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95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다 – 95
“어떻게 할 생각이냐?”
“구룡단이 태허도장을 살해한 이상 그냥 둘 순 없습니다.”
“잘못하면 개방이 구룡단과 전면전을 치러야 할지 모른다.”
“피할 생각은 없습니다.”
“후후후, 그런 마음이라면 네 생각대로 해라.”
“감사합니다.”
“단, 이룡은 조심해야 한다. 구룡단의 이룡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명심하겠습니다.”
“운이는 어디 갔니?”
“형님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쯧쯧쯧, 물을 만났구먼.”
“형님과 협력을 해볼 생각입니다.”
“현명한 선택이다. 싸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지만,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철저하게 무너뜨려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있다 뵙겠습니다.”
소개는 인사를 하고는 제세의원 쪽으로 달려간다.
“민아!”
“예, 대형.”
막 도착한 태민이 앞으로 나선다.
“이룡이 불리해지면 독을 뿌릴 가능성이 높다. 개방은 정신이 없을 테니 니가 누나랑 준비를 좀 해야겠다.”
“알겠습니다.”
“정랑은 어쩌시려고요?”
“난 들어가야겠소.”
“조심하셔요.”
“당신도 조심하시오.”
한편 양쪽의 균형이 개방이 참여하면서 무너지더니 결국 빈민가의 입구가 뚫린다.
“멈춰라!”
해원단의 누군가가 개방 제자들을 가로막는다. 그때 뒤에서 태민이 소릴 지른다.
“뒤로 물러나라. 당장!”
개방의 제자들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지만, 그 중에서 십여 명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진다.
“도...독이다!”
무진의 예상대로 제세의원 쪽에서 주위에 독을 뿌린 것이다.
“개..개자식들! 포위하라! 한 놈도 내보내선 안 된다.”
“개방의 무서움을 보여줘라!”
개방의 제자들은 극도로 흥분해서 소릴 지르며 제세의원을 둘러싼다. 이어서 그들은 주위에 기름을 뿌리기 시작한다.
화르르르르!
소개가 불을 붙이자 제세의원은 이전보다 더 큰 불길에 휩싸인다. 독을 태우기 위해 불을 피운 것이다. 호란과 태민이 방안을 마련하고 소개가 시행한다.
한편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해원단의 노인들이 이걸 보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으음! 개방이 단단히 준비했군. 근데 저 아이가 누구지?”
“저놈이 바로 소방주일세.”
“단주께서 말씀하신 그 아이인가?”
“개방이 저 아이로 인해서 무림제일세력으로 성장할 거라 말씀하셨지.”
“최근엔 황금상단의 후계자와 혼약을 맺었다는 얘기도 있네.”
“황금상단이라면 단주가 어르신의 친동생이 아닌가?”
뒤쪽에서 세 명의 노인이 상황을 지켜보며 얘기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해원단의 장로들이고, 단주는 태허도장이다.
“그럼 우리와도 인연이 깊군.”
“그런 셈이지.”
“단주가 목숨을 잃은 상태에선 개방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네.”
“자, 우리도 안으로 들어가세.”
“다른 건 몰라도 우전 그놈은 반드시 우리 손으로 처단해야 하네.”
“당연하지.”
“근데 다섯째는 어딜 간 거야?”
“글쎄요? 어제부터 안 보이네.”
“쯧쯧! 다른 때도 아니고, 일단 우리끼리 하세.”
“그래. 가세!”
해원단의 장로들은 일제히 제세의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채 몇 걸음도 가기도 전에 멈춘다.
“저..저런...”
“비겁한 새끼!”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헌신한다는 놈이 환자를 보호막으로 삼다니....”
“어떤 새끼가 저놈에게 중원제일의니 활수성의란 별호를 붙인 거야?”
장로들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분노한다. 제세의원 안쪽에서 무사들이 수십 명의 환자를 인질로 잡고 있다. 들어오면 환자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뜻이다. 그 앞에 빈민의원, 활수성의로 불리는 우전이 서 있다. 그도 검을 들고 환자의 목을 겨누고 있다.
“저놈이 뭘 믿고 저러는 거야?”
“그러게 말이야. 누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은데...”
“난 저놈이 범인이란 소릴 들었을 때부터 궁금했는데 말이야. 저놈이 단주를 해친 이유가 뭘까?”
“자네도 그 생각을 했나?”
“배후 세력이 있는 건 아닐까?”
“태양장!”
“으음!”
태양장이란 말에 모두 얼굴이 굳어진다.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
“생각보다 멍청하군.”
무진이다. 그 뒤에 호란과 태민의 모습도 보인다.
“뭐라고!”
세 사람은 일제히 홱! 하고 돌아선다.
‘이렇게 가까이 왔는데도 아무도 몰랐다. 이놈들이 그 정도로 고수란 말인가?’
‘말도 안 된다. 우린 계속 긴장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바로 뒤에 서 있는 걸 몰랐다.’
‘처음 보는 놈이다. 고작 20대 말 밖에 안 보이는데,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타난 거야?’
세 사람은 화를 내기보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멍청하단 말이 이해하기 어려운가?”
“어린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그 따위 소릴 하느냐?”
“가는귀가 먹는 것보단 어린 게 낫지. 근데 말이야. 원래 나이가 많으면 니들처럼 그렇게 허풍을 떠는 거야?”
“.....”
장로들은 무진의 말에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 말을 못한다.
손자뻘밖에 안 되는 어린 친구가 ‘개뿔도 없는 것들이 나이만 많다고 거들먹거린다.’고 하니 당황할 수밖에.
“소형제 말을 듣고 보니 우리가 잘못했군. 미안하이.”
장로 중 한 명이 나서며 무진에게 정중하게 사과한다.
“후후후! 한 때 훈장 생활을 했다더니, 예의가 바르군.”
무진은 상대방에 대해서 아는 눈치다.
“날 아는가?”
“그렇게 대놓고 먹물 냄새를 풍기는데 어떻게 모를까? 안 그래?”
무진은 이번에는 그의 왼쪽에 있는 노인을 보며 말한다.
“나도 알고 있어?”
“내가 삼십 년이나 산골에 숨어 살아온 늙은이를 어떻게 알겠어? 다만 바람을 타고 떠도는 소문은 들었지.”
“소문이라니?”
“대월의 손에 죽은 자는 죽어 마땅한 자다.”
“허억! 정말 날 안단 말이냐?”
“그러게. 대월(大月)은 삼십 년 동안 산속에서 나온 적이 없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백면서생 당신에 대해서도 모를 것 같아?”
무진은 처음 상대한 장로의 이름까지 밝힌다.
“흐흐흐, 그럼 당연히 나에 대해서도 알겠군.”
“늙은이 이름은 태허 영감탱이한테서 들었지.”
“단주가 말했단 말이냐?”
“단주인지는 모르지만 그 영감탱이가 그러더군. 얼굴은 비단결처럼 생겼는데, 성질머리는 걸레 같은 인간이 있다고.”
“그걸 알면서도 시비는 거는 거냐?”
“영감탱이가 그런 말도 했지. ‘그 백미(白眉)란 친구는 성질머리는 더러워도 합리적인 얘기에는 귀를 기우릴 줄 안다.’고 말이야.”
“으음!”
백미는 물론 나머지 두 사람도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무진이 자신들이 존경하는 태허도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걸 인정한다는 뜻이다.
“자네 말에 따르면 사건의 배후가 태양장이 아닌 것 같은데, 근거라도 있나?”
백면서생이 먼저 나선다.
“내가 늙은이들처럼 바보야? 근거도 없이 말하게.”
“그게 뭐냐?”
“우전이 이룡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도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진아!”
장로들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반긴다.
“진이가 사숙들께 인사를 올립니다.”
나진이 장로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한다. 이어서 무진에게도 허리를 숙인다.
“대협을 뵙습니다.”
“뭘 좀 알아냈느냐?”
“예. 사부께서 최근에 구룡단과 손을 잡으려 하셨던 모양입니다.”
“쯧쯧쯧, 멍청한 영감탱이! 딴에는 태양장을 견제하기 위해 구룡단을 이용하려고 했겠지. 같은 놈들인 줄도 모르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 사부에 그 제자 놈이군.”
무진은 나진을 앞에 두고 힐난한다. 나진이 태양장의 자금줄인 천하제일장의 하수인이 된 데 이어 태허도장까지 구룡단의 먹잇감이 된 걸 놀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이제 어떡할 거냐?”
“일단은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구룡단 전체를 상대하시겠다고?”
“으음!”
나진은 물론 장로들의 표정도 굳어진다. 복수를 하려면 지금 당장 해야 하지만 인질들 때문에 손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좋다. 이번 일은 우리 형제가 처리한다. 대신 한 가지 약속해라.”
“어떤 약속을 말씀하시는 건지....”
“일단 늙은이들을 천하제일장의 호법으로 받아들여서 태양장의 공격을 대비하고, 황금상단과 협력해서 빈민구제사업에 공을 들여라.”
“민심을 얻으란 말씀인가요?”
“후후후, 바로 그거다. 황금상단만큼 오랜 전통을 유지하려면 민심을 얻지 못하면 불가능하다.”
“명심하겠습니다.”
“늙은이들은 어떻게 할 거야?”
“우리야 조카 놈이 밥 먹여 주겠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밥이야 얼마든지 드릴 수 있지만 밥값은 톡톡히 하셔야 할 겁니다.”
“헐헐헐! 원하는 바다.”
“안 그래도 몸이 근질거려서 미칠 지경이다.”
“그래. 일은 많을수록 좋지.”
“감사합니다. 천하제일장의 장주가 호법님들을 뵙습니다.”
해원단의 장로들에게 인사하는 나진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힌다.
“후후후, 그럼 이제 우리가 약속을 지킬 차례인가? 모처럼 당신 솜씨를 보고 싶구려.”
무진은 뒤에 서 있는 호란을 부른다.
“호호호! 안 그래도 기다렸는데, 기회를 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활을 제세의원을 향해서 겨눈다. 이제 해가 기울어서 사방이 제법 어둡다. 제세의원 안이 잘 안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도 호란은 시위를 당겨서 화살을 날려 보낸다. 피웅! 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다.
“화살이 원래 저렇게 빠른 거야?”
대월이 의문을 제기하는 사이 제세의원 쪽에서 비명이 들리며 한 사람이 쓰러진다. 뒤이어 열 명의 제세의원 무사들이 뒤로 넘어진다. 동시에 인질로 잡혔던 환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밖으로 달려 나온다.
해원단의 무사들이 환자들을 안전하게 데려오는 사이 수백 명의 개방도들이 제세의원 안으로 들어간다.
“운이와 막내의 손발이 척척 맞네요.”
“저게 잘 맞는 거냐? 운이 저놈은 싸우는 데 빠져서 환자들을 방치했고, 소개는 한 박자 늦게 들어가서 환자 셋이 목숨을 잃었다. 일주일 동안 특훈이다. 만약 그 후에도 운이 놈이 정신을 못 차리면 너도 혼날 줄 알아라. 알았느냐?”
“예. 근데 막내는 어떻게 할까요?”
“소개보단 거지 놈들 훈련을 제대로 시켜야겠다. 며칠 여기 머무르며 니가 훈련 좀 시켜라.”
“알겠습니다. 근데 구룡단이 가만있을까요?”
“구룡단이 움직이기 전에 놈들이 태허도장을 살해했단 소문을 내라.”
“아! 그럼 구룡단이 경거망동 못하겠군요.”
‘진아! 저 아인 대체 누구냐?’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다만 황금상단의 단주님과 사부님도 대협께 한 수 양보하셨습니다. 특히 단주님은 상전 모시듯이 했습니다.’
‘새파랗게 어린놈의 정체가 뭐기에 모두 쩔쩔맨단 말이냐?’
‘그건 사숙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으음! 얘기가 그렇게 되나? 아무튼 특이한 놈이야.’
‘일단은 저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하세. 우리와 진이에게도 나쁜 것 같지 않으니까.’
‘그렇게 하세.’
그때 무진이 엉뚱한 소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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