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의 이름으로 – 28
배신과 모함이 난무하는 세상 그 혼란을 잠재울 자는 누군가? 여기 복수를 위해 200년을 기다려온 자가 있다. 그의 이름으로 처절하게 복수하고, 따뜻하게 용서하는 얘기가 시작된다.
형제의 이름으로 – 28
“호호호! 오라버니, 가려가 저렇게 놀라는 건 처음 봐요. 정이를 낳을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아인데.”
“저..정랑! 제가 어떻게 여기에 있죠? 아니, 저 일리는 없을 테고. 흠! 그렇게 된 거군요.”
“그렇소. 현세에서 나와 연을 맺은 여인이오. 미안하오.”
무진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인다.
“아니에요. 정랑은 언니가 아닌 저에게 미안해야 해요.”
호란이 나선다. 그녀는 표정이 상당히 어둡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요?”
“정랑은 절 볼 때마다 언니를 생각하니까요.”
“으음!”
가려는 물론이고, 무진과 월미공주까지도 신음소릴 낸다. 특히 가려와 월미공주는 같은 여자로서 호란의 고통을 느낀다.
“그래서 이 아이가 널 불러낸 거란다.”
“절 불러서 어쩌게요?”
“아까 말하지 않았느냐? 너와 하나가 되고 싶다고.”
“예에? 그건 불가능해요.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뛰어넘기도 어렵지만, 두 영혼이 하나가 된다는 건 하늘의 뜻을 어기는 거예요.”
“그래서 넌 오라버니와 함께 정이의 복수를 하는 게 싫다는 거냐?”
“그럴 리가 있나요? 그럴 수만 있다면 백만 번, 천만 번이라도 더 죽을 수 있어요.”
“그런 마음이라면 못할 게 뭐가 있겠느냐?”
“공주님은 억울하지도 않으세요?”
“뭐가?”
“제가 모를 줄 아세요?”
“그게 뭔 소리냐?”
“공주님, 아니 언니가 정랑을 얼마나 은혜하는지... 언니가 그 오랜 시간 얼마나 인내하며 기다렸는지.”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오라버니와 난 그런 사이가 아니야. 정말이야. 오해하지 마.”
월미공주는 극구 부인한다.
“제 말은 그게 아니에요. 전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언니를 전혀 원망하지 않았어요. 아니 미안하고, 또 미안했어요. 흐흐흐흑!”
“가려야!”
두 사람은 부둥켜안고 서로의 마음을 위로한다.
“호호호! 두 분 언니들의 우의가 너무 부럽네요. 우리 셋이 하나가 되면 어떨까요?”
“그건 안 돼!”
월미공주가 강력하게 부정한다.
“왜요?”
“심령술사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어. 그렇게 되면 너희의 영혼이 내게 흡수돼 점차 사라지게 된단다.”
“정말인가요?”
“아쉽네요.”
“이것들아, 오라버니도 생각해야지. 니들 둘만 해도 버거운데 나까지 들어가면 얼마나 힘들겠니?”
“호호호! 그건 그래요.”
“그래도....”
호란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참으로 착한 아이구나. 그러니까 이런 일도 벌였겠지만.... 이번 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설사 천벌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월미공주는 입술을 깨문다.
“근데 가능하긴 한가요?”
가려가 무진과 월미공주를 번갈아 보며 말한다.
“물론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200년을 넘게 심령술을 익힌 내가 있고, 고금제일의 무공을 지닌 오라버니가 있는데 뭔 걱정이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큰 언니. 정말 고마워요. 앞으로 제가 잘 모실게요. 친 언니처럼 요.”
“당연하지. 당연히 그래야지. 가끔은 오라버니도 차지하게 해줄 거냐?”
“물론이죠. 이젠 정랑도 저희에게 꼼짝 못할 걸요?”
“고맙구나. 고마워. 정말 그러고 싶다.”
호란의 진심어린 말에 월미공주는 다시 눈물을 흘린다.
“쯥! 내가 완전히 물건이 됐군.”
“오라버닌 말할 자격이 없어요. 시간 관계상 바로 시작할게요. 너희는 다시 몸속으로 들어가거라.”
“예.”
두 영혼이 호란의 몸속으로 사라지자 월미공주는 천천히 공중으로 떠오른다.
“오라버니.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월아, 꼭 그렇게 해야겠니?”
“저도 오라버니와 영원히 해로(偕老)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해요. 반대로 제 하나 희생하면 저 아들들은 오라버니와 영원해로(永遠偕老)할 수 있어요. 오라버니가 저라면 어떡하시겠어요?”
“월아!”
“너무 슬퍼마세요. 어쩌면 저 아이들을 통해서 전 영원히 오라버니 곁에 머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고맙고, 또 미안하구나.”
“그럼 약속하세요. 절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물론이지. 우리 월이를 내 어찌 잊겠느냐?”
“고마워요. 오라버니의 그 한 마디에 제 영혼은 편안하게 잠들 수 있을 거예요.”
“큰 언니! 전 그런 말씀을 인정할 수 없어요. 그건 작은 언니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물론이야. 언니, 들어오세요. 언니가 들어오지 않으면 저흰 결사반대할 거예요. 우리 힘을 합쳐 그 뜻을 상제께 고하고, 또 고하면 반드시 받아주실 거라 믿어요. 어서요!”
호란에 이어 가려까지 나서서 월미공주를 원한다.
“큰 언니, 정말 우리 두 사람만 정랑을 차지하는 걸 두고 보실 거예요? 그러면 저 세상에서 마음 편히 사실 자신 있어요?”
“으음! 사실 그건 좀 자신이 없다.”
“호호호! 솔직하시네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언니, 어서 들어오세요. 자꾸 빼면 정말로 우리 둘만 하나가 될 거예요.”
“이것들이 언니를 자꾸 놀리네. 그래. 같이 가자. 간다!”
이렇게 월미공주의 영혼도 호란의 몸속으로 사라진다. 그렇다고 마냥 즐거워할 일만은 아니다. 일단 월미공주의 영혼이 자신의 몸을 떠났다는 건 반 나절 후엔 죽음으로 변한다는 걸 의미한다. 또한 세 사람의 영혼이 하나로 합치하지 못하면 호란도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들은 지금 엄청난 모험을 하고 있다.
반면에 좋은 점도 있다. 만약 성공을 한다면 호란의 몸은 세 사람의 능력의 고스란히 가지게 된다. 그럼 또 하나의 무진이 탄생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여자 고금제일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것들이 누구 피 말려 죽이려는 거야 뭐야? 쯔쯧, 이래서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독하다는 말이 나오는 거구나.”
이때부터 무진은 안절부절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방안을 서성거린다. 그에 비해 세 여인의 문제는 순조롭게 풀리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조화를 이루지 못했을 경우 생기는데, 이들은 그런 문제는 전혀 없다.
있다면 가려와 월미공주에 비해 호란의 공력이 너무 약하다는 건데, 그것도 두 사람이 적절하게 조절해서 잘 해결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호란의 몸이 세 사람의 기운을 견딜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건 즉시 현실로 나타난다. 세 사람이 하나의 영혼으로 뭉치는 과정에서 엄청난 기운이 흘러나오고 그건 호란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으아아아아아!”
얼마나 비명이 컸으면 건물은 물론이고, 땅까지 흔들린다.
“허..억! 안 돼!”
무진 또한 소릴 지르며 달려가 두 손으로 호란의 등 뒤를 받친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기운이 그를 향해 밀려온다. 이미 방은 완전히 부셔져 날아갔고, 주위에는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다. 하지만 상대가 누군가? 고금제일인 무진이다. 그의 주변 공기들이 천천히 움직이더니 그 범위가 점차 넓어진다. 급기야 일대의 수많은 나무와 바위, 그리고 집이 가진 기운들이 모두 몰려들어 그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우우우웅!
두 개의 기운이 부딪히자 일대는 완전히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쿠르르르릉... 쾅쾅쾅쾅!
그나마 어둠이 내려 그렇지, 안 그랬으면 이후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을 것이다. 이런 상태로 다시 한 시진 정도가 더 흘러간다. 호란의 몸속에서 요란스럽게 충돌하고, 또 발산하던 세 개의 기운이 점차 하나로 뭉쳐지더니 급기야 하나를 이룬다.
그렇다고 끝난 게 아니다. 하나의 기운이 다시 팽창하며 일대를 장악한다. 이 상태로 두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다. 보다 못한 무진이 다시 움직인다. 이번에는 공기 중에 있는 기운들이 요동치며 무진의 몸속으로 들어가더니 조금씩 호란을 감싸며 몸속의 기운을 제압하기 시작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무진이 기운을 거두고 원래의 자리로 보내자 공중에 떠 있는 호란의 모습이 드러난다. 몸속에서 발산한 기운에 의해서 옷은 모두 가루가 되었고, 몸은 더욱 하얀빛을 뽐낸다.
휘리리리...릭!
무진은 황급히 옷장 속의 옷을 날려 보내 그녀를 감싼다. 그 와중에 월미공주의 몸은 모든 기운을 잃고 완전히 가루로 변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젠 명실 공히 세 사람이 호란의 몸속에서 합체가 된 것이다.
“휴우! 수고했소.”
무진은 호란의 몸을 포근하게 안으며 다독인다.
“저야 뭐 한 일이 있나요? 언니들이 고생하셨죠.”
“이젠 당신을 뭐라 부르지?”
“언니들이 그냥 제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했어요. 고맙고, 감사한 일이에요.”
“그건 그렇고,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소.”
“왜요?”
“도심 한 복판에서 이런 일을 했으니 이미 주변에서 난리가 났소. 아직까진 아이들이 무마하고 있지만 얼마 견디지 못할 거요.”
“알았어요. 일단 집으로 가요.”
그렇게 두 사람은, 아니 네 사람은 황급히 영원각을 떠나 낭인촌으로 이동한다. 이상하게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대한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들이 떠나자 모든 것이 원상복귀 되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며칠 뒤, 무진 일행은 낭인촌을 떠난다. 운고는 얼마간 무진 일행과 다니며 수련을 한 다음에 진천왕부로 가고, 촌장은 낭인촌에 남고, 조충은 따라 나선다. 목적지는 소림이다. 정파의 대립이 무진 일행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에 그걸 막기 위한 행보이다.
무림은 여전히 고금제일인의 지도에 정신 팔려 있어서 일행은 비교적 편안하게 소림사 근처에 도착한다.
등봉(登封).
숭산 근처 마을. 약 삼만 가구가 살고 있는 제법 큰 도시이다. 일행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객잔을 찾는다. 굶주린 배도 채우고, 지친 몸을 눕힐 잠자리도 필요해서다.
소림객잔(小林客殘).
객잔 앞에선 커다란 깃발이 손님들을 반긴다. 객잔은 3층 건물로 상당히 웅장하다. 북경이나 개봉과 같은 대도시에도 쉽게 볼 수 없는 품위와 위용을 자랑하는 곳이다. 대부분의 객잔이 그렇듯이 1층은 주루이다.
“왜 안 들어가?”
일초가 객잔 앞에서 머뭇거리자 조충이 손을 잡고 끌어들인다.
“아..아니, 들어가야지.”
두 사람을 끝으로 일행은 모두 안으로 들어간다. 일행이 모두 들어가자 소림객잔엔 긴장감이 넘친다. 점원들이 한 결 같이 이들의 눈치를 본다.
“분위기가 왜 이렇지?”
“아저씨. 여긴 원래 분위기가 이런가요?”
태민 사형제가 점원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아..아닙니다. 뭘 주문하시겠습니까?”
“뭐야 이거? 이래가지고 제대로 밥이 넘어가겠어?”
조충이 투덜댄다. 반면에 일초는 입을 다물고 가만히 앉아 있다. 마치 평소에 전혀 말이 없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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