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 지금 이 경계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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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쟁이(진)
작품등록일 :
2018.12.13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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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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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15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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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진마(2)

DUMMY

살갗에 차가운 공기가 와닿았다. 내쉰 입김이 하얗게 말려 부서진다. 던전은 내리는 눈송이에 하얗게 덮여 있었다. 그러나 발자국은 어디에도 찍혀 있지 않다. 나는 단말기를 확인했다.


“영하 3도입니다. 108지부 요원들 살아 있을까요?”

“놈이 밖으로 안 튀어나왔으니 살아 있겠지. 뭐해? 얼른 신호탄 쏴.”


지원 요청이 왔다는 건 바깥으로 통하는 게이트가 출현했다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괴수가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음은, 선 투입된 전투조가 용케 붙들고 있기 때문이리라.


허나 던전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어째, 그 흔한 마물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떠올랐던 광점이 사그라지고 하늘은 다시 어둑하게 물들었다. 몹시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응답 없습니다.”

“그럼 게이트 확보를 우선한다. 이동 루트상에 랑데부 포인트가 있으니 거기서 합류하도록 하고. 다들 간격 유지하며 따라와.”


전투 중이라면 우리가 못 알아차릴 리가 없는데. 마력의 기척도 없고. 나는 단말기에 지도를 띄워 현 위치와 대조했다. 전달받았던 격전지는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뽀드득, 눈을 밟으며 조장님이 선행했다. 우리는 그 뒤를 따라 조심스레 종심으로 진입했다.


“여기가 랑데부 포인트입니다.”


모두들 침음을 삼켰다. 도착한 현장은 폭격을 맞은 듯 쑥대밭이었다. 거의 모든 구조물이 완파당해 주저앉았고 멀쩡한 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처참한 폐허. 치열했던 전투가 도심을 강타한 흔적이었다.


허나 기대했던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무릎을 굽혀 눈을 한 웅큼 퍼들었다. 선홍빛의 눈뭉치가 손바닥에서 녹아 흩어져간다. 사방에 흩뿌려진 피는, 물감처럼 눈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 늦은 걸까?


나는 부서진 콘크리트 잔해 틈에서 팔 한 짝을 집어 들었다. 절단면은 무척이나 지저분했다. 잘린 게 아니라 뜯겼구나, 근육 조직이 엉킨 실타래처럼 길게 늘어져있었다. 팔은 딱딱했고 또, 차가웠다.


전멸···? 아니, 속단하긴 일렀다. 소위 하나가 조장님께 다가갔다.


“생존자가 있는 지 찾아보겠습니다.”

“게이트 먼저 확보한다.”

“301 조장님!”

“진마는 아직 던전에 있다. 생존자들이 있다면 게이트를 지키고 있겠지. 여기서 미적대봐야 시체 찾는 거밖에 안 돼.”


반론은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조장님 통솔 하에 다시 이동을 재개했다. 위상공간으로 통하는 입구와 출구는 별개였다. 우리가 입구로 들어왔으니, 이젠 출구를 찾아 지켜야 했다. 놈이 던전을 빠져나가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진다.


“무전은?”

“계속 호출하고 있는데 응답이 없습니다.”


조장님께 대답하며 주위를 살폈다. 정말이지 소름끼치는 정적이다. 대담하게 대로변을 가로지르는데 진마는커녕 마물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들리는 거라곤 사박거리는 발소리 뿐, 공허한 도시가 유독 을씨년스러웠다.


이제 게이트 출현 좌표까지 한 블록을 남겨둔 시점이었다.


“전원 정지.”


조장님이 일행을 멈춰 세웠다. 나는 전방을 주시했다. 멀리서 희미한 실루엣이 희끗거렸다. 애매했지만 사람의 형태는 분명했다.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108지부, 여기는 지원대. 응답하라. 여기는 지원대.]


답신은 없었다. 재차 교신하려는 걸 조장님이 제지했다.


“그만해라. 너도 보고 있잖아.”


살며시 구름이 걷히며 상현달이 지상을 비췄다. 어둠 속에서 계급장에 반사된 달빛이 붉게 반짝거렸다. 요원의 양 눈도 그처럼 붉었다. 한 눈만 적화되는 [초가속]이 아닌 완전한 침식이다.


“아군이 아니다. 총원 전투준비. 진마가 근처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 경계를 늦추지 마라!”


조장님이 빠른 판단을 내렸다. 후위는 뒤로 물러서고 나는 전면에서 놈을 응시했다. 마기의 통제를 잃은 숙주는 잡아먹힐 뿐. 괴수로 전락한 요원은 더 이상 우리의 동료가 아니었다.


“그어억, 그엑.”


놈이 가래 끊는 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접근해왔다. 분질러진 발목이 바닥에 질질 끌려 붉은 혈선이 그어졌다. 그 선을 쫓아 다수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그 또한 사람의 형체였다.


“건아, 108지부 전투조가 몇 명이라 했지?”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답했다.


“여섯 명이라 들었습니다.”

“하, 알겠다.”


나는 천천히 그 수를 헤아렸다. 하나, 둘, 셋···. 이내 의미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몇 명은 살아 있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하지만 헛된 바람이었나 보다. 찾고 있던 108지부 요원들은 모두 괴수가 되어 있었다. 무척이나 처참한 모습으로.


사지가 뜯겨 나간 건 예사요, 튀어나온 창자가 꿀렁이는 모양새에 소위 하나가 헛구역질을 했다. 나는 바득 이를 갈았다. 사관 계급장을 단 요원이 쉽게 괴수로 떨어졌을 리 없었다. 내 동기 생도들이 그러했듯, 짐이 될 바에야 스스로 죽음을 택했겠지.


“씨발 새끼가 감히···!”


놈이 치명상을 입혀두고 독에 삼켜질 때까지 숨을 붙여뒀단 거다. 반항도 못한 채로 침식되어가는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비통함을 곱씹으며 나는 칼을 빼들었다.


“그게겍, 그엑”


괴수로 전락한 이상 이성은 남아있지 않았다. 누군가의 아빠였을, 혹은 엄마였을.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혹은 딸이었을. 가족에게조차 알리지 못할 죽음이란 비참한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맞이한 생의 끝.


저들 중 그 누구도 요원이 되길 원하지 않았을 터. 이런 죽음 역시 바라지 않았을 거다. 이젠 숭고한 희생이라 포장하는 것도 지쳤다. 허면 적어도, 괴수가 아닌 사람으로 죽었어야 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부탁한다.”


나는 검 하나를 더 빼들었다. 양 손에 하나씩 쥐고서 천천히 걸어갔다. 이건 매복도 뭣도 아니었다. 겁을 주려는 심리전? 웃기지 마라.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가 있지.


괴수에 비하면 인간의 몸은 두부처럼 연했다.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요원들이 쓰러져갔다. 이것이 사명을 다한 전우들에게 바치는 조의. 나는 칼끝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키륵, 킥. 키킥.”


높은 마천루 위에서 진마가 입이 귀에 닿도록 웃어댔다. 이 모든 게 그저 여흥이었던 거다, 녀석에겐. 처음 진마와 조우했을 때도 그랬지만 무척이나 질이 나쁜 괴수다.


“소위들은 우회해서 게이트를 지켜! 절대 넘어가지 못하게 해!”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전력을 분산한 뒤 조장님은 잔여 인원으로 전열을 가다듬었다. 부산스러운 움직임에 진마의 웃음소리가 더욱 커졌다. 언제까지 쪼갤 수 있나 두고 보자. 그 잘난 뿔 먼저 부러뜨려 줄 테니.


부조장님이 손을 뻗어 진마를 겨눴다. 응축된 마력이 붉은 구체로 가시화되며 점점 크기를 불려갔다. 거의 농구공만큼 형태를 갖췄을 때, 부조장님이 구동어를 읊었다.


“3계위, 「적창」”


이내 커다란 빛줄기가 놈에게 쏘아졌다. 그러나 광선은 놈에게 닿지 못했다. 놈의 손짓에 허망하게 굴절되었을 뿐이다. 사선상의 대기만이 후끈 달아올라 새하얀 증기 궤적을 남겼다.


3계위를 저리 쉽게 쳐낼 줄이야, 나는 입술을 짓씹었다. 조장님은 침착하게 대처했다.


“마법을 중첩시켜. 어떻게든 떨어뜨려야 돼.”

“사역은 내가 할 테니까 나한테 보내.”


후위의 마력이 한 곳으로 집중되었다. 우리의 힘의 근간은 괴수. 같은 뿌리를 두었기에 마력 역시 동일한 형질을 띄었다. 남의 것도 제 것처럼 사역할 수 있지만, 본디 마법이란 괴수의 고유의 이능이었다.


우리는 놈들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했다. 마법에 위계를 부여한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에게 마법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 체계를 정립해 위험을 최소화시킨 거다.


달리 말해 정형에서 벗어난 마력 사역은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힘을 보태는 건 후위에 해당하는 4명. 그들의 마력이 부조장님 손끝에 맺혔다. 방대한 양을 컨트롤하는 부조장님의 이마에 땀방울이 고였다.


응축과 확산을 거듭하던 마법이 점차 고착되었다. 3계위의 4중첩. 부조장님이 크게 외쳤다.


“귀 막아!”


쌔애애애액-! 대기가 찢겨나가는 파공성에 주변 건물 유리창이 깨져나갔다. 비처럼 쏟아지는 유리조각은 지면에 부딪혀 요란한 소리를 냈다. 더불어 열기로 빚어진 자욱한 증기가 시야를 가렸다.


“죽었나?”


넘겨짚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로 어마어마한 위력. 4계위에 준하는 마법이었던 만큼 건물 윗동은 형체도 없이 날아가 버렸다. 부조장님은 다리에 힘이 빠진 듯 비틀거렸다. 나는 그녀를 부축하며 놈이 있던 자리를 주시했다.


진마급 개체가 이 정도로 쉽게 죽었을 리 없다.


“키기긱. 킥. 키키키킥.”


회백색 연기 속에서 새빨간 안광이 번뜩였다. 놈은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살아있을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멀쩡할 줄은 몰랐는데. 놈이 천천히 팔을 내밀었다.


“후위를 지켜!”


이윽고 놈의 손바닥에서 수백의 빛줄기가 뻗혀 나왔다. 기관총을 난사하듯, 쏟아지는 탄막 세례에 나는 급히 감염을 끌어올렸다. 전투 중에도 [시동]을 유지하는 후위는 범위 공격에 취약했다. 그들을 지키는 건 전위의 몫.


카앙-! 빔을 되받아친 칼날이 찡하고 울렸다. 1계위를 웃도는 무게감이다. 젠장, 욕이 절로 나왔다.


“산개해!”


뭉쳐봐야 표적이 될 뿐이었다. 나는 옆구리에 부조장님을 끼고 재빨리 회피에 들어갔다. 숨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정신이 없었다. 급격히 방향을 전환하는 것만 수차례, 축이었던 관절이 삐걱댔다. 부조장님은 축 늘어져 입을 손으로 막았다.


“웁, 막냉아 토 나올 거 같아.”

“참아요!”


반격의 여지없는 무자비한 폭격. 랑데부 포인트를 잿더미로 만들었던 공습이었다. 콘크리트 엄폐물까지 부서지는 마당에 한 방이라도 맞았다간 저승 직행이다. 녀석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게 수였다.


모두들 같은 판단 하에 움직여 뿔뿔이 흩어졌다. 나와 부조장님은 건물 외벽에 기대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공습은 피했지만 하마터면 주님 곁으로 갈 뻔 했군. 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301 조···다. 최 ···임자부터 상태보··· 해.]

[김지민 대위입니다. 서건 중위와 같이 있어요. 이상.]

[234 ···입니다. 총··· ···사합···다.]

[···8 조장입니··· 부상··· 2명 발···습니다.]

[···인. 추후 명령이 있을 ···지 대···.]


거리 탓에 노이즈가 심했다. 일단 죽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이제 어떡한담. 진마가 게이트를 향하면 소위만으론 막아내지 못할 텐데. 나는 조심스레 녀석의 동태를 살폈다.


우려완 달리 녀석은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뭐지? 아리송해 하는 내게 부조장님이 의아한 말을 건넸다.


“아직도 모르겠어? 나가려면 진작에 나갔겠지.”

“무슨 말씀이십니까?”

“봐봐. 저 새끼가 왜 저기 있겠어. 원하는 게 ‘여기’ 있으니까 그러는 거잖아.”

“뭘 원한···”


되물으려다 속뜻을 알아차렸다. 시팔,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럴 만도 하지. 우리가 많이 죽이긴 했잖아.”

“지금 누구 편드시는 겁니까.”


부조장님을 책망하며 나는 녀석을 눈에 담았다. 이제야 놈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진마는 제 발로 사냥감이 걸어 돌아오길 기다리는 거였다. 밖에 인간보다 우리를 우선함은 죽은 동족을 위한 복수 때문일까? 아무렴 무슨 상관이겠어. 이미 좇된 것을.


올려다본 하늘엔 어느새 가느다란 실금이 그어져 있었다. 게이트가 생성되어 효용을 잃은 던전이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호··· 쏘겠다. 신··· 확···하는 즉시 ···결하···록. ··· 한 ··· 알···. ···탄을 확인··· 집결하···. 이상.]

[수신 완료.]


아까보다 무전 상태가 나빠졌다. 이 무너져가는 위상공간에서 살아남는 건 누가 될까. 어차피 잃을 것도 없는데, 나는 내 목숨 전부를 걸겠다.


작가의말

으아아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래들어 바쁜 일이 있어서요ㅜㅜ 아무리 늦어도 3일 안에 연재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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