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채색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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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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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18.08.02 17:46
최근연재일 :
2020.05.08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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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13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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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4

DUMMY

"하하하! 잘 찾아오셨습니다!"


첫 만남부터 호탕하게 웃는 퍼거스는 팔까지 양쪽으로 쭉 벌리며 시오르 일행을 반겼다. 손에 들린 잔에는 술이 가득했고, 덥수룩한 수염에는 붉은 양념이 조금 묻어있었다.


레아는 팔을 내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어이구, 이거 누구야? 레아 아니냐? 그런데 귀족분들이랑 왜 같이 있냐."

"시온은 제 친구예요. 그보다 대체 이 늦은 밤까지 마시는 거예요?"

"뱃사람이 언제 이렇게 마시겠냐. 아무튼 오랜만에 봐서 반갑구나."


퍼거스는 누르스름한 반팔옷을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핏 보기에는 지저분한 사람이나, 옆에 놓인 수건으로 손과 얼굴을 닦아내는 모습은 꽤나 성실해 보였다.


"제가 퍼거스 루타비스입니다. 리버스 가문의 나르시아 님과 세라스 님이라고 하셨죠?"

"네. 최대한 빠르게 출발하려고 하는데, 언제 출발할 수 있을까요?"

"지금 당장도 가능합니다."

"네?"


세라스는 무슨 소리를 하냐며 그를 바라봤다. 퍼거스는 그 시선에 만족하는 듯, 쇄골 부근을 툭툭 치면서 자랑스럽게 말했다.


"오히려 내일 출발하면 해류가 바꿔서 엄청 꼬일 겁니다. 빠르게 출발하실 거라면 지금 당장 가시는 걸 추천하죠."

"그건 놀랍군요. 그럼 지금 가도록 하죠."

"자, 그러면 이야기를 좀 하면서 배로 갈까요? 그럼 얘들아, 7일 뒤에 보자구."

"퍼거스, 올 때 우리 짐도 다 가지고 와."

"걱정도 말라고. 자, 그럼 출발하죠."


문 옆에 놓인 코트를 걸친 퍼거스는 제법 선장다운 모습이었다. 허리띠에 있는 지도와 나침반을 확인한 그는 문을 열고 일행을 바깥으로 안내했다.


"아이나 노약자 없이 네 사람이고, 3일간 항해하기 때문에 인당 150크록입니다. 식사는 빵과 수프가 전부이니 참고해주시고. 짐은 없으시죠?"

"없어. 으, 빨리 눕고 싶다. 언니, 빨리 와."

"하하, 적어도 뱃멀미만 없으시다면 괜찮을 겁니다. 아, 레아. 그보다 세비지는 어떻니?"

"아버지는 여전하세요. 매번 외팔로 고생하시는 거 보면, 제가 다 놀란다니까요."

"가끔 보면 내가 다 무섭다니까. 어휴, 요즘 같은 때에는 그 정도면 괜찮은 거라니까 기어코 더 빡세게 일해보겠다고."


고개를 내젓던 그는 고개를 돌려서, 옆에 있는 시오르를 바라봤다.


"그보다 레아​, 저 친구는 어디 아프냐?"

"네? 아프긴 한데, 원래 안색이 좀 저래요."

"으휴,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병든 기세면 어떻게 해."


시오르는 퍼거스가 등을 세게 두들기자, 조금씩 기어오던 피곤함이 사라졌다. 하지만 등이 너무 아파서, 자신도 모르게 등을 문질렀다.


"아으...."

"허리 쭉 펴고, 앞을 봐야지. 앞을."

"아저씨."

"어어, 갑자기 무섭게 왜 그래? 그렇게 무섭게 노려봐도 뭐 안 나온다?"


레아의 눈총에 퍼거스는 어깨를 으쓱이며 나아갔다. 레아는 여전히 몸 약한 애한테 그렇게 세게 하면 안 된다고 설교했으나, 주변에 지나가는 뱃사람들이랑 인사하느라 바빴던 그는 자주 그녀의 말을 끊었다.


"아저씨...!"

"레아, 괜찮으니까 화 풀어."

"시온. 하지만...."

"당사자가 좋다면 그걸로 끝이지. 아주 마음씨 좋은 젊은이구만."

"아저씨야말로 상당히 대단하시네요. 저렇게 많은 사람이랑 친하시다니."

"친구가 많은 건 좋은 일이지. 인생 사는 데에 적을 두면 쓰나."

"꺄앗!"


그때, 레아는 고여있던 물웅덩이를 밟고 미끄러졌다. 뒤로 넘어지려던 그녀를 붙잡은 것은 바로 뒤에 있던 시오르였다. 안전하게 팔 한쪽을 목 뒤에 받친 그는 레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괜찮아?"

"어.... 괜찮아...."


다급하게 자세를 잡은 그녀는 얼굴을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민망함을 주체 못 하듯, 앞으로 나아가던 걸음걸이가 점차 빨라졌다. 이 모습을 본 나르시아는 불쌍한 듯이 혀를 찼다.


"쟤는 정말 운이 지지리도 없다."

"맞아. 저번엔 마차에서 발가락을 찧더니."


세라스는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한편, 그 모습을 본 퍼거스는 흥미롭다는 듯이 레아와 시오르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그리고는 무언가를 알아차리고는 소리가 나지 않게 탄성을 내뱉었다.


시오르는 너무 빨리 가지 말라면서 다급하게 그녀를 쫓아갔고, 퍼거스는 때맞춰서 뒤에 있는 두 귀족에게 질문했다.


"그런데 실례지만, 두 분이랑 레아랑 무슨 관계신가요?"

"시오르는 제 남동생이거든요."

"아, 시온이 아니라 시오르가 본명.... 엑."


뭔가 잘못 들었는가 싶은 그는 고개를 돌렸다. 시오르는 얼굴을 가리고 있는 레아 옆에서 열심히 위로하고 있었다.


"사정이 있어서 말이야. 보는 사람마다 우리가 쟤 사정을 설명해야 한다니...."

"그냥 사고 때문에 기억을 잃었다고만 할게요."

"이런, 사정도 모르고 너무 무례했던 건 아닌가 싶네요."

"뭐, 쟤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부류니까 걱정도 마. 물론 우리한테 그랬으면 뭐라고 했겠지만."

"윽. 그건 봐주십쇼.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 말에 세라스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됐어. 솔직히 방금 건 내가 속이 다 후련했어."


일행 쪽으로 걸어간 세라스를 보고 퍼거스는 신기하다는 듯이 나르시에게 물었다.


"상당히 가족 관계가 친밀한가 보네요. 저 또래 여자애들은 형제한테 저렇게 장난치거나 툴툴대기보단 냉랭하게 대할 텐데."

"시오르 같은 성격을 좋아하진 않지만, 사이가 무척 좋은 녀석들이죠. 가끔 보면 싫어하는 게 맞나 싶다가도 역시 남매는 남매인가 싶더라고요."


퍼거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행에게 다가갔다. 어느새 뒤돌아서 배시시 웃고 있는 레아의 모습은, 정말 알기 쉽다고 두 사람은 생각했다.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안 레아는 황급히 표정을 고치고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세요?"

"아, 아무것도. 그보다 서두르자."

"네."


시오르는 알겠다며 레아의 손을 잡았다. 아무래도 이야기를 나누다가 레아가 배를 알려준 모양인지, 방향이 확실했다. 어두운 밤에도 붉게 피어오른 레아의 뺨은 멀리서도 보였다.


퍼거스는 그 모습에 조금은 안도감을 느꼈다. 어딘가 병든 듯한 그녀가 무척 밝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딸의 상태를 걱정하던 부모가 걱정을 덜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 기쁜 소식은 아무리 빨리 전해도 10일은 지나야겠지만 그래도 친구의 표정이 밝아질 것 같다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보다 레아는 배를 아는 모양이네요."

"아, 제가 직접 관리하는 배는 한 척이거든요. 누가 봐도 뻔히 보이고."


그 말에 그들은 고개를 들어 배들이 놓인 선착장을 바라봤다. 이 밤중에도 마력등이 켜진 수많은 배 중, 딱 한 척만 유독 투박하게 생긴 게 있었다. 다른 배들이 잘 다듬어진 장식을 붙인 느낌이라면, 그의 배는 철판을 대서 내구성에만 집중한 듯했다.


많은 사람이 재빠르게 짐을 싣고 있는 모습에, 퍼거스의 세력이 얼마큼 큰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배였기에 짐을 거의 다 옮긴 것 같았다. 쉬고 있는 인부들에게 다가간 퍼거스는 그들과 손뼉을 부딪치며 대화를 나눴다.


"칼, 오늘도 수고 많았어."

"어휴, 그럼 월급이나 더 올려줘. 저번에 미르디 다쳤을 때도 내가 했잖아."

"거 쩨쩨하긴. 말 나온 김에 운송하는 애들한테 조만간 좋은 소식 있을 거라고 해둬. 안 그래도 요즘 우리 잘 나가잖아."

"오, 올려준다는 거지?"

"아니. 회식한다고."

"야!"

"푸하하하! 아무튼 다녀온다!"

"하여간에 퍼거스, 너 돌아오면 두고 봐라!"

"걱정도 말라니까!"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대화 끝에 퍼거스는 자신의 배에 올라탔다. 그런 와중, 의아함을 느낀 나르시아는 칼이라는 사람을 흘깃 보고는 퍼거스에게 물었다.


"저 사람, 분명 부하 아니던가요?"

"맞습니다. 근데 원체 친해서 굳이 선장님, 선원 하면서 부르기보단 서로 이름으로 부르고 있죠."

"음...."

"뭐, 이상하실 수 있죠. 하지만 저희는 귀족이 아니니까요. 원하시면 저에게 말 놓으셔도 됩니다. 오히려 나르시아 님처럼 저희에게도 공손하신 분은 오랜만이네요."

"예절은 마땅히 갖춰야 할 땐 지켜야 한다는 게 저희 부모님이 가르쳐준 거라서요. 아쉽지만 그러진 않을게요."

"엥, 그래도 말 놓는 게 편하긴 하잖아."


나르시아는 세라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머리를 매만졌다.


"세라스, 그래도 지킬 건 지켜야지."

"흥.... 난 내 마음대로 할 거야."

"진작부터 안 지켰잖아. 새삼스럽게."

"야!"


시오르의 말에 세라스는 주먹으로 그를 통통 두들겼다. 그렇게 배 위에 전원이 올라타자, 배는 빠르게 출발할 준비를 했다. 어두컴컴한 밤이기에 마력등의 빛을 전방으로 향했고 빠르게 움직이는 물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자세히 바깥을 보기에는 다들 피곤했으니, 빠르게 배 안쪽으로 들어가서 잠들 준비를 시작했다. 구조가 생각보다 복잡했기에 퍼거스는 먼저 나르시아와 세라스를 안내했다.


"잠깐만 여기 있어 줘."

"네."


잠깐 기다리던 두 사람은 조용히 있었다. 어색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피곤한 탓에 마땅히 입이 떨어지지 않은 것이 컸다. 그러다가, 시오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레아는 그에게 다가와서는 속삭이듯이 말했다.


"어때? 처음 배 타본 느낌이?"

"배가 원래 이렇게 흔들리는 거야?"

"그건 날씨에 따라 다를걸. 어지러워?"


걱정스러운 듯 레아가 바라보자, 시오르는 안심하라며 손을 내저었다.


"이 정도 가지곤 뭘. 마공학 장비 만지는 게 더 어지러웠어."

"아, 다행이다. 혹시 뱃멀미가 있나 해서."

"얘들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것부터 들을래?"


나르시아와 세라스를 안내하고 온 퍼거스는 머쓱한 듯이 머리를 만지며 다가왔다. 레아는 고개를 들고 그를 보며 말했다.


"좋은 소식부터요."

"너희가 잘 방을 한 번 더 확인해뒀단다. 큰 문제는 없을 거야."

"그런데 나쁜 소식이 있다고요?"

"그게.... 아마 좀 소란스러울 거다."

"대체 뭘 한 거예요? 배 자랑한 지 얼마 됐다고."

"가보면 알 거다. 미안하다, 레아."


그 말을 듣고 두 사람은 복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제의 방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하하...."


시오르는 퍼거스가 연신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것을 봤지만, 이번엔 당혹스러움을 도무지 감출 수 없었다. 수리하다가 문고리를 부순 모양이었다. 바닥에 쓰러진 문은 배의 흔들림에 맞춰서 조금씩 움직였다.


"아저씨, 대체 뭘 한 거예요?"

"잠깐 잡는다는 게 넘어지면서...."


결국 그날, 두 사람은 문이 휑하니 열린 방에서 자게 되었다. 바닷물의 찰랑거림과 선원들의 발소리에, 두 사람은 밤을 새워야만 했다. 그나마 위안인 점은, 시오르와 레아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하룻밤을 보낼 만한 친한 사이였다는 점이다. 통로 끝구석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는 피곤함에 가라앉더라도 즐거움은 남아있었다.


작가의말

E3 소식에 입꼬리가 찢어지는 중입니다

끼얏호우

여러분도 오늘 좋은 하루 보내시길 기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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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마지막 여명#5(完) 20.05.07 77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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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마지막 여명#3 20.03.26 27 0 15쪽
77 마지막 여명#2 20.03.19 65 0 12쪽
76 마지막 여명#1 20.03.12 35 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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