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포칼립스 : 지금 이 경계선에서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약쟁이(진)
작품등록일 :
2018.12.13 14:36
최근연재일 :
2019.01.30 19:4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16,592
추천수 :
601
글자수 :
102,738

작성
19.01.19 09:35
조회
499
추천
28
글자
12쪽

4. 진마(4)

DUMMY

“너 여기서 뭐해.”


부조장님의 눈동자는 검었다. 나는 조장님의 상처부위를 손으로 틀어막았다. 심장이 뛸 때마다 피가 울컥울컥 새어나왔다. 부조장님의 군화가 철퍽이며 피 웅덩이를 밟았다.


“아직 살아 있어요. 얼른 밖에서 치료를···!”

“그걸 묻는 게 아니잖아!”


이미 조장님의 출혈은 치사량을 넘겼다. 마기 덕분에 어찌 견디고 있지만 이러다간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


“조장님! 조장님!”


부러진 팔까지 덧대도 손 틈새로 자꾸 피가 흘러나왔다. 안 돼, 이러면 안 돼··· 새빨갛게 물든 두 손이 덜덜 떨렸다.


“서건 중위!”


짝, 뺨이 휙 돌아갔다. 곧바로 멱살이 잡혀 억지로 몸이 일으켜졌다.


“지금 작전 중인 거 잊었어?! 정신 차려!”

“이러다 조장님 죽습니다!”

“빨리 가서 싸우라고!”


퍽-! 둔탁한 소리 뒤에 소위가 벽에서 주르륵 미끄러졌다. 그대로 핏자국이 길게 늘어졌다. 부조장님이 재차 뺨을 후려쳤다.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


부조장님이 권총으로 조장님을 겨눴다. 철컥, 잠금장치가 풀어지며 금속음이 났다. 나는 멱살을 잡은 손을 뿌리치고 총구를 막아섰다.


“아직 살아 있단 말입니다!”

“나도 알아! 지부로 데려가면 살릴 수 있겠지! 그런데 네가 조장한테 들러붙어 있으면 어쩌잔 거야!”


그 사이 다른 소위 하나가 나가떨어졌다.


“이제 너 밖에 없어! 쟤들만으론 진마를 못 잡는다고!”

“부조장님도 보셨잖습니까! 저 새끼를 어떻게 잡으란 말입니까!”


나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초가속]도, 믿었던 4계위도 녀석의 숨통을 끊지 못했다. 더는 남은 수가 없었다. 누구보다 직접 붙어본 내가 절실히 느꼈다. 우리만으론 놈을 죽일 수 없다.


그럼에도 부조장님은 매섭게 나를 다그쳤다.


“그럼 이대로 조장을 죽게 내버려 둘 거야! 괴수가 되도록 내버려 둘 거냐고!”


안다고요! 알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되는 겁니까! 내가 가세한들 진마는 쓰러뜨릴 수 없는데!


쩌저적-! 쩌적-!


어느덧 하늘 그득하게 금이 그어져 있었다. 머잖아 붕괴한다는 조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동시에 이상하리만큼 머리가 차가워졌다. 이성을 마비시키던 생존본능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기묘한 감각이 대체했다.


“제발!”

부조장님의 외침도

“어윽, 누가 도와줘!”

애처로운 울부짖음도

“씨발! 우린 다 죽을 거야!”

자조적인 넋두리조차


모든 게 무덤하게 느껴졌다.


아, 알겠다. 전에 겪어봤었지, 처음 진마와 붙었던 ‘그 때’와 같은 평정. 나는 가라앉은 눈으로 전장을 시야에 담았다.


게이트를 지키던 소위, 물러나 있던 후위, 전열에서 이탈한 부상자. 쓰러진 전위. 그 중심에 진마.


질기게도 날개를 방패처럼 둘러 살아남았구나. 완벽하게 막지 못해 팔 한 짝을 잃었대도 여전히 버거운 상대다. 소위만으론 녀석을 감당하지 못할 터. 더구나 후위는 마력이 없어 [시동]마저 풀려버렸으니.


이래저래 좇 같은 상황이구만. 여태 영관이 오지 않았음은 끝내 우리를 저버렸단 말이겠지.


그러면···


“1계위, 「마사(魔絲)」”


나는 부러진 팔에 마력을 얇게 짠 실을 감았다. 이어 천천히 걸어가 바닥에 떨어진 칼을 주웠다. 234 조장이 쓰던 C형 무장. 몇 걸음 더 나아가 건물에 박힌 268 조장의 검도 뽑아들었다.


“야 소위들, 다 꺼져.”


양 칼날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 몸에선 붉은 연기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진마의 눈이 나를 향했다.


“부조장님. 남은 사람들 데리고 나가세요. 조장님도 챙겨서요.”

“너 혼자 진마를 상대하겠다고? 무리란 거 알잖아!”

“떨거지들 있어봤자예요.”


콰가광-!


갑자기 멀쩡했던 건물이 산산이 부서졌다. 이는 공간의 붕괴를 알리는 전조. 나는 태연하게 고개를 까딱였다.


“뭐해요? 얼른 안 나가고.”

“혼자서 뭘 하겠단 건데!”


한가롭게 신파극을 찍을 때가 아니었다. 와르르, 건물들이 쓰러져갔다. 급격히 붕괴가 진행되며 지축이 마구 뒤흔들렸다. 던전이 소멸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얼빠진 얼굴을 한 소위들을 윽박질렀다.


“야 이 개새끼들아! 살고 싶으면 전부 끌어내!”


나쁜 사람 연기는 익숙했다. 움직이라고! 엉덩이를 걷어차서야 반응이 왔다.


“이거 놔! 놓으라고! 건아! 야 임마!”


마력이 없는 부조장님은 변변찮은 저항도 못하고 끌려갔다. 거동할 수 있는 자들은 부상자들을 업고 게이트로 향했다. 이윽고 무전이 왔다.


[전원 이탈합니다. 지원을 요청할 테니 부디 살아남아 주십시오.]


글쎄다, 나는 상태를 [가속]으로 전환했다. 허세 부린다고 괜히 마력을 쥐어짰나. 가뜩이나 없는 마력이 바닥을 보였다.


“기다려 줘서 고맙다.”

“킥.”


녀석의 속셈이 뻔히 읽혔다. 나를 밟은 뒤에 쫓아 죽이려는 거겠지. 근데, 쉽진 않을 거다.


카앙-! 찡하고 칼날이 울었다. 그러나 빗겨 받아냈기에 전보다 충격이 덜했다.


“아까랑 달라진 거 같지 않아?”


진마와의 독무대. 붉은 달빛이 스포트라이트처럼 무대를 비췄다. 이어진 격돌에서 녀석의 팔뚝에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졌다.


“네가 봐도 좀 이상하지?”


[초가속]도, 다른 전위도 없음에도 나 홀로 녀석과 맞서고 있었다. 당황하는 놈을 두고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알아, 내가 봐도 이건 불가능 해.


카앙-! 캉-!


설명하긴 어려웠다. 눈으로는 녀석을 쫓지 못하는데, 보였다. 진마가 움직일 루트가.


“다시 덤벼봐. 그렇게 해서 날 죽일 수 있겠어?”


마치 앞선 미래를 예고하듯 찰나의 잔상이 아른거렸다. 나는 그 흐릿한 잔영에 기대 칼을 휘둘렀다.


“캬아아아악!”


처음엔 그저 우연인 줄만 알았다. 이런 기묘한 느낌은 생전 겪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제야 확신이 섰다. 두 번째에 이르러서야 ‘평정’이 요행이 아니었음을.


진작에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워도 지금으로선 발동했음에 족했다. 덕분에 내 몫을 다할 수 있게 됐다.


“이번에는 내가 간다.”


나는 녀석을 몰아붙였다. 놈에게 상처가 늘어가는 것처럼 내 몸에도 상처가 늘어갔다.


“하, 시발.”


나는 풀쩍 뛰어 쏟아지는 건물 잔해를 피해냈다. 끊어진 흐름에 녀석이 손을 뻗었다.


쌔애애액-!


이래서 틈을 주면 안됐었는데. 한탄하며 바삐 회피에 들어갔다. 새빨간 빔줄기가 얼굴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마음은 홀가분했다. 사실 이미 체념했거든.


“치사하게 빔만 쏘지 말고 남자답게 붙자.”


꼬추도 없는 자식을 사내로 추겨 세웠으면 반응을 해야지. 이죽대며 녀석의 가슴팍을 찔렀다. 당연히 헛방이었지만 이걸로 거리를 좁혔다.


“키이이이익!”


녀석의 날카로운 손톱을 막아내고 반대 칼로 녀석을 후볐다. 서로의 숨결이 닿는 초근접전. 붙어있던 짧은 시간동안 수없는 공방이 오갔다. 먼저 떨어져나간 건 녀석이었다. 깊은 자상에 놈의 몸통에서 붉은 피가 꿀렁였다.


“짜샤, 쫄았냐?”


호기롭게 말했지만 놈 만큼이나 나도 만신창이였다. 할퀴어진 옆구리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부러진 팔을 억지로 움직이다보니 피치 못하게 빈틈이 생겼다.


반대쪽에 검상을 입었다고 균형을 맞춰줄 필욘 없었는데. 배려에 감탄만 나왔다.


“한 판 더 붙자.”


칼을 쥔 양 손을 마력의 실로 꽁꽁 묶었다. 벌써부터 손아귀가 얼얼했다. 베어 나온 피에 검을 놓쳤다간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이리와, 어딜 가. 이 개새끼야!”


돌연 게이트로 몸을 빼는 녀석을 쫓았다. 한순간 [초가속]으로 녀석을 앞질러 [가속]으로 마력을 배분했다.


“너는 여기서 죽는 거야.”


끊임없이 마력을 탐하는 C형 무장에, 지속되는 [가속]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숨은 턱까지 차올라 세상이 핑핑 돌았다.


“키이이이익!”

“왜? 아직도 안 쓰러지냐고?”


나는 녀석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제대로 된 타격은 아니었지만 연연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나는 여흥삼아 입을 열었다.


“심심한데 내가 얘기 하나 해줄까.”


녀석이 내게 짓쳐들었다. 나는 그에 맞서 칼을 휘둘렀다. 찌잉, 칼날의 울림이 더해갔다.


평정을 업고서도 근소한 우위에 그쳤다. 부족한 역량이 사기적인 능력을 받쳐주질 못한 탓이다. 허나 내 손으론 죽이지 못한대도 수는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버티면 공간이 소멸할 터. 그 안에서도 네가 버틸 수 있을까?


“야, 어디서도 못 듣는 거라니까. 가만히 있어봐.”


나는 여유를 부리며 진마의 장딴지에 칼을 꼽았다. 녀석이 쳐내며 칼날이 부러졌다. 이거 비싼 건데. 어차피 갚을 일도 없겠지만.


“이제 들을 준비가 됐어? 집중해. 꽤 오래된 얘기는 아니야.”


녀석의 발톱이 가슴팍을 깊게 훑고 지나갔다. 쓰라린 통증이 아이러니하게도 살아 있음을 실감케 했다. 거의 모든 건물이 주저앉아 있었다. 머잖아 고해올 끝을 예감하며 나는 말을 이었다.


“있잖아, 나 조장님 되게 싫어했었어.”


좀 기니까, 굵직한 것만 말해줄게. 그닥 유쾌한 게 아니라서.


툭하면 귀찮다고 뺀찌 놓고, 뭐하면 뭐한다고 뭐라하고. 나한테만 빡빡하게 구는데 와, 못살겠다 싶더라. 칭찬 한 번 않고 채찍질만 해대는데 좋아할래야 할 수가 없었지.


“근데 누가 말해주더라고.”


시답잖게 파스를 붙이면서 들었어. 군의관, 유상아 대위가 그러더라. 혹시 알고 있냐고.


“물론 걱정은 했지. 엄마는 돌아가셨고 아빠는 집 나가서 오지도 않고. 하나 뿐인 오빠란 새끼는 갑자기 없어져서 말이야. 내 동생 그때가 15살이었는데. 맘고생 심하겠다, 생각만. 답답해도 어쩌겠어, 나가면 죽이겠다는데.”


등판에서 뜨듯한 물기가 주룩 새어나왔다.


“근데 그렇게까지 몰렸을 줄은 몰랐지.”


이사를 많이 다녀서 내가 동생의 부모이자 친구였어. 배고프면 밥해주고 심심하면 놀아주고, 숙제 있으면 도와주고. 막상 그러다보니 손 떼기가 무섭더라. 그래서 매번 학교까지 바래다줬었지.


그 때문 인지도 몰라. 동생이 내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했던 건.


“누가, 내 동생이 자살할 거라고 생각했겠어? 나도 몰랐는데.”


미수에 그쳐 목숨은 건졌지만 살고 싶지 않다는 말이 동생 입에서 나왔대. 듣고선 진짜 미치는 줄 알았지 뭐야.


“근데 이젠 걱정하지 말래.”


어깨에 녀석의 이빨이 박혔다. 까드득, 뼈가 부서지는 통증을 참으며 나는 녀석의 배때기에 칼을 꼽아 사선으로 베었다.


“원래 그러면 안 돼는데, 조장님이 직접 찾아가서 말해줬다더라. 네 오빠, 잘 살아 있으니 걱정 말라고. 사진까지 주고 일이 있어서 몇 년 후에 다시 찾아온다고 말이야.”


적당히 거짓말을 섞었지만 그게 먹혔나봐. 덕분에 맘 다잡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들었어.


“그런데 그걸 들켜버렸대. 우리한텐 위치추적기가 심어져있거든. 하필 그게 딱 걸린 거야.”


철저히 감춰왔던 걸, 일부라도 누설한 죄가 크다더라고.


“서포터들이 조장님 아들내미를 차로 치어버렸대. 악랄한 새끼들이지? 무려 반 년 동안 다섯 살 배기 애가 병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던데.”


앞으론 제대로 걷지도 못할 거래. 거기다 조장님은 외출까지 금지 당했다더라. 보름에도 방에 처박혀 게임만 하던 게 그 때문이었어.


“그러니 내가 어떻게 고맙단 말을 해. 모른척 꾹 눌러 담고만 있었지.”


나는 녀석의 품에 손을 집어넣어 내장을 힘껏 움켜쥐었다. 녀석이 고통에 울부짖었다.


“그래서 말이야. 금수도 은혜를 안다던데, 보다시피 내가 ‘사람’이잖아. 그걸 어떻게 지나쳐.”


더구나 날 감싸다 죽어가고 있는데. 같은 건 못해줄지언정 최소한 성의는 보여야지.


“얘기가 길었지? 다 너를 위해 해주는 말이야. 왜 네가 여기서 죽어야 하는지, 이제 알았어?”


그러니까 나랑 같이 가자.


“내가 동무해주잖아, 외롭지 않게.”


말을 마치며 왈칵 피를 토해냈다. 나는 복부를 꿰뚫은 팔을 잘라냈다. 부족한 마력에 [가속]이 해제되고 [시동]으로 격하되었다. 더불어 검에 휘감았던 마력마저 서서히 사그라져갔다.


“몰골이 꾀죄죄해도 괜찮지?”


내 뒤에 게이트는 넘볼 생각 말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같이 있자.


작가의말

우와 원래라면 자정에 올라오는건데 훨씬 일찍 올렸어요!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지만.... 

갑작스런 신파씬인데 괜찮나요? 아니면 날려버리궁...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포칼립스 : 지금 이 경계선에서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제목 변경 혹은 리메와 관련해서 +44 19.01.21 1,102 0 -
21 5. 탈영(2) < 이 글을 마지막으로 리메이크에 들어가겠습니다! +53 19.01.30 781 32 11쪽
20 5. 탈영(1) +30 19.01.21 665 52 11쪽
» 4. 진마(4) +13 19.01.19 500 28 12쪽
18 4. 진마(3) +6 19.01.17 491 28 11쪽
17 4. 진마(2) +6 19.01.15 584 26 12쪽
16 4. 진마(1) +2 19.01.12 531 23 12쪽
15 3. 보름(2) +7 19.01.10 506 23 12쪽
14 3. 보름(1) +8 19.01.08 522 23 11쪽
13 2. 배신자들(6) +8 19.01.06 523 25 12쪽
12 2. 배신자들(5) +6 19.01.05 530 27 11쪽
11 2. 배신자들(4) +6 19.01.02 540 21 11쪽
10 2. 배신자들(3) +4 18.12.30 586 21 11쪽
9 2. 배신자들(2) +12 18.12.27 592 23 10쪽
8 2. 배신자들(1) +4 18.12.26 643 26 10쪽
7 1. 신입 (6) +13 18.12.24 695 28 11쪽
6 1. 신입 (5) +15 18.12.22 795 30 11쪽
5 1. 신입 (4) +3 18.12.20 919 26 11쪽
4 1. 신입 (3) +10 18.12.17 1,047 26 11쪽
3 1. 신입 (2) +11 18.12.15 1,247 34 11쪽
2 1. 신입 (1) +12 18.12.13 1,759 39 11쪽
1 프롤로그 +8 18.12.13 2,111 40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