 풍전등화에 놓인 제국의 위기에 거병한 의사義士는 아니었다. 도리어 전장에 내몰려 싸움을 앞뒀던 때엔 두려움에 벌벌 떨었었지. 그 당시의 우리는 그저 살아남는 게 목표였었다.


그런 우리에게 승리는 요원했다. 연이은 패퇴를 거듭하며 패잔병이 된 우리는 편제마저 잃고 뿔뿔이 흩어질 무렵, 우연히 피난 행렬과 마주한 일이 있었다. 그곳에서 채 엄마 젖을 떼지 못한 아기가 눈에 밟혀서일까? 우리는 다시 모여 검을 들었었다.


하루만 버텨보자며 그렇게 적과 맞선 첫 날,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죽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값비싼 대가를 치루며 번 시간은 늙고 쇠약한 이들에겐 턱없이 부족한 처사였다. 그래서 하루를 더 싸웠다. 그마저도 모자라 사흘, 나흘을 연이어 막아내었다.


그러자 도망친 줄 알았던 동료들이 소식을 듣고 속속 합류해왔다.


일곱 번째 격돌을 앞뒀을 땐 한 무리의 용병들이 우리를 찾아왔다.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겠다며, 함께 싸우자 했었다. 그렇게 하루를 더 버텨냈다.


다음 날, 더 많은 이들이 우리와 함께 싸웠다. 그리고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에도 우리는 처음에 떠나보냈던 이들보다 많은 전우를 갖게 되었다.


그렇게 한 달이 되었을 때, 마침내 우리는 성벽 밖으로 나아가 적을 패퇴시켰다. 우리의 첫 승리였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누구보다 선두에 서서 적과 맞서 싸워왔다.


비록 개개인은 객체라지만 등을 맞댄 우리는 전우였다. 피보다도 진한 유대로 이어진 형제와 같았다. 설령 아무리 달콤한 말로 꾀어낸다 한들, 이곳엔 제 한 몸 건사하고자 동료를 버릴 이는 그 누구도 없었다.


하얀 포말처럼 말려 부서지는 입김은 곧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그 짧은 감상에 젖을 새랴 나는 검을 들어 황녀를 겨냥했다.


작가의말

늦어서 죄송해요
일에 치여살고 술자리에 불려가고 ㅋㅋㅋㅋ
그래도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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