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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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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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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3. 종전(1)

DUMMY

“이게 무슨!”


서신을 훑으며 카르미르가 저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질렀다.

붉은 성벽에 도착한 후 러셀 백작은 대주교와 면담을 하러 자리를 옮겼고, 카르미르는 오랜만에 만난 사절단과 회포를 풀려던 차였다. 그런데 다짜고짜 브라운 주교가 이번 사건의 전말이라며 서신 한 장을 건넨 것이다.


“이번 사건의 원흉이라고 확신하고 있네. 교황 성하께서 직접 이단심문관들을 파견해서 확인한 사실이라고 하는군.”


유능하기로 이름난 대심원의 심문관들 중에서도 가장 지독하고 자비 없는 자들이 바로 이단심문관이었다.

주로 악신숭배자나 사악한 마법을 익힌 이들, 인류에 대한 배신행위를 하는 이들 등을 수사하고 처벌하는 이들이기에 교황이 이들을 파견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금지된 땅 일대에서 악마 소환 및 강령술의 흔적을 발견했고, 이를 추적하여 강령술사를 발견하여 척살하였다...?’


“그리고 그 강령술사의 정체가...”


“거기 그려진 문장을 새긴 인장을 가지고 있었다는군.”


거기에 그려진 것은 쌍날도끼를 배경으로 소용돌이치는 눈을 가진 해골이 웃고 있는 모양을 형상화한 문장이었다.


“세 악신의 문장을 섞어 만든 것이군요.”


“그렇네.”


쌍날도끼는 학살과 유혈의 신 ‘크루델’을, 소용돌이는 타락과 혼돈의 신 ‘고룬’을, 웃는 해골은 죽음과 고통의 신 ‘둠’을 의미했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은 피해를 끼치고, 그만큼 악명 높은 사교도들을 가진 악신들이었다.


악신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가장 큰 요소는 바로 그 신이 기뻐하는 행위였다.

싸움의 신인 토르빙이나 분노의 신인 옥타그가 악신으로 오해받는 일도 있지만, 이들은 과격하긴 해도 각각 정당한 결투에 기뻐하고 용기에 찬사를 보내는 신들일 뿐이었다.

반면 세 악신들은 공통적으로 인신공양을 받아 권능을 내리고, 사악한 행동에 축복을 내려주었다. 또한 몬스터와 결탁하고 살인을 즐기는 등의 끔찍한 행위를 일삼기에 교국은 세 악신을 인류의 공적으로 지정하고 박멸하고 있었다.


“척살한 강령술사는 한낱 하수인이라고 하네. 성도에서는 음지로 숨어든 세 악신의 교도들이 결탁해서 세력화 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네.”


“이번 사건도 그 맥락이라는 거군요.”


“그렇지. 앞서 말한 강령술과 악마소환은 물론이고, 세 자리수가 넘는 인신공양의 증거를 찾았네. 단기간에 이루어진 일이 아니야.”


“금지된 땅에서 세력을 길렀다니... 무서운 일입니다.”


카르미르의 말에 주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슬쩍 카르미르의 눈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노이만 대주교 각하께 전해 듣기로, 교황 성하께서는 요크 왕국을 의심하고 있네.”


“오해십니다, 예하! 그들은 그런 불경한 짓을 저지를 자들이 아닙니다!”


러셀 가문을 떠올리며 경악하는 카르미르를 제롬이 손을 휘저으며 말렸다.


“아, 성격 급하기는. 끝까지 들어. 우리가 의심하는 건 러셀 가문이 아니니까.”


“뭐? 그럼 누구를...”


“누구겠어? 스피어즈울프 가문이지.”


교황이 의심하게 된 이유는 사절단의 서신 때문이었다.

금지된 땅에 세운 목책 때문에 사악한 기운이 뭉친 것이라고 주장한 전대 러셀 백작의 주장을 담은 서신이었다. 전대 러셀 백작이 주장 한 바, 최초로 목책을 세운 자는 러셀 변경백령 동북쪽에 위치한 영지의 주인인 스피어즈울프 변경백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목책으로 언데드를 막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거지. 성채도 아니고 말이야.”


“그럼?”


카르미르가 진정된 기색을 보이자 브라운이 대신 설명을 이어나갔다.


“내가 설명하지, 심문관. 교황궁에서 논의한 바, 일명 ‘세 악신의 교단’이 금지된 땅에서 세력을 키우는 와중에 이번 일이 벌어진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네.”


“음... 그리고 그 세력을 키우는 중에 결탁한 게...”


“그저 추정뿐이네만, 스피어즈울프 백작을 의심하고 있지.”


“그렇다면... 그럼 스피어즈울프 백작이 인접한 러셀 변경백령의 힘을 빼기 위해서 그 놈들과 결탁했다는 이야기로군요, 예하.”


언뜻 납득이 된 카르미르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하자, 브라운 주교가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어지는 주교의 설명에 카르미르 역시 애매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교국의 군대에 파견된 이단심문관들은 강령술, 악마소환, 인신공양 등이 이루어진 조그만 숲에서 마법과 전투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무리가 둘로 갈라져 한 쪽은 동쪽으로, 한 쪽은 서쪽으로 이동한 정황을 포착했다. 동쪽으로 향한 흔적은 대부분 지워져있었고, 대신 서쪽으로는 언데드의 사기가 강렬하게 남아 추적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기를 쫓아서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리치(Lich)와 마주쳤다는군. 불과 며칠 전의 일일세.”


“리치라니...”


“갑작스레 마주친 터라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는 군. 강력한 주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놈이었다고 하네.”


뜬금없이 튀어나온 고위 언데드의 이름에 카르미르는 미간을 구겼다.


누군가는 리치(Lich)를 귀신의 일종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한을 품고 죽은 마법사의 언데드라고도 했다. 또 악마와 계약하여 영생을 부여받은 마법사라고 여겨지기도 했고, 악신의 종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렇듯 그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리치가 강력한 마법을 다루는 무시무시한 언데드라는 사실에는 모두 동의했다.

카르미르 역시도 대미궁에서 수도 없이 많은 리치를 파괴했다. 개체마다 그 강력함은 천차만별이었으나, 아무리 약한 리치라도 얼마 전에 카르미르를 애먹인 구울이 우스울 정도로 강대한 언데드 몬스터였다.


“특히 정적(靜寂:silence)주문과 냉기의 구 주문을 다뤘다고 하는군.”


“정적 주문과 고위의 냉기 마법...! 그 놈이 범인이겠군요, 예하.”


“그렇겠지.”


카스티야 자작의 주둔지에 처음으로 사절단이 합류했을 때 강변에서 갑작스럽게 언데드 군대가 몰아친 것, 미레인 성의 코앞까지 어마어마한 양의 언데드들이 몰아닥쳤는데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높은 수준의 냉기 마법으로 강을 얼려 길을 만든 것까지, 모든 정황이 일치했다.


“그렇다면 예하, 그 리치는 퇴치했다고 합니까?”


“아니, 놓쳤다고 하네. 위협을 느끼자 언데드들을 잔뜩 소환하고 사라져버렸다는군.”


“아...”


“어쨌든, 여전히 금지된 땅에서는 사악한 기운이 피어나고 있지만, 이전처럼 조직화된 언데드는 모두 분쇄된 것으로 판단되네. 강력한 고위 언데드도 발견되지 않고 있고.”


“대단한 일을 해냈군요.”


대륙의 금지(禁地)로 이름 높은 곳을 토벌한 두 대교구의 활약에 감탄하자, 주교가 웃으며 말했다.


“후후, 글쎄, 굳이 따지자면 자네와 두 대영주의 공이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예하?”


아무리 금지된 땅이라도 시체가 무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데 이미 고메즈 후작령에서 상당한 수의 언데드가 파괴되었고, 러셀 변경백령으로도 어마어마한 양의 언데드가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리치와 한 번 마주친 것을 제외하면 고위 언데드는 한 번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히 서북대교구의 군대는 출정 중에 교전한 건 하급 언데드들 뿐이었고, 구울은 커녕 시체골렘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금지된 땅을 쉽게 조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마디로 빈집털이 한 거지. 주 전력은 두 대영주가 처리했다고 보면 되니까.”


어깨를 으쓱거리며 덧붙이는 제롬의 말에 카르미르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금지된 땅이 공략불가능하다고 판정된 이유는 그 근원을 찾지 못해서이지, 언데드들이 감당이 안될 정도로 강력해서는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카르미르에게 주교가 입을 열었다.


“아마 노이만 대주교 각하께서는 러셀 백작에게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있을 걸세. 물론 스피어즈울프 변경백에 대한 의심은 함구하시겠지. 고메즈 후작에게도 이런 설명은 충분히 되었으니 아마 평화조약은 어렵지 않게 마무리 될 걸세. 그 이후가 문제지.”


“그 이후라고 하심은?”


“교황께서는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네.”


“근본적인 해결책이라...”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르미르에게 주교가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이 정보의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계시네. 교국의 밖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니까.”


양 대영주가 군사를 모은 일, 대규모 언데드의 준동, 금지된 땅에 둘러친 목책 등. 교국에서는 하나도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정보의 부족을 뼈저리게 절감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긴 했다.

카르미르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딱히 해답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예하. 교국에서 대륙 전체를 통치하지 않는 이상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교국은 성도를 제외한 각 지방을 관구로 나눠서 통치하고 있다.

성도와 그 주변은 교황령으로 두어 교황이 직접 다스리고, 각 지방을 서북, 동북, 동방, 남방, 서방대교구와 군사특별교구로 나눠 지방관 조로 여섯 추기경을 파견하는 식이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교구를 교구로 나눠 대주교가 다스리고, 교구를 사목구로 나누어 주임사제가 관리한다. 그리고 대교구를 다스리는 추기경에서 사목구의 주임사제에 이르기까지 성도에서 직접 직책을 지정하여 파견하는 것이다.

그렇게 임명된 각 관구의 장은 신앙은 물론이고 군사와 행정의 영역까지 도맡아서 통치한다.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인 교국이기에 이룰 수 있는 통치체계였고, 이러한 통치체계가 있었기에 교황이 모든 지방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중앙집권형 권력구조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예방책은 있다고 생각하시는 게야. 세 왕국에 파견교구를 설치하자는 것이지.”


“파견교구라면?”


하지만 지금 브라운 주교가 말하는 파견교구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간단히 말해 교국이 아닌 외국에 성직자들을 파견하고 교회를 짓겠다는 것이다.

교국의 관구와는 달리 오직 신앙의 관리자 역할만을 수행할 것이다. 세 선신을 모시는 귀족들이 다수인만큼, 많은 지지를 받을 것이다. 새로운 지역에 대한 포교가 가능한 만큼 교국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겸사겸사 세 악신의 교단처럼 부정한 세력의 발호를 감시할 수도 있었다.


주교의 설명을 들은 카르미르가 감탄하며 말했다.


“그런 묘수가. 그런 방법이라면 귀족들도 반길 것입니다. 세 선신을 모시는 귀족들도 많을뿐더러, 자신의 영지에 성직자를 파견해준다면 신도가 아니더라도 크게 환영할 겁니다.”


“글쎄. 그렇지만은 않네. 왕들이 썩 좋아하지 않을 테니까.”


주교의 말대로 문제는 왕이었다.

세 왕국은 신앙의 힘으로 탄생한 신성교국이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군주에 의해 탄생한 아누스 제국과는 사정이 달랐다.

세 왕국의 뿌리는 교국의 지방권세가들이 교회와의 경쟁에서 밀려 권력에서 멀어지자 불만을 품고 떨어져 나온 것이다. 이후 여러 가문의 활약으로 국가의 기틀을 잡고, 각 지방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파편화된 도시국가를 이끌고 있던 유력가들에게 작위를 내려주며 흡수하여 지금에 이른 것이다.

그런 이유로 세 왕국은 왕권이 비교적 약하고 지방의 분권화가 강했다. 거기에 몇몇 귀족들은 아직도 자신의 친정이 신성교국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국에서 세 왕국에 파견교구를 설치한다? 왕들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국가를 종교적으로 예속화하려는 것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런 측면도 있군요.”


“뭐, 심문관이나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네만... 어차피 이 문제는 차후의 일이니 눈앞의 문제부터 해결해야겠지.”


“맞습니다, 예하.”


카르미르와 사절단의 회포가 끝나갈 즈음 대주교와 러셀 백작의 이야기도 마무리되었다.

러셀 백작은 그의 측근들과 충분히 이야기하길 원했고, 노이반 대주교는 백작을 배려하여 협상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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