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신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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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다듬
작품등록일 :
2019.01.0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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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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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06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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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왜 거기서 나오세요? (1)

DUMMY

20XX년 XX월 XX일

홀로 지낸 1년이 지나 학년이 올라간 뒤에는 나는 아주 조용히 학창 시절을 보냈다. 남들이 웃을 때 같이 따라 웃고, 남들이 침묵할 때 다 같이 침묵하고, 남들이 방관할 때 똑같이 아무것도 못 본 척 방관했다.


삶은 평화로웠다.


하지만 추억이 남지는 않았다.








아니, 왜 거기서 나오세요? (1)








"저기가 바로 말로만 듣던 룩스타뎀! 최후의 방벽! 꺄아! 꼭 한번 와보고 싶었어요!"


아라얀은 저 멀리 보이는 도시를 보며 눈을 빛냈다. 충분한 거리가 떨어져 있음에도 도시의 방벽 보다 더 높이 치솟아 있는 거대한 백색의 건물이 인상적인 곳이었다.


"최후의 방벽이요? 무슨 뜻이에요?"


아무리 봐도 저 도시는 무언갈 방어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지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도시의 벽은 아주 낮았고 들어갈 수 있는 문도 다른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아라얀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옆으로 다가와 설명했다. 오랜만에 설명쟁이 아라얀의 재림이었다.


"룩스타뎀은 원래 저렇게 거대한 도시가 아녔어요! 불과 20년 전 까지만 해도 그저 자그마한 빛의 신의 신전이 있던 어디에나 있는 흔한 도시였죠. 아마 근 100년의 제국사에서 가장 빠르게 발전한 도시를 꼽자면 바로 저 룩스타뎀을 꼽을 수 있을 거예요."

"20년 전이면 마왕의 침공이 있기 전이네요. 그러면 저 룩스타뎀은 마왕의 침공 덕에 커진 거예요?"

"맞아요!"


내 대답에 아라얀은 열심히 가르치던 학생이 정답을 맞힌 것처럼 기뻐했다.


"마왕의 갑작스러운 침공으로 인해 제국의 동부전선은 불과 1년도 안 돼서 다 무너져 버리고 전선은 바로 이곳 룩스타뎀까지 밀려 버렸죠! 저기 저 멀리 좀 봐봐요! 산맥이 보이죠?"

"그렇네요."


확실히 아라얀의 말대로 룩스타뎀 너머로는 거대한 산맥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었다.


"저 산맥이 바로 제국 동부와 중부를 가르는 힐케 산맥이에요. 룩스타뎀의 뒤로는 제국 중부의 풍요로운 평야가 이어지죠. 즉, 이곳이 뚫리면 황도 레시안트까지 마왕군은 파죽지세로 나아갈 수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제국 동부를 관할하던 제2군단은 이곳에서 최후의 전선을 펼쳤어요.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죠."

"기적이요?"

"네!"


아라얀은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빛의 신의 신전을 가리켰다.


"치열한 전투 와중 바로 저 신전에서 빛의 성녀가 각성한 거예요! 성녀의 빛이 전장을 휩쓸자 제국군은 어떠한 치명상을 입고 있던 숨만 붙어 있다면 다시 일어나 싸울 수 있게 됐어요! 쓰러지지 않는 빛의 군대가 재림한 거죠! 게다가 그렇게 번 시간 덕에 제때 도착한 1군단과 3군단의 도움으로 마왕군은 이곳 룩스타뎀을 넘지 못하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최후의 방벽으로 불리는 거고요?"

"네! 그 뒤로 광휘교 교단에서 성녀가 탄생한 룩스타뎀에 제국에서 두 번째로 큰 신전을 지어서 성녀의 탄생을 기렸죠! 더불어 교단의 지원을 받는 도시를 황실에서 제국군의 후방 보급 거점으로 삼고 집중적으로 지원해준 덕에 룩스타뎀은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죠."


룩스타뎀은 아무래도 상징성과 함께 전쟁특수의 효과로 성장한 도시 같았다.


"빛의 신의 신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고 하니까 룩스타뎀에 들어가면 꼭 한 번 들어가 볼 거예요! 저희 다 같이 가봐요!"


나는 희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숙소부터 잡고 천천히 다 구경해봐요."

"좋아요!"








새하얀 갑옷과 손질된 무기를 장비하고 있는 룩스타뎀의 경비는 여태 봐온 도시 중에서 황도 레시안트를 제외하고는 가장 보급 상태가 좋아 보였다.

경비는 친절한 미소를 머금은 채 우리의 신분증을 대충 확인하고서는 나를 향해 질문했다.


"가면 좀 벗어보시겠습니까?"

"네."


내가 가면을 벗고서 경비병의 눈을 마주하자 경비는 잠시 내 새하얀 눈동자에 당황한 듯싶었다. 곧 정신을 차린 경비병은 내 얼굴을 여기저기 살피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신분증에는 저주에 걸려서 얼굴 전체에 붕대를 감고 있다고 적혀 있군요. 저주는 푸신 겁니까? 그 흰 눈은 저주의 후유증이시고요?"


황도에서 애초에 걸려있지도 않던 저주를 풀기는 했다. 죽을 만큼의 수치심과 함께. 경비병의 물음을 들은 아라얀과 엘은 내 얼굴을 슬쩍 보고는 웃음을 터뜨리기 직전의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돌렸다. 부끄러움에 두 볼이 살짝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네."


내 대답에 경비병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여행자 길드에 가서 신분증을 갱신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혹시 저주의 후유증을 해결하고 싶으시거든 신전에 가셔서 사제님의 허가를 받은 후에 광휘교에서 보호하는 마녀들이 사는 구역으로 가보십시오."


마녀들? 마녀라는 소리에 아라얀은 살짝 눈을 크게 뜨고 경비병에게 질문했다.


"마녀들이 사는 구역이 있어요?"


경비병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녀시니 당연히 알고서 찾아오신 줄 알았는데 아니셨나 보군요. 아시다시피 마녀분들께서는 제국민들 사이에 섞여 살기 힘들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래서 광휘교에 몸을 의탁하시는 마녀분들이 많습니다. 광휘교에서는 그런 분들께서 편히 살 수 있도록 따로 구역을 정해서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있지요. 아! 마녀분들은 얼마든지 자유롭게 구역에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거기서 얼마든지 지내셔도 괜찮고요. 떠나시는 것 또한 자유입니다. 말 그대로 마녀분들을 보호하기 위한 장소니까요."


아라야은 경비병의 친절한 설명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비병은 친절한 미소를 짓고서 명부에 우리 이름을 적은 뒤 신분증을 돌려주었다.


"그럼 룩스타뎀에서 즐거운 시간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관문을 통과해 룩스타뎀에 들어오자 엘은 아라얀에 슬쩍 다가갔다.


"우리 시간내서 마녀들이 사는 구역에도 한 번 가봐요. 혹시 아라얀이 마녀로서의 힘을 각성할 방법을 알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라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은 아라얀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그런데 왜 갑자기 그렇게 축 처졌어요?"

"결국 제국민들과 섞여 살지 못하고 따로 자기들만의 구역에 모여 사는 마녀들이 마음에 걸려서요. 4대 마녀가 대량학살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탓에 마녀는 제국 전역에 공포의 상징으로서 자리 잡았잖아요. 안타까워요. 마녀도 결국 가지고 태어나는 힘을 제외하면 평범한 보통 사람일 뿐인데요."


엘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피식 웃고는 아라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약속의 마녀가 활동했던 백 년 전보다 지금의 마녀들이 살기 좋듯이 서서히 모든 게 좀 더 나아질 거예요. 게다가 아라얀이 이렇게 축 처진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마녀들의 사정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라얀은 그저 한 사람의 마녀로서든 사람으로서든 행복해지면 되는 거예요."

"그걸로 충분할까요?"

"그럼요. 그러니 얼른 숙소를 잡고 점심부터 먹어요. 룩스타뎀이 보이는 탓에 점심을 안 먹고 계속 걸었더니 제 배가 지금 살려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거든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면서 엘은 아라얀을 이끌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나는 내 옆에 서서 둘을 지켜보고 있던 센티암을 바라봤다.


"그럼 저희도 따라가 볼까요?"

"넵! 원님!"









우리는 길거리의 행인에게 물어 신전에 가까운 곳 중에서 가장 시설이 좋고 요리도 잘한다고 소문난 여관에 짐을 풀었다.


"여기 진짜 다 좋은데 여관 이름이 좀 깨지 않아요? 여관 이름이 '아름답고 고우신 성녀님 만세!'가 뭐예요."


아라얀은 툴툴대는 엘을 보며 웃었다.


"여기 주인이 성녀님 덕에 죽다 살아난 퇴역군인이라잖아요. 그 정도면 가게 이름을 이렇게 지을 수도 있죠."


엘은 기지개를 쭉 켜더니 자신의 배를 문질렀다.


"아. 배고파. 슬슬 다들 짐 다 풀었으면 밥 먹으러 가요! 배가 등가죽에 눌러붙을 거 같아요."


나는 등에 메고 있던 창을 풀어 벽에 기대두었다.


"요즘 들어 엘이 배고파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 거 같은데요."


내 말에 엘은 살짝 볼을 붉혔다.


"그게 다 아침마다 아라얀이 절 막 굴려대서 그런 거예요! 아니면 아드티네스 선생님이 제 종족을 바꿔버려서 그런 거 일 수도 있고요! 하여튼 어쩔 수 없는 생리적인 현상인 거라고요!"

"자자. 엘의 배가 꼬르륵거리며 울기 전에 빨리 내려가서 음식을 시키죠."

"제 배는 그런 소리 낼 줄 몰라요!"


나는 그저 희게 미소 지었다.


"최근에 자주 들었던 거 같은데요."

"생리현상은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엘."


아라얀은 엘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방을 나섰다.

엘은 분통을 터뜨렸다.


"숙녀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요! 생리현상은 누구나 하지만 그걸 굳이 짚을 필요는 없는 거라고요!"


꼬르르륵.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지만, 누구의 배에서 났는지는 명확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엘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재빨리 아래층 식당으로 날듯이 걸어내려갔다.







"으음. 맛있어. 너무 맛있어!"


엘은 주문한 요리가 나오자마자 누구보다 빠르게 덜어 맛보고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아라얀은 그런 엘을 보고서 피식 웃고는 자신의 접시에 음식을 덜었다.

나도 그 모습을 보며 가면을 벗어 두고 음식을 덜어 내 접시에 올려놨다.


확실히 '아름답고 고우신 성녀님 만세!'의 음식은 맛있었다. 그 탓인지 꽤 큰 가게의 1층은 식사를 하는 손님으로 가득했다.


쨍그랑!


여유롭게 식사를 하던 와중 갑자기 큰 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지고 사람이 뛰쳐 들어왔다.

창문을 깨면서 여관에 침입한 사람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다. 노인은 어디서 급하게 부숴서 가져왔는지 싶은 나무 몽둥이를 들고서 귀화가 일렁이는 눈빛으로 소리쳤다.


"할라인!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밥을 처먹고 있느냐! 지금 당장 죽어간 내 전우들의 복수를 해주겠다!"


노인은 나이에 걸맞지 않은 빠르기로 뛰어 몽둥이를 휘둘렀다.


탁.


나는 나한테 휘둘러진 몽둥이를 가볍게 멈춰 세웠다.


"네?"


노인은 목청이 떨어져라 소리질렀다.


"할라인! 솜씨는 여전하구나! 그래! 네놈이 쉽게 당해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받아라! 내 비장의······."


비장의 기술을 쓰려던 노인은 뒤따라 들어온 새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내에게 제지당해 결국 그 비장의 기술을 펼치지 못했다.

노인을 거의 안듯이 멈춰 세운 사제는 옅은 갈색 머리를 짧게 잘라 깔끔하게 정리한 남자였다.


"놔라! 이놈아! 할라인이 눈앞에 있다! 할라인이 눈 앞에 있다고! 나는 전우들의 복수를 해야 한다!"

"제발 그만하세요! 루템씨! 이번에는 요양원에서 탈주해서 어디 갔나 했더니 여관에서 깽판을 치고 계시면 어떻게 해요!"


사내는 계속 버둥대는 노인을 뒤에서 포옹하고서 내게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이분이 노망이 나신 분이라 이 실례는 꼭 사죄하겠습니다."

"놔라! 이놈아! 저기 할라인이 있어! 내가 막지 않으면 전부 다 죽어버릴 거야! 다 죽어버릴 거라고!"


작가의말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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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여행준비. +16 19.07.28 480 3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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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선택의 기회 +19 19.07.21 477 43 13쪽
108 짜증. +27 19.07.18 488 41 12쪽
107 문답. +27 19.07.01 555 4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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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 나는… 싶다. (9) +14 19.06.20 461 3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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