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화 하하, 따라와 버렸네.
학원국가 크루다 아카데미.
아카데미는 크게 7개의 구역으로 나뉘는데, 중앙에 있는 제 1구역과 그 주위를 둘러쌓고 있는 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의 구역이 웬만한 대도시에 육박할 정도로 거대했으니 다른 구역으로 넘어가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 중 중앙에 있는 제 1구역은 학생들을 위한 학업구역으로 모든 교육시설이 모여 있는, 진정한 의미의 아카데미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기에 이 제 1구역은 평소에는 학생들과 교직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다른 구역에 거주하는 일반인이나 아카데미를 방문하는 이들은 특별한 일이 없다면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것이다.
어제 우리가 방문했던 학원장실도 제 1구역에 있었다.
“우와··· 사람이 엄청 많네요···”
나는 제1구역으로 들어가기 위해 늘어선 인파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나와 레이리엘은 다시 제 1구역으로 돌아와 있었다.
물론 그웬달이나 학원장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돌아온 건 절대 아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시험을 치르러 온 건가요?”
“네, 그렇겠죠. 실제로는 이것보다 훨씬 많겠지만.”
눈앞에 이동하는 사람들 모두 아카데미에 입학 신청을 하기 위해 온 사람들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 중 하나고.
아카데미에 매년 찾아오는 신입생의 수만 약 5만 명.
그러니 이 시즌에는 입학을 희망하는 사람들 덕분에 아카데미로 가는 길은 이렇게 항상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것도 6개월 전부터 꾸준히 신청을 받고 있으니 이 정도인 거예요.”
“매년 이렇게 사람들이 몰려들면 인구가 엄청나게 불어날 텐데, 괜찮은 걸까요?”
“뭐, 그만큼 졸업하고 빠져나가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레이리엘 말처럼 점점 불어나고 있기는 하다고 해요. 졸업 한 후에도 그대로 남아서 눌러 앉는 사람도 많아서요.”
학원국가라고는 하지만 전원이 학생인 것은 아니다.
학생의 인원은 전체 인구의 3분의 1정도.
3분의 1은 교직원들이고 남은 3분의 1은 방금 말했듯 졸업 후 눌러 앉은 일반인들이다.
덕분에 설립 초기와는 달리 조금씩 일반인들의 수가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세계 최대 도시의 위엄을 실감하면서 인파를 따라 제 1구역 안으로 향했다.
“실례하겠습니다. 혹시 레이리엘 샤인님 되십니까?”
“네? 네, 제가 레이리엘이 맞습니다만···”
그렇게 입구 가까이 다가왔을 때, 입구 앞에서 안내를 하고 있던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갑작스레 레이리엘을 알아보며 말을 거는 직원에 우리는 조금 당황했지만 직원은 친절한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아,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실은 학원장님으로부터 인간 여자와 함께 동행하고 있는 엘프를 찾아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거든요. 잠시 학원장실로 찾아와 주실 수 없냐고 전해달라고 하셔서요.”
“학원장님··· 말씀인가요?”
이건 또 무슨 일이래.
갑자기 레이리엘에게?
흐음··· 뭔가 전할 말이라도 있는걸까?
레이리엘을 쳐다보자 그녀도 딱히 짐작 가는 바가 없었는지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레이리엘만 불렀다는 건 레난도의 얘기려나?
“어떻게 하죠?”
아니, 이걸 저한테 물어보셔도...
“레이리엘만 부른걸 보면 개인적인 이야기 같은데... 전 신경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정하세요. 어차피 저는 혼자서 신청해도 괜찮으니까요.”
내 말에 레이리엘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싶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와 볼게요. 혹시 중요한 이야기일 수도 있으니까요.”
“네, 저는 이대로 접수하고 돌아갈 테니 숙소에서 봐요.”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가 뵐게요.”
그렇게 말한 레이리엘은 직원과 함께 안으로 사라졌다.
아마도 마차를 타러 갔을 거다.
우리가 어제 나올 때도 마차를 이용했으니까.
도시만한 크기의 아카데미 부지 안을 이동하려면 마차가 필수다.
마차 없이 움직였다가는 몇 시간은 걸릴 테니까.
그러고 보니 아카데미에는 마력기관차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한번 타보고 싶네.
나는 혼자가 되어 다시 1구역 안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접수처라고 안내되어있는 임시 표지판이 있었지만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만 이동하면 되었기에 딱히 큰 의미는 없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사람이 많아서야...
아침 일찍 올걸 그랬나.
오늘 안에 다 할 수 있는거 맞겠지?
입학신청은 6개월 전부터 받고 있으며 대리인도 인정하고 있으니 여유가 있는 이들은 대부분 미리 신청해 놓고는 한다.
대부분 귀족이나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로 나도 예전에는 그런 식으로 미리 신청해 놓은 상태로 여행하고 있었고.
만약 신청만 하고 시기를 놓치면 신청비용을 날리기는 하지만 그다지 큰돈도 아니다.
귀족들에게는 더욱 더.
그렇기에 여기 있는 이들은 대부분이 평민들이라는 얘기다.
대부분은 나와 비슷한 또래려나.
어려보이는 아이들도 많이 보이고.
설립 초기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었지만 3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서는 그런 이들은 드물었다.
웬만해서는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오게 되기 마련이니까.
딱히 눈에 띄는 사람은 없는 것 같네.
대부분 레벨은 1에서30사이 정도고.
조금 높은 사람들은··· 직원들인가?
나는 주변을 구경하며 잔디와 나무로 꾸며진 학원 길을 따라 걸었고 그러는 사이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라 있었다.
꽤 넓은 크기의 건물 안으로 들어선 나는 접수처의 줄을 서서 기다렸다.
신청하는 학생들은 많았지만 접수를 받는 직원들도 많았고 업무처리도 능숙했기에 순서는 금방 찾아왔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서 신청하는데 능숙해지지 않는 게 이상하지.
완전 프로의 솜씨들이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신청하시겠습니까?”
“네 부탁드릴게요.”
“여기에 내용을 작성해주세요.”
내가 다가간 창구의 언니는 잠시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내가 뭐가 이상해 보이나?
나는 접수원이 건네준 종이에 간단히 내용을 적어 넣었다.
신상명세에 관한 내용이었는데 물론 적당히 지어낸 내용이었다.
누구나 입학 할 수 있는 아카데미인 만큼 그런 정보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여기요.”
“네 감사합니다. 신청비용은 2실버입니다.”
보다시피 여관 하루 숙박비보다 싼 신청비다.
나중에 입학하고 나면 학원 등록금은 따로 내야 하겠지만 신청비는 그다지 비싸지 않았다.
나는 주머니에서 2실버를 꺼내 접수원 언니에게 전해주었다.
“네, 2실버 확인했습니다. 그럼 본인 확인을 위해 번호표는 분실하지 마시고 잘 간수해주세요. 꼭이요!”
“아··· 네.”
내 손에 번호표를 넘겨주면서 손을 꼭 쥐고 당부하는 친절한 접수원씨.
조금 친절함이 과한게 아닐까 싶었지만 그만큼 프로 정신이 투철한 거겠지.
나는 접수원과 인사를 나누고 건물을 나왔다.
그럼 이제 어쩐다···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기도 조금 아쉽고.
아카데미 구경도 할 겸 레이리엘이 있는 쪽으로 가볼까?
평상시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1구역.
그러나 1년 중에 몇 번, 1구역이 개방되는 시기가 있다.
그리고 입학 시기인 지금이 바로 그 때다.
덕분에 제 1구역 여기저기에는 아카데미 관광을 위해 사람들이 꽤 돌아다니고 있었다.
대부분은 나처럼 입학 신청을 마친 사람들이었고.
일단 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제 1구역의 중심부로 향했다.
중심부로 향할수록 사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안쪽까지 오려면 한참은 걸어야할 테니까.
외부 사람들은 마차도 못쓸 테고.
좋아, 도착했다.
1구역의 중심부에는 교직원 건물로 보이는 거대한 건물 세워져 있었고 그 안에 학원장실이 있었다.
목적지가 보이자 나는 서서히 속도를 늦추고 걸었다.
여기까지 오니 더 이상 외부인은 없는 것 같았다.
학생도 거의 안보이고.
보이는 건 가끔씩 지나가는 교직원 정도?
어쨌든 사람은 적으니 좋네.
느긋하게 산책이나 할까.
레이리엘은 아직 학원장실 안에 있는 것 같았다.
학원장실 안에서 느껴지는 두 사람의 기척.
그웬달과 아루딘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두 사람은··· 더 뒤쪽에 있구나.
학원장님 저택에서 머문다고 했으니까 그쪽이려나.
혹시라도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일단은 적당히 주위나 돌아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을 때였다.
끼익-
교직원 건물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세 명의 여자아이들이었는데 교복을 입고 있는 걸 보니 학생들인 듯 싶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려 그 아이들을 본 나는 몸이 굳었다.
“이야~ 그래도 이번 년도에는 지원자들이 많아서 살았어.”
“후후후, 이게 다 회장 덕분이지.”
“···그럴 리가 없잖아.”
단정한 교복에 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무표정한 얼굴로 선두를 걷고 있는 소녀.
회장이라 불린 그 소녀는 언뜻 차가워 보이는 얼굴로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는 저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였으니까.
소피아··· 학교에 있었구나.
그 아이는 바로 소피아 로난 사이게일.
내 동생이었다.
벌써부터 학교에 와 있을 줄이야.
방학이라서 왕궁에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러고 보니 올해부터 학생회장이라고 했나?
벌써부터 일하고 있구나.
소피아의 근황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찾아오지 못 했었기에 설마 벌써 학원에 도착해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으음, 어쩐다···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안아주고 싶지만 난 죽은 걸로 돼있으니까.
친구들 앞에서 재회하는 건 조금 위험하겠지?
소피의 옆에는 건강하고 기운 넘쳐 보이는 운동계 여학생과 차분하고 조용해 보이는 문학소녀계의 여학생이 함께 걷고 있었다.
아마도 같은 학생회의 사람들인 것 같았다.
잠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며 행동을 멈춰있던 나.
일단 여기서는 물러나고 나중에 따로 찾아가기로 결심했지만 그 전에 소피의 양 옆의 소녀들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이런, 일단 도망이다.
나는 급히 눈을 돌려 그녀들과 반대편으로 걷기 시작했다.
“···우와, 봤어?! 봤어?!”
“···엄청나게 예쁜 사람. 신입생일까?”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기에 더 이상 주목받기 전에 빠져 나가기로 했다.
한참을 걸어서 꽤나 떨어진 장소까지 걸어온 나.
넓은 잔디와 나무로 꾸며진 작은 공원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내 뒤를 따라온 소피를 향해서.
“··· 언··· 니···?”
“하하, 따라와 버렸네. ···오랜만이야, 소피.”
분명 얼굴은 못 봤을 텐데.
설마 여기까지 따라와버릴 줄이야.
그래도 단 둘이 될 수 있었으니 차라리 잘됐다.
소피는 내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언니···? 진짜··· 언니야?”
“후후, 나 많이 컸지? 이제 성인이니까. 아 그래도 소피 쪽이 더 많이 컸으려나? 언니 못 알아볼 뻔했다구?”
“흑···!”
“아, 아니 농담이야 농담? 내가 소피 얼굴을 못 알아볼 리가 없잖아?”
“흐윽···! 흐흑! 흑···! 언니!”
오랜만에 만난 소피에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실없는 말을 해버린 나.
그 말을 듣던 소피의 눈에서는 어느새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내 품으로 뛰어 들어오는 소피를 나는 예전처럼 가볍게 안아주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흑···! 흐아아앙!! 언니···! 언니!!”
“그래, 괜찮아··· 언니는 여기 있으니까.”
그렇게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눈물을 흘리며 서 있었다.
- 작가의말
드디어 재회!
하아, 큰일 하나 치뤘네요.
결국 제시간에는 업로드 못했지만 그래도 한편 올렸습니다!이렇게 점점 연재 주기는 길어지고···
그리고 우리 모두 연휴를 쉬는 걸로···
하핫, 여러분 모두 푹 쉬시면서 즐거운 연휴를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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