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가르드 퀘스트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파랑손
작품등록일 :
2018.09.17 10:33
최근연재일 :
2020.10.20 20:48
연재수 :
229 회
조회수 :
1,292,114
추천수 :
52,298
글자수 :
1,425,056

작성
20.03.29 08:00
조회
2,494
추천
135
글자
12쪽

#43. 아름다운 도시 (1)

DUMMY

스피어즈울프 변경백령은 매터슨 령과 분위기가 썩 달랐다.

순방단의 방문을 받은 마을들은 숨을 죽였다. 사람들은 문을 걸어 잠갔고, 어린아이나 여인들을 집안에 숨기기 바빴다.

마을의 대관이나 촌장 등의 관리인들은 공손했으나, 미처 숨기지 못한 거부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이 지방 사람들은 하나같이 공용어에 무척 서툴러서 말도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니 서로 불편한 마음은 더욱 커지고, 조금씩 오해가 쌓이는 경우도 잦았다.


순방단이 이러한 분위기에 처한 것은 얼마 전까지 영지를 들쑤신 이단심문관들의 영향이 컸다.


1년 전 즈음, 금지된 땅의 언데드 군대가 브리베 강을 넘었다. ‘흑린후’라는 별명을 가진 고메즈 후작은 그 공격의 배후로 요크 왕국을 지목했다. 그렇게 대군을 몰아 붉은 성벽을 넘었으나, 카르미르의 활약으로 뜻이 꺾이고 말았다.


이후 스피어즈울프 령에서부터 시작된 목책이 사악한 기운을 가두는 둑이 되었음이 밝혀졌다. 이어진 조사에서는 삼악신의 교단이 남긴 흔적까지 발견되었다.


교국은 수십 명의 이단심문관을, 그리고 군대를 파견했다. 스피어즈울프의 모든 마을은 이단심문관의 방문을 받았다. 이단심문단들에 의해 금탑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온갖 흉흉한 소문들이 영지에 퍼졌다.


순방단을 이끄는 두 성직자가 모두 심문관이라는 호칭을 달고 있음은-당연하게도-또다시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한 카르미르는 일정을 서둘렀다. 덕분에 보빙턴을 떠난 지 고작 나흘 만에 스피어즈울프 변경백령의 주도(主都), ‘에제’에 도착하게 되었다.





85년 전,

황금사자의 형제는 백마의 깃발을 꺾고 산상의 성을 넘어 서쪽으로 진군했다.

수천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기름진 평야로 진출한 형제는 소왕국 ‘서던시스’와 마주치게 된다.


서던시스는 용맹한 수탉의 깃발 아래 여러 가문이 뭉친 소왕국이었다. 창을 쥔 수탉이 가장 으뜸이었고, 비상하는 와이번, 거인의 목을 문 뱀, 검은 늑대가 그 뒤를 이었다.

무시무시한 언데드와 산의 괴물들, 북방의 야만인들에게서 평야를 지켜낸 소왕국은 강력하기 그지없었다. 황금사자의 형제는 고전했고, 마침내 꾀를 내었다.


황금의 유혹에 넘어간 검은 늑대는 수탉을 배신했다. 늑대에게 뒤를 물린 소왕국은 황금사자의 형제에게 무참히 패배했다. 수탉은 목이 잘리고 와이번은 불태워졌으며 뱀은 도망쳤다.


그렇게 기름진 평야의 소왕국은 멸망했고, 창을 깔고 앉은 검은 늑대는 변경백이 되었다.


스피어즈울프 변경백령의 역사를 되새기며 카르미르는 완만한 언덕을 타고 말을 몰았다.


에제는 기름진 평야 위에 세워진 거대한 도시였다.

겨울의 추위가 무색하게도 호밀과 청보리, 귀리가 절반쯤 심어진 평야는 푸르름이 가득했다. 휴경지의 농부들은 남은 건초를 긁어 커다란 더미를 만들고 새들을 쫓아내느라 분주했다.

언덕 한 쪽에는 젊은 양치기가 피리를 불며 양떼를 몰고 있었고, 저 멀리 지평선에는 말을 탄 기사와 그가 거느린 병사들이 밭을 순찰하고 있었다.

북쪽에서 온 상인들은 수레에 짐을 가득 싣고 성문으로 향하고 있었으며, 짐승과 괴물의 시체를 짊어진 사냥꾼 혹은 용병들은 껄껄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러나 세 선신의 문장을 휘날리는 순방단 행렬이 도시로 가까워질수록 평화로운 분위기는 깨어지기 시작했다.

농부들은 일거리를 내팽개치고 물러났으며 순찰대는 긴장하며 멈춰 섰고 상인들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양치기의 만류에도 그의 개는 순방단을 향해 사납게 짖어대었으며, 용병들은 웃음을 멈추고 하얗게 뜬 눈으로 순방단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보고 카르미르는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서도 별로 환영받진 못하겠는데.”


카르미르의 중얼거림에 뒤에서 따르던 레베카도 입술을 삐죽거리며 맞장구쳤다.


“다들 도적떼라도 본 표정입니다. 기분 나쁘게···”

“어쩔 수 없지, 뭐. 일정이 밀리기도 했으니, 일을 빨리 마무리하길 바라자고.”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툴툴거리는 레베카 옆에서, 제인은 털망토로 전신을 둘둘 만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번에도 힐데리히 예하께서··· 음, 괜한 트집으로 일을 만들면 어쩌죠?”

“글쎄···.”


제인의 속닥거리는 목소리에 카르미르는 가만히 턱을 매만지다가 대답했다.


“별일 없지 않을까? 고집스러운 면이 있지만, 예하께서도 나름 생각이 있는 사람이니.”

“그렇겠죠?”


카르미르는 확신을 품지 못한 눈으로 슬쩍 뒤를 살펴보았다.

고등심문관 오윈은 보빙턴에서 구입한 마차에 타고 있었기에, 최근 들어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함께 마차에 타자고 권하긴 했지만 카르미르는 당연히 거절했다. 오윈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심신이 모두 피로해지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에제는 6미터는 넘어 보이는 팔각형의 성곽으로 도시를 감싼 형태였다. 도시가 어찌나 넓은지 한 면당 길이가 1킬로도 훨씬 넘을 것 같았다. 동서남북으로는 성문이 있었고 각 모서리마다 둥글고 넙적한 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성벽 아래로는 겨울임에도 마르지 않은 해자가 까맣게 넘실거렸고 성문은 도개교와 묵직한 창살문으로 방비되어있었다. 창살문을 내리고 도개교를 올리면 그야말로 작은 섬에 떠오른 난공불락의 도시가 될 터였다.


카르미르는 그 규모와 구조에서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수백 년의 역사와 그것을 지켜낸 힘을 엿볼 수 있었다.


성문은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는데, 그만큼 많은 병사들이 눈에 불을 켜고 줄을 감시하고 있어서 그렇게까지 혼잡스럽진 않았다.


성곽을 올려다보니 곳곳에 스피어즈 울프 가문의 문장-초록 배경에 검은 늑대가 부러진 창들을 깔고 앉아있는 그림-이 새겨진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병사들은 통일된 복장과 무장을 차려입고 있어서 한 눈에 보아도 정예병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겼다.

카르미르가 살펴본 바, 초록색과 검은 색이 체크무늬로 섞인 서코트 아래로 판금흉갑과 사슬 호버크를 입고 있었다. 등에는 활과 화살집을 메고 있었으며 허리춤엔 검을 차고 있었다.


이렇게 잘 무장한 병사를 천 명 가까이 거느리는 것은 어지간히 부유한 영주라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널리 알려진 바, 스피어즈울프 변경백은 ‘어지간히’ 부유한 영주가 아니었다.

기름진 평야와 여러 광산, 그리고 드넓은 숲을 지배하는 대영주가 바로 스피어즈울프 변경백이었다.


거대한 도시와 드넓은 영지, 넘치는 부와 거기에 따른 강력한 힘.

이 도시의 주인은 왕에 버금가는 위세를 떨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성문에 다가설수록 눈길을 끄는 것은 정예로운 병사들이나 높은 성곽이 아니라 길가의 광경이었다. 지독한 악취와 함께 펼쳐진 끔찍한 장면에 카르미르는 작게 신음했다.


“저게 대체···.”


그들의 시선이 닿은 길가엔 일련의 구조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가장 먼저 시선을 끈 것은 둥근 바퀴모양의 머리를 단 나무기둥이었다. 바퀴모양의 머리에는 교수(絞首)당한 시체 예닐곱 구가 둥글게 매달려 있었다. 그런 나무기둥이 길의 양편으로 네 개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다음으로는 두 발로 간신히 설 정도로 좁은-새장 모양의 감옥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은 창살 밖으로 다리를 빼어 앉은 채 죽어가는 눈으로 순방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두터운 차꼬에 머리와 양손이 묶인 이들이 굴욕적인 자세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똥, 오줌, 침, 남은 음식 등 온갖 오물을 뒤집어 쓴 채였다.


그 끔찍한 풍경에 강렬한 악취가 더해져 구역질이 절로 나왔다. 나이가 어린 캐니나 시종 루디는 결국 길가에 속을 게워내고 말았다.


레베카는 마른침을 삼키며 중얼거렸다.


“이게 뭐야···?”

“흠. 촌스러운 방식이로군.”

“예? 촌스러운 방식··· 말입니까?”


어느새 레베카와 말머리를 나란히 한 이는 거구의 성기사, 알레이드였다. 그는 북슬북슬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그래. 도시의 입구에 처형당한 범죄자들을 전시하는 것은 왕국에선 흔한 일이지. 끔찍하고 야만적이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경고 방법이야.”


그렇게 말한 알레이드가 슬쩍 고개를 숙여 기도를 하자, 레베카는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덩달아 기도를 올렸다.


‘미친 짓거리로군.’


카르미르는 그 야만적인 모습에 치를 떨다가 문득 한 아이를 발견했다.

열둘, 혹은 열세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새장에 갇힌 채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덥수룩한 갈색머리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며, 언뜻 거적데기 사이로 훤히 드러난 갈비뼈가 보였다. 깡마른 팔다리를 보니 오랫동안 굶주린 것이 분명해 보였다.


카르미르는 무언가에 홀린 듯 라이샌더를 몰아 그 아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새장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몇 살이니?”

“···.”


아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카르미르를 빤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몇 차례 더 질문을 건네 보았지만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카르미르는 손짓으로 엘라한을 불렀고, 물주머니를 건네받아 아이에게 권했다.


“마시고 싶니?”

“···!”


아이는 흔들리는 눈으로 잠시 망설이더니 이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뻗어왔다.

아이가 허겁지겁 물주머니를 비우는 것을 보고 엘라한은 안장을 뒤지다가 문득 카르미르의 눈치를 살폈다.


“그- 남는 건량이 조금 있는데···.”


카르미르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 엘라한은 말린 과일을 한 줌 꺼내 아이에게 건네었다.


카르미르의 돌발행동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순방단은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카르미르를 기다렸고, 성문 앞에 줄지어 선 이들은 흥미로운 눈빛을 흘긋거렸다.

그러던 와중, 성문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걸어 나오더니 카르미르를 제지했다.


“멈추시오!”


짧게 자른 붉은 머리칼과 옆구리에 낀 묵직한 투구가 인상적인 기사가 카르미르를 막아섰다. 병사 몇을 대동하고 나온 기사는 준엄한 얼굴로 경고를 해왔다.


“그들은 영지의 법을 어긴 범죄자들로,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죄수들이오.”


카르미르는 순간적으로 기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요크 왕국 특유의 딱딱하고 센 발음이 두 배쯤 강조된 독특한 억양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마실 물과 음식을 주는 것은 명백한 불법임과 동시에, 변경백 각하의 권위를 무시하는 처사임을 알리는 바요!”


기사가 썩 예의를 갖춰 경고한 이유는 카르미르의 행색 때문이었다.

카르미르는 앙투안에서 산 고급스러운 공단 망토에 단필드에서 선물 받은 하얀 벨벳 튜닉과 검게 물들인 양모 바지, 그리고 정강이 중간까지 오는 검은 가죽 장화를 신고 있었다. 게다가 잘 생긴 백마를 타고 있었으며, 중무장한 종자까지 대동하고 있던 터였다.


이렇게 척 봐도 귀족스러운 행색이 아니었더라면 기사는 곧장 병사들을 시켜 상대를 끌어내 매질을 했을 것이다.


카르미르는 슬쩍 고삐를 당겨 기사를 향해 몸을 돌리곤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성직자로서 받은 은혜를 어린 아이와 나누는 것일 뿐이오. 영지에서 복된 말씀이 행해지는 것이 어찌 주인의 권위를 해치는 일이겠소?”

“···성직자?”


의외의 대답에 기사는 의심어린 눈초리로 카르미르를 살폈다.

그리곤 철없는 귀족 도련님이라고 생각했던 사내의 얼굴에서 왕공(王公)의 것과 비견되는 위엄을 발견하곤 마른침을 삼켰다.


‘설마···.’


기사는 눈치가 나쁜 편이 아니었다.

앞에 선 사내에게 풍기는 기세, 길에 멈춰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순방단 행렬, 최근까지 들려온 소식까지-그러한 정보들을 통해 기사는 간단한 추측을 했다. 그리고 칼집 사이로 황금빛이 새어나오는 검을 보고 기사는 추측을 굳혔다.


작가의말

 후원해주신
 rlaqud8k 님
 흑황 님
 흠냐냐냥 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에덴가르드 퀘스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일러스트 / 3.12 엠마 / 3.27 레베카, 올란 업데이트 +25 20.03.12 12,046 0 -
공지 #파랑손입니다... +38 20.01.08 10,610 0 -
공지 #<던전크롤:스톤수프>에서 얻은 모티프와 유료화에 대한 글(유료화 없습니다) +49 19.11.06 7,685 0 -
공지 #세계관 지도 +3 19.10.23 6,190 0 -
공지 #후원, 추천해주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인사 (4. 8 업데이트) +6 19.10.14 4,144 0 -
공지 #제목변경 공지입니다. +11 19.10.07 17,926 0 -
229 #48. 소용돌이(5) +175 20.10.20 5,575 219 13쪽
228 #48. 소용돌이(4) +6 20.10.20 1,376 80 11쪽
227 #48. 소용돌이(3) +32 20.10.20 1,844 103 14쪽
226 #48. 소용돌이(2) +289 20.05.05 6,737 172 13쪽
225 #48. 소용돌이(1) +9 20.05.05 2,138 109 13쪽
224 #47.5 관문 너머 +8 20.05.05 2,069 108 13쪽
223 #47. 죽음의 사도 (3) +32 20.05.02 2,767 140 15쪽
222 #47. 죽음의 사도 (2) +9 20.05.02 2,131 113 14쪽
221 #47. 죽음의 사도 (1) +11 20.05.02 2,169 120 13쪽
220 #46. 정화 (2) +49 20.04.20 3,397 164 13쪽
219 #46. 정화 (1) +15 20.04.20 2,163 124 15쪽
218 #45. 불길 (7) +56 20.04.15 2,746 174 13쪽
217 #45. 불길 (6) +24 20.04.15 2,165 122 14쪽
216 #45. 불길 (5) +6 20.04.15 2,254 111 12쪽
215 #45. 불길 (4) +9 20.04.15 2,254 115 15쪽
214 #45. 불길 (3) +30 20.04.12 2,527 142 13쪽
213 #45. 불길 (2) +5 20.04.12 2,225 112 17쪽
212 #45. 불길 (1) +5 20.04.12 2,308 123 15쪽
211 #44.5 주둔지 +5 20.04.12 2,194 135 13쪽
210 #44. 전조 (3) +20 20.04.08 2,531 139 14쪽
209 #44. 전조 (2) +5 20.04.08 2,233 132 11쪽
208 #44. 전조 (1) +8 20.04.08 2,358 133 13쪽
207 #43. 아름다운 도시 (5) / 레베카 캐릭터 시트 갱신 +30 20.03.31 3,068 153 15쪽
206 #43. 아름다운 도시 (4) +10 20.03.31 2,222 127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