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선(魔仙)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조휘
작품등록일 :
2013.07.2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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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6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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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7.2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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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선(魔仙) 9

DUMMY

3장. 누굴 좀 찾아주시오.


묵기린은 며칠 전 보았던 적토평 시장을 홀로 걷고 있었다.

그의 사부는 운남에 살았지만 운남사람은 아니어서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하여 그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는 건 상관없었다.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속에 있다는 그 자체가 그에게는 행복이었다.

모든 게 정지되어 있는 천유선원은 너무나 고독했다.

툭!

어깨를 부딪친 무인 하나가 화가 난 듯 그를 노려보고 지나갔다.

흑상회와 사일련의 결전이 임박해 주위를 오가는 무인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나 거리에 나와 장사를 하는 상인들의 표정은 밝아 보았다. 그리고 손님 역시 활기에 차 있었다.

시장을 구경하며 걸어가던 묵기린은 갑자기 멈춰 섰다.

여인의 장신구를 파는 자판이 그의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묵기린은 기억 속에 남아있는 동생의 얼굴을 찬찬히 떠올려보았다.

자신은 평범하게 생겨 아이들 속에 묻혀 있으면 금방 찾지 못했다.

그러나 동생은 그와 전혀 달랐다. 어려서부터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눈이 초롱초롱했던 동생은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들어왔다

묵기린은 그런 동생에게 어울릴 법한 붉은 비단 머리띠를 골랐다.

한데 묵기린이 머리띠를 잡으려는 순간, 시장을 바삐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시선을 불현듯 받았다.

묵기린은 머리띠를 놓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황급히 돌아서는 모습이 보였다.

“너, 너는…….”

묵기린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녀가 바로 오래 전에 헤어졌던 자신의 동생임을.

묵기린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멀어지는 여인에게 걸어갔다.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잡으려고 하면 그녀는 어느새 더 앞을 걷고 있다.

묵기린은 풍신을 펼쳤다.

그러나 아무리 빨리 몸을 날려도 그녀는 언제나 한 발 앞서 있다.

그렇게 수천 리를 쉬지 않고 달렸다.

몇 개의 산과 몇 개의 강을 정신없이 지났다.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춘 여인이 등을 돌린 채 묵기린을 기다렸다.

“령아!”

묵기린은 떨리는 손으로 여인의 어깨를 잡았다.

그의 손처럼 여인의 어깨 역시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여인이 천천히 돌아서는 순간.

“아…….”

여인의 얼굴이 흐릿해지더니 이내 눈과 코,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묵기린은 망연한 시선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얼굴에서 피를 흘리던 여인은 곧장 시커먼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묵기린은 급히 손을 뻗어 보았으나 어둠은 이미 여인을 집어삼켰다.

***

“령아!”

벌떡 일어난 묵기린을 보고 서군악은 눈을 비비며 물었다.

“왜 그러나? 잠꼬대를 한 거야?”

묵기린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자 서군악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묵기린은 잠시 앉아서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에게는 사부님처럼 전후인과를 통해 앞일을 예측하는 힘은 없다. 그러나 령아가 꿈에 나왔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상황일 것이다.’

그로부터 반각 후 눈을 뜬 묵기린은 서둘러 의복을 챙겨 입었다.

그런 묵기린을 보며 서군악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다.

“오밤중에 어딜 가려고 옷을 다시 입는 겐가?”

“급히 찾아야 될 사람이 있소.”

“그게 누군가?”

“돌아와서 말해주겠소.”

그 말을 남긴 묵기린은 풍신을 펼쳐 사라졌다.

서군악은 급히 내력을 퍼트려 묵기린을 찾았다.

그러나 풍신은 한 줄기 바람처럼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서군악은 전각 밖으로 뛰어나와 소리쳤다.

“이봐, 어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돌아와! 자네가 조금 이상한 건 사실이지만 나는 그렇게 싫지 않았어! 이봐, 듣고 있는 거야?”

그러나 묵기린의 대답은 없었다.

풍신을 사용해서 총단을 나온 묵기린은 북동으로 방향을 잡고 속도를 높였다. 자연에서 가장 빠른 건 빛이고 그 다음은 뇌전이다.

그러나 빛은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반사가 되고 뇌전은 한 순간에 쏟아낸 후 사라진다. 그러나 바람은 다르다. 바람은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스며들고 스스로 멈추기 전에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묵기린은 마음이 급해 풍신을 최고속도로 펼쳤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령아를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쓸데없는 걱정에 령아를 홀로 너무 기다리게 하고 말았구나.’

묵기린은 천유선원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 계속 동생을 걱정했다.

그러나 빨리 찾아야한다고 생각할 때마다 망설이고 말았다.

사부가 준 돈은 능히 백년을 먹고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리고 사부가 동생을 맡긴 사천(四川) 청성산(靑城山)의 금옥애(金玉崖)는 불가의 고찰로 불심이 깊은 비구니가 생활하는 암자여서 어린 동생을 박대하거나, 괴롭히는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수련 초기, 묵기린을 입정(入定)에 들지 못하게 방해한 가장 큰 문제는 금옥애에 떼어놓고 온 동생이었다. 사부는 그럴 때마다 동생은 단명할 상이 아니라고 하였으나 걱정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한데 세월이 흘러 드디어 만날 수 있게 되자 다른 걱정이 생겼다.

묵기린은 사부를 철썩 같이 믿었다.

그만큼 사부는 세인이 감히 측량조차 하지 못하는 능력을 가졌다.

그러나 동생에 관한 일은 아니었다.

사부가 동생이 단명할 상이 아니라고 했으나 자신이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걸 알고 일부러 그랬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기린을 정말로 괴롭히는 건 동생이 혹시 잘못되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만의 하나, 정말 만의 하나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는 그 한을 감당할 자신이 별로 없었다.

한데 천유선원에 들어간 후 몇 년 간 계속 꾸다가 더 이상 꾸지 않던 동생의 꿈을 꾸었다는 건 동생 신변에 이상이 있다는 의미였다. 잠깐의 머뭇거림이 평생의 한으로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묵기린은 사천 성도(成都)에 도착하자마 청성산 금옥애로 달려갔다.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기억에 있는 금옥애 모습은 전과 확연히 달라져있었다. 부드러운 바람이던 묵기린은 강풍으로 변했다.

금옥애에 도착한 묵기린은 떨어져 있는 현판을 주워 쌓여 있는 먼지를 먼저 닦아냈다. 그러자 현판의 글자를 가리고 있던 먼지가 허공으로 날아가며 붉은색으로 쓴 청향각(淸香閣)이 나타났다.

암자의 이름은 원래 청향각이었으나 청향각보다 금옥애가 더 유명해져 암자도 금옥애로 부르고 금옥애도 금옥애라 부르고 있었다.

현판을 문이 있던 자리 옆에 내려놓은 묵기린은 암자 안으로 들어갔다. 깔끔한 비구니가 거처하던 불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먼지가 가득했다. 묵기린은 고개를 들어 정면의 불상을 보았다.

불상의 머리가 잘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묵기린은 암자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동생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묵기린은 금옥애 근방 십여 리를 모두 수색했다.

그러나 동생이 있었다는 흔적은 여전히 발견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던 묵기린은 청성산 남동쪽에 위치한 성도로 돌아갔다.

성도에 도착해 가장 먼저 들린 장소는 돈을 거래하는 전장이었다.

묵기린의 행색을 본 주인은 턱을 괴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오셨소?”

“이걸 환전하고 싶소.”

묵기린은 금각혈망에서 금덩이를 꺼냈다.

금덩이를 본 주인은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와 직접 안내했다.

“이, 이쪽으로 오십시오!”

묵기린을 객청에 데려간 주인이 안에 대고 소리쳤다.

“뭐하느냐? 귀한 분이 오셨는데 얼른 차를 내오지 않고!”

“예, 나리!”

점원이 차를 내오는 동안, 주인은 금덩이를 계속 힐끔거렸다.

“환전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은자로 바꿔주시오.”

“알겠습니다.”

주인은 묵기린이 보는 앞에서 금덩이를 녹여 다시 금괴로 만들었다.

묵기린이 가져온 금은 광석형태였으나 순수한 금에 가까웠다.

금괴를 저울에 올린 주인은 무게를 잰 후 시세를 알려주었다.

“이렇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좋소.”

적지 않은 수수료를 챙긴 주인의 헤벌쭉한 얼굴을 보며 전장을 나온 묵기린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청양궁(靑羊宮)을 찾았다.

청양궁은 노자(老子)를 기리는 사당이다.

하여 도사는 물론이고 유람객이 자주 찾는 성도의 명승지에 속했다.

한데 그런 청양궁에는 아주 특이한 조형물이 있었다.

바로 삼청전(三淸殿) 앞에 양을 조각한 청동상이 서있었던 것이다.

묵기린은 참배하고 돌아가는 유람객을 잡고 물었다.

“삼청전 앞에 양이 있는 이유가 무언지 알고 있소?”

“노자가 성도의 관원을 만났을 때 책을 한 권 준 후 다 읽으면 다시 찾아오라고 했소. 하여 열심히 책을 읽은 관원은 다시 찾아갔소. 한데 노자는 없고 대신 어린 아이와 양 두 마리가 있었다고 하오. 그 양을 노자의 환생이라 생각한 관원은 그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노자의 덕을 기렸는데 그게 바로 지금의 청양궁이오.”

“그럼 청양궁에 양(羊)이 있는 이유가 그 이유 때문이오?”

“그렇소.”

유람객이 돌아가자 묵기린은 청동으로 만든 양을 천천히 살펴보다가 금각혈망에서 붉은색 천을 하나 꺼내 양의 다리에 묶었다.

묵기린은 청양궁을 천천히 둘러본 후 무후사(武侯祠)로 걸어갔다.

무후사는 촉의 재상 제갈량(諸葛亮)을 모신 사당이었다.

무후사를 느긋하게 둘러본 묵기린은 해가 지자 청양궁에 돌아왔다.

밤이 깊어 청양궁에 있던 유람객은 모두 돌아갔으나 청양궁 삼청전에는 사십대로 보이는 청수한 인상의 중년인이 홀로 서있었다.

푸른색 유삼(儒衫)을 입은 중년인은 학처럼 고아한 느낌을 주었고 손에는 까막눈이 보기에도 무척 귀해 보이는 섭선이 들려 있었다.

뒷짐을 지고 서있던 중년유사가 고개를 돌렸다.

“청동상에 붉은 천을 묶은 사람이 당신이오?”

“그렇소.”

그 말에 고개만 돌리고 있던 중년유사는 몸을 완전히 돌렸다.

중년유사는 이제 나이가 들어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기는 했으나 젊었을 적에는 많은 여인들을 울렸을 거 같은 준미한 모습이었다.

“그대가 천선일문(天仙一門)의 후예임을 증명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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